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 방송시간 : [일] 20:20~21:00
  • 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김민영

인터뷰 전문

[잠시만요] "미싱타는 여자들, 그 치열한 삶의 기록"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2-01-10 16:13  | 조회 : 382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날짜 : 202119(일요일)

진행 : 이성규 교수

대담 : 이혁래 미싱타는 여자들감독, 신순애 미싱타는 여자들출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미싱타는 여자들, 그 치열한 삶의 기록"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는 메시지, 들어보시겠습니까. 오늘의 주인공. 1970년대 평화시장 소녀 미싱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연출을 맡은 이혁래 감독과 출연한 신순애 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혁래 미싱타는 여자들감독(이하 이혁래)> 안녕하세요.

 

신순애 미싱타는 여자들출연자(이하 신순애)> 안녕하세요.

 

이성규> 반갑습니다. 두 분께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직접 자기소개를 한번 해 주시죠 우리 감독님부터.

 

이혁래> , 안녕하세요. 다큐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의 공동 감독을 맡은 이혁래라고 합니다.

 

이성규> 우리 신 선생님.

 

신순애> 저는 신순애입니다.

 

이성규> 배우인데, 배우. 배우 신순애입니다. 이렇게 하셔야죠.

 

신순애> 출연한 신순애입니다.

 

이성규>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 이 제목에서 어느 정도 우리가 알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이혁래 감독님이 직접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혁래> 70년대 평화시장에서 어린 나이부터 미싱을 돌리면서 일을 하셨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데요. 보통 70년대, 특히 평화시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공순이라고 불리면서 무시를 당하거나 아니면 아주 불쌍한 동정의 대상. 이런 식으로만 바라봤는데요. 이런 무시와 동정이라는 편견을 깨고 평화시장의 소녀 미싱사들의 가슴 뛰는 청춘기를 그려보려고 했던 다큐입니다.

 

이성규> 근데 이 작품을 봉준호 감독님이 적극적으로 추천하셨다고 그러던데. 무슨 어떤 점이 그렇게 추천할 만한 대목이라고 하시던가요.

 

이혁래> 많은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그중에 제가 제일 기분이 좋았던 얘기는 영화를 보다 보면 저희 영화에 평화시장에서 일을 하셨던, 10분 넘는 출연진들이 나오는데. 그분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인생. 그분들 한 분 한 분의 인생이 다 궁금하다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저희도 이 작품을 만들면서, 지금 옆에 계신 신순애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이야기에 정말 빠져서 작업을 했었는데, 그분들의 매력을 관객들한테 전달을 하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이성규> 이 미싱 타는 여자들은 그 당시 시대상이 상당히 남성 중심적인 측면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국의 노동 투쟁사도 보면 여성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런 작품을 통해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선입견을 깼다. 이렇게 평가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이 작품, 이렇게 선입견을 깨시려고 처음에 생각을 하셨나요.

 

이혁래> 사실 이 작품을 시작한 건 저랑 같이 공동 연출을 한 김정영 감독이 봉제 노동자 32분의 생애사를 기록하는 구술 인터뷰 작업을 2018년에 진행을 했었어요. 근데 그렇게 구술 인터뷰 작업을 진행을 하면서 그때 이제 옆에 계신 신순애 선생님도 뵙고, 그리고 영화의 주요 출연진인 이숙희, 박태숙 평화시장에서 70년대에 노동을 하셨던 그 분들을 만나뵙게 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라고 마음을 갖게 됐고. 또 하나는 평화시장에서 70년대에 노동을 하고 노조 활동을 하셨던 분의 따님이, 몇 년 전에 굉장히 유명한 1987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엄마한테 그렇게 말씀을 하셨대요. 엄마도 그때 굉장히 열심히 운동을 하셨다고 그랬는데 이 영화를 보니까 노동자는 없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서 우리나라의 민주화나 노동환경 개선을 하는 데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셨던 노동자들도 많고, 특히 그중에 여성 노동자들도 그 역할이 굉장히 큰데 그분들의 역할이 너무 조명이 안 된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성규>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신순애 선생님.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영화로 담겠다. 두 분 감독님이 지금 나오신 이혁래 감독님하고 김정영 감독님이 되는데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신순애> 처음에 김정영 감독님께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래서 제가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내가 도와주는 건 얼마든지 도와줄 테니까, 나만 앞세우지 말아달라. 저는 이미 책도 썼고 그래서 많이 알려졌는데, 알려지지 않은 다른 친구나 후배들을 좀 더 알리는 데 앞장서고 싶었습니다.

