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현의 생생경제
  • 방송시간 : [월~금] 09:00~10:00
  • 진행 : 조태현 / PD: 김세령 / 작가: 강정연

인터뷰 전문

[생생경제] 오늘도 노동자 6명이 일터에서 죽었다. 죽음을 멈추려면?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10-30 18:20  | 조회 : 2515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진행 : 김혜민 PD

대담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 노동인권영화제에 참여하신 권순현 감독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생경제] 오늘도 노동자 6명이 일터에서 죽었다. 죽음을 멈추려면?

 

김혜민PD(이하 김혜민)> 지금 흐르는 노래 김윤아의 길입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이 길이 옳은지 다른 길로 가야할지, 난 저길 저 끝에 다 다르면 멈추겠지라는 노래가사가 지금 코로나19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 같아서 오늘 시작 곡으로 선곡을 해봤습니다. 10월에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생생경제 오늘은 우리의 이야기,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두 분 함께 하셨어요. 먼저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하종강 교수, 그리고 노동인권영화제에 참여하신 하종강 감독 두 분 모셨어요. 어서 오세요~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이하 하종강)> . 안녕하세요.

 

노동인권영화제에 참여하신 권순현 감독(이하 권순현)> 안녕하세요.

 

김혜민> 선생님, 노동운동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하종강> 80년도에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학생운동 하던 사람들은 특별한 재주가 없거나 변절하지 않으면 그냥 노동운동하는 게 가장 평범한 선택이었습니다. 다른 재주가 있어서 문화운동, 여성운동, 농민운동으로 가지 않으면 대다수는 노동운동을 선택하는 게 가장 평범한 선택이지, 특별한 결단은 아니었습니다.

 

김혜민> 그런데 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때는 노동운동이 대부분이었다는 건, 대다수가 노동자였고, 대다수의 사회 많은 문제들이 노동문제였다는 걸 말해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종강> 그때도 실제 그런데 사람들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려고 한 거죠. 폼 나게 노동운동은 못해도 천만 노동자의 머리 하나 더 보태는 삶이 기업체에 들어가서 노동자를 관리하는 직원이 되는 것보다 이게 낫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김혜민> 그때 같이 노동운동 하시던 많은 분들 다 어디 가시고?

 

하종강> 더 힘든 일, 더 발전된 분야로 많이 진출했죠.

 

김혜민> 교수님은 왜 지금까지?

 

하종강> 저는 능력도 안 되고 용기도 없어서 그냥 계속 여기 머물러있다 보니까 이 나이 되도록 한 사람이 별로 없게 돼서 자꾸 제가 돋보이는 거지, 제가 특별한 철학이 있거나 대단한 사람이어서 이 분야 일을 오래한 건 아닙니다.

 

김혜민> 원래 오래 버티면 되는 거거든요.

 

하종강> 노회찬씨나 이런 사람처럼 더 힘든 일을 선택하든지, 근데 저는 사실 그럴 감이 아니거든요.

 

김혜민> 필드에서 정말 노동자들의 스승으로, 친구로 지금까지 해주셨다는 게. 생생경제에서 노동 문제 있을 때마다 교수님을 모시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권순현 감독님은 95년생 아주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세요. 사실은 작품을 보고 이렇게 감독이 젊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권순현> 저도 사실 그렇게 뜻이 있어가지고 이걸 한 건 아니었고요. 그냥 저도 선배들 잘못 만나서 다큐 시작을 하게 됐었는데. 노동문제에 좀 더 관심이 갔던 거는 제가 아무래도 학생이면서도 영상 관련해서 노동을 하거든요. 업체도 나가서 일을 할 때도 있었고, 아니면 아르바이트 일을 영상일로 하는데, 저도 가서 막 다치고, 아니면 제가 느끼기에 부당한 경험들을 했던 게 많았어요. 물론 제가 다룬 영화에 나오는 어떤 비극적인 일이나 정말 힘들었던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노동이라는 이슈가 저한테 더 와닿는 측면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김혜민> 본인이 노동자이면서 그리고 이 노동의 이슈가 남의 이슈가 아니라는 것을 본인이 실감했기 때문에 이제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하신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작품 말고도 어떤 노동의 현장을 영상으로 담으셨어요?

