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라디오 생생경제
  • 방송시간 : [월~금] 15:10~16:00
  • 진행, PD : 김혜민 / 작가: 정상림 / 조연출: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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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생생경제] “젊은 여자가 현장나왔다고 소금뿌리는 분도 계셨어요”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8-08 16:58  | 조회 : 366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혜민 PD
■ 대담 : 박은혜 산업현장교수(대한민국 여성용접기능장 1호), 원영휘 한국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 산업설비자동화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생경제] “젊은 여자가 현장나왔다고 소금뿌리는 분도 계셨어요”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물론 남성 전유 직업, 여성 전유 직업 이런 건 없죠. 하지만 용접 분야는 좀처럼 여성 기술자를 찾아보기 힘든 아주 대표적인 남성 전유 직업으로 꼽혀 왔습니다. 이 일이 웬만한 남성도 견디기 힘든 체력적 부담이 있고요. 그리고 당연히 남성의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그런 사회적 편견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2부에 특별한 분이 오실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대한민국 여성용접기능장 1호인 분을 모셨습니다. 먼저 인사 나눌까요? 박은혜 선생님, 나오셨어요. 안녕하세요.

◆ 박은혜 산업현장교수(이하 박은혜)> 안녕하세요.

◇ 김혜민> 대한민국 여성용접기능장 1호, 맞으시죠?

◆ 박은혜> 예, 맞습니다.

◇ 김혜민> 와,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하도록 하고요. 또 같이 나오셨어요. 보호자 같이 나오신 것 같아요. (웃음) 우리 지금의 박은혜, 뭐라고 해야 해요, 기능장이라고 해요? 

◆ 원영휘 한국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 산업설비자동화과 교수(이하 원영휘)> 교수님, 산업현장 교수님.

◇ 김혜민> 아, 교수님이시구나. 두 분 다 교수님이시니까 장인이라고 할까요, 그러면? 그러면 박은혜 교수님을 있게 한, 한국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 산업설비자동화과 학과장이신 원영휘 교수님, 나오셨어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 원영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혜민> 제 말이 맞나요? 지금의 박은혜 교수님을 있게 한 분이라는 게.

◆ 원영휘> 네.

◇ 김혜민> 반갑습니다. 먼저 우리 박은혜 교수님께서 조금 더 자세히 본인을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박은혜>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 최초 여성용접기능장 1호 박은혜고요. 현재 한양이엔지 소속으로 우수숙련기술자 재료분야 1호, 그리고 산업현장교수재료분야 여성 1호입니다. 

◇ 김혜민> 여성 1호가 본인이 본인한테 그냥 주는 거 아니잖아요. 무슨 기준이 있죠? 어떻게 주는 거예요?

◆ 원영휘> 저희가 현재 우리 박은혜 교수처럼 이렇게 자격을 주는 제도가 법령으로 보면 두 가지 법령이 있어요. 하나는 숙련기술장려법에 의해서 주는 경우가 있고요. 하나는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해서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해서 우리 박은혜 교수가 받았던 것은 기능장 자격증이고요. 숙련기술장려법에 의해서 받은 것은 현재 우리가 우수숙련기술자하고 그다음에 또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와 같은 우수숙련기술자들이 산업현장에 기술을 보급하고 또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을 또 그런 기술을 전수시켜주는 그런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우리 산업현장교수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소정의 심사를 거쳐서 자격증을 주고 있습니다.

◇ 김혜민> 본인이 본인에게 주는 게 아니라 정부에서 분명한 자격기준에 맞는 분을 선정한다는 것. 지금 우선 우수숙련기술자, 산업현장교수 재료분야, 이걸 할 수 있었던 모든 이유는 바로 여성 용접기능장이시기 때문일 것 같아요. 용접 하면 제가 아는 그 용접 맞죠? 이 더운 날 아이언맨이 쓰고 나오는 그런 걸 쓰고 용접하는. 어떻게 용접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 박은혜> 네, 용접면 쓰고, 그렇죠. 아무도 안 믿는데 정말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시작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산업현장에 뛰어들었고요. 바로 용접한 건 아니고, 도시가스 시공관리자로 활동을 하면서 거기서 용접을 처음 접하게 됐고. 그게 용접인지도 모르고 그냥 아저씨들하고 놀면서 진행을 하다가 시간 때우기 이런 것들 필요하잖아요. 기물테스트라고 가스관 하게 되면 테스트하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그 시간을 활용해서 용접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서 처음 접하게 되고, 그다음에 결혼 후에 폴리텍대학에서 체계적으로 다시 배우게 됐어요.

