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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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0 (금) 이슈진단 '문화'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0-07-30 15:08  | 조회 : 2831 

문화 관련 이슈를 알아보는 금요일 이슈진단 시간입니다.
중앙일보 문화부 강혜란 기자와 함께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1. 한국 코미디계의 큰별 백남봉씨가 어제 오전 별세하셨죠.

= 폐암으로 투병 중이던 원로 코미디언 백남봉씨가 29일 오전 별세했습니다. 백남봉, 이라는 이름은 예명이죠. 본명은 박두식입니다. 1939년생으로 일흔 한살을 일기로 타계하셨습니다. 2008년 늑막염 수술 중 암세포가 발견돼 폐암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경기도 재활원에서 요양하다 최근 병세가 악화해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빈소 역시 삼성서울병원에 차려졌고, 밤늦게까지 동료 선후배 연예인들의 조문이 이어졌습니다. 발인은 내일 31일 오전 6시고요,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 파크입니다.

2. 나이 든 분들에게는 향수가 있는 인물인데요,‘원맨쇼’라고 하죠. 그야말로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치는 개그로 일가를 이루신 분 아니겠습니까?

= 네, 고인은 ‘원맨쇼의 달인’이라는 호칭이 더 없이 어울리는 분이었습니다. 뱃고동ㆍ말발굽ㆍ탈곡기를 비롯한 갖가지 소리부터 다양한 인물의 성대모사까지 소리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특히 맛깔스러운 팔도 사투리로 유명했습니다. 데뷔도 이 사투리 덕분이었는데요, 한 쇼단에서 팔도 사투리로 한창 웃기고 있는 모습을 눈여겨본 어느 정치인이 코미디언계에 소개해줬고, 이를 계기로 1969년 TBC 라디오 ‘장기자랑’에 출연했다가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것입니다.
전북 진안 출생인 고인이 팔도 사투리를 익히게 된 것은 평탄치 않았던 유년시절과 관계 됩니다. 일찌감치 어머니가 집을 나간 데다 1950년 한국전쟁 피란길에 아버지마저 잃어버리고는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그 뒤로 껌팔이ㆍ구두닦이ㆍ장돌뱅이 등을 전전하며 전국을 떠돌았고, 각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투리 억양과 어휘를 익힌 것이지요. 자연, 사물 소리의 모사도 탁월해서 1.5톤 트럭과 2톤 트럭이 굴러가는 소리를 차이 나게 묘사할 정도였습니다. 또 창과 소리에도 능해서 소위 만담이라 불리는 장르로 독보적인 경지를 이뤘다고 평가됩니다.

3. 백남봉씨 하면 또 남보원씨를 떼놓을 수 없을 듯한데요, 두 분이 유명한 라이벌이자 콤비였죠?

= 네, 남보원, 백남봉은 각각 원맨쇼의 달인이었지요. 한국 방송사에선 원맨쇼, 즉 스탠드업 코미디를 창시한 인물로 '후라이보이' 곽규석을 꼽는데요, 이 분의 뒤를 이어 남보원ㆍ신선삼ㆍ백남봉씨가 원맨쇼 코미디언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특히 세살 차이인 남보원ㆍ백남봉씨는 소리 모사와 사투리 구사에 있어 당대 최고였습니다. 일화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백남봉씨가 ‘새나라쇼단’이란 데 막 입단했을 때요, 쇼단에 선배 남보원씨가 있었습니다. 남보원씨는 이미 인기스타라서 ‘남보원 쇼무대’란 걸 따로 열 정도였는데, ‘초짜’였던 백남봉씨가 어느 날 얼떨결에 여기 찬조 출연을 합니다. 주인공 남보원씨에 앞서 무대에 올라서 평소 준비한 ‘김치 팔도사투리’로 좌중을 실컷 웃기고 내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고 무대에 오른 남보원씨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를 팔도사투리로 풀어냈지만, 객석 반응이 썰렁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와서야 내막을 알게 된 남보원씨가 백남봉씨를 불러서, “야, 너 이리와 봐, 사투리했어?” “예.” “그럼, 얘길 해야지, 쪼다됐잖아.” “죄송합니다.”“앞으로는 그러지 마.”하고 나무랐다고 합니다. 이때는 서로 경쟁 관계였지만, 곧바로 콤비가 됐고 서로 재주와 소재를 공유하면서 40여년 동안 척척 호흡을 자랑했습니다. 빈소를 찾은 남보원씨는 "라이벌이자 콤비였던 백남봉씨를 잃으니 한쪽 날개를 잃은 것 같다"며 “서로 지지 않으려고 경쟁한 덕에 각자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4. 백남봉씨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건데, 워낙 애연가였다고 하죠? 하루에 담배 서너갑씩을 피우셨다고 알려져 있던데요?

= 일반적으로 삐에로, 광대, 코미디언 같은 직업이 남들 앞에선 웃고 돌아서면 울음을 삭히는 쪽 아니겠습니까. 백남봉씨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원맨쇼'라는 특성이 무대에서도 그렇고 무대 밖에서도 고독하게 했습니다. 수십년간 방송 생활을 했지만, 주로 혼자 MC를 보거나 리포터를 하는 쪽이었지, 요즘 개그맨 공채 기수들처럼 여럿이 어울리고 하는 편이 아니었던 거죠.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를 소주와 담배로 풀었는데요, 30여 년간 매일 담배 네 갑을 피운 탓에 각종 호흡기질환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88년 담배를 끊었고, 그 뒤 건강관리에 매진해서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2~3시간씩 자전거 타기를 즐긴 덕에 연예계에서 '자전거 전도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4월 폐암 진단을 받은 뒤 병마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병문안을 온 후배들 앞에서 즉석에서 만담 시연을 보일 정도로 무대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코미디언 백남봉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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