 

권순현> 제가 이 작업 전에 다뤘던 영화는 피와 죄라는 이름의 영화가 있는데, 그거는 민주노조와 어용노조가 둘 다 있는 회사에서 자기 민주노조를 만들려고 하시다가 분신자살을 택하신 버스회사에 계신 지부장님의 이야기인데. 그분이 돌아가신 이후에 그때는 촬영을 했었고. 그 촬영을 하는데 그 영화의 내용도 뭔가 그 이후에 계속해서 노조가 어려워지는 현실, 내지는 계속해서 싸워가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런 영화입니다.

 

김혜민> 사실 오늘 라디오에서 제일 많이 나온 노래가 뭔지 아세요? 이용씨가 부른 잊혀진 계절이잖아요. 그 노래를 들으면서 생생경제를 한 3년 정도 진행하다가 보니까 잊혀진 노동자들의 이름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생생경제가 10월의 마지막 방송인데 오늘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하종강> 그 이용씨에 대해서 특별한 기억이 있는데요. 이용씨가 국풍팔십일에서 데뷔하고 거기서 대상도 받았는데 그때 제가 잡혀갔었는데, 제 후배 하나를 너무 경찰들이 심하게 때린 거예요. 자기들이 봐도. 그래서 검은 물 부은 것처럼 새까맣게 등허리부터 허벅지가 다, 근데 그 후배는 사실 한 일은 없었고, 여러 사람이 한 일을 많이 알고 있었어요. 그럼 가장 많이 고문당하거든요. 본인은 하지 않았지만 한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 후배를 위로한답시고 그 수사관들이 데리고 간 곳이 국풍팔십일 현장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거기에 다녀온 거예요. 근데 고문당해서 살이 퉁퉁 붓잖아요. 근데 거기에 소고기 생고기 로스를 붙여요. 그러면 예전부터 내려오는 비법인데요.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그 후배 온 몸에 소고기 로스를 생고기를 다 덕지덕지 붙이고 붕대로 칭칭 감을 정도로 심하게 맞았었는데 그 후배를 국풍팔십일에 데리고 갔던 거죠, 위로한답시고. 그래서 내가 거기를 갔다 왔다고 그래서 이용씨 노래 들을 때마다 항상 그때 생각이 납니다. 우리끼리 먹기도 귀한 고기를 살에 붙이냐 하면서 웃기도 했지만 그런 기억이 나네요.

 

김혜민> 누군가에게는 축제고, 낭만인 날이 누군가에는 버티기 힘든 하루하루가 되는 거잖아요. 근데 사실 지금도 코로나19로 많은 노동자들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요. 여러분 들으시면서 좋은 가을날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야 이러지 마시고요. 아까 감독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나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라는 생각으로 이 시간을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두 분은 이미 만나신 사이죠? 노동인권영화제에서, 교수님 저는 노동인권영화제라는 게 있는 지도 몰랐어요. 매년 열리고 있다면서요?

 

하종강> 노동인권영화제가 맨 처음에 시작한 것은 2013년에 서대문구노동인권영화제였어요. 노동희망이라는 청년단체가 있었는데 그 단체 사람들이 중심이 돼서 서대문구에서 예산을 받아서 서대문구노동인권영화제로 계속 진행을 해오다가 2018년부터는 횟수를 붙이지 않고 1, 2, 3, 4회까지 했는데 5회는 다른 단체가 주관을 했어요. 왜냐하면 이게 좀 슬픈 이야기인데, 예산을 받아야 할 수가 있으니까 그 예산을 다른 단체가 받게 돼서 다른 단체가 주관하는 동안 사실 맥이 끊긴 거죠. 그래서 지금은 횟수는 붙이지 않고 그냥 2020년 서울노동인권영화제, 규모를 좀 키워서 그리고 서울시 예산도 좀 받았다는 뜻입니다 .

