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라디오 생생경제
  • 방송시간 : [월~금] 15:10~16:00
  • 진행, PD : 김혜민 / 작가: 정상림 / 조연출: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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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생생경제] 소년원에서 나온 청소년, 예스센터를 거쳐 사회로!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11-12 17:23  | 조회 : 221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혜민 PD
■ 대담 : 장재희 한국소년보호협회 예스센터 교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생경제] 소년원에서 나온 청소년, 예스센터를 거쳐 사회로!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YTN 라디오 생생경제, 배움이 일자리다,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은 청소년 때 어떤 시간을 보내셨어요? 저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몸이 참 힘든데, 청소년 키우는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지금이 편할 때다, 청소년 키우면 몸보다 마음이 힘들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청소년 시기가 신체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어렵게 하기도 하고, 힘들게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 생각하고, 또 행동하는 데 기준이 되기 때문에요. 청소년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시는 분을 모셨습니다. 오늘 풍성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기대가 되는데요. 한국소년보호협회 예스센터의 장재희 선생님 나오셨어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 장재희 한국소년보호협회 예스센터 교사(이하 장재희)> 네, 안녕하세요. 저는 재단법인 한국소년보호협회 예스센터에서 용접과 학과장을 맡고 있는 장재희입니다. 

◇ 김혜민>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스센터라고 하니까 이름에서도 밝고, 희망차고, 굉장히 긍정적인 느낌이 나는데요. 예스센터,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 장재희> 저희 예스센터는 법무부 산하 재단법인인 한국소년보호협회가 22세 이하 위기 청소년들이 기술을 배우고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설립한 기숙형 직업 훈련기관입니다. 

◇ 김혜민> 22세 이하 위기 청소년들, 위기 청소년이라고 하면 어떤 청소년들일까요?

◆ 장재희> 저희 예스센터에서는 소년원과 사회의 중단단계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소년원 출원 후 갈 곳이 없거나 소년원에서 배운 직업 훈련을 심화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이 저희 센터를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소년원에서 나와서 이 친구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쳐주는 곳이군요. 자립할 수 있도록.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 거예요?

◆ 장재희> 저는 예스센터에는 용접과, 자동차과, 커피바리스타과 등 5개 학과가 있는데요. 저는 산업설비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고요. 특히 용접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김혜민> 소년원에서 나온 학생들이 예스센터에서 용접, 자동차학과, 골프매니지먼트과, 커피바리스타과, 제과제빵학과에서 공부를 하고요. 그중에서 우리 선생님께서는 용접을 가르치고 계세요. 지금 유튜브 보이는 라디오에 선생님 팬이 벌써 댓글을 달아줬는데, 문성준 “장쌤!” 이렇게 했는데, 학생인가요?

◆ 장재희> 네, 지금 제 학생인데요. 저 아이가 조만간 장관상을 받습니다. 

◇ 김혜민> 그래요? 예스센터 학생이었고요? 무슨 장관상을 받습니까?

◆ 장재희> 이번에 성취포상제로 해서 장관상에 추천되어서 확정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김혜민> 그런데 이렇게 선생님 방송 출연한다고 하니까 든든한 응원을 해주고 계세요. 아마 선생님을 되게 좋아하는 학생인가 봐요.

◆ 장재희> 많이 성실하고, 센터에 와서 많이 변한 학생 중 하나입니다.

◇ 김혜민> 그렇군요. 지금 학생 자랑을 선생님이 하시면서 아주 그윽한 미소를 짓고 계신데요. 사실은 소년원에 간 우리 친구들이 한때는 잘못된 길에 들어섰던 친구들이고요. 소년원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나와서 결국은 사회 구성원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게 어른의 역할이고요.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특별히 이런 센터에서 이런 친구들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으세요?

◆ 장재희> 저는 정말 저한테는 계기가 크죠. 학원에서 1년 동안 근무했었고, 지금 예스센터에서 4년 9개월 동안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늦은 나이, 50에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그동안 배우지 못해서 스트레스 때문에 제 자신을 학대하며 지내왔던 저의 과거가 있었기에 한창 성장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선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 직업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 김혜민> 선생님이 평소에 공부하지 못했던 게 한으로 남았는데, 그러다 보니까 공부하지 못한 친구들을 가르치고 싶은 그런 사명감이 생기신 거군요. 나이 50에 공부를 시작하셨닫고요?

◆ 장재희> 네.

◇ 김혜민> 그게 그렇게 마음에 응어리가 남으셨어요?

◆ 장재희> 지금 이야기지만 제가 6남매 중에 넷째였거든요.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바로 취업을 했어요. 서울에 와서 처음 제가 직장을 잡은 곳이 중국집이었어요. 그곳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철가방을 들고, 자장면 등 식사를 배달하면서 그 당시에는 8시부터 10시까지 일하는 게 통상이었어요. 일상과 같이. 그 이후에 몇 군데 직장을 전전하다가 17살이 되던 해에 중공업 회사에 취직을 했죠. 선박 작업을 하면서도 항상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그려봤어요. 나이가 젊었을 때는 먹고사는 데 급급하다 보니 공부를 멀리 하고 있다가 아내 덕분에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 김혜민> 초등학교 졸업하셨으면 나이가 13살? 그때 중국집에서 배달을 하신 거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혼자요. 그리고 중공업 회사에 취직해서 또래들은 사실 다 공부하고, 부모님 품 안에 있는데, 혼자서 그렇게 사회에 나가서 공부를 한다는 게,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니까 서러우신가 봐요. 

