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시간 : [월~금] 10:30~11:30
  • 진행: 박귀빈 / PD: 이은지 / 작가: 김은진

인터뷰 전문

“신부로 여장하고 3층에서 뛰어내려” 불꽃같았던 나의 할아버지, 의사 나창헌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3-03-17 16:26  | 조회 : 843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3년 3월 17일 (금요일)
□ 진행 : 이현웅 아나운서
□ 출연: 나정호 인하대학병원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우리 일상에서 보훈 문화가 자리잡을 때까지! 국가보훈처와 함께 하는 특별기획 <슬기로운 보훈생활> 11번째 시간입니다. 1926년 상해 일본 영사관에 폭탄이 터졌습니다. 당시 일본 경찰은 범인으로 나창헌을 지목했는데요. 경성의학 전문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의학도였습니다. 1926년 9월 24일자 동아일보에도 ‘폭파사건 주범 나창헌’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사람 고치는 의사에서, 나라 살리는 열사가 된 사람. 오늘 슬기로운 보훈생활에서 살펴볼 인물은, 의사 나창헌입니다. 그의 손자 나정호 인하대학병원 교수, 이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 나정호 인하대학병원 교수(이하 나정호): 안녕하세요.

◇ 이현웅: 오늘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앞서서 소개를 했지만, 나창헌 의사도 사람 고치는 의사였단 말이죠. 근데 교수님도 의사이신 거죠?

◆ 나정호: 네, 그렇습니다. 제가 할아버지를 뵌 적은 없죠. 저희 아버님도 어릴 때 돌아가셨으니까.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의사 생활을 하시면서 또 독립운동을 하신 훌륭하신 분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저의 어떤 롤 모델이셨어요. 그래서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저도 의학도의 길을 택하지 않았나 싶고요.

◇ 이현웅: 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자라셨군요. 우리가 지난 <슬기로운 보훈생활> 시간 때 서대문형무소의 24시간에 대해서 알아봤었거든요. 나창헌 지사도 3.1운동에 참여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고 들었어요.

◆ 나정호: 예, 맞습니다. 그래서 사실 예전에 서대문형무소 그 자리에서 6월의 독립운동가로 되셨을 때 거기서 학술 행사를 한 적도 있었고요. 제가 어릴 적에 듣기로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셔서 고문을 많이 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거꾸로 매달려서 몽둥이질도 당하시고, 물고문도 당하시고 하다가 기절을 해서 병원으로 실려 가신 적이 있었고. 그 병원에서 당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거기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화장실 창문을 통해서 탈출하셨다고 돼 있는데, 그걸 일본에서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그 당시에 병보석을 해 줄 일제도 아니었고 실제로는 그런 상황이 발생해서 병원에서 탈출하신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 이현웅: 그렇군요. 모진 고문이 있었다고도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독립에 대한 열정을 외쳤다고 들었어요?

◆ 나정호: 네, 그래서 그 당시에 3.1운동 학생 대표로 참가하셨고요. 또 제가 어릴 적 들은 바로는 3.1운동에 참가한 그 학생층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이 경의전 학생들하고 세브란스 의전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들었고. 그래서 그 당시에 인텔리 계층에서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굉장히 열망이 많았다는 거를 알 수가 있었고. 이제 그분들 중에 리더로서 저희 할아버지가 참여를 해서 학생 대표로서 3.1운동에 굉장히 주도적으로 참여하셨고. 나중에 또 이제 2차 독립 만세 운동을 또 계획해서 그걸 또 시행하시려고 했던 것도 저는 들었습니다.

◇ 이현웅: 일제 경찰의 신문 중에 “장래에도 독립을 실행할 생각인가”라고 질문을 했을 때 겁 없는 답변을 했다고 하는데, 뭐라고 하신 겁니까?

◆ 나정호: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일제가 조선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계속 독립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하셨고. 아마 안중근 의사께서도 그런 옥중에서 비슷한 대답을 하셨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 이현웅: 참 존경스럽습니다. 나창헌 지사는 당시 독립운동 비밀조직이었던 ‘대동단’에 입단을 하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망명까지 가게 된 겁니까?

