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차이나
  • 방송시간 : [월~금] 06:38, 14:53, 20:36
  • 진행자: 임대근 교수 / PD: 신아람

방송내용

11/27(수) 용산 미군기지는 청나라 군대의 주둔지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11-27 11:34  | 조회 : 551 

大家好! 안녕하세요. 한국외대 교수 임대근입니다.
한국 화교의 시초는 조선 말기였던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해는 임오년이었는데요, 군대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이른바 옛날식 군대의 군인들에게 1년이 넘게 월급을 주지 못하고 있다가 겨우 이걸 쌀로 메꿔주는데 이 쌀이라는 게 모래와 겨가 섞인, 먹을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병사들이 소요를 일으켰지만,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이 사건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청나라에 급하게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요, 청나라 병사들이 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됩니다. 이 때 4천 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제물포로 들어왔고 그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도와주기 위해 40명의 민간인이 함께 왔는데요, 바로 이들이 한국의 최초 화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때 함께 들어온 장군 원세개, 위안스카이는 군란을 진압하는데 선두에 서서 신임을 얻습니다. 그 이후 한성의 방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원세개는 불과 스물 세 살의 나이에 황제의 대리대사가 되어 조선에서 14년 동안이나 거만한 생활을 합니다. 처첩이 10명이나 됐고 아들은 17명이나 두었는데요, 조선에서 얻은 첩도 3명이나 있었습니다. 당시 고종을 만나기 위해서는 누구나 궁궐을 걸어 들어갔는데, 원세개만큼은 가마를 타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청나라 사람들은 전국으로 불어나 있었고 주로 장사에 종사를 많이 했는데요, 원세개는 인천과 서울 용산, 부산, 원산 같은 대도시에 이들을 지원하는 군사들을 배치합니다. 권력의 도움 아래 성장한 청나라 상인들은 그 세력을 크게 확장해서 남대문, 종로까지 상권을 장악합니다. 이 때문에 조선인과 청나라 사람들의 감정이 별로 안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서울의 경우에는 청나라 병사의 근거지가 용산이었는데요, 바로 오늘날 용산 미군기지 터가 바로 이들이 주둔하던 곳이었습니다. 그 이후 용산에는 왜군, 미군 등이 연이어 들어오게 됩니다. 원세개는 동학운동이 일어나고 청일전쟁이 임박한 정세 속에서 동학군이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평민으로 변장해서 중국으로 도망갑니다.
감사합니다. 再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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