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성기, 오늘
  • 진행자: 김명숙 / PD: 신아람 / 작가: 조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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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품은 수요일 “마종기 시인의 ‘기적’” - 박준 시인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7-01-11 10:53  | 조회 : 4756 
YTN라디오(FM 94.5) [당신의 전성기 오늘]

□ 방송일시 : 2017년 1월 11일(수요일)
□ 출연자 : 박준 시인


시를 품은 수요일 “마종기 시인의 ‘기적’”


◇ 김명숙 DJ(이하 김명숙): 수요일에 함께하는 코너죠, 시를 품은 수요일입니다. 새해 결심 많이 세우셨을 텐데요. 저는 올해 여러 가지 계획 중에 시도 좀 많이 읽어야겠다는 목표도 세웠습니다. 시품수, 시를 품은 수요일 코너를 하면서 시의 힘과 매력에 빠졌기 때문인데요, 오늘도 역시 시품수의 주인공, 박준 시인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박준 시인(이하 박준): 네, 안녕하세요.

◇ 김명숙: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인사 수없이 받으셨을 텐데요. 시인이니까 시적으로 없을까요?

◆ 박준: 매사 시적으로 살지는 못하는데,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많이 주고받는 한해 되세요,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어제 제가 좋아하는 시인 선생님에게 문자를 받았는데요. 느긋하게, 모르는 척, 태연하게, 별일 아닌 것처럼, 이런 새해 인사를 받았어요. 참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김명숙: 따뜻하고 여유로운 그런 마음이 전해지는 새해 인사네요. 그 단어에서. 올해는 그야말로 박준 시인 말씀처럼 딱딱하고 뾰족한 말보다는 시처럼 부드럽고 안아주는 말, 많이 하고 많이 듣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새해 소망, 안 물어볼 수 없죠.

◆ 박준: 저는 소망 역시 시인답지 않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잘 산다는 것이 한국어가 재밌잖아요. 잘 산다가, 잘과 산다가 붙으면 여유 있게 산다, 부유하게 산다는 거고요. 잘과 산다가 떨어져 있으면 잘 살아낸다, 살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렇게 바뀌는데요. 좋게 산다는 의미도 있을 거고요. 붙는 의미의 잘산다보다, 떨어진 의미의 잘 산다. 이것도 새해 소망 중 하나였습니다.

◇ 김명숙: 역시 서정적이세요. 새해 소망도. 청취자분들도 새해에는 희망찬 새해, 이런 광고들 많이 하시고 계실 겁니다. 오늘 시품수이니까, 희망찬 시 하나 낭독 부탁드렸으면 하는데요.

◆ 박준: 청취자분들도 많이 알고 계실 텐데요. 마종기 시인이 계십니다. 새해를 두고 ‘기적’이라는 시를 쓰셨는데요. 그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추운 밤 참아 낸 여명을 지켜보다
새벽이 천천히 문 여는 소리 들으면
하루의 모든 시작은 기적이로구나.

지난날 나를 지켜 준 마지막 별자리.
환해 오는 하늘 향해 먼 길 떠날 때
누구는 하고 싶었던 말 다 하고 가리
또 보세, 그래, 이런거야, 잠시 만나고-

길든 개울물 소리 흐려지는 방향에서
안개의 흔들이 기지개 켜며 깨어나고
작고 여린 무지개 몇 개씩 골라
이 아침의 두선을 씻어 주고 있다.

- 마종기, 기적


◇ 김명숙: 마종기 시인의 기적, 박준 시인의 음성으로 들었는데요. 저는 여기서 ‘하루의 모든 시작은 기적이로구나’ 참 가슴에 와 닿네요.

◆ 박준: 시인도 아마 이런 의도일 건데요. 기적이라고 부르는 일들이 살면서 한 번이 올까 말까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매일 아침 어느 시간에 눈이 떠지고, 매해 계절이 바뀌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이 생각해보면 기적같은 일들이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쓰여진 시 같습니다.

◇ 김명숙: 맞습니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하루하루 소소한 일상이 그냥 무의미한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충분히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올 한해는 소소한 일상에서 생각지도 못한 기적 같은 행복들을 많이 맛볼 수 있는 그런 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박준: 재미있는 것은, 제가 키우는 개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면, 이 강아지가 참 귀여운 게, 강아지가 잠을 오래 자잖아요. 자기가 잠을 오래 자면, 아침에 강아지가 일어나면 제가 어디 다녀온 게 아닌데 어디 다녀 온 건줄 알고 반겨요. 정작 잠을 자서 못 본건 자기 스스로인데, 그렇게 되게 좋아해요. 아침마다. 마종기 시인의 기적을 읽으면서 저는 저희집 강아지를 생각했습니다.

◇ 김명숙: 이게 다 통하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 모든 시작은 기작이로구나, 나 아닌 타인에 대해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런 말을 주고 받자, 이런 말씀 하신 것과 통하는 것 같은데요. 시품수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애청자 분들이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주시는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올해는 나도 시를 써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팁 좀 알려주세요. 의외로 많이 계시더라고요.

◆ 박준: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시라는 게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 같은 것을 진솔하게 표현해내는, 그런 문학 장르일 겁니다. 시라고 해서 어떤 형식상 두려움이 먼저 다가오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그건 조금 덜 두려워하시고,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진솔하게 잘 털어놓고, 털어 놓은 결과물이 시라고 우기면, 이건 내가 쓴 시라고 우기면, 그 사람이 좋다고 하든, 나쁘다고 하든 간에 내가 우기면 이게 시가 됩니다.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김명숙: 새로운 것 알았습니다. 시라고 하면 뭔가 정형화된,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 때 그런 것 많이 배웠잖아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주 단순하게, 솔직하게 감정을 그대로 쓰고 시라고 우겨라.

