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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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보훈혁신위원 ‘독립운동에 좌파, 우파가 어디 있나’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2-26 20:29  | 조회 : 2345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2월 26일 (화요일)
■ 대담 : 이지원 대림대 교수



前 보훈혁신위원 ‘독립운동에 좌파, 우파가 어디 있나’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 100주년, 이제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3.1운동은 헌법 전문 일부에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라고 언급될 만큼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출발로 기록돼 있죠.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서 독립운동가들의 서훈 등급이 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전문가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보훈처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셨던 이지원 대림대학교 교수 연결합니다. 교수님?

◆ 이지원 대림대 교수(이하 이지원)> 네, 여보세요. 

◇ 이동형> 안녕하십니까?

◆ 이지원>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현재 우리나라 서훈 제도는 어떻게 되어 있죠?

◆ 이지원> 서훈 제도는 5단계로 되어 있는데요. 5등급이 애족장, 그다음에 4등급에 애국장, 3등급이 독립장, 2등급 대통령장, 1등급 대한민국장.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이동형> 그런데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지 않았습니까? 어떤 기준으로 누가 받게 됐느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대한 독립운동가들이 1등급을 못 받고 있다. 이런 얘기도 있었고요. 어떻게 이게 등급이 매겨져서 이렇게 결정이 나는 거죠?

◆ 이지원> 이렇게 매겨지는 것이 본격화된 것은 1962년부터고요. 사실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된 45년부터 했었어야 하는데, 그게 늦어지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까 그 기준 잡는 것이 상당히 분단 상황이 작용하게 되고, 또 정치적으로 5.16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그러면 그것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되고, 그러면서 친일 과거 청산이 안 되면서 친일파들도 서훈을 받는 경우가 있었고, 이렇게 되다 보니까 기준이 안 맞는다고 하는 국민적인 반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 이동형> 예를 들면, 유관순 열사 같은 경우에 당연히 1등급인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는 3등급 독립장이었다. 이렇게 해서 문제가 됐고, 이번에 대한민국장을 추가로 서훈한 것 아니겠습니까?

◆ 이지원> 네, 그렇게 됐는데요. 사실 저는 유관순 열사가 올라가는 것에 대해서 크게 반대는 안 하지만, 유관순 열사 말고도 그거 못지않게 활동하신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제대로 평가 못 받았다는 점. 오히려 이번을 계기로 그런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그렇습니다. 보훈처 보훈혁신위원회에서 독립유공자 훈격 재심사 관련해서 혁신 권고안을 발표했다고 하는데, 이 혁신 권고안에 담긴 내용은 어떻습니까?

◆ 이지원> 그 취지는 독립유공자 포상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하자. 그럴 때 가장 기준이 되는 것은 독립운동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의 영예성을 높이고, 허위 공적 또는 현저한 정도로 친일 행적이 발견된 경우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취소할 것은 저희가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독립운동의 공적에 대해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너무 현저하게 높게 책정되는 사람도 있고요. 현저하게 낮게 책정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 공적이 발굴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재심사를 실시하라고 하는 권고안을 냈었습니다.

◇ 이동형> 서훈 취소도 가능하군요?

◆ 이지원> 가능한데, 그것도 절차를 밟아야겠죠.

◇ 이동형> 그렇겠죠. 예를 들면, 지금 1등급 서훈자 가운데 임병직이라는 분은 경력이 이승만 비서한 것이 다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등급을 받았거든요. 이런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 아니겠어요?

◆ 이지원> 그분의 행적으로는 미국에서 이승만을 도왔다, 보좌했다, 이런 건데요. 그분이 해방 후에 5.16 때 박정희 쿠데타를 적극 지지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76년도에 서훈을 받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박정희 정권에 의한 강한 영향력이 행사되었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1등급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러면 어쨌든 서훈이라는 것은 공적에 걸맞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니까요. 보훈처나 이쪽에서 다시 한번 공적을 살펴보겠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 이지원> 아마 그렇게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동형> 또 하나는 지금 2019년 2월 현재 서훈을 받은 남성 독립운동가가 15,180명. 반면에 여성 독립운동가는 357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공헌이 낮게 평가된 것이 아니냐, 혹은 발굴을 후손들이 못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지적이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지원>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이 상대적으론 남자보다는 두드러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 활동의 부분에 관심을 안 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남녀 인구 비율로 본다면, 절반이 여성인데, 독립운동 서훈은 불과 350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은 너무 적게, 그다음에 독립운동 서훈에서 여성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미흡했던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357명도 2018년에 60명이 포함되면서 늘어났으니까요.

◆ 이지원> 네, 작년 이맘때까지는 아마 200선이었을 겁니다.

◇ 이동형> 그렇죠. 그러니까 앞으로 조금 더 발굴하고, 공적을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지원> 네, 그렇습니다. 아마 보훈처에서는 그래서 여성에 대한 심사기준을 조금 더 많이 완화하는 방법도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동형> 아까 얘기하신 대로 독립유공자 포상이 60년대부터 시작된 겁니까?

