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차이나
  • 방송시간 : [월~금] 06:38, 14:53, 20:36
  • 진행자: 임대근 교수 / PD: 신아람

방송내용

8/1(목) ‘특약다실’이라는 이름으로 매춘을 하던 곳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8-01 08:49  | 조회 : 642 

大家好! 안녕하세요. 한국외대 교수 임대근입니다.
대만의 금문도에 가면 ‘특약다실’로 쓰인 건물이 기념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약다실’이란 말 그대로 ‘특별히 약속을 해서 차를 마시는 방’이라는 정도의 뜻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공간은 차를 마시는 곳이 아닙니다. 1950년대 대륙의 공세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후퇴했던 대만 국민당은 가까스로 금문도를 사수합니다. 그리고 이곳은 대륙을 방어하고 수복해야 하는 최전방 기지가 됩니다. 5만 명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병사들이 주둔합니다. 혈기왕성한 병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성범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병력을 줄일 수도 없는 문제였습니다. 당시 국민당 52군을 책임지고 있던 양루이(楊銳)라는 사람이 건의를 합니다. 그리고 국방부 총정치부 주임이었던 장경국, 그러니까 장개석의 아들이 승인을 하고 금문도 방위사령관이었던 후리안 장군의 지시로 1951년부터 특약다실이 만들어집니다. 특약다실은 군인들을 위한 공창이었습니다. 특약다실은 831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는데요, 이건 중국어 전신 암호로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은 나이 어린 직원을 가리키는 말인, ‘시응생’이라고 불렸습니다. 여성들은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점심, 저녁 식사 시간만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일을 했습니다. 하루에 평균 50명이나 되는 군인들을 접대했다고 합니다. 군인들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야 했는데요, 1951년 당시 장교는 15위안, 사병은 10위안 정도를 냈습니다. 단순 환산할 경우 대만 돈 10위안은 우리 돈 400원 정도입니다. 많은 여성이 자발적으로 혹은 반 강제적으로 이곳에 온 걸로 추정됩니다. 여성이 처음 오면 군에서 정착비로 1만 위안을 주었고 이 때문에 입장권 수입은 여성과 군대가 각각 3대 7로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로서는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이런 제도가 1989년까지 계속됐습니다. 1987년 대만 계엄령이 해제되고 1988년 장경국이 죽고 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담은 영화 <군중낙원>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再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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