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라디오 생생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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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생생경제] 자동차 정비 외길 인생, 명장을 만나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8-29 16:57  | 조회 : 956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우성 PD
■ 대담 : 김관권 한국폴리텍대 정수캠퍼스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생경제] 자동차 정비 외길 인생, 명장을 만나다!


◇ 김우성 PD(이하 김우성)> 배움이 일자리다, 시즌 2. 생생경제 2부에 준비한 코너입니다. 앞서 1부에서는 무겁기는 하지만 정의에 대한 주제라면요. 2부에서는 정말 와 닿는 정의인데요. 흘린 땀과 그 땀에 비례하는 성과를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외길, 한 길만 올곧이 간다는 거, 참 어려운 일인데요. 외길 인생 중에서도 자동차 외길 인생을 살아온 대한민국 명장 한 분 모셨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 귀 쫑긋 세우시고요. 배움의 기술, 배움의 가치, 오늘 김관권 명장 모셔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교 교수님이신데요.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 김관권 한국폴리텍대 정수캠퍼스 교수(이하 김관권)> 네, 안녕하세요.

◇ 김우성> 제가 앞서 소개를 하기는 했는데요. 그래도 어떤 일을 하시는지, 지금 어디에 계신지 소개 부탁드릴게요.

◆ 김관권> 저는 한국폴리텍대학 서울 정수캠퍼스 교수 김관권입니다.

◇ 김우성> 네, 반갑습니다. 오늘 휠체어를 타고 오셨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명장이라고 하면 뭔가 땀 흘리고 힘을 쓰고 하는 이미지를 생각하시는데, 의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사연 먼저 소개해주시고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김관권> 제가 1993년에 과로로 뇌출혈을 하게 됐습니다.

◇ 김우성> 그런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46년 외길, 또 명장의 길로 후학들을 기르고 계십니다. 자동차 정비 기술로는 명장이라는 부분,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낯설기도 하거든요. 이게 어떤 건지 소개해주시죠?

◆ 김관권> 네, 1985년에 우리나라에 자동차 명장 제도가 생기고, 1990년 자동차 정비 분야에도 명장이 도입된 후에 제가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1등,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당시 전국에서 입상한 선수들이 3일 동안 숙박하며 망가지고 없어진, 분해된 자동차 부품을 찾고 고치며 조립 가능하여 전자 자동차의 고장 수리와 용접, 다양한 실기 테스트를 거쳤는데, 그런 과정으로 대한민국 자동차 정비 명장 1호로 제가 선정되었습니다.

◇ 김우성> 숫자 1과 관련이 많으시네요. 지방기능경기대회 1등. 그때는 기능경기대회, 기능올림픽이라고 해서 퍼레이드도 하고 굉장히 국가에서도 관심이 많지 않았습니까? 1등도 하셨고, 1호 자동차 명장도 되셨고요. 저는 한 번도 그렇게 1등을 해본 적이 없어서요. 정말로 대단한 길을 걸어오셨다는 것은 이 설명만 들어도 아실 것 같은데요. 기술 분야 최고의 영예를 얻으신 건데, 자동차 정비를 원래부터 나는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신 건지요? 왜냐하면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신 것을 보면 태어나시면서부터 자동차를 보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계기도 있으실 것 같아요.

◆ 김관권> 제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썩 잘했습니다. 그런데 수해로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워져서 아버님이 기술을 배우라고 하는 말씀을 하셔서 20명 정도가 근무하는 정비공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장에 가보니까 아버님과 비슷한 연배의 사장님이 계시더라고요. 그분을 보면서 저도 일하면서 저분과 같은 사장님이 되는 방법을 배우고 월급을 받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다음 날부터 어리지만 제일 먼저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출근해서 공장을 둘러보며 확인하고, 청소와 정리부터 하였습니다. 항상 머릿속에는 나는 사장이 될 사람이야, 하고 생각을 했었어요. 자동차의 고장 논리를 알면 알수록 정비하는 재미가 솟아나는데, 조금 알만 하면 심부름, 청소를 해야 돼서 조금 갑갑했습니다. 어느 날 퇴근하지 않고 잔업하는 아저씨 곁에서 심부름을 조금 해드렸더니 일을 시키면서 정비를 가르쳐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공장에 누군가가 잔업을 하면 저도 남아서 일을 도우면서 일을 배웠어요.

◇ 김우성> 공부 아주 잘했는데, 형편이 어려워지고, 또 자연재해까지 겪으시면서 기술을 배웠고,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하셨는데, 저는 보니까요. 만약에 셰프를 하셨으면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가 되셨을 거고요. 또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공부를 하셨으면 정말 훌륭한 공학자가 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살아온 길에서 이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땀들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잔업하면 저는 빨리 퇴근해서 쉬고 싶을 것 같은데, 남아서 또 기술까지 배우고요. 그것도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굉장한 애착이 있어서 가능한 일일 것 같은데, 배우는 데 그렇게 열정적이셨는데요. 지금도 가르치는 데 굉장히 열정을 키우고 계시다고요?

