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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단통법 논란, 과거의 통신방법은? -문사철 강응천대표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4-10-14 10:11  | 조회 : 3671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세대와 시대의 봉우리를 넘어(세시봉) : 강응천 문사철 대표앵커:단통법 시행으로 말이 많다. 지금은 휴대폰 없는 세상을 꿈도 못 꾸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휴대폰 자체가 꿈이었다. 옛날에는 어떻게 통신을 했을까? 오늘 세시봉에서 이 문제 생각해 보겠습니다. 문사철의 강응천 대표 나와 있습니다. 어서오시죠.

강응천 문사철 대표(이하 강응천):
네, 안녕하십니까?

앵커:
옛날엔 전화도 없었고, 결국 사람이 소식을 전했겠죠?

강응천:
그렇죠. 인류가 탄생한 후에 수백 만 년 동안, 사람이 직접 전하는 방식에 없었습니다. 개인은 직접 걷거나 인편에 편지를 전해주는 수 밖에 없었는데요. 국가에서는 역참이라는 것을 두어서 말을 탄 전령이 편지를 전하게 했죠. 이게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데요. 역참망이라고 할때 참이라는 것이, 한국에서는 참의 거리를 30리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2km 정도인데요. 아마 그게 말이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말 중에 ‘한참 기다렸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이 그 참과 참 사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면 됩니다.

앵커:
예전에는 말죽거리도 있었잖아요.

강응천:
그렇죠. 그런 것이 다 역참의 자취이죠.

앵커:
그렇군요. 지금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는데, 그때는 사람이 직접 가야 되니까 얼마나 느렸겠어요.

강응천:
말이 빨리 달리면 왠만한 기차만큼은 달리는데요. 몽고는 세계를 지배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북경부터 모스크바까지를 다 커버했는데요. 이때 황제의 명령을 수 천 km가 떨어진 모스크바까지 어떻게 전하느냐면, 역참이라는 말에서 참이라는 단어가 몽고에서 전래한 것인데요. 원나라에 1519곳이나 역참이 있었고요. 60km 마다 참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이나 노새가 5만마리나 상비되어 있었고, 역참병이 말이나 외등낙타를 타고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달리거든요. 모래바람을 이겨내야 하니까요. 그럼 하루에 160km를 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교대를 하면서 하루에 24시간 연중무휴로 달리면 북경에서 모스크바까지 한달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몽골의 간섭을 받았으니까, 북경에서 보낸 문서를 나주까지 보내는데 한 사흘 걸렸다고 하니까, 그때로서는 쾌속이었죠.

앵커:
그런데 한번 가는데 한달이 걸리고, 다시 결과를 보고하려면 두 세달이 걸린다면, 전쟁 같은 급보를 전하기에는 아무래도 역참만으로 한계가 있지 않나요?

강응천:
그렇죠. 그래서 개발한 하이테크 통신수단이 봉수가 있습니다. 봉화는 밤에 싸리나무 같은 것에 관솔 불을 피워서 횃불을 피우고, 낮에는 이리나 늑대의 배설물로 불을 피운답니다. 그래가지고 멀리서도 잘 보인다는데요. 그러면 함경도에서 변란이 일어났다고 하면, 아차산을 통해서 남산으로 보내거든요.

앵커:
서울에 있는 아차산 말씀하시는 거죠?

강응천:
그렇죠. 서울의 관문이 아차산의 봉수대죠. 그 봉수대를 보고 남산에서 피워 올리면 ‘아 전쟁이 일어났구나’ 알 수 있고요. 이 전쟁도 단계별로 나눠서 5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5개가 연속으로 올라가면 전쟁이다. 이런 것을 알렸으니까, 적어도 함경도에서 서울까지 12시간 안에 도달 할 수 있다면 상당한 속도라고 봐야겠죠.

앵커:
불을 피워도 12시간이나 걸리네요. 생각보다 늦는 것 같은데요.

강응천:
우리가 영화에서 보면 척척 되잖아요. 그게 12시간입니다.

앵커:
전기를 이용한 통신은 언제부터였죠?

강응천:
전기를 이용한 통신은 모스부호를 만든 모스, 그 사람이 1837년에 전신부호로 특허를 얻어서 전신 사업을 시작했고요. 그 다음에 전화, 전화는 전선으로 음성을 보내는 것이 전화 아닙니까? 이건 1876년이랍니다. 한국이 개항할 무렵인데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전화를 처음 발명했을 때 자기 조수와 시험 삼아 했던 전화 내용이 “와트슨, 자네를 보고 싶으니 이리로 오게나” 였다고 하는데요. 당시 세계를 경영하기 바빴던 서유럽 국가들 때문에, 1900년대에 영국은 한 해 4억 통의 전보를 보냈고, 미국에 보급된 전화기는 이미 1백만 대에 이르렀었다고 하네요.

