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 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이혜민

인터뷰 전문

[잠시만요] 시각장애인 비올리스트 김경석"포기 하고 싶을 때 힘이 된 한마디"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2-12-12 12:39  | 조회 : 715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2년 12월 11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김경석 비올리스트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시각장애인 비올리스트 김경석"포기 하고 싶을 때 힘이 된 한마디"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건 바로 꿈이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묵묵히 꿈을 향해 걸어 나가는 시각장애인 비올리스트 김경석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 김경석 비올리스트(이하 김경석)> 네, 안녕하세요.

◇ 이성규> 청취자 여러분께 한번 자기 소개 직접 해 주시죠.

◆ 김경석> 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숭실대학교 음악원 관현악과에서 4학년에 재학 중이고요, 하트 시각장애인 체임버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고, 혜광 브라인드 오케스트라에서도 비올라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네. 지금 오케스트라 두 개를 소개해 주셨어요. 하트 체임버하고 혜광 브라인드. 이게 각각 어떤 데죠?

◆ 김경석> 예. 우선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시각장애인 전문 음악인들로 구성이 된 실내 관현악단이고요. 2007년도에 창단을 이상재 교수님께서 창단을 하셨고, 단원이 24명 정도 있는데 시각장애인단은 14명과 그다음에 비장애인단은 10명으로 구성돼 있는 관현악단입니다. 그리고 혜광 브라인드 오케스트라 같은 경우는 저의 모교였던 인천 혜광학교에서 2011년도에 창단을 하였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입니다. 학생을 중심으로 구성이 돼 있는 오케스트라고 단원은 한 60명 이내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각장애 교직원들과 학생들로 구성이 돼 있는 오케스트라입니다.

◇ 이성규> 주로 시각장애인들로 구성이 돼 있군요. 근데 경석 씨가 지금 눈이 아예 안 보이시나요?

◆ 김경석> 예. 빛도 못 보고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 이성규> 아, 빛을 보신 적이 없어요?

◆ 김경석> 어릴 때는, 아기 때죠. 그러니까 내가 기억도 나지 않을 때 그때는 내가 빛에 반응을 했다고 어른들께서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이니까. 그래서 빛을 보지 못했다고 봐야죠.

◇ 이성규> 네, 근데 안경은 쓰셨네요?

◆ 김경석> 아, 예. 패션 때문에 썼습니다.

◇ 이성규> 그거 직접 고르신 거예요, 아니면 누군가가 이게 어울린다고 조언을 했었습니까?

◆ 김경석> 예. 어울린다고 조언을 했었는데 제가 안경을 쓴 지는 5년 이상이 됐고요. 처음에 안경을 썼을 때는 많이 얼굴이 가려지는, 굉장히 알이 크고 두꺼운 그런 뿔테 안경을 썼었는데 그걸 쓰니까 사람이 답답해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좀 바꿔라, 안경을. 그래서 좀 더 테가 얇고 작은 알로 돼 있는 그런 안경을 골라서 지금 한 4년째 쓰고 있습니다.

◇ 이성규> 4년째. 얇쌍하고 가볍게 느껴지네요. 

◆ 김경석> 예, 그렇습니다. 

◇ 이성규> 근데 아까 60여 명, 하트 체임버는 또 20여 명 이렇게들 숫자들이 합을 맞추면서 연주하고 하려면, 협력 같은 게 많이 중요하겠죠?