 

김혜민> 권순현 감독님은 이번에 처음 참여하신 거예요?

 

권순현> 저도 영화제 이름이 횟수로 안 붙이게 됐을 때부터, 페이스북 통해서 내용 접하면서 좋은 영화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또 초정을 해주셔가지고 틀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김혜민> 거기서 틀었던 작품이 뭐예요?

 

권순현> 저는 이번에 튼 밖에 없고요.

 

김혜민> ‘권순현 감독님이 작품 를 트셨는데 교수님 보셨어요?

 

하종강> . 봤습니다.

 

김혜민> 저도 이 영화 유튜브 보내주셔서 저도 살펴봤는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교수님 이렇게 노동인권영화제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노동문제라는 걸 영화로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아니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직설적으로 알려주는 계기가 될까요?

 

하종강>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잖아요.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저 같은 사람이 100시간 이야기하는 것보다 영화 한 편 보는 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잖아요. 한국사회는 특히 노동문제에 대해 포비아 현상이 있어요. 그런 사회에서 노동문제를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요. 저는 매번 거의 가봤지만 그래도 노동문제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청년 시민들이 많이 와줬다는 게 항상 볼 때마다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사를 하려면 준비할 게 얼마나 많습니까? 팜플렛 디지인부터 포스터부터 서포트까지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해야 돼요. 근데 수십 명이 그런 노력을 기울여서 이런 작은 행사를 노동이라는 주제로 치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동적이고요. 더욱이 사람들이 노동문제가 이런 거였구나, 우리 회사에 이런 노동문제가 있었구나 그걸 객관적인 사실로서만 아니라 마음 깊이 느끼고 돌아가는 그런 장면들이 보기에 정말 훈훈했습니다.

 

권순현> 저도 되게 감독이기 이전에 관객으로서 되게 좋은 영화제라고 생각을 했던 게, 노동이나 인권 이렇게 딱 포커싱을 맞춰가지고 한 영화제를 이렇게 장기간동안 운영해올 수 있는 영화제가 한국에서 드문 편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영화들을 계속해서 서치를 해서 틀어주신 다는 것, 그리고 저는 올해 되게 좋았던 게, ‘보라보라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는 작년에 있었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영화였고, 그리고 저와 같은 섹션에서 틀었던 언더그라운드는 부산의 지하철 노조를 다루는데, 그 영화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부터 아니면 최근에 4차 산업혁명 이후에 벌어졌던 노동의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을 포괄적으로 다룬 되게 좋은 영화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영화들을 볼 수 있다는 점, 또 해외에 있는 다양한 영화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관객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종강> 저는 굉장히 놀랐던 게 언더그라운드가 나레이션이 전혀 없어요. 그냥 출연자들이 툭툭 내뱉는 대화 이게 전부거든요. 부연설명이 전혀 없는데 그런 장면만으로 사람들이 뭘 알게 하고 느끼게 한다는 게 이래서 감독이구나, 전문가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혜민> 권순현 감독의 작품도 나레이션이 전혀 없고?

 

권순현> 나레이션을 쓸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김혜민> 돈이 없어서 못 쓰신 거 아니에요? 제작비가 없어서?

 

권순현> 그것도 있는데요. 제 목소리가 담기는 게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고요. 제가 뭔가를 말을 덧붙이는 건 굉장히 송구스러운 일인 것 같아가지고.

 

김혜민> 노동문제 포비아가 있다고 우리나라의 그 말씀 하셨잖아요. 그리고 저는 영화가 주는 힘이 그냥 기사 한 줄로 노동자가 죽었다 이게 아니라 노동자가 어떻게 하다 이렇게 사고를 당했고 그 사고로 돌아가신 노동자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고 그걸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많은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라는 수단을 가지고 노동의 이야기를 하고 계신대요. ‘가 예의할 때 례죠?

