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살, 한 여인의 남편 김영수씨는 어쩌다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떨려난 그는 무료하고 불안하게 시간을 보내다 마늘까기며 인형 눈알붙이기, 종이학과 공룡 알 접기 같은 부업을 하다가 부업 브로커 돼지엄마의 소개로 동물원에 지원하게 됩니다.
체력검사까지 한 뒤 당당하게 입사한 직장인데, 그가 할 일이 좀 기묘합니다. 고릴라 복장을 하고 동물원 관람객들을 위해 종일 고릴라처럼 행세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갑자기 상체를 쫙 펴고 기지개를 펴며 두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치면서 우후우후 하고 외친다거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연상케 하는 12미터 구조물에 기어 올라가는 묘기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사실 진짜 고릴라들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지요. 그런데 영화 킹콩을 본 사람들은 고릴라들이란 원래 가슴을 치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물원 측에서 고안해낸 일입니다.
어쩌다 고릴라 흉내를 내면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지, 신세가 처량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지만 김영수씨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여럿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고릴라들이 12미터 구조물에 올라 버저를 눌러야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반달가슴곰들은 공을 터뜨려야 하고, 아프리카코뿔소는 기둥을 들이받아야만 성과급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적금통장을 하나씩 깨뜨리며 생계를 이어가던 아내가 마지막 통장만큼은 깨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김영수 씨는 세상에 뒤쳐진 서민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대기업의 일명 ‘오물처리반’이라고 하는 정리해고를 담당했던 사내, 공무원 시험에 붙기 위해 주경야독하는 여성, 그리고 북파공작원이었지만 북쪽에서는 혁명에 치이고 남쪽에서는 생활비에 치여 결국 버림을 받은 또 한 명의 사내 등등.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요? 비좁은 울타리를 박차고 진짜 세렝게티 초원으로 날아가면 그곳에서는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