◆ 나정호: 그래서 3.1운동 이후에 병원에서 탈출을 해서 국내에 남아서 독립운동을 모색을 하시다가, 그 당시에 김가진 농림부장관과 전협이라는 그런 분이 계십니다. 그분들과 연결이 돼서 대동단에 가입을 하시게 됐고. 대동단은 그 당시에 고종의 아들이었던 의친왕 이강 공을 임시정부로 망명시키려는 그런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실에서도 임시정부를 지지한다는 그런 상징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망명을 실천에 옮기려고 저희 할아버지께서 이강 공을 모시고서 망명을 시도했는데, 결국은 일제의 추격에 지금의 안동 땅에서 잡히셨죠. 그래서 거기서 또 격투 끝에 저희 할아버지는 그 자리를 탈출하셨고, 일제는 그거를 ‘이강 공 납치 사건’이라고 규정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의친왕의 자의적인 망명이었는데, 그것이 안동에서 결국은 불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 길로 할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한반도에 계실 수가 없는 상황이 돼서 상해임시정부로 망명길을 떠나게 되셨습니다.

◇ 이현웅: 의친왕 망명 시도가 실패를 했고 혼자서 상해로 망명을 가게 된 건데, 이후에 11월 23일입니다. 1919년 11월 23일 경성 한복판인 종로경찰서 앞에서 또 만세를 불렀다고 들었어요?

◆ 나정호: 2차 만세운동을 주도를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3.1 만세 운동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셨고 일부 분들만 참여한 것으로 저는 알고 있는데. 아무튼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망명길에 오르시게 됐습니다.

◇ 이현웅: 아마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비무장을 중심으로 운동을 했던 것 같은데, 이후에 “독립은 철과 혈로 쟁취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무장투쟁 단체인 ‘철혈단’을 결성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 나정호: 네, 그건 나중에 상해임시정부 가셔서 거기서 철혈단을 만드셨고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철혈’이라는 것은 혈은 뜨거운 피, 그러니까 마음으로부터 우리 독립을 쟁취해야겠다는 그런 뜨거운 마음을 표현한 것 같고. 철은 어떤 총이나 칼처럼 무장을 통해서 우리가 실력을 갖추고서 무장 독립 투쟁을 통해서 독립을 쟁취해야 되겠다. 아마 그 두 가지 뜻을 담으신 것 같고요.

◇ 이현웅: 일본 총영사관에 폭탄을 만들어 던졌다고도 들었는데 성공했습니까?

◆ 나정호: 그 당시에 할아버지께서 총영사관에 폭탄을 투하하셔서 일부 영사관이 워낙 건물도 크고 그다음에 폭탄이 그렇게 규모가 아주 클 수는 없어서, 수제 폭탄이기 때문에, 하지만 일부분은 폭발을 시켰다고 들었고요.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제 입장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위험한 사건이었고, 그래서 그때부터 수배자 명단에 올라가서. 그 당시에 아시겠지만 상해임시정부가 프랑스 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일제들 입장에서는 이 사람은 테러리스트다, 너희들이 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국제법에 위반된다, 이런 구실을 가지고 계속해서 임시정부를 압박을 하는 그런 상황이 돼서 결국은 상해임시정부를 떠나서 또 다시 다른 항주나 아니면 중경 쪽으로 망명길을 떠나게 되시는 그 이유가 되었습니다.

◇ 이현웅: 의사 나창헌,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의학도였단 말이죠. 사람 살리는 일을 하던 사람인데, 이렇게 ‘철과 혈로 쟁취해야 한다’ 조금 더 과격해진 방식을 선택했다는 게 의외라고 느껴지기도 해요?