 

이성규> . 그때 책이 어떤 책이었죠.

 

신순애> 책은 제가 성공회대에 뒤늦게 들어가서 논문으로 쓴 게 책으로 써가지고요. 13살 여공의 삶이라는.

 

이성규> 13살 여공의 삶. 그 책이 대학 들어가셔서, 그렇게 하셨네요.

 

신순애> 석사 논문으로 썼습니다.

 

이성규> 무슨 전공하셨어요.

 

신순애> 정치경제학 했습니다.

 

이성규> 정치 경제학. 요즘 계절이 그런 계절인데. 본격적으로 1970년대 얘기를 좀 해 보겠는데요. 그 시절에 미싱사 일을 처음 돕는 분들을. 이게 일본 말인지 모르겠네요. 시다라고 불렀잖아요. 전태일 평전 속에서도 13살 시다라고 불리는 그 모델이 바로 신순애 선생님이죠.

 

신순애> .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성규> 그런데 그때 시단은 무슨 일을 주로 했습니까.

 

신순애> 주로 이제 미싱사가 일하는데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건데요. 도와주는 역할 정도가 아니라 시다가 예를 들면 다리미질이나 이런 걸 안 해주면 미싱사가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옷을 만들 수가 없어요.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기술이 없다는 이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굉장히 대접을 못 받았죠. 미싱사들도 못 받았지만 시다는 또 더 못 받았죠.

 

이성규> 근데 그 미싱이라는 게 이제 재봉틀인데, 재봉틀에 발을 올려서 이렇게 하면서 손을 쭉 미는 그 일을 못하고 나머지 잔업들을 한 거네요.

 

신순애> 밑에서 쪽가위로 딴다든지, . 부속품 다리미질을 한다든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거죠.

 

이성규> 196613살에 그 일을 시작하셨는데.

 

신순애> 나중에 공부하면서 알았는데 아버지는 3.1운동에 관련돼 있고요. 오빠들은 남북 전쟁에 관련돼 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오빠나 아버지는 다 환자였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생계를 유지해 나가야 돼서, 13살인, 어렸지만 엄마를 뭐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평화시장을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성규> 그렇게 해서 시작한 시다. 시다 5년 만에 이제 미싱사가 되셨잖아요. 그 당시에 시다에서 미싱사 되는 것도 커다란 하나의 변화인가요.

 

신순애> 그럼요. 이게 피라미드 구조로 돼 있는데 사장 다음에 공장장, 공장장 다음에 재단사, 그다음에는 미싱사예요.

 

이성규> 재단사도 상당히 높은 거였군요. 옷을 이제 재단해서 가위로 쫙쫙 자르는 게 재단사고.

 

신순애> . 그러니까 그것만 하는 게 아니라 조그만 공장들은 재단사가 미싱사도 구하기도 하고, 시다도 구하기도 하고. 그런 일을 다 해야 되기 때문에. 이제 조금 큰 데는 공장장도 있고 그러지만 미싱 한 다섯 대. 이렇게 뭐 세 대. 이렇게 된 데는 공장장이 별도로 없어요. 재단사가 그 일을 다 하는 거죠.

 

이성규> 그랬군요. 그렇게 해서 미싱사가 된 뒤에 노동 교실이라는 전단지를 받으셨나요. 이거 무슨 경찰 조사하는 것 같아요. 제가. 그때 노동 교실 얘기 좀 해주세요.

 

신순애> 평화시장 뒤에 동화시장이라고 큰 건물이 69년도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니까 평화시장이 아마 제가 알기로 전국에 약 60%가 평화시장에서 옷을 만들어서 다 지방으로 보낼 정도로. 그러니까 그 주변에 그러니까 평화시장. 저희가 평화시장이라고 얘기하는 거는 평화시장 하나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상가를 다 얘기하는 겁니다. 동화시장, 연쇄 상가, 통일 상가, 북한 상가를 다 통틀어서 그냥 평화시장. 그러니까 노조에서 다 함께 하는 데를 다 우리는 평화시장이라고 불렀죠.