 

권순현> 사실 제가 제목 되게 못 짓는다고 욕을 많이 먹는 편인데, 저는 사실 장례랑 예의 이 두 가지를 중의적으로 포괄하고 싶어서 영화 제목을 그렇게 지었어요. 이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고가 나고 일 년 후에 1주기 때 동료노동자분들이 연대하는 의미에서 집회를 하시면서 그때 분향소를 설치했었습니다. 그래서 분향소를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돼서 장례, 예의 두 가지를 같이 얘기하고 싶어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하종강> 영화에 보면 특이한 조형물이 나와요. 다친 노동자들이 입었던 작업복을 마네킹처럼 상의만 입혀놓은 화분이 있는데, 얼굴 부분에 꽃이 심겨져있습니다. 그게 여러 군데 있는 모습이 나오거든요. 장례식이라는 례를 당연히 의미하는 거고, 그걸 보는 당신은 인간으로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어떤 마음을 갖는 것이 예를 지키는 것이냐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그래서 제가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게 고가도로 밑에서 서있고, 현장에도 서있고, 곳곳에 그 조형물이 있는 게 나와요. 아무 설명이 없이, 그러면 그 다친 노동자가 입었던 그 작업복으로 만든 조형물을 보고 이 시대의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예를 지키는 것이 겠느냐,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더라고요. 예의라는 게 그거구나 제가 딱 잡혔습니다.

 

김혜민> 이 영화는 여러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2017년에 있었던 삼성중공업 사청노동자들의 황망한 죽음 그 이후 1주기를 하루 앞둔 스케치를 한 영화고요. 이 사건 조금 교수님 소개를 해주세요. 어떤 참사였는지.

 

하종강> 20175월이 노동절이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 일하지 않잖아요. 삼성중공업에서 발생한 큰 크레인 두 개가 충돌하면서 노동자가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큰 사건이었는데. 31명은 모두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노동절에도 쉬지 못하고 일했던, 근데 그때 출근한 노동자가 1,600명이 넘었고 그 사건을 목격한 노동자는 300명이 넘었거든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전부 정신적인 충격을 엄청나게 받는 겁니다. 그 중에서 그 사건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 트라우마에 대한 산재를 승인 받은 사람은 12명뿐이었거든요. 건실한 감독은 그 사건 이후에 그 목격자들이 겪었던 마음의 상처 이것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룬 거죠. 그 사건의 참혹함, 문제점뿐만이 아니라.

 

김혜민> 이 사건 이후 1년의 얘기를 담으신 거니까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으셨어요?

 

권순현> 제가 담고 싶었던 메시지가 저도 정확히 뭐였는지, 그때 사고 때가 저도 너무 충격적이어서, 사고의 원인보다는 사고 이후에 바뀌는 삶들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많이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피해 노동자분들 그 트라우마 피해를 호소하시는 분들을 만나는 일이 저한테 너무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에 기자회견 외에는 저도 먼저 컨택을 해서 만난다거나 촬영을 별도로 진행하거나 하진 못했었거든요. 어쨌든 저는 주로 뒤에 생긴 대책위 분들 계속 따라다니면서 영화를 찍었었는데. 그 대책위 활동을 보고 대책위분들이랑 부딪히는 사측의 의견들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계속 접하면서, 원인이 아니라 이 원인에 포커싱이 되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고 이후에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얘기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잘 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내지 저 역시 뭔가 이걸 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마음, 이런 것들 때문에 영화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김혜민> 직접 유족들이랑 인터뷰한 거는 없었고, 거기를 스케치하신 거죠?