◆ 김경석> 그렇습니다. 앙상블이라는 단어가 원래 협력에서 온 단어이기 때문에. 두 악단이 서로 체계가 굉장히 달라요. 어떤 맞춰가는 체계가 굉장히 다른데, 하트 체임버 같은 경우는 지휘자가 없어요. 지휘자가 없고 연습을 이상재 단장님께서 시켜주시는데. 단원들끼리 소리를 들어야 되는 건 당연히 기본적인 거고, 박자 카운트 같은 거는 이상재 선생님이 막대기를 치면서. 거의 뭐 지휘자나 다름이 없는 그런 역할을 하고 계시는데, 연주 때는 그렇게 칠 수 없잖아요. 연주 때는 칠 수 없기 때문에 시작 카운트를 그냥 ‘준비하시고 셋, 넷’ 이런 식으로 이제 카운트를 주시고. 무대 밖으로 소리가 나가는 거는 별로 이렇게 신경을 안 쓰는 거죠. 그게 이제 우리들만의 방식이라고 생각을 하면 그런 거고. 그다음에 무대에서 중간 중간에 발 박자를 이렇게 치면서 박자를 맞추기도 하고. 박자가 틀어질 것 같으면.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고. 혜광 브라인드 오케스트라 같은 경우에는 지휘자가 있어요. 지휘자님이 계시고 그분이 앞에서 바통을 이렇게 흔들기도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단원들이 이어폰을 하나씩 끼고 있는데, 수신기를. 지휘자가 또 바통도 바통인데 마이크를 하나 착용을 하고 있어요. 옷에 핏 마이크를 하나 착용을 하고 있으면, 거기로 말을 하게 되면 단원들 이어폰으로 그 지휘자의 목소리가 전달이 되는 방식이고. 이 지휘자가 목소리로 조용히, 그러니까 무대 밖으로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박자 카운트를 세어 준다든가. 지휘자가 나와야 되는 파트를 이렇게 찍어주잖아요, 바통으로. 비올라가 예를 들어 나와야 되면 아이 컨택을 하거나 그렇게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이제 비올라 준비하고’ 그런 식으로 이렇게 말씀을 목소리로 듣고 이렇게 하는 방식이에요.

◇ 이성규> 지휘봉이 아니라 지휘 목소리군요. 지금 빛도 못 보신다니까 악보는 당연히 안 보실 텐데, 다 외우시나요?

◆ 김경석> 예.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할 방법이 없죠. 악보를 외우지 않고서는 저희가 이제 악보를 보는 방식이 점자 악보라는 체계가 있으니까 점자 악보를 따로 공부를 해야 되고. 묵자 악보를 보는 그런 모든 정보가 거의 나와 있다고 보시면 되고요. 사실 오선보의 체계가 아니니까, 한 줄에 이 모든 걸 표현을 해야 되니까 약간 복잡하긴 한데. 점자 악보를 한 줄씩 보면서 외우고 그렇게 진행을 하죠.

◇ 이성규> 그리고 지난 목요일 졸업 연주회 하셨죠?

◆ 김경석> 예, 그렇습니다.

◇ 이성규> 졸업 연주회가 잘 안 되면 졸업이 안 되나요?

◆ 김경석> 망치지 않고서는 그렇게 나올 일이 없는데. 타과에서는 졸업 시험이나 마찬가지인 거고. 졸업 시험을 대중들 앞에서 본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하는 연주기 때문에 굉장히 부담감도 심하고. 앞에 음악 관련된 모든 교수님들이 앞에 나와서 이렇게 듣고 계시고 심사를 해야 되니까 4년 중에 가장 떨리는 순간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요. 오늘 어쨌든 잘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 이성규> 처음 비올라 연주를 할 때는 비올라 자체와 그렇게 친하진 않았다면서요?

◆ 김경석> 비올라도 비올라인데 제가 이제 음악과 별로 그렇게 친하지 않았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음악 교육이 있잖아요, 정규 과정으로. 그런 어떤 예체능 음악 교육 과정이 굉장히 싫었고. 싫었을 정도로 굉장히 안 좋아했는데, 음악을.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제 비올라를 접하게 됐고. 근데 혜광학교에서 오케스트라를 만든다고 그러니까, 제가 그때 중학교 시절이었는데 악기를 하나씩 골라야 되는 상황이었고. ‘나 안 할래요’는 없었어요, 그 선택지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중에 골라라. 그래서 비올라를 거기서 선택을 해서 제가 시작하게 됐는데. 당연히 음악이 싫었으니까 악기도 하기 싫죠. 그런 부분을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근데 왜 하필이면 비올라를 고르셨어요?

