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 진행 : 김창기 의사
■ 방송일 : 2022년 3월 28일 (월요일)
■ 대담 : 박한선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주치의] 코로나 시대 혐오가 더 번지는 이유는(서울대 박한선교수)
◇ 김창기 의사(이하 김창기)> 당신의 마음에 안부를 묻습니다. <마음주치의> 노래하는 의사 ‘김창기’입니다. 고르고 골라서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가장 날이 선 표현은 아마도 ‘혐오’라는 낱말이 들어간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내는 혐오, 마음주치의에서 그 혐오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신경인류학자시죠. 서울대 인류학과의 박한선 교수님과 함께합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박한선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이하 박한선)> 네, 안녕하세요. 박한선입니다.
◇ 김창기> 반갑습니다. 신경인류학자에게 혐오란, 어떠한 감정입니까?
◆ 박한선> 혐오, 영어로 하면 disgust, 정확히 번역하면 ‘역겨움’이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여섯 가지 감정이 있어요. 기쁨, 슬픔, 분노, 경악, 불안, 그리고 혐오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감정 중에 하나죠.
◇ 김창기> 생존을 위한 감정이죠.
◆ 박한선> 물론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혐오라는 말이 분노와 증오하고 섞여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 김창기> 오염됐죠.
◆ 박한선> 그렇습니다.
◇ 김창기> 요즘 우리 사회에서 혐오가 유난히 더 많이 거론되곤 하는데 이 배경은 어떻게 보십니까?
◆ 박한선>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우리가 말하는 혐오는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역겨움 더하기 증오, 영어로 하면 ‘Hate’라고 하죠. 그거하고 같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두 개는 좀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더러운 것.’ 나에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배설물, 썩은 것, 사체, 피, 이런 걸 보고는 우리가 혐오한다고 그래요. 역겹다고 해요. 하지만 증오하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도덕적으로 잘못을 했다든지, 밉다든지, 혹은 외집단, 하위집단, 나하고 맞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증오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혐오의 감정하고 합쳐질 때 우리가 그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경멸’이라고 부릅니다. 굉장히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니까요. 혐오가 증오와 경멸과 어지럽게 섞이면서 현대 사회의 복잡한 갈등을 만드는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 김창기> 최근에 늘어난 혐오의 형태들을 보면 기존의 혐오의 감정에서 뒤틀려서 엉뚱한 방향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참 많죠.
◆ 박한선> 그렇습니다. 혐오는요. 내가 싫어하는 집단에 대해서 도덕적인, 혹은 오랜 전통이나 관습을 지키지 않았다, 우리가 모두 마땅히 지켜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일종의 낙인을 씌우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그 대상을 마음껏 미워해도 되게 되는 거예요. 저렇게 나쁜 짓을 했으니, 저렇게 옳지 못한 일을 했으니 미워해도 마땅하다. 그러니까 혐오는 차별로 이어지고 차별은 낙인과 편견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김창기> 그렇죠. 혐오가 분노와 역겨움과 섞여 오작동 되면서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 건데 요즘에 감염병 상황에서 또 그런 일들이 일어나잖아요?
◆ 박한선> 맞습니다. 이 혐오는요. 자신의 안전, 특히 건강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할 때 높은 수준으로 활성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김창기> 토하는 게 대표적인 예죠.
◆ 박한선> 맞습니다. 내가 건강이 안 좋을 때, 혹은 돌봐야 할 아이가 있다든지 가족을 지켜야 할 때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한 혐오 반응이 더 높게 나타나요. 그래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혐오를 보이거든요.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 그렇습니다. 이건 여자가 혐오에 대해서 더 민감해서가 아니고요, 아이를 오랫동안 임신하고 키우고 양육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런 반응이 더 건강한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 19는 벌써 몇 년째 사람들에게 집단적인 혐오 반응을 쭉 높이고 있고 코로나 19와 전혀 상관없는 대상에게 잘못 향하게 되면 대상이 된 사람들은 어렵게 살게 되죠. 안타깝습니다.
◇ 김창기> 그래서 참 문제들이 많이 생기는데요. 혐오라는 표현이 흔해지면서 적절한 강도나 쓰임새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극혐’, 이런 표현들. 이게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거든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혐오에 대한 수위 판단을 어떻게 하는 것이 건강한 걸까요?
◆ 박한선> 혐오의 감정이 들 때 자신이 혐오의 대상이 자신의 건강을 실제로 위협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해서 인지적으로 판단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대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동안 원시적인 반응으로서의 혐오는 자동적으로 활성화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또 이러한 본능적인 감정에만 지배당하는 존재는 아니거든요. 판단하고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혐오반응에 대해서 스스로 검열하고 체크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있지도 않은 혐오에 휩쓸려서 엉뚱한 대상에게 분노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게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이라고 생각하고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확인하자, 라는 처방전. 굉장히 중요한 처방전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한선> 네, 고맙습니다.
◇ 김창기> <마음주치의>는 한국오츠카와 대한정신건강재단과 함께합니다. 저는 내일 다시 당신의 마음에 안부를 묻기 위해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