 

권순현> 주로 사고 당일 직후에, 병원에 분향소가 생겼을 때 그때만 유족분들을 뵀고요. 저 되게 아쉬웠던 마음이 들었던 건 뭐냐면 제가 촬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는데, 이후에 대책위 활동가분들에게 얘기 들었던 것 중에 제가 기억이 많이 남는 게 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 분향소가 생긴 병원이 이제 부상자 분들도 그때 사고 직후에 옮겨지셨던 병원이거든요. 저도 그 병원에 사고가 났던 여름에는 계속 있었었는데 그 병원에 갈 때마다 그 병원에서 주차장을 새로 짓는가 그래서 크레인 건물이 엄청 크게 있는 거예요. 저는 현장 근처에 가보지 못했고, 영상만 봤던 사람인데도 그 크레인이 너무 섬뜩하게 느껴지는데, 그때 현장에 계셨던 분들이, 그때 부상 때문에 실려 가셨던 분들이 크레인이 깔려서 병원에 오신 분들인데 창 밖에 또 크레인이 있으니까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하셨거든요. 트라우마로 인한 산재처리를 승인을 받으신 분들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활동들을 계속 대책위 분들이 도와주셨는데, 그 활동들에 대해서 저는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해서 영화에 대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하종강> 목격자들 중에 그런 대목이 나와요. 그날 이후 철골구조물 밑을 지나가지 못한데요. 어디 가서도, 다른 도시 가서도, 근데 노동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볼 때 가만 보면 화면이 떨릴 때가 있어요. 감독이 찍으면서 운 겁니다. 그런 장면이 다큐멘터리 때마다 나오거든요. 례에도 나오지만 형제가 같이 일하다가 동생은 살고 형은 사망한 사람도 있잖아요. 동생이 쉬러 나가면서 형한테 같이 쉬러 나가자고 할까? 하다가 그냥 가지, 뭐 담배피면서 전화해서 지금 나오라고 할까? 계속 망설였다는 거죠. 그 동생은. 근데 형은 그 사고를 당해서 사망했으니까. 그 동생은 평생 그때 내가 형을 왜 안 데리고 나갔을까. 형에게 내가 좀 더 전화해서 그때 나오라고 했으면 안 죽었을 텐데, 이런 일을 겪는 거죠. 근데 그런 분들이 권순현 감독 작품에 나오는데 제가 보기에는 감독님이 얘기해주세요 이렇게 딴 인터뷰는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그분들이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는 거, 회사 관계자나 노동자 관계자가 왔을 때 말한 거를 근처에서 찍은 거지, 정식으로 요청해서 그 사람들한테 멘트를 딴 장면은 제가 볼 때는 하나도 없더라고요.

 

김혜민> 교수님 말씀하신 그 형제 저도 기억나는데 저희가 그 영화에서 음원을 좀 땄거든요. 그것 좀 들어볼게요.

 

-저희들, 어려운 환경 내에서 집안의 오로지 생활비 벌자고 일하는 사람들한테 이제 와서는 죽은 사람들한테 아무런, 물론 그 분들은 사과겠죠. 박대영 사장이라는 사람이 여기 와서 무릎 한 번 꿇었다는 게 사과인데, 사과라고 해요. 그 다음에 오늘 삼성관계자 아무도 안 와요. 그 누구도 코빼기도 안 비춰요.-

 

권순현> 영상 관련해서 설명을 해드리면, 사고 직후에 제가 말씀드렸던 병원에서 찍었던 영상인데, 빈소가 차려졌고, 그때 대선 직전이어서 제가 기억하기에는 홍준표 후보 빼고는 다 왔던 걸로 기억을 하거든요. 저는 그때 심상정 후보가 왔었을 때 이걸 찍고 있었는데 사고 직후 당일 날에 회사에서 사람들이 사과를 한답시고 온 거죠. 빈소에서 무릎을 꿇고 그 다음에 나가는데 사과를 하러 온 사람이라고 보기엔 힘들었던 걸로 기억하는 게, 경호원들한테 둘러싸여서 야심한 밤에 쭉 들어왔다가 무릎 한 번 꿇고 그 빈소 내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 나갈 때 동료노동자들, 사고 때 같이 있었던 동료노동자들이 다 있었는데 한마디도 안 하고 나갔어요. 저도 그거를 찍으면서 너무 화가 났던 거죠.

