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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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경험과 직관이 아닌, 합리적 사유를 전수하는 것 (5/15 금)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5-12 16:32  | 조회 : 421 

직관의 한계를 넘는 논증 (5/15 )

안녕하세요! 아주대 총장 박형주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와 운하를 만들며 건축과 토목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정확한 직각을 만들어야 할 일이 잦았어요. 균등한 간격으로 12개의 매듭을 지은 밧줄을 상상해 보세요. 3개의 매듭에서 꺾고 다시 4번째 매듭에서 꺾어서 팽팽하게 하면 각 변의 길이가 3, 4, 5인 삼각형이 만들어지는데, 3매듭과 4매듭 사이가 더도 덜도 아닌 90도를 이룹니다. 피타고라스 보다 무려 천 년 전에 이집트 공사장에서 사용하던 이 12매듭 밧줄을 요즘은 이집트 삼각형이라고 부릅니다.

구태여 피타고라스와 같은 논증 과정 없이도, 경험과 직관으로 해결했던 건데요. 그런데 인류는 왜 직관을 의존하지 않고 논증의 험로를 걸어온 걸까요. 대답은 많습니다. 제한된 경험에 의지하다 보면 쉽게 일반화해서 틀린 결론을 내곤 하니까. 근거 없는 직관과 신념은 미신과 다를 바 없으니까. 평생 하얀 백조만 본 사람이 블랙 스완을 어떻게 인정하겠어요?

기하(幾何)는 한자로 몇 기어찌 하의 결합입니다. 예전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던 무애(无涯) 양주동 선생의 수필인 몇 어찌의 주제가 되기도 했죠. 그리스어의 측량이라는 단어의 결합인 영어 단어 ‘geometry’를 음차한 용어라서 한자의 뜻과 관계없어요. 한학을 공부하다 늦은 나이에 서양 학문을 공부한 늦깎이 학생 무애는 이런 사정을 알 수 없었죠. ‘몇 어찌라는 이상한 이름의 과목 때문에 몇 날을 밤새우다가 유클리드의 논증 기하라는 신대륙을 발견했고, 그 벅찬 마음을 글로 적어 수필로 남긴 겁니다.

이집트인들은 실용적 필요와 예술적 욕구로부터 수학을 발전시켰지만 전승되면서 심화하고 발전되지 못했어요. 하지만 유클리드의 기하는 논증을 통해 결론에 다다르는 사유의 방식으로 자리 잡아 서양 지성사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이나 미국 독립선언서도 유클리드적 논증 전개의 사례로 꼽힙니다. 아인슈타인은 유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과 유클리드 원론을 들곤 했죠.

교육은 경험과 직관의 전수라기보다는 합리적 사유의 방식을 전수하는 행위입니다. 합리적 사유 방식을 가르치는 가장 오래되고 효과적인 방식인 논증은 미래 교육에서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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