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역사
  • 진행자: 김효진 강사 / PD: 박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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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조선시대 가장 사람이 많이 죽은 정쟁, 기축옥사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1-29 11:14  | 조회 : 429 

안녕하세요? 이야기 들려주는 역사 선생님, 김효진입니다.

정치권력과 관련된 역사에는, 권력을 빼앗기 위해, 혹은 지키기 위해, 배신과 암투, 중상모략에 피바람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리고 권력을 갖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후환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반대파를 없애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정치사엔 반대파를 죽이며 숙청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조선시대 정치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희생된 사건은 무엇일까요? 가장 유명한 정쟁은 아무래도 사화라 불리는 사건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귀양을 떠난 사람도 상당했으니까요. 그런데, 사화보다 더 많은 사람이 다친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려 1,000여 명이 죽은 대옥사, 선조 시기 일어났던 기축옥사입니다. 그 전에 있었던 4대 사화 때에도 죽은 사람은 100여 명에 지나지 않았었거든요.

흔히 기축옥사를 정여립 모반 사건이라 부릅니다. 정여립은 전주 출신으로 기대승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하지만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고 성혼과 이이를 찾아가 학문을 토론하곤 했지요. 1584년, 정여립은 관직에 올랐는데, 당시 집권세력인 동인에 들어가 이이와 성혼을 비판했습니다. 이로 인해 선조 임금의 미움을 샀고, 서인의 비난을 받아 벼슬을 접고 전라도로 내려갑니다. 그는 그곳에서 ‘대동계(大同契)’를 만들고 매 월 활쏘기를 익혔습니다. 이런 정여립의 활동에 대해, 1589년 10월 황해도관찰사 한준 등이, 정여립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합니다.

조정에서는 선전관과 의금부도사를 황해도와 전라도에 파견하여 사실을 확인하도록 하였고, 정여립은 아들과 함께 도망하여 진안에 숨어 있다가 자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약 3년여 동안 정여립과 친교가 있었거나, 또는 동인이라는 이유로 처형된 자가 무려 1,000여 명에 이르는 대옥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정여립이 정말로 반란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으니, 권력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네요.

지금까지 이야기 들려주는 역사 선생님, 김효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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