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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혁명을 꿈꾼 로맨티스트 백기완, 이제 누구에게 기대나"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1-02-16 08:29  | 조회 : 992 
YTN라디오(FM 94.5)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21년 2월 16일 (화요일)
□ 진행 : 황보선 앵커
□ 출연자 :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떠나 보낸 슬픔 말할 수 없어. 길거리서 생존권 투쟁 하는 해고노동자들은 누구에게 기댈까 걱정 
-김용균 죽음 이후 투병 기간에 혼신의 힘으로 청와 대 앞에서 기자회견 
-백기완, 젊은 시절에 강원도서 농민운동 
-1988년 민주노조운동 때 처음 만나 인연 
-백기완은 혁명을 꿈꾸는 로맨티스트 
-백기완, "농민이 대동 세상을 만드는 주체" 주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앵커 황보선(이하 황보선): 어제 민주화 운동의 큰 별이 졌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투병 끝에 어제 별세했는데요. 고인이 살아생전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 온 분이죠?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연결해 고인에 관한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이하 권영길): 네 안녕하세요.

◇ 황보선: 민주화 운동을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동지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어떠신가요?

◆ 권영길: 백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런데 그와 함께 강하게 떠오르는 것이 이제 길거리로 쫓겨나서 생존권 투쟁하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을 누구에게 기댈 것인가.. 이런 걱정이 먼저 앞섭니다. 지금 특히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 바로 백 선생님이 계시거든요. 백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만 하나만으로도 노동자들이 이겨내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동자, 농민, 힘없는 사람들의 버팀목인 백 선생님께서 가셨으니 이걸 어떻게 하냐는 슬픔과 걱정이 태산 같이 밀려오네요. 

◇ 황보선: 백 선생님의 투병 기간 동안에도 권영길 전 대표께서 만나보셨죠?

◆ 권영길: 사실 백기완 선생님이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겼었습니다. 지금 폐렴으로 인한 투병 기간만 거의 2년이 다 돼가거든요. 그리고 이게 워낙 위중해서 의사가 가족을 잠깐 뵙는 것 이외에는 면회 중지를 시킨 상태였어요. 그런데 백기완 선생님이 정말 초인적인 힘으로 그걸 견뎌내신 것이죠. 그래서 저희가 볼 때는 투쟁 현상에서 오히려 김용균 노동자가 참혹한 죽음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 이후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그랬을 때 백기완 선생님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못 나오시는데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게 있어요. 그게 백기완 선생님이 길거리에서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여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바로 병상에 그냥 누우셔서 지금까지 고생을 하셨죠. 

◇ 황보선: 네. 고인과의 인연을 좀 여쭙고 싶습니다. 어제 홍세화 선생님께 연락 드렸더니, 백기완 선생님을 가장 잘 아는 분이 권영길 대표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나시게 된 건가요? 

◆ 권영길: 사실 제가 백기완 선생님의 존함을 들은 건 오래됐죠. 백기완 선생님이 젊은 시절 때부터 강원도에 가서 농민운동, 녹화 운동도 하시고 그랬었거든요. 그 부분을 잘 모르시는 분이 많은데 젊은 날부터 그런 운동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장준하 선생님과 함께 하시고 했었죠. 그런데 저는 백기완 선생님께서는 1988년에 민주노조운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백기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했었죠. 백기완 선생님이 1987년, 1992년 민중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1997년, 2002년, 2007년에 진보 후보로 출마를 하게 됐던 것이고요. 그래서 그런 사연을 갖고 백기완 선생님과 제가 남모르는 이야기를 많이 해왔죠. 

◇ 황보선: 그러시군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투병 중에도 초인적인 그런 모습을 보이셨고, 또 투병 중 아프신 가운데서도 현장에 나와서 목소리를 보태셨는데 백기완 선생님은 농민, 빈민, 녹화 운동에 매진하셨는데요. 백기완 선생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곁에서 지켜보신 느낌은 어떻습니까?

◆ 권영길: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면 우리가 사실 협의의 뜻으로 많이 전달이 되고 있어요. 백기완 선생님은 단순히 민주화 운동을 하신 높은 어른이라고 표현해서 백기완 선생님에게 사실 좀 예우가 아닌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백기완 선생님을 혁명을 꿈꾸는 로맨티스트라고 늘 얘기하고 있어요. 백기완 선생님은 그러니까 이 자본주의의 지배로 소외되고 탄압받고 하는 민중들을 고통해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큰 사상을 갖고 있고 그것을 몸으로 거리에서 실천해온 분이에요. 그래서 단순히 민주화운동가다. 단순한 통일운동가라고 하는 건 백기완 선생님에게 너무 폭 좁은 그런 예우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삶을 쭉 살아오셨어요. 

◇ 황보선: 알겠습니다. 백기완 선생님께서는 또 시인이자 작가 아니셨습니까?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로 알려졌죠? 지난 정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금지를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 백기완 선생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 권영길: 일반적인 생각은 저는 그 감정적인 거로 그렇게 하실 분은 아니죠.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독재정권이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느냐. 그리고 이 군사문화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을 어떻게 씻어내야 할 것인가. 바로 이런 것이 아직 군사문화가 청산되지 않은 것이죠. 즉 바로 민중의 삶이 올라서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노동자, 농민이 대동 세상을 만드는 주체로 올라서야 한다는 그런 것이었죠. 

◇ 황보선: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백기완 선생을 떠나보내시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추억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전해주시죠.

◆ 권영길: 백기완 선생님이 늘 말씀하신 게 노나메기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일해서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고, 잘 살되 너만 잘 살고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올바르게 잘 사는 평등세상, 대동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게 우리 한국 민중들에게 스며들어야 한다. 이것을 일깨워한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백 선생님이 가시고 그 생각을 일깨워서 정말로 노동자, 농민들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되길 갈망하고 그것이 백기완 선생님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 황보선: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권영길: 네 감사합니다. 

◇ 황보선: 지금까지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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