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역사
  • 진행자: 김효진 강사 / PD: 박준범

방송내용

2/18(월) 최고 현상금 걸렸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2-18 10:58  | 조회 : 568 
안녕하세요? 이야기 들려주는 역사선생님, 김효진입니다.

‘320억원.’ 당시 돈으로 100만원에 해당하는 이 돈은, 한 독립운동가에게 내걸었다고 전해지는 일제의 ‘최고 현상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액수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약산 김원봉(1898~1958)입니다.

경남 밀양 출생인 그는 1919년 의열단을 만들어 조선총독ㆍ일본군ㆍ친일파 등 암살, 조선총독부 및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주요기관 파괴를 목표로 한 공작을 이끌었지요. 193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나서 민족혁명당을 창당하고, 독립군부대인 조선의용대를 이끌었습니다. 이후 임시정부의 좌우통합을 통해 한국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냈지요. 김원봉의 현상금 액수에는 의열ㆍ무장투쟁 선두에 선 그에 대한 일제의 강한 경계심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김원봉은 설 곳이 없었습니다. 1946년 좌우합작을 지지하며 여운형을 도왔지만, 1947년 여운형이 암살되고 남한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월북을 선택합니다. 김원봉이 충칭 시절, 그의 비서였던 사마로(司馬路)에게 보낸 편지에 “북조선은 그리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남한의 정세가 너무 나쁘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여 살 수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가 월북한 이후 남한에 살고 있던 그의 가족과 집안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한국 전쟁 과정에서 그의 형제와 사촌동생들은 보도연맹, 또는 월북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남한군에 의해 총살당하거나 살해되지요. 그 과정에서 동생 김봉철, 김학봉만이 살아남고, 그의 아버지는 유폐되었다가 굶어 죽었다고 전해지고요. 북으로 간 김원봉 또한 결국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었고, 북한에서도 잊혀진 인물이 되고 맙니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에게 수여하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명단에도 김원봉은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 공적이 인정되더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경우’는 서훈에서 배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현상금 액수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한 김원봉, 지금은 영화 주인공으로나마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래야 할 것 같네요.

지금까지 이야기 들려주는 역사선생님, 김효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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