1981년 한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부터 시인으로 활동해온 안도현 시인. 섬세하고 낭만적인 시와 쓰린 현실에 대한 응시와 고발의 시를 써온 시인이 지금까지 자신이 써온 작품 가운데 20편을 직접 골라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청진여자’, ‘그대에게 가고 싶다’, ‘가을엽서’ 등 시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엄선된 시들을 영문과 함께 싣고 있는데요.
시인은 스무 편의 시를 소개하면서
“내가 말에 홀려 살아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내가 쓴 문장이 당신의 마음을 흐리게 만들었다./당신의 마음을 씻는 일이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마음이 세파에 물들고 찌들어 혼탁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수많은 문장들이 있지만 우리는 또 그 문장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요. 사람들의 무디고 흐린 마음에 맑은 공기를 불어넣고 싶은 안도현 시인. 무심코 먹고 지나치는 우리의 일상도 시인의 깊은 응시를 피할 수는 없는데요.
알이 실한 꽃게가 검은 간장에 담깁니다. 저항할 수 없어 끝내는 가만히 눈을 감아야 하는 꽃게. 시인은 이런 상황을 ‘스며드는 것’이란 제목으로 노래합니다.
“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어찌 할 수 없어서/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한때의 어스름을/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