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현의 생생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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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생생경제] 대한민국에 치즈를 소개한 파란 눈의 지정환 신부가 만든 상생경제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5-07 18:39  | 조회 : 1879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혜민 PD
■ 대담 : 송기봉 임실치즈마을 운영위원장 


[생생경제] 대한민국에 치즈를 소개한 파란 눈의 지정환 신부가 만든 상생경제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한국 경제를 생생하고 상생하게 만드는 분들을 모시는 생생초대석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남기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고요. 사람들이 왜 이 이름을 기억하게 됐는지가 중요하겠죠. 우리에게 굉장한 것들을 남겨주시고 가신 분이 계셔서요. 오늘 그분의 인생을 조명하고, 그분이 남기고 간 여러 가지 열매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국 치즈의 대부였던 지정환 신부께서 선종하셨는데요. 관련된 이야기, 임실치즈마을의 송기봉 운영위원장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 송기봉 임실치즈마을 운영위원장(이하 송기봉)> 네, 안녕하세요.

◇ 김혜민> 임실, 전북에서 오셨어요.

◆ 송기봉> 네, 새벽에 출발해서 왔습니다.

◇ 김혜민> 고생하셨어요.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아마 이 먼 곳까지 운영위원장이 달려오신 건 지정환 신부님이 어떤 것들을 남기고 가셨고, 그게 얼마나 아름답게 열매를 맺었는지 청취자분들께 안내해주고 싶으셔서 오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정환 신부님 선종 이후 주민들이 큰 상심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마을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 송기봉> 지금도 위로의 조문 플랜카드는 떼지 않았고요. 우리 신부님이 선종하시고 나서 마을에 신부님의 영면을 드린다는 그런 것을 했을 때 고개가 숙여지는 일들이 너무나 많죠.

◇ 김혜민> 그럼요. 마을분들한테는 큰 어른이시자, 또 경제적 모델을 만들어주신 분이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오늘 운영위원장님을 모시기도 했는데요. 임실 하면 치즈, 또 치즈 하면 임실. 이런 공식 아닌 공식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하신 분이 바로 지정환 신부님이십니다. 청취자분들 아시겠지만, 지정환 신부님, 파란 눈의 신부님이세요. 벨기에 출신이신데요. 왜 이분이 임실에 치즈를 전파하셨습니까?

◆ 송기봉> 그분이 대한민국 땅, 한국에서만 60년을 사셨는데요.

◇ 김혜민> 58년에 가톨릭 사제가 되고, 이후에 한국에 계속 사신 거예요?

◆ 송기봉> 64년도에 부안에 와서 성당 신부로 오셔서 땅 없는 부안 농민들을 위해서 간척 사업을 해서 지금 한 30만 평의 땅을 그렇게 집 없고, 가난한 사람들한테 물려주셨는데요. 그러고 나서 병을 얻으셨죠. 병을 얻으셔서 그 당시 전주에 있는 성당에 교구 쪽에서는 청정한 지역에 가서 쉬어라, 라고 했던 곳이 임실이었죠.

◇ 김혜민> 그렇군요. 58년에 가톨릭 사제가 되고, 그 58년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한국전쟁의 여파로 어렵고, 힘든 한국 땅에 발을 밝으셨고, 또 부안성당 주임신부로 부안 땅에서 30만 평에 이르는 땅을 간척하는 활동을 하다가 병을 얻으셔서 임실에 요양차 오셨어요. 그런데 요양을 안 하고 여기서 일을 하신 거네요. 뭘 하신 겁니까?

◆ 송기봉> 당신이 하시는 일이 내 몸도 중요하지만, 일단 성당의 신부님으로 오셨잖아요. 그런데 임실의 상황이 그렇게 자기가 요양할 정도로 녹록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고, 높은 고리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느님 믿으라는 말을 하기 이전에 이분들의 배고픔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분들의 가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 고민에 많이 빠지셨죠. 

◇ 김혜민> 종교적 이념을 설파하기 이전에 정말 배고픔을 어떻게 해소해줄까, 그것을 먼저 고민하셨던 거군요.

◆ 송기봉> 그렇죠.

◇ 김혜민> 그래서 치즈를 생각하신 거예요?

◆ 송기봉> 치즈를 생각하기까지는 당신의 사목관을 열어서 사랑방을 만들었고, 그 사랑방을 통해서 지역에 있는 청년들에게 와서 놀라고 해서 사람들을 모았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남과 이야기할 때 질문을 하지 않잖아요. 질문 하나도 안 하는 겁니다. 한 3개월, 4개월 동안 사랑방을 연 후에 신부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한국인 청년이 질문한 것을 계기로 해서 이들에게 희망을 발견했다는 거죠. 질문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 김혜민> 그동안에는 소극적이고, 그냥 배고픔에 절어 있었던 사람들이 질문하고, 생각하게 된 것에 대해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신 거군요.