앵커:
전기 통신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도 19세기 말이죠?

강응천:
거의 차이가 없죠. 발명되고 20년 안에 우리나라에 다 보급이 되었으니까요.

앵커:
굉장히 빨리 된 것이죠. 예를 들어 산업혁명도, 유럽에 다 퍼지기까지 한 100년 걸렸거든요. 그런데 20년 안에 들어왔다면 굉장히 빨리 들어온 것이죠.

강응천:
네, 우리나라는 전차 같은 경우도 동양에서는 제일 먼저 들여온 나라에 속하고요. 전기통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앵커:
그런데, 전기 통신이 우리 역사를 바꾼 역할을 한 적이 있다고?

강응천:
네, 재미난 사건이 있는데요. 이게 백범일지에 실려 있다고도 하는데요. 1897년 8월 26일날, 인천지역에 사형수가 한명 있었어요. 김창수라고 24살 먹은 젊은이였는데요. 예전엔 사형은 왕이 최종적으로 재가해야 집행이 되거든요. 그런데 왕이 가만 보니 이 친구가 사형 당하는 이유가, 이 친구가 살인을 했는데 국모의 원수를 갚겠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원수를 갚겠다고 일본군 장교를 죽인 죄라고 해요. 그 사람이 직접 죽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어쨌든 고종 입장에서는 보류를 시키고 싶었던 것이죠. 그런데 사형이 한 30분 정도 밖에 안 남았답니다. 예전같은 경우는 말을 타고 가야하니까, 아무리 빨리 가도 틀린 것이죠. 그런데 당시 전화가 서울과 인천 사이에 가설 되어 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서 그 젊은이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었는데, 그 젊은이가 바로 김구 선생이었던 거죠. 그때 김구 선생이 풀려나서 인천 하역장에서 노역을 하다가 탈출해서 마곡사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데요. 당시 서울과 인천에 공식적으로 전화가 가설 된 것은 그것보다 뒤의 일인데요. 아마 궁궐과 관청사이에서는 이미 가설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고요. 그때 만약 전화가 없었더라면 아마 임시정부도 우리가 아는 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역사가 많이 달라졌겠죠.

앵커:
그렇죠. 그런데 전화나 전신은 유선 통신이었죠.

강응천:
그렇죠. 다 전선을 깔아야만 되는 거였죠.

앵커:
그렇다면 무선 통신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요?

강응천:
무선통신중에서도 지금 휴대폰 같은 경우에는 진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인생 중반부터 시작된 것인데요. 사실 문자 신호를 보내는 것은 그것보다 많이 빨라서요. 1895년부터, 그러니까 전화가 발명되고 20년 내에 무선전신이 시작되는데요. 그것을 만든 사람이 마르코니라는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당시에는 이게 굉장히 많은 방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미 유선 해저케이블 같은 것이 전 세계에 많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무선통신이 만약 성공하게 되면 자기들 사업체들이 굉장한 타격을 받거든요. 그래가지고 과학적 이론까지 동원해가지고 무선은 160km밖에 못 간다는 이야기들을 했는데, 마르코니는 보기좋게 도버해협을 건너는 통신에 성공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게 우리나라에 전화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고요. 사실 우리나라는 무선전신이 일본의 만주침략에 많은 기여를 했죠. 그런데 순기능을 한 예가 있다면,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 때, 사실은 거의 다 죽을 수 도 있었는데 약 700여 명의 승객이 구조 된 것은 무선 전신이 활약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앵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스마트폰은 참 다양합니다. 전화도 되고, DMB, 인터넷, 모든게 다 되고 편리해 졌는데, 정말 삶의 질이 높아졌는지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강응천:
다른 문제이죠. 제가 오늘 공교롭게도 핸드폰을 집에 놓고 왔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마음이 드는데요.

앵커:
그런가요? 저는 중독증이 있어가지고, 잘 때도 잡고 잡니다.

강응천:
그런게 문제이죠. 제가 사실 조금 불편한 것은 시간을 확인하는 것도 휴대폰으로 하다가 그걸 못하니까 조금 답답하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편리해진 것이에요. 사실 1900년대 이전에는 사람들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을 빨리 빨리 못 들어서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생각하면, 지금 사람들은 예전보다 수 억배 이상 행복해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요. 우리나라가 휴대폰 보급률이 높지만 자살율도 세계 1위 아닙니까? 그런 것 보면 뭔가 통신이 발전하면서 거기서부터 느끼는 행복감도 증대되어야 하는데, 이번 단통법 같은 경우도, 통신한번 하는데 몇 십 만원짜리, 거의 100만원에 달하는 단말기도 사야하고, 한달이면 거의 20만원의 통신비를 내야하고, 이런 상황은 글너 행복을 반감시키는 요소라고 생각하고요. 빨리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맞습니다. 때로는 듣고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아야 할 때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권리를 잊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응천: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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