 

김혜민> 3년 전 사건을 지금 그렇게 얘기하느냐,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수님,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하종강> 되게 이런 중대재해가 터지면 원청회사 안전 관리자 정도 담당 부서 부서장 정도는 구속이 되거든요. 근데 삼성사업장이어서 그런지 그렇게는 안 됐고요. 물론 회사관계자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았어요. 그리고 구속된 사람은 그 현장에 있던 신호수 노동자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례도 보면 공청회가 열려요. 공청회에 각계 대표가 참여하잖아요. 그 지역 대표가 와서 뭐라고 말하냐면 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서 반드시 조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요구하거든요. 이 사고에 경영자 입장은 노동자의 부주의로 발생했다는 거거든요. 같이 상영했던 언더그라운드를 보면 그 지하철 작업 현장에 산업안전 포스터가 붙어있는데 어떤 포스터가 크게 하나 나오는데 올바른 작업자세로 요통을 예방하자이거거든요.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노동재해의 원인을 그 당사자의 부주의라고 분석하거든요.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붓는 노동자 예방활동이 개인으로 하여금 주의하도록 하는 것에 주로 집중되는 겁니다.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니까 이게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거죠.

 

김혜민> 올해 초에 또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에 유조선 작업 현장에서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가 일어나서 하청 업체 직원이 또 한 명 사망했죠. 우리 감독님께서 대책위도 보고 공청회도 보셨으니까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될까요?

 

권순현> 공청회가 열리게 된 것도 삼성중공업 사고만 있었던 게 아니라 같은 해에 STX에서 폭발사고가 나서 그때 사람들 또 많이 죽었거든요. 그 사고를 연달아 붙여서 공청회를 하자는 거였는데, 사고 직후에 올해 있었던 사고같이 한 명, 두 명 죽는 걸로는 뉴스가 잘 안 되거든요. 삼성중공업 사고 같은 경우는 노동절에 발생했다, 뭔가 이슈화되는 측면들이 있어가지고 국민들의 공분이 모아졌던 건 맞아요. 그 공청회를 준비하는 기간이 꽤 있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싹 내려가게 되거든요. 저도 공청회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리에도 가기도 했었는데, 그게 국민적인 힘을 모아지던 때가 지나다보니까 이거에 대해서 사고 이후에 대책이 미비하게 넘어가는 측면이 있죠. 사실 이런 사고들이 이천에서 화재 나서 올해 38명 돌아가신 것도 2009년에 비슷한 사고 똑같이 있었던 거거든요. 어떤 이슈화되는 타이밍이 지나면 이게 식는다고 그럴까요? 그런 측면들이 제가 느끼기에 있었던 것 같아요.

 

김혜민> 교수님은 노동 전문가이시니까, 이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되시고 마음 아프시겠어요. 근데 이게 지금 택배노동자들에게도 계속 일어나고 있잖아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 그것도 궁금해요.

 

하종강> 우리가 과거 19년 동안 1년에 평균 2,300명이 노동자로 사망했거든요. 오늘도 6명은 사망한 거거든요. 6명은 출근했다가 퇴근하지 못한 거죠. 그런데 다른 나라도 이렇게 많이 죽냐? 전혀 그러지 않거든요. OECD통계에서 우리 노동자의 사망률이 23년 동안 21년을 1위를 했어요. 그리고 10만 명당 노동자 사망자수라는 지표가 있거든요. 2015년 기준으로 보면 영국은 0.4인데 우리가 10.1입니다. 그러면 한국의 직장인들은 자기 직업 때문에 사망을 할 확률이 영국의 직장인보다 25배나 더 높은 겁니다. 제가 굳이 직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마치 노동재해, 산업재해 이러면 사무직 노동자는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들을까봐, 이건 사무직, 화이트칼라 다 포함한 통계거든요. 어떤 직업의 종사자든지 한국의 직장인들은 자기 업무 때문에 사망할 확률이 가장 높은 직장인입니다. 그러면 개선해야죠.

