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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금) 이슈진단 '문화'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1-02-11 18:34  | 조회 : 2181 

이어서 문화 이슈를 알아보는 금요일 이슈진단입니다.
중앙일보 강혜란 기자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1.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로 숨진 사연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는데요, 이를 빌어 예술인 지원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요.

=지난달 말 서른 두 살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지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숨진 사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를 계기로 정치권 등에서 고용·산재보험 혜택 등 예술인 지원방안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0일 열린 ‘2011 콘텐츠 정책 대국민 업무보고회’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국회에서 ‘예술인복지법안’을 발의해 놓고도 상임위원장으로서 처리 못 한 것이 안타깝다”며 “영화산업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전병헌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같은날 고위정책회의에서 최씨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 “국회가 정상화되면 영화인 실업구조제도 등 문화콘텐츠 산업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정책과 법안을 최우선으로 다루겠다”고 밝혔습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도 지난 9일 논평을 통해 ‘예술인사회보장제도’ 등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2. 지금도 국회에 이런 법안이 제출돼 있지요.

= 국회에는 정 장관과 서갑원 전 민주당 의원이 2009년 10월 각각 대표발의한 ‘예술인 복지법안’ 2개가 제출돼 있습니다. 두 법안 모두 △문화예술인을 근로자로 인정하고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에 가입하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 및 기금 마련하는 것 등을 뼈대로 합니다. 예술인들이 공연 도중 사고를 당해도 산재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 등을 개선하자는 취지입니다. 국회 문방위 검토보고서를 보면, 2007년 문화예술인들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가입률은 각각 70.2%, 99%이지만 고용 및 산재보험 가입률은 둘 다 33.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두 법안 모두 지난해 2월과 11월 논의된 이후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3. 한 사람이 죽고 나서야 이런 논의가 활발해진 것이 늦었다는 느낌도 있는데요. 죽은 최씨, 어떤 작가였습니까.

= 최고은씨가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달 29일입니다. 그는 이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의 이웃집 현관문에는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쪽지가 놓여있었다고 하죠. 그동안 최씨를 자주 도왔던 이웃이 집을 며칠 비웠다가 돌아와 쪽지를 보고 찾아가보니 이미 숨진 뒤였다고 합니다.
최씨는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했습니다. 이 때 각본·연출을 겸한 단편영화 ‘격정소나타’로 주목 받았지만, 이후 집필한 시나리오들이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려왔습니다. 경찰은 부검 결과 최씨의 지병이던 갑상선 기능 항진증으로 인한 돌연사라는 1차 소견이 나왔다고 밝혔고, 유가족은 지난 1일 최씨를 화장했습니다.

4.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개인적인 해석은 분분할 수 있겠는데, 특히 이를 통해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의 열악한 현실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됐지요.

= 최씨의 죽음이 우리 영화계의 구조적 문제를 암시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 영화는 평균 제작비가 최근 6년 새 반 토막(2004년 41억6000만원→2010년 21억6000만원) 나면서 업계 전체가 불황을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극장과 투자사, 감독과 배우에 비해 시나리오작가와 조수급 스태프들에 훨씬 더 가혹한 형태로 나타나는 형편입니다.
예컨대 상업영화 경력이 없는 신인 작가가 영화 제작사와 계약을 했을 때 시나리오 한 편 고료는 대략 2000만~3000만원인데요, 문제는 최근 불황으로 인해 이런 기획개발비를 부담하던 투자사가 더 이상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제작사는 자체적으로 이 중 일부(가령 300만원)를 지급하고 시나리오 기획 개발을 시작하지만, 완성된 시나리오가 투자사의 관문을 통과할 확률은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신인 작가는 무수하게 시나리오를 고쳐쓰면서 영상화를 기다리지만, 완성 때까지 잔금을 받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는 편입니다.
여기에 드라마 시장에 비해 시나리오를 홀대하는 영화계 풍토가 작가들의 생활고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시나리오 원고료는 배우 출연료의 12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20억원짜리 영화라면 시나리오의 값은 3000만원을 조금 넘는 셈입니다. 수년에 걸쳐 시나리오 한편을 탈고해도 그 재능과 수고에 못 미치는 보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5. 그런데 최씨 사망 사건이 사회 여론을 환기시키는 과정에서 인디음악인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때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트위터·인터넷이 주요한 통로가 된 것도 그렇고, 주로 20대가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유사합니다.
= 최씨에 대한 추모 열기는 지난해 말 숨진 인디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본명 이진원)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젊은 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단순히 “가엾다”는 동정 차원이 아니다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는 감정이입을 보입니다. “열심히 산 대가는 더 이상 성공이 아니라 하루 더 연명하는 것” 식의 반응입니다.
이런 애도와 분노에서 ‘88만원 세대’의 집단 의식을 읽기도 합니다. 사회학자 엄기호씨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지적한 것처럼 무한경쟁에 내던져진 젊은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주류에 들어갈 수 없다는 패배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근본적인 ‘루저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건국대 교수는 “지난해 곽지균 감독이 생활고로 숨졌을 때 젊은 층이 보인 반응은 안타까움이었지 분노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고은씨와 달빛요정의 경우 나도 자칫 잘못하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존재론적인 불안감 때문에 추모 열기가 달아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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