◇ 김혜민> 그러면 처음에 정식으로는 아니지만 용접을 접하게 될 때에도 여성 용접하는 분들은 없었죠?

◆ 박은혜> 없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현장에 여자가 있는 것만으로도 큰 죄짓는 것 같은.

◇ 김혜민> 왜요?

◆ 박은혜>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때 당시에는요. 여자가 현장에 있으면 재수 없다고 그러고 미신을 믿는, 되게 많이 믿는 때여서 정말 여성이 현장에 오면 작업을 안 할 정도였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는.

◇ 김혜민> 그게 몇 년도예요?

◆ 박은혜> 그게 불과 얼마 안 돼요. 20년 전, 20 몇 년 전인 것 같아요. 제가 20대 초반이니까, 아니구나. 제가 몇 살이죠? (웃음) 20대 초반이니까 한 20년.

◇ 김혜민> 한 20~25년 사이 안팎 얘긴데, 교수님, 정말이에요? 그 당시에는 현장에 젊은 여자가 가면 재수 없다고 소금 뿌리고, 있었어요?

◆ 원영휘> 남성들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또 어르신들이 많이 작업을 하는 때였기도 하고, 해서 그런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 김혜민> 워낙 안전이 중요한 현장이다 보니까 낯선 여성이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되게 거기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예민해지셨을 것 같아요. 그 맥락은 저도 이해는 할 것 같은데. 요즘 같은 세상에 큰일 날 일이 있었군요. 그러면 왜 결혼 후에 내가 이걸 조금 집중적으로 배워봐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되셨어요?

◆ 박은혜> 저는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을 계속 꾸준히 있었고요. 그런데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너무 즐기면서 했어요. 아마 누가 시켰으면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즐기면서 했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다시 현장을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 김혜민> 그 현장을 가고 싶으셨어요?

◆ 박은혜> 예. 땀 흘리고 난 다음에 막걸리 한 잔 먹는 게 얼마나 좋은지. 그 생각으로 진행했던 것 같아요.

◇ 김혜민> 그러고 나서 사실은 결혼 후에는 일이 끊기신 거죠? 일 못하시다가.

◆ 박은혜> 예. 이쪽 계열 하는 것은 위험한 쪽이어서, 모든 게 (*군기)나 이런 것들이 야간에 이뤄졌거든요. 그래서 결혼함과 동시에 회사는 그만뒀고. 이쪽 분야는 그만뒀지만 일을 아예 그만두지는 못하고 다른 식당일이나 이런 것들은 진행을 했었죠.

◇ 김혜민> 그러다가 IMF가 터졌어요.

◆ 박은혜> 예, 안타깝게도 정말 IMF가 결혼하자마자 터져가지고 쉴 수가 없었어요. 쉴 수가 없었고, 정말 바닥부터 시작을 했는데 긍정적인 생각을 해서 그걸 바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갈 일은 없겠다. 이제 위만 쳐다보면 되겠다란 생각을 하면서 진행을 했죠.

◇ 김혜민> 이제는 내려갈 바닥이 없네,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되네라는 생각으로 시작을 다시 하셨고, 그 시작이 폴리텍 대학이었어요. 그렇죠?

◆ 박은혜> 네, 기회가 주어졌죠.

◇ 김혜민> 기회가 주어졌다는 건 어떤 뜻일까요?

◆ 박은혜> 결혼하자마자 연년생을 낳았고요. 회사생활은 못했지만 가정에 충실했고, 그리고 식당일도 열심히 했고, 3년 안에 내 집을 갖겠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IMF가 터지면서 사실 신혼생활도 네 평짜리 집에서 시작했어요. 두 다리 간신히 뻗을 만한 곳. 그래서 3년 안에 내 집을 하겠다는 욕망 아래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고, 폴리텍의 그 기회가 주어졌을 때 신랑한테 얘기를 할 수가 있었죠. 저녁에 나 공부할 테니까 기회를 좀 달라고, 애들 좀 봐달라고 하는 부분들 있었죠.