 

이성규> 그런데 노동 교실은 어떤 데였죠.

 

신순애> 노동조합에서 앙케이트를 조사를 하는데,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 그러니까 다 공부하는 거였다고. 그래서 노동조합이 약 한 7평 정도 되는데 거기서 공부를 한 번 가르쳐 보려고 노동자들한테 알렸더니 접수가 200명이 온 거예요. 그래서 도저히 좁아서 할 수가 없어서. 그런데 그때 마침 어떤 일이 있었냐면 부녀부장 정인숙이라는 분이 육영수 여사가 표창장 받으러 청와대 갔는데 제일 어려운 게 뭐냐. 그러니까 우리는 여성 노동자들이 90%인데 이분들이 다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 장소가 없다. 이래서 이제 육영수 여사가 노동청장한테 지시해서.

 

이성규> 당시 노동청, 맞아요.

 

신순애> 지시해서 노동 교실이 탄생을 했는데요. 탄생을 했는데 공교롭게 그날 개관식 날 함석헌 선생님을 초대를 했고. 또 그 개관식 안내장, 거기에 빨간색이 아니고 자주색으로 예쁘게 테를 둘렀는데 불순분자라고 그래가지고 개관식 날, 개관식을 하자마자 문을 닫게 되는. 그때서부터 노동 교실에 약간 어려움이 있었고요. 그게 이제 72년도에 그런 사건이 있었는데 계속 노조에서 싸움을 해서 사용주들은 자기네들이 노동 교실을 운영하려고 그랬고. 노동조합은 우리 조합에서 운영을 하려고 그랬고. 그래서 그 싸움을 하는데 결국에는 노동조합이 이겨서 노동조합이 노동교실을 최초로 75년도에 운영을 하는데요. 그때 이제 팜플렛이 공장마다 나오는데 제가 팜플렛을 들고. 중등 과정 무료라는 팜플렛이 들어오니까 이게 진짜일까. 그리고 그때는 방송에서 그런 선전 많이 했거든요. 이상한 유인물이 나오면 다 그거는 북한에서 뿌린 삐라니까 신고하라고. 간첩이. 그래서 혹시 그런 거 아닌가, 하고 염려했는데 가서 보니까 그런 건 아니었고요

 

이성규> 그렇게 해서 신순애라는 이름 석 자도 처음 쓰셨군요.

 

신순애> 거기에 이렇게 쓰는 란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상가는 어디냐. 소속. 또 당신이 지금 미싱사냐, 시다냐. 이런 걸 묻는 게 있었는데 이름을 쓰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최초로 제가 늘 7번 시다, 3번 미싱사, 1번 오야. 이랬는데 최초로 신순애라는 이름. 월급봉투도 그때는 월급봉투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월급봉투도 그냥 7, 1번 오야 이렇게 써서 주니까 그때 처음으로 제 이름을 한번 불러보기도 했고 써보기도 했죠.

 

이성규> 근데 감독님이 이런 얘기들을 쭉 과거 사진과 함께 보셨을 때, 촬영하시다가 확인도 하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느낌이 드셨겠네요.

 

이혁래> 처음부터 이 영화를 만들 때. 이를 테면 1970년대 하면 으레 떠오르는 장면들 있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청바지, 통기타. 그리고 그 당시 유신시대의 여러 가지 이런 것들. 그런데 그런 사진이나 영상들 대신에 우리 주인공들이 직접 등장하는 사진들로 영화를 구성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분들의 이야기가 이를테면 어떤 유신 시대의 한 풍경. 이런 식으로 되지 않고 이분들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정말 빛나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우리 출연진들이 갖고 계신 개인적인 사진들. 이런 것들이 필요했는데, 사실 그런 것들을 선뜻 내주기가 굉장히 어려운 부분들이 있죠. 근데 그때 이제 공교롭게도 청계피복 조합원 총 55분이, 그동안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국가로부터 굉장히 많은 탄압과 폭력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청계피복노동조합원으로서 받은 국가폭력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진행이 되고 있었는데 제일 어려운 부분이 55분이 실제 청계피복 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는지를 증명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큰 사업장 같으면 직원 명부 같은 게 있어서 직원 명부만 대조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평화시장은 직원이 5명에서 10명 정도 되는 작은 사업장이 600, 700. 통계에 따라서는 2천 개까지도 산재해 있던 때라서 사실 직원 명부라는 게 있을 수가 없는 구조였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를테면 내가 조합원이었음에도 존재 증명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재판의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 자료들을 취합을 하는 과정에 저희가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서 저희는 그 사진과 자료들을 수집하기도 하고, 또 거기에 얽힌 사연들도 듣게 되고요. 그리고 재판 진행도 돕게 돼서. 다행히 그 재판이 성과가 좋아서 저희 영화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됐고, 또 청계피복 노동조합원들의 재판 진행에도 큰 도움을 드려서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성규> 그랬군요.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의 이혁래 감독과 출연자 신순애 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두 분, 이쯤 해서 우리 노래 하나 듣거든요. 어떤 노래 추천하시겠어요.

