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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제2차세계대전 80주년, 독일 ‘과거사죄’ 일본과 달랐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9-02 11:20  | 조회 : 921 

 

[앵커멘트]

가장 뜨겁고, 궁금한 국제이슈를 분석하는 시간,

문희정 국제정치평론가, 전화로 연결합니다.

안녕하세요.

(인사)

 

1. 독일의 대통령이 폴란드 국민들에게 사죄를 했다는 소식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 전해주시죠.

 

올해 91일은 독일이 1939년 폴란드 공습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지 80년이 되는 날인데요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당시 독일 공군의 첫 기습 폭격으로 민간인 1200여명이 학살된 폴란드 중부 도시인 비엘룬에서 폭격이 이뤄졌던 시간대를 맞춰 새벽에 열린 기념행사에서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비엘룬 공격의 희생자들을 애도한다.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기리며 용서를 구한다"고 공식 사죄했습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폴란드에서 반인류 범죄를 저지른 건 독일이었다""누구든 이 과거 유럽의 한 전체주의 국가가 저지른 테러 통치가 독일 역사의 단순한 일부분이라고 주장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을 회피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는데요

 

더불어 "우리는 기억할 것이고 역사가 우리에게 지운 책임을 기꺼이 감당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이자 전쟁범죄였다고 비판하면서도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비엘룬 방문을 일종의 "도덕적 배상"으로 규정하면서 힘겨운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는 행동에는 "용서하고 우정을 쌓을 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2. 독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라고 할 수 있죠?

 

맞습니다. 지난 1970127일 당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수도인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이후 독일 정상들과 정치인들은 과거사에 대해 꾸준히 반성과 공식 사죄를 해왔는데요

 

2005년 독일 최초 여성 총리로 취임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20079월 유엔총회에서 독일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거듭 사과했고 20083월에는 이스라엘 의회 연설을 통해 홀로코스트는 독일인에게 가장 큰 수치라면서 이스라엘을 포함한 전 세계에 공개적으로 사죄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난달 1일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이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나치의 폴란드 파괴에 대해 독일이 도덕적 책임을 느낀다며 사죄했는데요

 

마스 장관은 "독일인과 독일의 이름으로 폴란드에서 저지른 일이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4481일 폴란드 저항군이 독일 정규군에 맞선 '바르샤바 봉기'로 인해 민간인 사망자만 20만 명에 달했고 이 중 5만 명은 학살당했는데요

 

당시 독일군은 바르샤바의 60% 가량을 파괴했고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바르샤바는 무려 90% 가까이 파괴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3. 바르샤바 봉기로만도 피해가 엄청난데 2차 대전 전체를 통틀어 폴란드의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였나요?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요

6년 간 지속된 전쟁 속에서 당시 폴란드 인구의 약 20%600만 명 정도가 학살당했습니다.

 

심지어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 600만 명 중 절반이 폴란드 국적이라는 기록도 있을 정돈데요

 

최근 들어 폴란드는 자신들이 입은 피해만큼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계속 언급하면서 독일에게 추가 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달 1일 폴란드가 전쟁으로 막대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면서 "우리는 그런 피해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고, 진실을 요구하고 배상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고요

 

야체크 차푸토비치 폴란드 외무장관 역시 독일의 배상 문제가 끝났다는 주장에 대해 도덕적 책임은 계속 존재한다공산 폴란드 시절 독일이 소련을 통해 배상금을 지급했는데 당시 독일은 다른 유럽 침공국가에는 직접 배상을 했다. 이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편 폴란드 의회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나치 독일의 점령 기간에 있었던 피해를 산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4. 독일이 사죄는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인데 피해 배상과 관련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요?

 

일본과 비교해서 독일의 사례가 계속 거론되고 있고 물론 일본에 비하면 배상도 어느 정도는 하고 있는 편이지만 피해국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부족하거나 불만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데요

 

특히 국가적 배상도 문제지만 강제 징용을 비롯한 나치 범죄 피해자들의 개인적 차원의 배상은 훨씬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2차 대전 후 냉전 체제를 거치면서 각 나라별로 시대적 상황 때문에 당시 서독이나 동독과 따로 맺었던 배상 관련 협정이라든지 강대국들의 정치적 명분에 따라 피해국들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약속들 때문에 현재 원활한 배상 협의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예를 들어 폴란드의 배상 요구에 독일은 1975년 경제차관 명목으로 10억 마르크를 제공하고 199015천만 마르크를 배상 명목 등으로 지급한 데다 법적으로도 배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5. 독일이 법적으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요?