◆ 송기봉> 그래서 그때 자기 벨기에 땅을 소개했고, 우중충하고 습기 많은 벨기에 땅의 선조들은 정말 힘들게 농토를 일구기 위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풀을 심었고, 양을 길렀고, 그리고 거기서 그 양에게 나오는 양 젖으로 치즈를 만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전개하시니까 한국인 청년들이 치즈가 뭐에요? 그렇게 질문을 한 거였죠. 그래서 신부님이 말씀하시기 치즈는 너희들이 먹는 두부 같은 것이다. 그렇게 설명하신 거죠. 그때부터 이 사람들한테 희망을 발견하고, 내가 이들에게 치즈라는 것을 선물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신 거죠.

◇ 김혜민> 그렇군요. 그래서 벨기에의 부모님으로부터 2000달러를 받아서 허름한 치즈공장을 하나 세우셨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시작이 됐군요?

◆ 송기봉> 그렇죠. 그 전에는 그렇게 했고, 나중에는 치즈 기술을 배운 분이 아니잖아요. 당시 당신의 사목의 일을 내려놓고, 치즈를 배우러 유럽으로 다시 또 가십니다. 가셔서 오랜 시간을, 그 치즈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공부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3년 이상 공부해야 하는 건데, 3년 이상을 공부하고 오셔서 이제 치즈를 만들려고 하니 기다렸던 사람들은 다 뿔뿔이 헤어지고, 남은 젊은이들을 통해서 다시금 치즈를 전파하는 역사를 만들어가신 거죠.

◇ 김혜민> 그렇게 배워 오신 치즈 기술을 종교에 상관없이 당시 농민들에게 비법을 전수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임실치즈마을 초창기분들은 지정환 신부님께 직접 치즈를 배우신 분들이세요? 

◆ 송기봉> 아니죠. 저희들은 지정환 신부님을 83년 이전에는 뵙지를 못 했어요. 그리고 임실에는 목장 유가공이 14개가 있는데, 제가 목장 유가공 1호인데요. 목장 유가공을 진행하면서 지정환 신부님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고, 그것을 통해서 치즈의 선구자라는 것을 발견했고요. 그분의 사상, 그분의 이념, 그분이 가진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제가 알게 됐고, 많은 대화를 했으니까요. 그것을 통해서 가르침을 많이 받았죠.

◇ 김혜민> 치즈 기술만이 아니라 신부님의 공동체 의식, 그 안에 신부님의 사상, 이런 것들을 우리 위원장님뿐만 아니라 많은 주민들이 배우고 익히셨네요. 참 복이네요.

◆ 송기봉> 그렇죠. 그 당시 자기 신앙으로 보면 신앙인들만 하면 좋을 텐데, 그분이 항상 말씀하신 것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 말이 항상 지금도 뇌리에 스쳐요.

◇ 김혜민> 높은 성당 탑에서 내려와서 직접 농민들과 함께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고, 그렇게 삶의 현장 가운데서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신 신부님이신 것 같습니다. 이 신부님의 헌신과 사랑, 굉장히 중요하지만요. 저희 생생경제에서 운영위원장님을 모신 이유는 원래는 농촌이었잖아요? 그런데 이게 낙농 기술로 지역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지금 현재 임실치즈마을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 송기봉> 포괄적인 의미 속에서 임실을 임실치즈마을로 볼 수 있겠지만, 임실치즈 산업으로 일으킨 경제적인 효과는 그 당시에 낙농가가 소 3~4마리를 키우던 사람들이 지금은 소 70~100마리를 키우는 사람들이 됐고, 그 당시에는 220명 정도의 조합원이 계셨는데, 지금은 낙농업이 3D 업종이다 보니까 50개 농가로 줄었지만요. 그 당시에 소가 한 100여 마리밖에 안 됐다면 지금 소는 한 4000마리 가깝습니다. 경제적인 효과도 1차 생산에서 엄청난 효과를 지금 나타내고 있죠.

◇ 김혜민> 농사만 짓던 때와 치즈를 주 특산물로 하는 지금의 삶. 정말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 지역이 완전히 달라졌겠네요?

◆ 송기봉> 그렇죠. 그 당시만 해도 소 세 마리면 대학생을 가르친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제는 다 낙농인들이 부자가 되어 있고, 그다음에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치즈를 만드는 치즈 같은 경우는 작년 매출이 250억 정도. 임실군 경제로는 작년 같은 경우는 80억 정도 매출이 올라가 있는 상태고요. 그것을 다 더하면 임실군의 총 매출이 300억 정도, 1차 산업에 치즈 산업을 더해서만요. 그리고 그것이 가공산업으로 피자 산업까지 이르면 어마어마하죠. 