◆ 나정호: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할아버지께서는 굉장히 현실적이신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사실 무장 독립 투쟁을 지향을 하셨지만 그러려면 현실적인 방도가 있으셔야겠죠. 여러 가지 군자금 문제 같은 것도 필요했고 또 생활적으로도 자립을 해야만 그런 것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망명길에 오르시면서 상해에서부터 시작해서 항주 그리고 만현, 중경에 이르기까지 망명길 계신 곳마다 병의원을 개설하셔서 거기서 폐병 요양원도 하시고 여러 가지 의원을 하시면서 또 경제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거기서 이제 번 돈으로 독립자금을 지원을 하셨어요. 그리고 또 말년에 중경에서 이 의원을 개원하셨던 그 건물은 나중에 또 임시정부의 임시청사로 쓰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또 나중에 개인 자격으로 독립 자금을 내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개인 자격으로 낸 독립운동자금으로서는 가장 큰, 그 당시에 300억이 넘는 거금을 출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독립운동은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실제로 실천하려면 자금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실력도 필요하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위해서 저희 할아버지께서 의학도의 길을 걷고 그런 것도 결국은 마음으로만 되는 건 아니고 일제를 타도하려면 우리 자신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갖고 계셨던 분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 이현웅: 그야말로 목숨을 바쳐서 독립운동을 하고, 또 벌어들인 돈도 출연을 하고. 인생을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지금은 상상이 안 돼요, 정말 존경스러운데. 감히 추측을 해보자면 그 당시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 나정호: 글쎄요. 저희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마흔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실 20대, 30대 피 끓는 그런 청년 시절을 사실 독립운동을 하셨는데 저의 20대, 30대를 뒤돌아본다면 저는 사실 뭐 의대 공부하고 인턴 레지던트 하느라고 바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 그런 일들을 다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면 참 그 나이에 어떻게 진짜 저도, 물론 시대적 사회상이 조선인들이 차별받고 그런 거를 두 눈으로 보시고서 그런 걸 참지 못하시고 어떻게든 극복하시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아무튼 저는 어려서부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도 참 올바르게 살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 이현웅: 혹시 그 피가 나에게도 흐르고 있다는 걸 느끼는 그런 순간들도 있나요?

◆ 나정호: 물론 이제 제 생각에 제 조상 중에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은 항상 후손들에게 평소에 몸가짐이나 그런 거를 바르게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이현웅: 앞서서 여러 개 병원을 세웠다고도 말씀을 하셨는데, 그 건물들이나 병원들 아직 남아 있습니까?

◆ 나정호: 그 건물 자체가 남아 있지는 않고요. 건물 자체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이현웅: 그럼 직접 그 현장에 가보시거나 하지도 못하셨겠네요?

◆ 나정호: 지금 상해에 가보면 옛날 임시정부 자리를 지금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 기념관으로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서 거기는 물론 가보았지만, 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의원이나 그런 건물은 가보지 못했고요. 저희 아버지께서 나중에 저희 할아버지 유해 봉환을 위해서 만현에 가셨을 때도 이제 예전 의원 자리를 찾아가 보셨는데 그 건물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어서 그 건물을 찾을 수는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 이현웅: 다시 잠깐 그 상해 망명길 얘기로 돌아가 보면요. “왜놈 헌병에 쫓기다 급할 때는 상제옷으로, 농부옷으로도 몇 번을 변복하면서 상해에 도착하니 발톱이 몽땅 빠졌다”라는 김희숙 여사 일기에 고단함이 여실히 적혀 있습니다. 수배자 신분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아요. 혹시 들으신 얘기가 더 있습니까?

◆ 나정호: 그때 일본 경찰들이 계속 추격을 해와서 여러 번 고비를 많이 넘기셨고요. 지금 말씀하셨듯이 변장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옹 장수로도 변장을 하고, 한 번은 결혼식 행사가 있는데 신부나 하녀 복장으로도 여장을 해서도 이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고. 한 번은 또 이렇게 일본 경시가 쫓아갔을 때 3층까지 도망갔다가 거기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니까 3층에서 뛰어내려가지고 도주하신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상해 신문에도 크게 난 적이 있고 그래서 여러 위기를 많이 넘기셨다고 들었습니다. 

◇ 이현웅: 앞서서 잠깐 언급을 해 주셨지만, 생전에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하셨습니다. 중경시 만현에서 나창헌 지사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나이가 40세 정도였던 건가요?

◆ 나정호: 네, 그렇습니다. 

◇ 이현웅: 그럼 지병이었나요?

