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역사
  • 진행자: 김효진 강사 / PD: 박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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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목) 일제 우민화 정책도 꺾지 못한 교육열, 서당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2-21 08:41  | 조회 : 886 

안녕하세요? 이야기 들려주는 역사선생님, 김효진입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가히 세계적 수준인 것 같습니다. 드라마가 수많은 화제거리를 낳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겠지요. 한국인의 이같은 뜨거운 교육열은 일제 강점기에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일제의 우민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활성화된 교육기관, 바로 서당입니다.

서당은 일제강점기에도 상당 기간 초등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당시 신식학교인 소학교가 생겨난 지 꽤 되었지만, 소학교에서는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일본인으로 만드는 교육을 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입학 연령이 된 학생들이 소학교에 가지 않고 서당에서 계속 공부하자, 1908년 통감부는 ‘서당 관리에 관한 건’을 반포해 서당에서의 교육방법과 교육 내용에 대한 개선을 촉구합니다. 물론 이것은 일본어 보급을 위한 조치였기 때문에, 이를 지키는 서당은 거의 없었지요. 1911년에 1만 6천여 개였던 서당은 1918년 2만 3천여 개로 증가했고, 학생 수도 14만 명에서 26만 명으로 늘어납니다. 게다가, 한글 교과서를 사용하는 개량서당이 등장했고, 여기서는 초등교육 뿐 아니라 ‘조선 역사’와 같은 민족 교육도 실시했습니다.

결국 총독부는 1918년 2월 21일 ‘서당규칙’을 발표하여 서당 교육에 대해서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서당의 개설을 허가제로 바꾸고, 학생 수도 30명을 초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더 나아가 1929년 ‘서당규칙 개정’을 발표해, 서당 설립을 도지사 인가제로 바꿉니다. 사실상 서당을 더 이상 설립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보이거나 식민지 통치 정책에 방해가 되는 서당은 ‘규정 미비’라는 이유로 폐쇄하기 시작했고요. 결국 서당은  1930년대 중반 이후 축소되기 시작했고, 해방 후에는 대부분의 교육기능이 학교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현재에도 학교 교육의 보조적인 기능으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서당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서당의 존재를 통해 우리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교육을 통한 항일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들려주는 역사선생님, 김효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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