◇ 김혜민> 파란 눈 신부의 헌신과 수고가 지금 한 지역경제를 생생하게 만들고 있는데요. 중요한 것은 생생하게 만든 것만이 아니라 상생하는 경제를 만들고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게 마을이라는 개념으로 운영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수익 배분 같은 것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 송기봉> 저희 마을은 치즈만 전문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저희 마을에 공방만 5개가 있어요. 임실 목장이 14개가 있는데, 치즈 공장까지 15개가 있습니다.

◇ 김혜민> 그것은 각자 개인 소유고요?

◆ 송기봉> 그렇죠. 그래서 임실 하면 치즈, 치즈 하면 임실이라는 대명사를 끌어올린 것이 치즈 농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목장이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임실군에서 특화 산업으로 발전시킨 거죠. 

◇ 김혜민> 그러면 마을의 여러 경제 주체들이 함께 마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는 거죠?

◆ 송기봉> 그렇죠. 제가 운영하는 임실치즈마을만 해도 아침 8시, 8시 반이면 외부에서 자가용이 40여 대가 들어와요. 각 공방마다 일을 하러. 

◇ 김혜민> 임실에서 만드는 치즈가 다른 곳에서 만드는 치즈와 뭐가 다릅니까?

◆ 송기봉> 아무튼 임실 치즈가 대한민국 치즈 역사에 길이고, 최초고, 그것이 원조잖아요. 그런 면이 있고, 저희 임실군에서도 지금 새로운 치즈 개발을 위해서 저지종의 도입을 서서히 하고 있는 중이고요. 오랜 기간 동안 저희 임실 사람들이 쌓아온 숙련 기술. 그런 것을 바탕으로 어디에 내놔도 치즈라는 것이 임실이라는 대명사로 끌어올리게 된 것이고요. 대한민국 어디나 치즈 만들 수 있지만, 그래도 임실 하면 그런 품질 면에서는 오케이, 어디에 내놔도 경쟁력이 뒤지지 않는 임실 치즈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장인 정신이 있기 때문에 자랑할 것은 많습니다. 

◇ 김혜민> 임실 하면 치즈, 치즈 하면 임실. 이것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겠어요. 거기 주민분들이요. 그것만으로도 임실에서 만드는 치즈가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정부분들을 만나신다면서요? 산업부 가신다고요?

◆ 송기봉> 안전행정부요.

◇ 김혜민> 가셔서 농촌 경제 공동체와 관련된 해외 사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임실치즈마을을 벤치마킹을 하려는 곳이 많나 봐요?

◆ 송기봉> 전국에서 마을마다 마을 사업을 따오면 반드시 저희 마을에 오십니다. 작년만 해도 80여 개 마을이 와서 마을위원장의 사례, 마을 이야기를 듣고 가기도 하고요. 저희 마을은 한국에서도 돌아다닐 때는 다 돌아다녀서 벤치마킹을 하고요. 일본에도 가서 그것을 어떻게 벤치마킹할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마을 경제를 만든다는 것이 사실은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정부의 도움, 지자체의 도움도 필요하실 텐데, 혹시 원하시는 게 있다면요?

◆ 송기봉> 한국의 농촌들이 다들 피폐한 것은 사실이고요. 젊은 사람들이 없고, 대한민국의 50%가 다 도시에 있는데, 나머지 50%는 각지 농촌에 흩어져 있습니다. 식량 면에서도 그렇고, 제가 그런 거대한 생각까지는 않지만, 농민 스스로 일어서는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이번에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 김혜민> 농민 스스로 일어나는 마을. 결국 자립하는 마을. 그렇게 되어야 또 농민들이 자존감도 세워질 거고요. 그것을 정부와 지자체가 도와주어야 할 것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치즈를 소개했던 지정환 신부. 선종하셨는데요. 신부님의 아름다운 열매가 지금 임실치즈마을에 맺히고 있고, 그 마을 분들을 통해서 또 더 많은 열매들이 맺힐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이태석 신부가 그런 고민을 했다고 해요. 예수님이라면 학교를 지을까, 교회를 지을까. 그런데 학교를 지을 것 같다고 생각하셨대요. 오늘 지정환 신부님, 그리고 이태석 신부님을 보면서 상생하는 삶이 어떤 건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먼 곳에서 와주신 송기봉 운영위원장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선종하셨지만 지정환 신부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상심한 주민 분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함께해주신 위원장님 고맙습니다.

◆ 송기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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