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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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1 (금) 이슈진단 '문화'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0-12-31 19:48  | 조회 : 2268 

이어서 문화 이슈를 알아보는 금요일 이슈진단입니다.
중앙일보 강혜란 기자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1. 이제 2010년이 네 시간 정도 남았는데요, 한해를 마무리하는 다양한 시상식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죠. 올해 대중문화계를 빛낸 분들과 그들의 수상 소감을 정리하셨다고요.

= “하얀 눈밭에 내가 디딘 발자국이 후배들을 인도할 수 있는 길이 됐으면 합니다. 무소의 뿔처럼 달려가겠습니다” 지난 25일 열린 ‘ KBS 연예대상 ’에서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으로 대상을 받은 이경규씨가 한 수상 소감입니다. 꽉찬 쉰살이자 통산 7번째 연예대상을 탄 관록의 예능인다운 발언이었지요.
오늘 저녁에도 KBS와 SBS 연기대상이 예정돼 있지만요, 올 한해 우리 대중문화를 풍성하게 일궈준 연기자와 예능인들이 있습니다. 이경규씨의 경우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김병만 등을 누르고 KBS 연예대상을 확정한 뒤에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쟁쟁한 후배들과 경쟁해서 상을 받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지요. 그러면서도 재치를 잃지 않은 것이 “제 팬들은 ‘30년 행복했다, 30년 더 부탁한다'고 하는데 한 20년만 더 하겠다”고 말해 큰 갈채를 샀습니다.
그 발언을 그대로 이어간 수상 소감도 있었지요. 바로 어젯밤에 열린 S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탄 강호동씨는 "호동이는 시계를 보지 않고 이경규 선배님을 봤다. 얼마나 빨리 가느냐 보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경규씨의 수상 소감을 인용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따라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강호동씨 역시 동료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지요. 후배 이승기에 대해선 "이제는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며 격려했고요, 동료 유재석에 대해서는 "유재석의 라이벌이라는 소리가 가장 큰 찬사다. 혼자가면 빨리 가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간다"고 전했습니다.

2. 코메디언이라면 화면에선 늘 웃긴 모습만 보여줘서, 이들이 진정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코미디언들의 수상 소감이 철학이 있는, 묵직한 것이었다고 하네요.

= 웃음이란 게 철학이 있지 않고선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우스운 사람이 돼버리기 않겠습니까. 코미디언 중에는 이렇게 자긍심과 철학이 돋보이는 수상 소감이 많았는데요, KBS 연예대상에서 코미디부문 여자 최우수상을 받은 박지선씨. 감격을 억누르며 "똑똑한 개그맨이 아닌 진정한 광대가 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지요. 박지선씨는 고려대 출신이라는 학벌 때문에 주목을 받은 만큼 부담을 느꼈던 시간을 이 말에 담은 듯합니다. KBS 코미디부문 남자우수상을 수상한 박영진씨도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지요. 요즘 ‘개그콘서트’ ‘두분 토론’ 코너를 통해 최고 인기를 달리는 중인데요, 박영진씨는 "코미디언이 입고 나오는 트레이닝이 유행할 때까지 한땀한땀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땀 한땀’ 이 표현은 요즘 최고의 화제작이죠,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재벌 2세로 나오는 현빈이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 한땀 공들여 만든 트레이닝복”이라고 강조하면서 유행어가 된 말입니다. 연기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화화되고 대우를 못 받는 코미디계 전반을 의식한 수상 소감이 아니었나 합니다.
마찬가지 측면에서 이날 KBS 코미디부문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병만씨의 소감도 독보적이었습니다. ‘개그콘서트-달인’ 코너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스턴트 슬랩스틱 코미디를 구사하고 있는 김병만씨는 수상 소감을 마치 신문고의 기회로 이용하는 듯 이렇게 말했지요. “너무 안타까운 점은 방송에서 코미디가 없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MBC, SBS 사장님, 코미디에 투자해 주십시오."라고요. 예능의 기본이라 할 코미디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이유로 조기 종영되고, 인기 가수나 방송인 위주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득세하면서 정통 코미디가 힘을 잃어가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말이었습니다.

3. 다른 분야도 소개해주시죠. 영화계에선 황정민씨의 ‘밥상 소감’이 유명한데요, 올해도 인상적인 어록이 나왔나요.

= 영화계에서 올해의 수상소감을 꼽으라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서영희씨가 주인공이 아닐까 합니다. 장철수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이 영화를 통해 서영희씨는 올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가장 많이 가져간 여배우가 됐습니다. 부천판타스틱 영화제, 영평상, 대한민국 영화대상에 이어 올해 마지막 영화상이죠, 영화감독들이 수여하는 디렉터스 컷 어워즈(Director's CUT Awards)에서 올해의 연기자상을 받아 4관왕을 이뤘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말한 수상 소감이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지요. “다른 사람들은 한 계단 올라가는 게 쉬워 보이는데 왜 나는 높고 험난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자질이 없나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번에 배우로서 인증해주신 것 같아 기분 좋고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연기하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연기 11년 차에 드디어 정상에서 선 배우답게 무명의 세월을 함축하는 진한 감동의 말이었지요. 서영희는 이와 관련해 "항상 영화제에 가면 상 받는 곳은 굉장히 높은 곳이라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껑충 뛰어가는데 나는 자꾸 미끄러지는 것 같고, 저 쪽이 굉장히 높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치를 잃지 않은 것이 "상을 탈 때 '한 계단 한 계단이 왜 나한테는 이렇게 험난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수상소감이 건설 CF를 겨냥한 거냐고 묻더라"며 웃었습니다.

4. 훈훈한 수상 소감들을 소개해주셨는데요, 한 해를 돌아보면 이 밖에도 문화계의 말말말이 많았죠. 기억에 남는 것, 소개해주시죠.

= 올 초에 화제가 된 유행어는 ‘개그콘서트’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서 개그맨 박성광이 외쳤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었죠. 경쟁주의 세태에 대한 풍자를 담은 말인데, 한선교 국회의원이 “TV에서 이 말을 듣는 게 찝찝하다”고 해서 논란이 됐죠. 몇 주 뒤에 이 코너가 막을 내리면서 외압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학력위조 논란에 휩싸였던 가수 타블로씨의 말도 화제가 됐습니다. MBC 스페셜 '타블로 스탠퍼드 가다'에 출연해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거잖아요"라고 했지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집단 마녀사냥'을 비판한 맥락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해를 돌아보면서 새겨야 할 말은 지난 3월에 입적한 법정 스님의 유언이 아닌가 합니다. 스님은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며 그간 발표한 모든 책을 절판해달라는 뜻을 밝혔지요. 하지만 이것이 알려진 뒤 법정 스님의 책들이 ‘광풍’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모든 책들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올랐습니다. 스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장례식 하지 마라, 관 짜지 마라, 사리 찾지 마라.” 무언가를 더 움켜쥐기보다 버리고 내려놓는 것을 생각하는 세밑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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