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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와 시대의 봉우리를 넘어, 세시봉-시복식에 이름을 올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인에 대해"-문사철 강응천 대표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4-08-19 10:36  | 조회 : 3262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세대와 시대의 봉우리를 넘어(세시봉) : 강응천 문사철 대표



앵커:
오늘도 문사철에 강응천 대표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세요.

강응천 문사철 대표(이하 강응천):
네, 안녕하세요.

앵커:
강 대표님은 가톨릭 신자이세요?

강응천:
아닙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 계신 분, 저희 처가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입니다.

앵커:
가톨릭 신자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지난 일요일 광화문에서 열렸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식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갔었어요. 그러면서 시복식의 대상이 됐던 분들이 순교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톨릭교의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먼저 이번 시복식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를 복자로 선포를 했는데요. 이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설명을 해주시죠?

강응천:
복자라는 게 성인 바로 아래 단계라고 하더라고요. 복자는 한국 지역에서 숭배를 받다가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나중에 성인이 된다고 하는데 윤지충이라는 분은 그 유명한 다산 정약용의 외사촌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냐면 한국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 중에서 빼놓고 갈 수 없는, 정조였거든요? 1791년이 신해박해였는데 윤지충이라는 분은 초기 가톨릭 신자아닙니까? 당시에는 로마 교회가 동양의 유교적인 제사관습이 조상과 부모를 숭배하는 관습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런 걸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윤지충 바오로라는 분인 거기에 충실하고자 이분이 충청도에 사셨는데 모친이 돌아가셨는데 모친의 위패를 불사르고 가톨릭 식으로 추모행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일 아니었겠습니까? 게다가 윤지충이라는 분은 정약용과의 친척관계도 있지만 그 집안이 당시에는 다 남인계통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정조 때는 남인계통 사람들과 노론계통 사람들이 치열하게 사도세자 문제로 싸우고 있던 거고 그 한 가운데 정조가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정조는 당시 가톨릭을 서학이라고 불렀는데 서학에 대해서 사상적으로 탄압을 하거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요. 본인은 성리학이 최고라고 생각을 했고 성리학에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로 다른 모든 것을 포용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득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무력으로나 폭력으로 탄압할 생각은 없었는데 유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까. 그래서 결국엔 윤지충을 처단하는 것으로 당시의 시끄러운 상태를 마감하고 넘어갔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윤지충이나 정조나 다 시대의 희생자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그런데 지금은 성당 나가는 분들도 제사 지내시는데.

강응천:
그렇습니다. 그 이후에 여러 가지 한국의 상황, 동양의 상황을 감안해서 로마 교회에서 방침을 바꿨어요. 그래서 제사는 그 나라의 전통적인 관습이니까 지내도 된다고 바꾼 거죠. 이런 사례들이 여러 차례 있어요. 일제 때는 일제가 신사참배 강요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당시에 한국 지역에 천주교를 관여하던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검토한 결과 국가적인 관례로 본다고 해도 된다는 지침을 내린 적도 있고요. 아까 저에게 가톨릭 신자냐고 여쭤보셨는데 저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성은을 입지 못했는데, 사실 1950년대 이전만 해도 저는 결혼할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가톨릭에서는 비신자 하고의 결혼을 허락을 안 했거든요. 그러다 50년대 이후에 비신자라도 ‘관면혼배’라는 걸 합니다. 관면이라는 건 네가 아직 신앙을 갖지 못한 죄를 너그럽게 용서해준다는 명의로 해서, 저도 어쨌든 죄는 사함을 받고 결혼을 한 건데. 저 같은 사람도 결혼을 할 수 있게끔 관용의 폭을 넓혀갔던 거죠.

앵커:
강 대표님은 다른 여자랑 결혼했으면 됐잖아요? 그런데 얘기하고 나니까 사모님이 들으시면 큰일 나겠어요. 어쨌든 우리나라 천주교는 로마 교황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상당히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고 볼 수도 있는 건가요?

강응천:
그렇습니다. 시복식도 교황님이 직접 와서 이렇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세계 천주교에서 한국이 특별한 이유가, 동아시아에서도 일본에서는 이미 임진왜란 전에 사비에르라는 예수교 신부가 가서 전도를 했고요 우리나라에 쳐들어왔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중국에도 그 유명한 마테오 리치, 페르비스트 이런 사람들이 직접 들어가서 그곳에서 황제도 뵙고 황제로부터 중요한 직책을 얻어서 전교를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시야에서 조선은 아마 빠져있던 모양이죠. 그런데 조선은 그런 선교사가 들어와서 선교를 한 것이 아닌데도, 아까 말씀드린 정약용 같은 분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서학이라는 걸 받아들여서 공부하고 이걸 학문으로 받아들인 분도 있고 신앙으로 받아들인 분도 있어서 1784년엔 이승훈이라는 분이 북경에 연행사라는 사절에 끼어들어가서 그곳에서 세례를 받아와서 그때부터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한국은 세계 천주교의 역사에서 굉장히 특별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요한 바오로 6세인가요? 1984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바로 그런 걸 기념해서 200주년이라고 해서 당시 최초의 신부였던 김대건, 최초의 신자 이승훈 103위를 성인으로 시성한 적이 있고 이번에 다시 124위를 복자로 시성한 거죠.

앵커:
그러니까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선교사가 들어와서 포교한 스타일이 아니다?

강응천:
그렇죠. 어떻게 보면 자발적으로.