◆ 김관권> 네, 지금도 여러 가지 정보를 취득하는 데 혈안이 되어서요.

◇ 김우성> 역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직도 배우시면서도 또 가르치는, 그런 부분이 있으시군요. 교육자가 되신 것은 어떤 계기이실까요?

◆ 김관권> 친구들이 고3 때 저는 고1로 고등학교를 늦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려고 국립중앙직업훈련원 자동차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 김우성> 이것도 역시 자동차 관련된 일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하신 일이군요.

◆ 김관권> 학교를 졸업할 때쯤 중동에 건설 붐이 일어서 중장비 관련한 일자리가 많았고, 실력이 뛰어나다고 서류만 넣으면 면접, 실기 테스트를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가면 다 합격을 했습니다. 오라는 곳이 많았지만 저는 중장비보다는 자동차가 좋아서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실무를 쌓던 중에 27살 때 폴리텍대학의 전신인 정수직업훈련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저의 꿈은 어려서부터 선생님이었습니다. 자동차를 고치며 그날, 그날 자동차의 원리를 공부하고, 고장 원인을 누구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현대자동차에서도 퇴직을 만류했는데, 담당자에게 제가 더 많은 후진을 양성해서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해서 그 후에 많은 졸업생들이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 김우성> 제가 시작하면서 사실 땀과 정의.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말 지금 교수님의 이야기를 보면 땀은 배신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늦게 시작했고, 어린 나이에 부모가 기술을 배워서 가계에 보탬이라고 되라고 했는데, 오히려 고등학교를 늦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27살에 교수가 되셨어요. 그리고 대기업에서도 나가지 말라고 할 정도로. 아마 그 자체가 대한민국 1호 명장을 만들어낸 증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관심이 있는 게 이렇게 아직도 뭔가를 배우고, 자격과 정보를 취득하시는 성격 때문에 가르치는 것도 잘하시고, 그게 또 꿈이시기도 하셨는데요. 너무 한 가지만 이렇게 파다 보면 이거 지루하거나 다른 일도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셨나요?

◆ 김관권> 지금도 학생들에게 20년 정도 지나야 성공 여부가 판가름난다고 합니다.

◇ 김우성> 20년. 지금 김관권 교수님이 말하는 핵심이 20년이 지나야 결정이 난다, 이런 얘기네요?

◆ 김관권> 저는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어머니께 배웠습니다. 이 시대에 고루한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항상 한 우물을 파라고 하셨어요. 제가 군대 가서도 편한 보직을 마다하고 힘든 수송부로 보내달라고 할 정도로 저의 길이 자동차라는 신념이 확고했었습니다. 수업 준비하는 시간이 가장 재밌고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아주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그게 제 천직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동차 분야는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는 귀찮은 건데, 저는 질리지 않고 한 길을 가게 된 이유가 됐었습니다.

◇ 김우성> 한 우물을 파라. 사실 요즘은 멀티 플레이어가 돼라, 이것 저것 다해야 한다고 하는데, 교수님은 한 우물만 파도 정말 한 우물을 판 힘 덕분에 다양한 얘기까지 다 잘하실 것 같아요. 지금 얘기가요. 자동차, 자동차 정비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제 생각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한 분야의 마스터, 마이스터가 되면 정말 남들보다 깊이 알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계속 공부하시고, 정보를 습득하시고, 그렇게 하세요.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알려주시죠.

◆ 김관권> 저는 명장이라고 해서 스스로 최고라고, 또는 모든 것을 통달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분야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는 80년대 중반에 전자가 시작되었는데, 저는 이미 82년부터 자동차의 전자 제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또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오기 전에 이미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고, 요즘 수소 자동차 등 미래 자동차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모든 자동차에 대한 보증기한이 있거든요. 그 기한 동안 다음에 고칠 차를 공부하는 그런 게 저의 지론입니다. 

◇ 김우성> 한 우물만 판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지금 보니까 한 우물 파면서 또 다른 우물을 대비하고 계시네요. 물론 우물을 판다는, 한 길을 간다는 것은 같은 얘기입니다.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시는 것을 들을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나 소설을 보면 항상 주인공들이 어려움을 겪잖아요. 방금도 들어오시면서 건강상의 이유로 몸에 불편함을 얘기도 하셨는데요. 이렇게 열심히, 정말 앞서서, 또 한 길을 꾸준히 땀 흘려 걸어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시련과 아픔도 있으셨다고요? 