 

전쟁 직후 서독과 동독이 나뉜 상황에서 소련은 동독의 현물 및 산업시설 해체를 통한 산업기자재를 전쟁 배상 명목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동독은 충분히 배상할 만큼 했다는 입장을 견지했는데요

 

또 자신들은 나치에 대항해 투쟁한 반()파시즘의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나치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대신 지거나 그것의 피해보상을 맡을 필요가 없다는 이데올로기적 이유를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80억 달러의 배상금과 나치귀속재산을 처분해 얻은 30억 달러를 합해 이미 막대한 배상을 챙긴 소련은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던 동구권 피해 국가들에게도 강제로 동독에게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고 약속하게끔 만들었는데요

 

1953년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들은 같은 공산주의 진영인 동독으로부터 일부 배상을 받은 다음 추가 배상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법적 배상청구권을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당시 폴란드는 소련의 압박으로 자국 동부지역 일부를 소련에 넘겨주는 대신 동독 동부의 오데르-나이세강 동쪽 슐레지엔 지역을 할양받는 방식으로 전후 배상 문제를 매듭짓기로 했는데요

 

이어 서독과 폴란드가 1970년 국교 정상화를 하면서 경제적 지원이 절실했던 폴란드에 서독이 차관 제공 등을 하면서 배상 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독일 정부는 이를 근거로 전쟁 배상금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지만 폴란드는 제대로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6. 동독이 소련과의 협의를 통해 전쟁 배상 문제를 해결했다면 당시 서독은 서구권 국가들과 어떤 식으로 배상 문제를 협의했나요?

 

전후 독일은 패전 즉시 연합국에 의해 동서로 분할 점령됐고 소련과 미국이 대척점에 서는 상황에 따라 서독을 소련으로부터 사수해야 한다는 현실적 절박함이 생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 평화조약의 체결을 유보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요

 

19532월 서독은 미국의 도움으로 피해국의 배상요구액에 훨씬 못 미치는 73억 마르크를 12년 상환으로 지불하고 심지어 피해국들의 배상 청구 역시 평화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유예한다는 런던채무협정을 체결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런던채무협정은 독일이 평화조약을 통해 먼저 전승국에 대한 배상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전쟁 범죄 희생자나 피해국에 대한 배상을 유보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또 이 협정을 통해 서독은 150억 마르크의 부채를 탕감받았을 뿐만 아니라 서독이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때만 채권자들한테 빚을 갚을 수 있게 했고 심지어 상환 규모도 무역 흑자의 3%를 넘지 않도록 배려했는데요

 

따라서 서독이 빚을 갚게끔 채권국들은 서독의 물건을 사줬고 이를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국내총생산(GDP)200%에 달하던 부채가 20%까지 줄어드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7. 피해국이나 강제 징용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할 법도 할 만한 내용인데요?

 

맞습니다. 서독은 이 런던채무협정을 바탕으로 당시 배상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통일 후 평화조약이 체결돼 효력이 없어진 지금까지도 이 협정을 근거로 배상 문제에 소극적인 상황인데요

 

1990년 독일 통일을 위해 동독과 서독,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인 미국·영국·프랑스·소련이 맺은 '2+4 협약' 즉 런던채무협정에서 언급한 평화조약에 해당하는 협약을 맺게 됩니다.

 

사실 이 협약도 전쟁 배상을 요구하는 동구권 국가들의 참여를 막기 위해 독일은 완전한 평화조약이 아닌 '2+4 협약'을 고집했는데요

 

독일관련 최종해결에 관한 조약이라고 불리는 이 협약으로 인해 독일은 전쟁 범죄국으로서 치러야 할 의무가 없어졌고 동구권 피해 국가들은 충분한 배상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겁니다.

 

 

8. 그렇다면 지금까지 독일이 지불한 전쟁 배상금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독일은 19591964년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덴마크, 그리스,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영국, 스웨덴 등 서구권 피해국과 개별 협정을 맺어 총 97,100만 마르크를 배상했고요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 등 독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독일이 피해국과 개인에게 배상한 금액은 2015년까지 총 710억 유로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710억 유로의 배상금 가운데 3분의 2 가량인 470억 유로는 독일 국내의 나치 피해자들에게 지급된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나치 독일의 침략으로 피해를 본 국가와 그 시민들을 위한 배상금이 독일 국내 지급액보다 훨씬 적은 셈이 되는 겁니다.

 

 

9. 폴란드 못지않게 그리스에서도 배상금과 관련한 문제 제기를 강하게 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렇습니다. 독일군 점령 당시 그리스에서는 저항군 약 8만 명이 목숨을 잃고 유대계 그리스인 6만명이 수용소에서 학살당했으며 경제적 수탈 때문에 발생한 기근으로 최대 45만 명이 죽었다는 분석도 있는데요

 

이뿐만 아니라 나치 독일의 점령 기간인 19411944년 은행에서 강제로 막대한 자금을 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의회 특별위원회에 따르면 독일은 당시 그리스 중앙은행에서 88600만 마르크를 대출받아 16600만 마르크만 갚은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독일에 대한 배상 요구를 역사적이고 도덕적인 의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스 의회는 2016년 보고서를 통해 2차 대전 당시 나치 점령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최소 2890억 유로(37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 바 있는데요

 

하지만 독일 정부는 196011500만 마르크(현재 가치로 따지면 약 6700만 유로/914억 원)를 배상금으로 그리스에 지불했기 때문에 배상 책임은 끝났다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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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인사 듣고)

지금까지 문희정 국제정치평론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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