◆ 이지원> 원래 48년, 49년에 이승만이나 이런 분들이 스스로 ‘셀프 서훈’을 했었습니다.

◇ 이동형> 본인이 최고 서훈인 독립훈장을 받은 거죠?

◆ 이지원> 네, 제도적으로 그런 시스템을 만든 것은 60년대 들어와서고요. 그런데 이것이 되려고 하면, 독립운동사 연구가 활발하게 되어야만 합니다. 연구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서, 또는 시대적인 유행에 따라서 줄 수 있는 게 독립운동 서훈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독립운동가 연구에 대한, 연구풍토. 요즘 인문학적인, 이런 것들이 강조되지만, 사실 역사 학문 연구가 크게 사회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지는 못 합니다. 이런 부분이 전제되어야만 독립운동가 서훈도 사실에 입각하고, 조금 더 미래를 위한 오늘의 우리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서훈 취소도 아까 잠깐 이야기했습니다만, 혹시 친일했다고 의심받는 사람들 중에 아직도 서훈 받은 공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분도 계십니까?

◆ 이지원> 아마 서훈이 독립은 아니더라도 국가유공자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이건 또 다른 차원이죠. 그래서 그런 문제들이 복잡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이동형> 친일은 했으나 48년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될 때 뭔가 했다, 이런 이야기인가요?

◆ 이지원> 네, 그렇죠.

◇ 이동형> 그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이 되겠네요.

◆ 이지원> 그렇죠. 친일청산, 역사청산, 과거 역사 사실에 근거한 것들이 제대로 바로잡히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논란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듭니다.

◇ 이동형> 또 하나 오랫동안 논란이 있던 건데요. 소위 말해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좌파 독립운동가들. 혹은 월북한 독립운동가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서훈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부분입니다.

◆ 이지원> 현재 북한으로 간 분들은 서훈을 안 하고 있는데, 사실 역사에 근거한다면, 일제 때 어느 독립운동가도 우리는 나라는 두 개 만들기 위해서 독립운동 한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에 분단이, 우리가 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됐다가 그것이 정부가 이렇게 수립되는 과정에서, 또 그것을 이용하는 또 다른 친일 정치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은 독립운동 자체보다는 북한과의 관계를 따졌던 건데, 그러다 보면, 역사 자체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서 독립운동이 재단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거죠.

◇ 이동형> 이번에 국민중심보훈혁신위원회에서 의열단의 김원봉 단장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자, 이런 권고도 냈다고 하는데, 우리가 독립운동 할 때 중국에서 김구의 한인 애국단과 김원봉의 의열단이 쌍두마차였는데, 김원봉 선생 같은 경우에는 남쪽에서도 선택받지 못했고, 결국은 북쪽에 넘어가서도 숙청당하는 일생을 사셨잖아요? 그런데 이게 북에 단순히 넘어갔다는 이유로 서훈이 안 된다고 하면, 이 자체로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보훈혁신위원회에서 이런 권고를 낸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 이지원> 네, 보훈혁신위원회에서 김원봉만을 주자, 이런 취지가 아니고요.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45년을 기준으로 해서 독립운동을 했냐, 안 했냐로 기준으로 하자. 그것을 할 경우에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이 김원봉인데, 밀양 사람 김원봉인데요. 김원봉은 1919년부터 45년까지 26년 간 독립운동 했던 사람이고, 그다음에 돌아와서 아마 그 사람이 친일 경찰이었던 노덕술의 고약한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북으로 안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북으로 갔다고 해서 북 정권의 핵심도 아니고, 숙청당했고, 그리고 지금 남북의 평화와 통일과 화합과, 이런 것이 얘기되는 시점에서 북도 인정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를 남이 먼저 껴안는 것. 이런 것이 조금 더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되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었던 거죠.

◇ 이동형> 우리 청취자분들도 의견 주시고 있는데요. “독립운동의 좌파, 우파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 이지원> 맞습니다. 그렇죠. 45년 기준으로요.

◇ 이동형> 그러나 앞으로 이 문제는 계속 우리 사회의 논쟁거리로 남아있을 것 같은데, 1등급부터 5등급까지가 정확하게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매겨진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맞습니까?

◆ 이지원> 아니,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서훈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도 있고, 어떤 후손이 이것을 서훈 신청하는 경우에는 제가 알기로는 또 다른 개인정보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부분들을 기준을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 같고요. 그리고 그 기준에 대한 것은 보훈처 자료관이나 정보관에 가면, 다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 이동형> 지금 1등급부터 5등급까지 나눠져 있는 이런 서훈 등급을 재평가해야 한다, 혹은 새로운 산정 방식이 필요하다, 이런 의견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지원> 그것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독립운동 45년을 기준으로 해서 다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에 따라서 5등급의 기준을 다시 손본다고 하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함께 검토해야 할 문제지, 등급 체계가 잘못됐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독립운동 자체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을 너무 좁게 만드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 이지원> 네, 감사합니다.

◇ 이동형> 지금까지 대림대학교 이지원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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