◇ 김혜민> 그때 용접 공부를 하러 가신 거죠. 신랑은 반대하지 않았어요?

◆ 박은혜> 반대했죠. 그런데 반대했는데 저희가 신혼을 처음 제대로 살지를 않았잖아요. 그리고 3년 후에 정말 말하는 대로 저희 집을 하나 마련을 했었고. 그리고 신랑이 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노력을 했잖아요. 약속을 했었거든요. 내가 다시 사회에 나갈 수 있을 때 좀 도와달라라고 이야기를 했던 거였기 때문에. 대신에 그 이야기는 했어요. 너가 만약에 떨어지면, 저희가 폴리텍에 가게 되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데 1차에서 떨어지면 바로 집으로 들어와라.

◇ 김혜민> 아유, 냉정하셔라. 그렇게 애썼는데, 세상에. 그랬군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셨겠네요.

◆ 박은혜> 그렇죠, 갈 데가 없었어요.

◇ 김혜민> 그러면 그게 몇 년도예요, 폴리텍을 들어가신 게?

◆ 박은혜> 2003년인가요. 2003년인가, 네.

◇ 김혜민> 2003년도에. 그럼 그때 지금 우리 원 교수님을 거기서 만나신 거예요?

◆ 원영휘> 네, 그렇습니다.

◇ 김혜민> 그럼 원 교수님, 여성 제자를 처음 맞이하신 건가요, 혹시?

◆ 원영휘> 기능장 과정에선 처음이었죠.

◇ 김혜민> 어땠어요, 그때?

◆ 원영휘> 그때 안 받고 싶었어요. 아시다시피 학교 시설 전반적인 게 우리 남학생들 위주로 시설이 돼 있었어요. 쉽게 얘기하면 실습복을 탈의해야 하는데 탈의실이 없어서 저희 연구실을 빌려주고 거기서 탈의를 하게 했고요. 그다음에 끝나고 나면 샤워를 해야 하는데 샤워장이 또 마땅치가 않습니다. 또 실험 실습장에는 여성이 갈 수 있는 그 당시에는 화장실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되도록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 김혜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 원영휘> 강하게 의사표명을 하고, 죽기 아니면. 이런 각오로 왜 안 뽑아줍니까, 해서 그 의지에 못 이기고 뽑았습니다.

◇ 김혜민> 와, 오늘 무더위는 저리 가라네요. 이래서 1호를 다시는 거군요. 지금 여러분은 대한민국 여성 용접기능장 1호인 박은혜 교수님과, 그 박은혜 교수님을 마지못해 뽑았지만 기능장으로 길러내신 원영휘 교수님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2004년에 기능장 과정을 다니면서 기능장 자격을 취득하신 거예요? 한 번에 됐어요?

◆ 박은혜> 네.

◇ 김혜민> 그렇게 쉬운 건가요, 아니면 대단한 건가요, 교수님?

◆ 원영휘> 대단한 거죠.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얼마만큼 열심히 했느냐면, 이 친구 때문에 저도 집에를 못 갔습니다. 한 번은 야간에 강의를 하다 보니까 12시가 넘어서 1시까지도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 1시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전 클래스맨이 다 1시까지 강의를 다 듣고 집에를 갔어요. 특히 이 친구 같은 경우에는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어린 아들딸이 2명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정말 악착같이 공부를 했습니다. 오히려 이 친구처럼 이렇게 적극적이고, 또 그 클래스맨들의 학습 분위기를 이끌고 가는 데 많은 공조를 했던 그런 학생으로 제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단합이 안 될 때는 우스운 얘기지만 회식 장소에서 많은 남학생들을 다,

◇ 김혜민>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 원영휘> 그렇게도 했지만 또 아까 막걸리도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 다음 날 그 학생들이 직장에 근무를 못할 정도로도 만들었던 그런 기억도 있습니다.

◇ 김혜민> 그렇잖아요. 현장 가시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현장 근로자분들이 워낙 술들을 좋아하시고 하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하셨어요? 왜 그렇게 불꽃처럼 사셨고, 왜 그렇게 여성 용접기능장 1호를 따고 싶으셨어요?