 

김혜민> 택배노동자들이 이슈에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건 계속 사망하니까, 회사에서는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이런 상황들이 직업의 카테고리만 다르지 반복되는 거거든요.

 

권순현> 제가 어제 나온 뉴스를 봤거든요. 국과수에서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이 과로와 죽음이 상관없다라는 식의 1차 보고 결과를 냈더라고요. 그리고 청문회 봤던 기억이 나는데, 쿠팡에서 27살 젊은 노동자가 사망을 했는데, 그 젊은 노동자가 엄청나게 장기간 근로, 노동을 했다 이렇게 질문을 하니까 사측의 반응이 야간 수당은 1시간 1.3시간으로 계산 된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숫자가 많아 보이는 거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요. 근데 사실 이거는 통계와 수치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야간 노동을 해보신 분들은 알거든요. 야간 노동을 하면 단순히 쿠팡을 놓고만 봐도 집결지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현장을 가서 해가 밝아올 때쯤에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오게 되거든요. 그렇게 돼서 집에 들어오면 다음 출근 때까지 자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게 단순히 노동시간이 한 시간이 1.3시간으로 계산된다 그러니까 이건 통계적인 오류다라고 말하는 거는, 저는 되게 그 통계와 수치 이후에 이 노동하는 열악한 환경 자체가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포괄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거죠.

 

김혜민> 교수님께서는 택배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이런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위해 우리가 뭐해야 돼요?

 

하종강> 법률밖에 없진 않은데, 법률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긴 합니다. 과로사가 아니다 이런 판단을 했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그렇게 판단을 하냐면 과로로 인해서 사망했을 때만 과로사인 줄 알아요. 근데 그런 경우는 사실 별로 없고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존 질환이 과로 때문에 악화돼서 사망한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그러면 고혈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과로 때문에 악화되면 이걸 고혈압으로 인한 사망이지, 과로사는 아니라고 보는 거죠. 되게 과로사한 가족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굉장히 건강한 사람이었던 사람이 이 일하기 전까지 이걸 자꾸 강조하거든요. 그러면 인정받기가 불리합니다. 기존 질환이 있을수록 인정받기가 쉬워요.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을 갑자기 쓰러지게 하는 엄청난 과로를 업무 속에 찾아야 돼요. 근데 기존의 질병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과로가 아니지만 이 사람에게는 그게 충분히 과로가 될 수 있다 이게 올바른 법리해석이거든요. 이게 무과실책임주의인데. 그래서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과로사의 숫자와 노동부에서 주장하는 과로사의 숫자 차이는 법리 오해에서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주의하지 말라고 해도 주의해요. 자기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없거든요. 지금은 없어진 회사지만 부평에 있는 외국계 한국 제조업체가 있었는데. 그 회사에 민주노조가 들어서고 첫 번째 작업이 뭐였냐면 서양인 체구에 맞게 설계된 작업 기계들을 한국인 체형에 맞도록 고치는 작업이었어요. 이런 게 실제 직업성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거든요. 노동재해는 회사가 비용을 증가하지 않으면 사실 줄어들 수 않습니다. 그런데 회사로 하여금 비용을 쓰도록 강제하는 게 법률이어서 회사로 하여금 노동재해를 줄이도록 하려면 강제하는 법 제도가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김혜민> 문자로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인정하면 회사에 불이익이 생기나요? 이렇게 문자 보내주셨어요.