◆ 박준: 맞습니다. (웃음)

◇ 김명숙: 좋은 팁 배웠습니다. 시는 어떻게 보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응축된 표현으로 커다란 생각을 하나의 단어로도 표현할 수 있잖아요. 굉장히 창의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의적인 건 자꾸자꾸 훈련하고 연습하다 보면 늘어날 것 같아요. 그래서 시를 쓰고 싶으신 분들도 박준 시인 말씀처럼 자꾸자꾸 쓰다 보면 자기 자신의 마음도 더 들여다보게 되고, 생각도 조금 정제될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듭니다. 올해 정유년, 닭의 해입니다. 닭은 문학에서 참 많이 표현되는 것 같아요. 글에서도 그렇고 그림에서도 그렇고. 문학에서 어떤 이미지로 주로 차용되나요?

◆ 박준: 일상적으로 닭은 부정과 긍정의 이미지로 같이 사용되잖아요. 기억력이 좋지 않다, 이럴 때 부정적 의미로도 쓰이고요. 혹은 부지런하다, 이런 의미로도 쓰이는데요. 문학에서의 닭은 조금 더 부지런함의 정도를 넘어서 다른 세계를 미리 알리는 선지자적인 상징으로도 많이 쓰이고요. 또 소설을 보면 닭이라는 가축이 집에서 키우는 짐승이 친숙한 존재잖아요. 굉장히 많은 소재로도 들어오는데요. 예를 들면 동백꽃, 봄봄으로 유명한 김유정 작가가 있어요. 닭 싸움을 시키는 데 자기 집 닭이 자꾸 싸움을 못해서 고추장을 먹인 다음에 싸움 닭으로 내보낸다거나, 그런 소설로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졌는데요. 소설에서도 닭이 친숙한 이미지로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 김명숙: 닭은 여러모로 우리이게 좋은 것도 많이 줍니다. 요즘 조류인플루엔자로 안 좋은 소식이 있지만, 뭔가 새벽을 알리는 상징이잖아요. 아침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가 여러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 느낌의 시도 있죠?

◆ 박준: 이육사의 광야라는 시, 그 시가 닭이 등장합니다. 잘 들어보시면요.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


◇ 김명숙: 이육사 시인의 <광야>를 박준 시인의 음성으로 들어봤고요. 이어진 노래는 안치환과 장필순이 함께 부른, <우리가 어느 별에서>였습니다. 이 노래는 사실 정호승 시인의 시에다가 노래를 붙인 거죠?

◆ 박준: 맞습니다. 같은 제목이죠. <우리가 어느 별에서> 시에 음악이 붙은 곡이 되었습니다.

◇ 김명숙: 이 시간에 다시 들으니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요. 참 가사가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대와 나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 뭔가 정말 사랑과 희망이 같이 묻어나는 느낌입니다.

◆ 박준: 멜로디 속에 묻혔는데, 이런 가사, 이런 시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언제부터 그리웠기에 이토록 사랑하고 있는가, 이런 뜻인 것 같습니다.

◇ 김명숙: 희망과 사랑이 함께 만나는, 부드러운, 정적인 노래 잘 들었습니다. 이런 노래 때문에 시품수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오늘부터는 새해를 맞아 시를 품은 수요일, 시품수의 다른 느낌을 더 넣어보려고 합니다. 뭐냐면 중년 분들이 한창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뻔한 시를 진하게 만나보려고 합니다. 사실 국어 시간에 만난 시들은 좋은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험을 위해 외웠던 상황이라, ‘다시 읽어보면 어머, 이 시가 이런 거였어? 이런 느낌이었어?’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상황이 다르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

◆ 박준: 시는 소설과 굳이 다른 점을 생각해보자면, 소설의 경우 내가 한 번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지 않는 경우가 많죠. 물론 내가 너무 좋아하는 소설들은 몇 번씩 읽기도 하지만, 시의 독법은 조금 다릅니다. 왜냐면 시는 한 번 읽었다고 다시 안 읽는 게 아니라, 읽을 때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다를수록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거든요. 시는 한 편 읽고 책장에 꽂아놨다가 다시 한 번 보면 의미가 달라져있고, 시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김명숙: 우리가 교과서에서 만난 시 중에 어떤 시를 오늘 첫 순서니까, 많은 분들이 알고 좋아하는 시였으면 좋겠는데요.

◆ 박준: 한국 시 역사에서 가장 거장으로 꼽히는 시인 중 한명이죠. 김수영 시인의 <눈>, 먼저 들고 왔습니다.

◇ 김명숙: 김수영 시인의 <눈>, 어떤 느낌이죠?

◆ 박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눈은 살아있다, 반복되는 시인데요. 눈이라는 것은 순수하고, 흰, 깨끗한 이미지입니다. 시인이 기침을 하자, 가래를 뱉자,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요.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어서 눈처럼 깨끗해지자, 이런 형식으로 교과서에서 배웠죠. 물론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해석이긴 한데요. 그런 해석에서 벗어나 각자의 눈, 각자의 기침, 각자의 살아있음, 이를 한 번 귀로, 마음으로 들으시면서 감상해보면 어떨가, 이런 생각으로 가져왔습니다.

◇ 김명숙: 박준 시인의 음성으로 김수영 시인의 <눈>을 들을 텐데요. 애청자 여러분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시 낭송을 끝으로 이 시간 마쳐야 할 것 같아요. 오늘 감사합니다.

◆ 박준: 네, 감사합니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ㅇ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김수영,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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