◆ 박은혜>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 아니면 다시 사회에 나올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뒤돌아볼 겨를도 없었고요. 정말 그때처럼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없던 것 같아요. 그냥 정말 그 두꺼운 책 하나를 다, 그냥 무조건 무식하게 외웠던 것 같아요. 이해도 안 됐는데도. 그래서 용접이 되게 처음에는 쉬운 줄 알고 진행했는데 하다 보니까 더 많이 어려운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좀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그때처럼 공부는 못할 것 같아요. 

◇ 김혜민> 지금 이제 기능장으로 현장에 나갈 때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때요? 예전하고는 그래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 박은혜> 네, 너무 감사하게 그때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50대 이후에 계신 분들은 남성우월주의 사상이 있기 때문에 인정하려 들지 않는 부분들도 계시는 거고요. 그리고 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감사하게 매체나 이런 쪽에서 저희 3D업종이라고 해가지고 사실은 방송에서 잘 틀어주지 않았는데 요즘에 교육의 힘하고 정말 방송의 힘 때문에 많이 좋게 봐주시는 부분도 있거든요. 에전보다는 많이 나아졌고요. 그들만의 공간에 누군가가 새로운 사람이 투입되는 것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시간이 점차 가면서 제가 다시 깨야 하는 부분이라고 보고요. 우선 제일 두꺼운 벽은 그래도 깼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 김혜민> 지금 1호 이후에 또 나왔나요?

◆ 박은혜> 네, 그런 걸로 알고 있어요.

◇ 김혜민> 그렇군요. 1호가 있으니 2호도 있는 거고요. 그렇죠?

◆ 박은혜> 지금 2004년 이후에 이번에 다른 것 때문에 조사를 했는데 여성분 기능장이 총 7명이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제 이후로 6명이 더 나온 거죠.

◇ 김혜민> 길을 연 두 분이 오늘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용접하는 데 있어서 여성이 취약한 건 알겠어요. 체력이나 여러 가지로. 하지만 여성이어서 잘할 수 있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게 있을까요?

◆ 원영휘> 네,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용접은 방금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힘이 많이 드는 그런 직업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접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섬세한 부분. 또는 감리, 이쪽 검사 쪽. 이쪽은 여성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렇게 생각이 되고 있고요. 우리 여성들의 직업, 우리 고용율 70% 향상을 위해서도 한때는 그쪽 부분만을 커리어로 만들어서 여성 특화 우리 용접학과를 만들려고도 했던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 김혜민> 그렇군요. 그러면 우리 박은혜 교수님께서는 지금은 학생들도 가르치고 계시니까요, 현역에 있으면서. 어떤 것들을 학생들한테 알려주고 싶으세요?

◆ 박은혜> 저는 교육 중에 가장 중요한 건 인성이라고 보거든요.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교육의 의식이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고. 예전에는 사람들이 못 배웠기 때문에 내 기술을 남한테 알려주면 안 된다라고, 밥그릇을 뺏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한테 기술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게 본인이 갖고 있는 기술을 다른 사람한테 알려줬을 때 내 게 더 갖고 있는 부분이고. 그리고 인성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 배려할 수 있는 마음, 그게 여러분들 젊은 세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김혜민> 정말 불꽃 같은 오늘 여성 용접기능장 1호인 박은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 원 교수님께서 이 이야기 들으면서 ‘나도 용접, 그걸 학교에서 배울 수 있어?’ 이런 분들 계실 것 같아요. 그런 분들께 안내를 해주신다면요?

◆ 원영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용접 분야는 남성들도 꺼리는 직업 중의 하나입니다. 용접 불꽃과 함께 우리가 일을 해야 하는 관계로 온몸에 땀은 범벅이 되고, 또 무거운 철판도 옮겨야 하고, 얼굴 또는 작업복 시커먼 기름을 다 묻혀야 하거든요. 그러나 우리 박은혜 교수와 같이 의욕을 가지고 일에 임할 수 있는 그러한 도전적인 정신만 있다면 거뜬히 해결해나갈 수 있을 걸로 봐집니다. 당연히 전문적인 기술력에 대한 부분은 저희 폴리텍대학에서 당연히 도와드릴 부분이고요. 자신감만 있으면 우리 폴리텍대학으로 오시면 됩니다. 저희들이 보장하겠습니다.

◇ 김혜민> 와, 폴리텍대학이 보장한답니다. 불꽃 같은 용접인이 되고 싶으신 분들, 폴리텍대학에 문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배움이 일자리다 시즌2>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 박은혜, 원영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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