 

이혁래> 영화의 메인 테마곡인 세월의 왈츠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이성규> 메인 테마곡. 미싱 타는 여자들의 메인 테마곡이란 말씀이죠. 박성도 음악 감독의 세월의 왈츠. 이 곡을 왜 추천하셨습니까.

 

이혁래> 가끔 핸드폰에 넣어놓고 이 음악을 들으면서 다니는데요. 작년 겨울에 제주도에 여행을 갔을 때 밤거리를 차를 몰고 달리면서 이 음악을 들으니까 시간을 거슬러서 추억을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방송을 듣는 청취자분들도 이 음악을 들으면서 어떤 행복한 쉼표를 찍을 수 있는 느낌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같이 한번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이성규> . 박성도 음악 감독의 세월의 왈츠 듣고 오겠습니다.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의 메인 테마곡, 박성도 음악 감독의 세월의 왈츠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이혁래 감독과 출연자 신순애 님입니다. 신순애 님. 아까 197799, 이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라는 뉘앙스를 제가 받았는데 어떤 일이었죠.

 

신순애> 청계노조에서는 이소선 어머니를 뗄래야 뗄 수 없는 분이거든요. 고 전태일 동지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저희들한테 늘 든든한 지주가 되어 주셨는데, 장기표 씨 재판 과정에서 법정 모독죄라는 죄명으로 바로 성동구치소로 구속이 됩니다. 그러면서 722일쯤 되는데, 그때서부터 저희는 매일 이소선 어머니를 석방하라고 성동구치소로 매일 가서 싸우고 오기도 하고, 경찰서에 실려가서 자기도 하고. 이렇게 지내는데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그러니까 건물 주인으로부터. 노동조합으로 77910일까지 노동 교실 안에 있는 물건을 다 비워달라는 내용증명이 왔습니다. 그래서 몇몇 조합원들이 이대로 그냥 물건을 빼고 말 거냐.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죽어도 깩소리라도 한번 해야 되지 않냐. 이런 의견이 있었는데. 우리가 그래도 한번 싸워보자. 이런 의견에 저도 함께 하게 됐는데 그날이 공교롭게, 몰랐는데 북한의 인민조선민주공화국 창건 날이어서 경찰서 처음에 조사받을 때서부터 계속 왜 하필이면 이날 했냐, 하고 저희를 빨갱이로 몰아서. 다른 게 힘든 게 아니라 그 당시에 빨갱이는 지금 용공하고 전혀 다른 개념이었거든요. 빨갱이는 그 당시에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냥 괴물이었거든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치 우리를 빨갱이로 몰았기 때문에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고. 또 더욱이 총 5명이 이때 구속이 되는데 남자 둘은 첫 번째 구속이 됐어요. 그런데 임미경. 이숙희. 신순회는 두 번도 구속영장이 안 떨어져서 계속 같은 조사를 세 번씩 받으니까. 그러면서 계속 맞고 이래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이성규> 그러다가 또 1981년 청계피복노조 해산이 되죠. 그러면서 노동 조건도 더 안 좋아지고 그랬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였어요.