 

하종강> 불이익이 생기긴 하죠. 산업재해보험료를 회사가 내잖아요. 지금 택배노동자나 배달노동자가 산재 가입률이 낮은 거는 절반을 본인이 부담해야 되기 때문이거든요. 근데 일반 기업체 노동자들은 산재보험료를 회사가 전액 다 내게 됩니다. 근데 산재보험률이 사고건수에 따라 비례하게 돼있어요. 만약 0.1%오르면 전체 총 인건비의 0.1%가 오르는 거기 때문에 그게 부담이긴 해요. 그래서 계속 은폐하려고 하는 거죠.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산업재해 발생건수는 굉장히 낮아요. 거의 세계 최저수준으로. 근데 사망건수는 세계 최고수준이거든요. 어떤 학자들은 분석하기를 한국 노동자의 특징이 중대재해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재발생건수는 적은데 일단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면 대형사고다 이건 틀린 분석입니다. 왜 재해 건수가 적겠어요. 은폐되기 때문에. 제가 한 20년 쯤 전에 한 조선소를 모델로 조사해보니까 실제 현장에서 발생한 부상, 질병 건수와 산업재해 보험 인정 건수가 100배 정도 차이가 났습니다. 의무실의 기록 우리가 다 파악해보고 내린 판단이거든요.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고, 가장 많이 사망하고 있는 게 올바른 분석이죠.

 

권순현> 진짜 작은 하청업체들 같은 경우에는 다친 부상자를 스타렉스 승용차에 몰래 실어서 병원으로 보내서 공상처리 하거든요. 그런 일들을 저도 몇 번 보고 이랬었는데. 물론 법을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한 문제지만, 법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들도 저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잖아요. 근데 저는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말이 무섭게 느껴지는 게 있어서, 다치는 사람들이 다치는 이유는 정해져있는 것 같은데. 법 말고 법이 없는 현장이니까 그 현장에서는 법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법이 있어도 공상처리를 하려고 하니까요.

 

김혜민> 교수님 우리가 이 이야기를 한 이유 중에 하나가 올해가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죠. 1113일인가요? 다양한 행사도 많이 준비돼있고 의미를 새기려는 움직임도 큰데, 혹시 교수님께서 소개하고 싶은 행사 있으세요?

 

하종강> 전태일 재단이 있거든요. 50주기 행사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념동판을 신청하면 전태일 거리에 동판으로 보도블럭을 만들어서 그 이름 새겨서 깔아주는 행사도 있고요. 전태일 재단 접속하시면 50주년 행사가 한 눈에 딱 보입니다.

 

김혜민>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는지.. 마지막으로 말씀해주세요.

 

하종강> 전태일 열사가 스스로 그런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평화시장 노동 상황이 당시 하루 15시간 노동이었거든요. 지금 15시간 노동하는 노동자 여전히 계속 있는 겁니다. 평화시장 44년 동안 봉제공으로 일한 사람의 인터뷰가 기사에 실렸는데 44년 동안 달라진 게 전혀 없습니다 그러다가 하나 있네요, 작업장의 창문이 생겼네요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그니까 50년 지난 지금 전태일이 누구인가 항상 살펴봐야 되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노동자들, 이 방송을 깔끔하게 나오려면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일하고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그 중에 있잖아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권순현> 숫자나 아니면 통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맞는 것 같아요. 기사에서 한 줄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를 접했을 때 내지는 자료, 그래프 상으로 뭔가 사람들의 삶을 보았을 때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앞으로 그런 일을 계속 하고 싶긴 한데. 저는 택배노동자, 조선소 노동자 이런 식으로 계속 언론에 보도되는 이야기들을 사람이 아닌 숫자로 보는 거 말고 이제 좀 같은 노동자고, 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좀 느껴주시면 좋지 않을까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김혜민> 오늘 눈물과 따뜻함과 쓰라림이 있었던 인터뷰 두 분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 노동인권영화제에 참여하신 권순현 감독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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