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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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행: 박형주 / PD: 박준범

방송내용

폰 노이만과 아인슈타인의 차이 (6/26 금)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0-06-26 16:12  | 조회 : 151 

과학의 가치중립성 (6/26 )

안녕하세요! 아주대학교 총장 박형줍니다.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분쟁에서 과학은 일정 역할을 해왔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와 시라쿠사에서 활동했던 아르키메데스는 반사경을 이용해 적의 군함을 불태웠고 돌을 날리는 기계를 발명했었죠.

전쟁의 승리를 위한 과학자 쟁탈전이 벌어진 사례는 많습니다. 나치 독일을 탈출한 과학자들의 상당수를 받아들인 미국은 과학 강국으로 부상했고, 이들 이민 과학자들의 참여로 최초의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맨해튼 프로젝트가 가능해졌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였고, 그 팀에는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와 수학자 폰 노이만도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개발 과정에서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였고 대량파괴 무기가 현실화한 이후의 행보도 매우 다릅니다.

문학적 재능을 보인 오펜하이머는 고전에 심취했던 과학자인데, 인류의 첫 핵실험을 보고 나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깊은 번민에 사로잡혔습니다. 전쟁 후에 반전 평화운동에 참여하며 평탄치 않은 여생을 보냈습니다. 텔러는 노벨상 수상자 페르미가 제안한 핵융합 개념에 몰두해서, 오늘날 사용되는 수소폭탄은 모두 텔러-울람 설계의 변형으로 불립니다. 1952년에 처음 실험에 성공한 수소폭탄은 액체 중수소 연료를 사용해서 무게가 70톤이 넘었지만, 비행기나 미사일에 탑재하기 위한 경량화 노력 끝에, 1960년대 고체 연료를 사용한 모델은 0.3톤 정도로 가벼워졌죠.

폰 노이만은 수학의 거의 전 분야에 통달했던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및 수소폭탄 개발 과정에서 수학적 모델링을 맡았고, 복잡한 계산을 위해 직접 컴퓨터를 개발했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핍박을 경험한 탓에 전쟁 억지력의 필요에 공감했지만, 같은 처지에서 평화운동에 나섰던 아인슈타인과 대비됩니다. 폰 노이만이 췌장암과 싸우며 병상에서 쓴 마지막 논문은 1957년에 그가 사망한 뒤 컴퓨터와 뇌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세계대전의 승리와 인류의 향방에 관여한 이 천재는 이미 60년 전에 인공지능의 개념에 가까이 가 있었던 거죠.

줄기세포와 관련한 윤리 논쟁이나 독자적 판단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에서도 보듯이 과학의 가치중립성과 양면성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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