◆ 김관권> 하루 24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일이 없이 살아가겠다는 게 제 생각이었는데요. 그것을 멈추게 하는 순간이 있었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93년, 제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병상에 눕게 됐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8일 만에 의식을 찾을 정도로 심각한 사고였는데도 학생을 가르쳐야겠다는 일념으로 4개월 동안 힘든 재활훈련을 해서 그 끝에 일상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반신 장애를 입은 그때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우성> 똑같은 일을 겪더라고도요. 어떤 분들은 이제 이게 나를 가로막는구나, 끝났다, 어렵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조차도 덕분에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이것을 극복해야지, 하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로 만드는 게 정말 대단하고, 박수쳐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청취자분들도 이런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게 또 하나의 땀과 정의의 증거라고 느끼실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감동을 끝내시면 안 되고요. 사회공헌 활동까지 하고 계세요.

◆ 김관권> 사고 후에 제가 저녁 때 TV를 보니까 아갼에도 신호를 철저히 지키는 장애인 부부가 있더라고요. ‘양심 냉장고’요. 안전운전을 위한 환경을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는 장애인 분들에게 저런 분들을 보면서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무료 자동차 정비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22년째 3000명이 넘는 장애인 분들의 차를 수리해드렸습니다. 지금도 1년에 네 번, 일요일 날 장애인들을 위한 무료 정비행사를 하는데, 여기에는 우리 재학생, 그리고 졸업생, 또 뜻 있는 분들이 함께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 김우성> 교수님, 교수님 제자들은요. 자동차 정비나 자동차에 대한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세상을 어떻게 따뜻하게 살아가는지를 먼저 배우는 것 같고요. 김관권 교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졸업생들까지 나서서 3000명이 넘는 장애인들의 차를 수리해드렸는데요. 그냥 수리해드리는 게 아니죠. 대한민국 자동차 정비 명장, 1호 명장의 기술로 수리해드리고 있습니다. 정말 이 삶 자체가 많은 분들에게 큰 기쁨과 교훈이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여러 가지 이런 경험과 지금 활동을 보면 다른 분들한테 조언해주시고 싶은 게 꽤 많은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고 싶으실까요?

◆ 김관권> 정비 기술은 한 가지 차만 고쳐서는 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자동차의 다양한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 서로 교류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신속, 정확한 자동차 정비를 하기 위한 네트워크이기 때문입니다. 정비 포인트를 모르면 며칠이 걸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포인트를 아는 누군가가 짚어주면 2분 만에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동차 기술서적 편집인, 자동차 제작사의 AS 센터장, 수입차 기술이사, 정비업체 대표 등 13명의 관련 업체분들과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기술이 업그레이드 될수록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해서 그래야 기술을 빨리 따라잡을 수 있고, 많은 정보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 김우성> 지금 아주 오래전부터 공부를 하셨는데요. 지금 이 사회가 요구하는 최신 정보, 그리고 새로운 4차 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다 들어있습니다. 네트워크에서 서로 연결하고, 협력할 때 한 사람이 이루지 못하는 목표를 여러 사람이 이루어낼 수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이미 실천하고 계신다는 게 정말 놀랍습니다. 지금 저희가 사실은 예정된 질문에는 없는데요. 다들 뭔가 사무직이라고 할까요? 이른바 ‘사’ 자 붙은 직업만 가려고 하고 젊은일들이 사실은 이렇게 기술을 배우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이런 곳으로 오려고 하는 게 없지 않느냐고 하는 인식도 있어요. 교수님께서 그런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 김관권>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온 것도 기술입니다. 기술은 변하지 않습니다. 기술을 가져야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겁니다. 

◇ 김우성> 기술은 변하지 않는다. 여러분, 이 변화하는 트렌드와 복잡한 세상, 첨단 기술 속에서요. 그런 정보를 막 따라잡으면 유리한 곳에 있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기술을 내가 스스로 갖고 있는 것, 이게 아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교육자로서도 정말 훌륭한 분이고요. 많은 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럼에도 불후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또 이런 여러 가지 네트워크를 만들고 일을 하시잖아요. 앞으로 목표하시는 거나 계획, 마무리 한 마디 해주시죠.

◆ 김관권> 투철한 장인정신도 좋지만, 제가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일에 성공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래서 저와 졸업생들이 남에게 베푸는 일에 능숙한 인재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진정한 학생들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우성> 참 사회 여러 지도급 인사들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재벌, 대기업, 이런 분들 보면서 자기가 가지고 배운 것을 왜 환원하고 나누지 않느냐, 라는. 그게 오히려 사회를 발전시키지 않으니까요. 그런 얘기들, 앞서서도 하고 했는데요. 지금 교수님께서 정말 좋은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교수님의 앞으로의 과제고요. 지금 살아오신 얘기와 여러 이야기 들으신 분들, 나도 저 교수님 따라갔으면 좋겠다는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교수님, 오늘 여러 가지 배움의 기술과 가치를 말씀해주신 게 아니라 삶의 기술과 삶의 가치를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정말 존경스럽고요. 오늘 좋은 말씀, 어려운 걸음 감사드립니다.

◆ 김관권> 고맙습니다.

◇ 김우성> 네, 지금까지 한국폴리텍대하가 서울 정수캠퍼스 김관권 교수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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