◆ 김경석> 어릴 때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때 바이올린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워봤는데 제가 신체적 결함이 또 있어요. 시각장애 말고 손가락이 붙어서 태어나는, 합치증이라고 그러나요? 그런 명칭이 있는 것 같은데.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이 붙어서, 양쪽에 똑같이 붙어서 나와서 분리 수술을 했어요. 분리 수술을 결국 하긴 했는데, 의사가 이제 그러더라고요. 얘는 손가락 못 쓸 거라고. 수술을 해도. 그래서 어쨌든 분리하고 보니까 마디가 하나가 없는 거예요, 하나씩. 그래서 접힐 때 다 안 접히는데, 손가락이. 문제가 있던 그 두 손가락이. 당연히 이제 악기를 다루기가 굉장히 어렵죠. 바이올린 하물며 손가락을 굉장히 많이 써야 되는 그런 악기인데 힘드니까 포기했어요. 이거는 아닌가 보다, 나하고 음악은 안 맞나 보다. 그러고 배운 지 한두 달 만에 포기했던 것 같고. 피아노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바이올린은 어릴 때 배워봤으니까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요. 근데 그때 악기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을 때여서 첼로가 어떤 악기일까, 비올라가 어떤 악기일까는 전혀 생각을 못 했죠. 얘기를 들어보니까 첼로는 너무 크대요, 악기가. 너한테 맞지 않을 것 같다. 제가 그때 굉장히 등치가 왜소했어 가지고, 너한테 안 맞는 것 같다. 그럼 남은 게 이제 비올라밖에 없는데, 그럼 난 비올라 해봐야 되겠다. 그래서 비올라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 이성규> 그렇게 좀 불편함도 있었고 그랬을 텐데,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 하시면서 마음이 기쁘게 변하는 순간도 있었나요?

◆ 김경석> 당연히 어릴 때 바이올린을 배웠을 때랑 같은 현상이 반복이 됐고. 손가락이 불편한 것도 있는데 비올라를 선택하고 보니까 바이올린이랑 똑같이 생긴 거예요, 악기가. 그래서 굉장히 실망을 많이 했어요. 난 좀 뭔가 다르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심지어 바이올린보다 크고 무거워요. 악기가 크다 보니까 손가락이 더 이렇게 찢어져야 되는데, 그런 신체적인 불리함이 있으니까 더 힘든 거죠. 그래서 그런 어떤 어려움이 계속 있었고. 그런데도 오케스트라가 창단이 됐고 관객들 박수도 막 이렇게 받고 이러니까. 어쨌든 나도 뭔가를 할 수가 있겠구나. 그런 어떤 자신감. 이런 게 있으면서 악기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올라왔던 것 같아요.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시각장애인 비올리스트 김경석 씨와 함께 하고 있는데요. 김경석 씨, 우리가 이쯤에서 노래나 음악을 하나 듣거든요. 어떤 곡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 김경석> 슈베르트의 연가곡이죠. ‘겨울 나그네’라는 연가곡이 있는데 슈베르트가 가곡의 왕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거의 600곡이 넘는 곡을 쓴 걸로 알고 있는데, 가곡만. 그 중에서 연가곡 형태인 ‘겨울 나그네’. 이 중에서 다섯 번째 곡인 <보리수>를 저는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국 입양아 2세인데, 리처드 용재 오닐 비올리스트가 연주한 버전을 저는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 이성규> 네. 그럼 김경석 씨가 추천하신 리처드 용재 오닐의 <보리수> 듣고 오겠습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 / <보리수> Play

◇ 이성규> 아주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셨는데요. 슈베르트의 연가곡 5번 <보리수>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비올리스트 활동가인 김경석 씨입니다. 김경석 씨, 고등학교 졸업한 뒤에 비올라를 포기하려고도 했었다면서요?