◆ 장재희> 참 제가 19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난 후 아내와 함께 떡 방앗간을 운영했어요. 그러다가 장사도 잘 되고 생활도 나아지면서 정신없이 일했는데, 공부하는 미련도 그때는 잊힐 때쯤이었어요. 그런데 아내가 야간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권해서 평생 교육시설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어요. 그 후 50 나이에 폴리텍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 김혜민> 아내 분도 우리 장재희 선생님이 평소에 배우지 못해서 한이 됐던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셨고, 그래서 권유해주셔서 평생교육원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시고, 폴리텍대학에 50의 나이에 들어가신 거예요. 제가 박수 한 번 처 드릴게요. 아까 말씀하신 그 문성준 학생이 “장쌤의 그런 모습을 제가 지금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이렇게 남겼어요. 저도 이렇게 마음이 찡한데, 학생의 그 말에 선생님, 그렇죠? 상상이나 하셨어요? 선생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선생님의 그 모습 때문에 저 이렇게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날이 올 줄?

◆ 장재희> 고맙죠, 아이들이. 

◇ 김혜민> 선생님이 지금 마음이 행복해서 흘리는 눈물이죠?

◆ 장재희> 그렇죠.

◇ 김혜민> 아내 분의 권유로 폴리텍대학에 진학하셔서 공부를 하셨는데요. 이게 쉽지 않잖아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 장재희> 사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는 거다 보니까 머리도 굳었을 것 같고, 그래서 자신도 없었는데요. 그래도 참 아내가 포기하지 않고 적극 권장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왕 공부하는 거라면 제대로 한 번 해보자 싶어 방앗간에서 손을 떼고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 김혜민> 그래서 폴리텍대학에서 어떤 것을 배우신 거예요?

◆ 장재희> 폴리텍대학에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진학했는데요. 당시에 반 대표도 맡고, 재학 중에 용접산업기사와 용접기능장 등 자격을 취득하면서 자존감을 얻었습니다.

◇ 김혜민> 그럴 만하네요. 

◆ 장재희> 그동안 누구에게 무시를 당하고, 저평가해도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는데, 공부를 하면서 자존감이 살아나고,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 김혜민> 그러다가 지금 용접을 배웠으니까 학생들에게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하셔서 예스센터의 교사로 근무하게 되신 건데요. 사실은 우리가 소년원에 있다가 나온 학생이라고 하면 당연히 판단을 하고, 편견을 가지게 되는데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어렵지는 않으셨어요?

◆ 장재희> 학생들 가르치는 데 문제는 없어요. 우리 학생들은 여느 학생과 같습니다. 우리 학생들만큼 열정적인 학생들이 없습니다. 단지 아이들이 방향성을 찾지 못해서 때로는 흔들리고 하는데 우리들이 기다려주지 못하는 거죠. 이 아이들이 믿어주고, 인정해주고, 이랬을 때 아이들의 실력은 향상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아지는 거죠.

◇ 김혜민>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 논란들, 흙수저, 금수저 논란들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예스센터에 오는 친구들은 부모의 도움이나 아니면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 장재희> 아닙니다. 부모들은 정말로 아이들한테 신경을 써서 배려를 하고,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죠. 그런데 아이들이 젊은 나이니까 실수도 할 수 있고, 자기들이 실패를 하면서도 지금 나아지고 있는 거거든요. 특히나 우리 센터에서 선생님들의 열정으로 정말 이 아이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있고, 기술도 가르쳐주고 있고 그렇습니다.

◇ 김혜민> 선생님 혹시 기억에 남는 제자 있으세요?

◆ 장재희> 기억에 나는 제자요? 우리 기억에 남는 친구라고 하면 지금은 취업을 나가 있는 학생이 있어요. 그 한 학생은 처음 입학할 당시에는 모든 것이 부정적이었어요. 그런데 센터에서 생활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하고, 학생이 변하니까 부모마저도 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뿌듯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김혜민> 선생님이 얼마나 행복하게 이 일을 하시는지가 눈에 보이고요. 학생들이 얼마나 선생님을 사랑하는지, 사랑받고 있는지가 티가 나요. 그래서 저도 오늘 기분이 좋은데요. 직업교육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선생님이 누구보다도 그것을 느끼실 것 같아요. 직업교육의 중요성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해주신다면요?

◆ 장재희> 저는 직업교육은 국가발전을 위한 전문직업인이 필요한 곳에 지식과 기술을 갖춘 양질의 직업인을 양성하여 인력을 배출하고, 방황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인성 교육과 직업 교육을 통해 개인에게 안정되고 건강한 가정을 갖게 해줌으로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도 절감하게 되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김혜민> 선생님의 낮은 자존감이 배움을 통해서 높아진 것처럼 예스센터에 오는 아이들이 소년원을 갔다 왔다는 상처와 흉터가 있지만 직업교육을 통해서 자존감도 높아지고,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잘 녹아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정말 따뜻한 이야기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우리 청소년들 잘 부탁드립니다.

◆ 장재희>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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