앵커:
그게 참 특이한데. 교황 얘기를 좀 해보면, 우리나라 천주교에서는 교황을 교종이라고 부를 걸 제안했다고 하는데, 교황은 교회의 황제라는 뜻인가요?

강응천:
말 자체는 교회의 황제라는 뜻으로 굉장히 권위적인 호칭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잘 알려졌지만 영어로는 Pope 라고 부릅니다. 이탈리아에서 교황을 부르는 Papa 에서 유래한 뜻이고 Papa는 아빠라는 뜻이죠. 굉장히 친근한 말인데 어쩌다 교황으로 됐을까 따져보니까,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전교된 게 일본인데, 당시 일본에는 천황이 있지 않았습니까? 천황이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종교의 황제라는 의미에서 아마 일본 사람들이 교황이라고 번역을 한 모양이고요. 우리나라가 쓰는 근대적인 한자어는 대개 일본에서 수입된 거니까 그렇게 쓰게 되어서 너무 권위적인 느낌을 주니까 교종으로 바꿔 부르자는 움직임이 교회 내에서 나오는 모양인데, 저는 Papa도 괜찮을 것 같아요. 친근하고.

앵커:
그렇다고 우리가 Papa라고 한다고 해서 아빠 프란치스코 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데, Papa도 좋죠. 프란치스코 교황이 200 몇 번째 교황이죠?

강응천:
네. 266번째라고 하더라고요. 266대면 첫 번째 교황이 다들 아시다시피 예수의 으뜸제자였던 베드로가 로마로 가서, 당시 로마는 기독교를 금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에서 전파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는데. 그때부터 따지면 266대라고 한다면 계산해보니까 한 명당 평균 7년 남짓 교황 자리에 있던 셈이 되더라고요.

앵커:
아무래도 재임 기간이 짧은 것은, 예전엔 평균 수명도 그렇고,

강응천:
그리고 아주 나이가 드셔야 교황이 될 수 있으니까,

앵커:
그렇죠. 추기경들이 모여서 콘클라베를 해서 불 땔때까지 교황을 뽑고 하잖아요? 베드로 때부터 그게 됐나요?

강응천:
콘클라베가 ‘열쇠로 걸어 잠근 방’을 뜻한다고 하는데 밀실에서 하는 건 지금의 얘기이지 초기 기독교에서는 안 그랬던 모양이에요. 교황이라는 게 로마 지역의 대주교를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신자들이 당시에는 거의 다 형제들이고 거의 삶과 죽음을 같이하는 동지 아니었겠습니까? 모여서 우리 중에 누가 교황으로 적합한지를 외쳤다고 합니다. “하나, 둘, 셋” 해서 동시에 외치면 그 중에서 같은 이름이 나올 경우에, 모든 사람이 동시에 똑같은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 이건 하늘의 뜻이라고 해서 그 사람을 교황으로 선출을 했대요. 상당히 재미있는 선거인데.

앵커:
그러면 마음의 뜻이 통한다고 했을 때 “짬뽕, 짜장면”을 하늘에 말하면, 그건 하늘의 뜻이라고 하고 먹어야겠네요.

강응천:
그렇죠. 지금 와서 대통령 선거를 이렇게 할 수는 없는데 초등학교 반장 선거는 이렇게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앵커:
그때는 그렇게 했군요. 실제로 선거라는 거, 사람을 뽑는 것에 대해서 고대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플라톤 같은 사람은 제비뽑기 했잖아요. 추첨 방식으로 하는 게 가장 공평하다는 애기를 한 적도 있는데. 어쨌든 가톨릭이 지금 분파가 로마 가톨릭, 러시아 정교, 많이 갈려있죠?

강응천: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교황께서 명동성당에서 마지막 미사를 가질 때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이 갔는데 거기에 까만 법복을 입고, 구레나룻이 성성하게 난 분도 있어요. 그분이 정교회에 계신 분인데. 원래는 기독교는 하나였죠. 기독교의 기독이라는 게 예수의 음차라고 알고 있어요. 기독이 중국어로 발음하면 ‘지두’인데, ‘지저스’이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 종교로서 하나였었는데 서기 1000년 쯤 일까? 유럽 전역에서는 하나의 기독교를 믿고 있었고, 물론 내부에서 이단 논쟁이 굉장히 많이 벌어졌었죠. 그러다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쪽과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하는 동쪽의 교회가 서로를 이단으로 공격하면서 갈라졌다고 합니다. 그게 지금 말씀드린 정교회라는 것. 정교회라는 것은 그리스 정교회, 로마, 러시아 정교회 하는 식으로 민족적으로 교회를 가지거든요? 대신 서쪽의 교회는 로마의 중심을 두고 있는 로마 주교, 지금 교황이 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보편적인 종교. 가톨릭이라는 말이 보편을 뜻한다고 하는데요. 그런 식으로 남게 된 거죠. 그래서 그 이후로는 동방의 정교회, 서방의 가톨릭 이라는 식으로 쭉 이어져오다가 가톨릭에서 다시 개신교가 갈라져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앵커:
오늘 가톨릭에 대해서 얘기를 쭉 나눠봤는데요. 한국 가톨릭의 역사는 상당히 특이한 점이 많다. 그런 점 때문에 교황청이 주목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죠. 고맙습니다.

강응천:
네. 감사합니다.

앵커:
지금까지 문사철의 강응천 대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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