◆ 김경석> 예, 그렇습니다. 제가 전공을 결심한 시기가 중학교 3학년 겨울? 고등학교 1학년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요. 전공을 결심했다고 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이기도 했고, 워낙 어릴 때 시작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그럼에도 그냥 조금 늦더라도 나는 늦게 학교를 가야 되겠다. 늦으면 어떤가. 그냥 그런 생각으로 했었는데 고등학교 3년간 레슨을 받고 이렇게 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나 고등학교 3학년 시기에 너무 힘들었어서, 이 길은 아닌가 보다. 나하고는 안 맞나 보다. 그럼 나는 그냥 취미로 악기를 해야 되겠다. 도저히 내가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런 생각이 드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원래는 제가 대학을 재수를 하더라도 좀 더 준비를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애초에 대학 원서를 아무것도 넣지를 않았어요. 그랬다가 음악을 포기를 했던 거기 때문에. 그럼 대학을 안 가면 아무 소속이 없는 그냥 백수가 돼야 되는데, 그럴 수 없으니까 혜광학교에 더 상위 과정인 전공과가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더 배울 수 있는 3년간의 과정이 있는데, 거기에 진학을 해서 그래도 소속감을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 어디 소속된 데라도 있어야지 뭔가 사람이 피폐해지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서 취미로 하려고 그렇게 해서 포기를 했었어요.

◇ 이성규> 포기하고는 약간 좀 뭔가 방황으로 접어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 김경석> 사실 학교 전공 과정에서 안마, 침 이런 거를 배우면서 알바를 다녔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어쨌든 달란트라고 생각을 하는데. 안마로 일을 다니면서 학교 수업을 듣고. 그러면서 음악이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렇게 3년간을 그렇게 보냈던 것 같아요. 돈 벌면서. 그렇게 방황의 시기, 방황의 시기라고 그러면 좀 너무 막 사람이 논 것 같고 그런 것 같은데. 어쨌든 3년을 그렇게 보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3년이라는 세월이 전혀 막 헛되거나 막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고 그런 좋은 시기였다고 생각을 해요.

◇ 이성규> 그러면 그 3년 이후에 다시 비올라를 시작하고 또 학교에 가겠다,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 김경석> 3년째 되는데, 이제 곧 졸업을 해야 되잖아요. 전공 과정을 졸업을 하면 나는 뭐를 할까. 너무 사람이 이렇게만 살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냥 단순하게 돈만 벌고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도중에 아는 형을 만났어요. 그러니까 현재 지금 하트 시각장애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있는 형이었는데, 그 당시에 저는 아니었고. 그 형이 저를 찾아와가지고 너 이러고 살기엔 너무 아깝지 않냐. 너의 그런 음악적인 달란트가 있는데. 특히나 비올라가 희소가치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잘 안 하니까. 그래서 그 비올라를 할 줄 아는데 너 그냥 그렇게 취미로만 보내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기를 권했었어요, 그 형이. 그 형이 혜광학교 제 선배이기도 했는데 그 형이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원래 이제 나는 전공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거기서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아요. 내가 그래도 아직은 죽지 않았나 보다. 또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했는데, 아직 죽지 않았나 보다. 아직 해볼 만한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흔들려서 그 학교를 이제 지원해 봐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형이 이제 하트 시각장애인 체임버 오케스트라 단장님을 만나보기를 권하더라고요. 그 형이 하트 체임에 데리고 가서 단장 선생님한테 저를 소개를 했었고. 또 하트 체임버 같은 경우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던 단체예요. 그런 시각장애인 단체가 있는 걸 알았고, 굉장히 연주가 훌륭하고 이런 거를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워너비 같은 곳이었거든요. 내가 만약에 음악을 전공한다면 저기를 가고 싶다. 그렇게 생각을 했던 단체였기 때문에 정말 꿈같았죠. 이렇게 추천을 해주고, 단장님 만나 뵙고, 얘기 듣고 하는데 단장님께서 이제 지금은 자리가 없다. 지금은 자리가 없고 네가 학교를 들어간 다음에 다시 한번 찾아와라. 그때는 같이 연주를 하자.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단장님께서 선생님도 소개시켜주고 그래서 제가 학교를 다시 가게 된 계기가 됐었죠.