◆ 나정호: 글쎄요. 워낙 그 당시에 고문당하신 뒤로 굉장히 몸이 쇠약해지셨다고 들었고요. 아무튼 갑자기 (몸이) 악화되면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 이현웅: 저희가 준비한 음성 자료가 하나 있는데, 나창헌 지사의 아들 故 나중화 선생의 육성입니다. 한번 함께 듣고 오시죠.

(故 나중화 선생 음성 - 나창원 선생의 아들 나중화입니다. 의사를 할 때 거기서 보니까 이대로 내버려둬서는 의사가 아니라 나라를 뺏겼는데 나라를 찾아야 되겠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의사에서 나라를 지키는, 나라를 찾는 의사가 돼가지고. 의사 공부는 집어치우고 나라를 찾은 다음에 의사를 해야지 무슨 의사고 이제 그러느냐. 이게 39년입니다. 그때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우리 다 모아놓고 얘기를 했어요.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서 미안하다. 하지만 너희는 꼭 꼭 독립된 대한민국에 가서 살아라. 그리고 내가 못 한 일을 완성을 해라. 그게 아버지가 저한테 남기신 그 말입니다. 그래서 아들 보고 할아버지 대를 이어라. 내가 정말 잔소리했다시피 그렇게 했어요. 지금 와서는 제대로 잘 됐다고 생각해요. 제 안의 나라라는 거는 아직 살아있다. 3.1운동을 겪은 사람이나 지금 나이 많은 그 사람이나 젊은 애들이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공부를 해서 우리가 정말 일본이 우리를 아무리 건드려도 안 되는 나라라는 것을 공부를 시키는 게 하고 싶은 얘깁니다. 내가 마지막에 한 얘기는 꼭 하겠습니다.)

◇ 이현웅: 목소리 오랜만에 들으셨나요?

◆ 나정호: 네, 저희 아버지가 당시 병환 중이셨는데 2년 전에 YTN에서 인터뷰해 주셔서 이렇게 목소리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또 아버님 목소리 들으니까 참 가슴이 뭉클합니다. 사실 이 인터뷰 하시고서 몇 달 후에 돌아가셔서, 아무튼 이렇게 인터뷰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현웅: 눈시울이 붉어지신 것 같은데, 부친께서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건 아들인 나정호 선생님이시잖아요. 이 할아버지의 유언이 결국 손자 대에서 이루어진 것 같은데?

◆ 나정호: 네, 저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거는 이제 본인은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돌아가셔서 얼마나 가슴에 한이 많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자손들은 독립된 조국에서 이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남기셨는데, 결국은 아직 분단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독립국가고 거기서 또 우리나라가 현재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지금 다들 후손들이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시면 할아버지께서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실 거라 생각합니다.

◇ 이현웅: 의사라고 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안락한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모든 걸 다 버리고 망명길을 택했던 거 아닙니까? 민족의 아픔을 치료하려고 했던 할아버지의 삶을 좀 어떻게 보고 계신지 정리해 주신다면요?

◆ 나정호: 저희 할아버지께서 일본을 극복하고자 실력을 키우고 그 실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진짜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평생을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손으로서 저희 할아버지를 정말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할아버지의 그런 마음에 후손으로서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살려고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고. 또 요즘도 우리나라도 여러 가지 한일 관계에 있어서 또 극복해야 될 과제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해결할 건 해결하고 또 같이 발전할 건 발전시켜야 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가 실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현웅: 매년 6월에 온 가족이 현충원을 찾는다고 들었어요. 올해도 6월에 찾아가실 계획이시죠?

◆ 나정호: 네, 그리고 올해는 또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년 전에 독립기념관에 저희 할아버지 어록비를 세웠고요. 그래서 어록비를 세운 것도 의미가 있었는데 그동안 국민대학교에서 독립운동사를 연구하신 장석훈 교수님께서 저희 할아버지의 평전을 집필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마 올해 6월쯤에는 저희 할아버지 전기가 출판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제대로 된 평전이 처음 나오게 되어서 아주 기쁘게 생각하고, 할아버지의 영정에 그걸 바치고 싶습니다.

◇ 이현웅: 청취자님께서 “생각은 하지만 실천을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훌륭합니다. 존경합니다” 이렇게 의견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의사 나창헌의 손자, 나정호 인하대병원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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