 

신순애> 1980년 봄에 단체협약을 하는데 그동안은 늘 전태일 선배님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구호를 외쳤고. 저희도 늘 싸울 때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쳤는데, 80년대에는 당시는 근로기준법의 퇴직금이 16명 이상이 돼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근데 이제 사장들도 노동조합이 생긴 지 10년쯤 되니까 조금 똑똑해지기 시작해가지고 머리를 쓰기 시작하는 거죠. 이게 16명이 상시예요. 112달 내내 16명이 돼야 되니까, 여름 비수기에는 예를 들면 5, 7번 한 두 달 좀 쉬었다 와. 이렇게 하면 사실은 미싱사들도 되게 좋아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16명이 안 채워져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 공장들이 너무 많아서. 저희가 10인 이상 퇴직금을 주라고 단체협약에 13일 동안 우리 평화시장 옥상에다가 가마솥 2개를 걸어놓고 농성을 했는데, 이때 저희가 성공을 했습니다. 성공을 했는데 어쨌든 이후에 광주 사태 나고, 그러면서 전두환 정부가 8116일에 강제로 노조를 해산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해산하기 직전에 노동조합 간부 9명 전부를 합수로 끌고 가서. 개인적으로 저는 합수 갔다 오고 난 뒤로는 무서워서 평화시장 쪽에 고개도 못 들일 정도로 겁먹고 있을 당시였습니다.

 

이성규> 그렇게 힘드신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감독님은 이런 이야기들을 이제 작품에 담으시면서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남으세요.

 

이혁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울기도 많이 울게 되고요. 그리고 이분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희열도 같이 공감을 하게 되고 하는데 ,촬영 막바지쯤에 출연진 중에 한 분이 본인의 옛 사진을 보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저때가 내가 16살 때 사춘기였는데 친구도 만나고, 그리고 노조에서, 그리고 노동 교실에서 모임도 갖게 되고. 그러면서 근로기준법도 알게 되면서 내가 자아를 찾아갈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때 그동안의 어떤 노력이 싹 보상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었던 영화가 그런 영화였구나. 사춘기에 소녀들이 근로기준법을 통해서 자아를 찾아나간 이야기라고 딱 그게 정리가 되니까, 정말로 감회에 젖게 되고. 또 그때는 이제 촬영이 끝날 때였으니까 정말 이 방향으로 영화를 완성해야 되겠다, 라는 다짐도 하게 되고. 그랬던 이야기였습니다.

 

이성규> 그런데 미싱 타는 여자들을 꼭 봐야 되겠다, 라는 이유가 있으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감독님부터.

 

이혁래> 우리 영화의 주요 출연진 중에 한 분인 임미경 선생님의 아드님이 이 영화를 보고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 영화를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힘을 얻을 것 같다고. 근데 어차피 지금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다 코로나 때문에 새로운 시작을 해야 되는 시점이잖아요. 그래서 이 시점에 미싱 타는 여자들을 함께 보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성규> 우리 신순애 배우님께서는 왜 이 작품을 봐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신순애> 그때 최선을 다해서 노동 운동이라는 걸 했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그때 저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서 오늘 이렇게. 그때 이게 하여튼 잘 끼워 맞춰졌으면 오늘과 같은 이런 기회비용이 훨씬 줄어들었을 건데, 그 시절에는 정부가 권력이었다고 그러면 지금은 자본이 권력이 돼 버린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로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규> 이제 어렵게,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달 중순에 개봉을 한다면서요. 언제쯤 관객들을 만날 수 있죠.

 

이혁래> 올해 120일 개봉을 합니다.

 

이성규> 어디서 해요.

 

이혁래> 전국 전역의 극장에서 120일에 개봉을 해서 관객들을 만나보게 됩니다.

 

이성규> 어쨌든 두 분, 마지막으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을, 계획이나 바람도 담고 해서 말씀 주시죠. 우리 신순애 선생님.

 

신순애> . 저는 작년에 국가로부터 배상받은 것으로 전액 장학재단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고, 지금 조금씩 실천하고 있는데 그게 뿌리를 잘 내려서 성장할 수 있기를. 그게 저의 바람입니다.

 

이성규> 그리고 우리 이혁래 감독님은요.

 

이혁래> 120일에 개봉하는 미싱타는 여자들을 함께 보면서, 함께 울고. 함께 희망을 얻는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특별한 청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의 이혁래 감독과 출연하신 신순애 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두 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혁래> 감사합니다.

 

신순애> 감사합니다.

 

이성규, <이런 사람도 없습니다>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박준범 PD[pyh@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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