◇ 이성규> 그래서 음악원으로 가셨군요?

◆ 김경석> 예, 그렇습니다.

◇ 이성규> 그런 과정에서도 주변 친지들의 지지들이 있었나요?

◆ 김경석> 제가 이제 포기해야 한 줄로 알았는데 제가 엄마한테, 아빠한테 나 대학 갈 거라고. 학교 다시 가보겠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었죠. 근데 반대는 안 했고. 엄마는 그냥 저를 지지를 해주셨고 아빠도 지지를 하긴 하는데 그 대신 책임을 져라, 네가.

◇ 이성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되?

◆ 김경석> 책임을 지라고. 네. 그렇게 말씀하셨죠. 

◇ 이성규> 그러니까 책임감과 함께 강한 지지를 해주셨군요, 부모님이.

◆ 김경석> 책임감을 부과했죠.

◇ 이성규> 또 주변에서 지지라는 것 말고 사회적으로 야속했던 점, 이런 점들이 좀 있으신가요?

◆ 김경석> 사회적으로 야속했던 거는 장애에 관련된 게 가장 크죠. 근데 제가 커서는 그런 걸 잘 못 느꼈고, 어릴 때 주로 그런 일들이 많았는데. 제가 동생이랑 굉장히 우애가 좋은 편이에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싸운 일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굉장히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어릴 때 잘 이렇게 챙겨줬어요. 자기 친구들이랑 놀 때도 저를 항상 데리고 다녔고. 그래서 저도 동생 친구들이랑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고. 그렇게 어울리다 보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항상 우호적이진 않잖아요. 다른 친구들이 이제 장애인이라고 놀리고, 그런 경우도 있었고, 돌도 맞아보고 별의 별 일이 다 있었어요, 어릴 때. 그 이외에는 크게 없었던 것 같고요.

◇ 이성규> 이제 졸업 연주회도 끝났고. 학교를 졸업하시게 되면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십니까?

◆ 김경석> 뚜렷한 어떤 계획을 설정해 둔 상태는 아니에요. 그냥 제 소망이라고 할까요, 그냥 시각장애인 친구들이랑 현악 4중주 팀 이런 거 만들어지고 활동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죠. 비올라라는 포지션이 굉장히 귀하다는 얘기가 많죠. 잘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요. 또 더 이제 나아가서 공부를 더 한다고 하면 해외로 나가서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 이성규> 네. 이제 마지막으로, 비올라를 연주하는 음악인으로서 앞으로 어떤 음악을 어떻게 들려주고 싶으세요?

◆ 김경석> 굉장히 제가 불리기 원하는 타이틀은 노력하는 비올리스트. 제가 그냥 불리고 싶은 거는 그거고. 그 타이틀대로 음악이 들렸으면 좋겠어요. 그냥 정말 노력을 많이 했구나. 그냥 진정성 있는 음악을 연주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청취자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 해 주시죠.

◆ 김경석>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마지막으로 이제 곧 다가올 연말에 공연 홍보 하나만 하겠습니다. 저희 하트 시각장애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12월 20일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에서 정기 연주회를 갖는데요. 일부에는 클래식, 베토벤의 5번 운명 교향곡을 연주를 하게 되고 2부에는 마이클 잭슨이나 해리 포터, 이런 알찬 구성으로 찾아뵐 예정이니까요. 많이들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비올리스트 김경석 씨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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