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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D, 진행: 김양원 / 작가: 성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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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미군 점령군' '소련군 해방군' 논란..76년전 포고문 비교해보니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1-07-12 10:46  | 조회 : 689 
[열린라디오 YTN]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1년 7월 10일 (토요일)
■ 진행 : 김양원 PD
■ 대담 : 송영훈 뉴스톱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팩트체크] '미군 점령군' '소련군 해방군' 논란..76년전 포고문 비교해보니

- 김원웅 광복회장,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재명 지사, '미 점령군' 발언
- 포고문..소련군은 '조선 해방', 미군은 스스로 '점령군'이라 칭해
- 실제 통치내용 역사적 평가는 엇갈려  

◇ 김양원 PD(이하 김양원)> 한 주간 있었던 뉴스들 가운데 사실 확인이 필요한 뉴스를 팩트체크해 보는 시간입니다. 팩트체크 전문미디어 뉴스톱의 송영훈 팩트체커와 전화연결 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송영훈 기자(이하 송영훈)> 네. 안녕하세요

◇ 김양원> 76년 전의 역사가 최근에 소환됐죠, ‘미군은 점령군’ 논란이 광복회장의 발언에 이어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 지사까지...정치권으로 확산됐는데요. 점령군 논란 팩트체크 준비하셨다고요? 

◆ 송영훈> 네,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 6월 21일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친일 잔재 청산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한 경기도 양주백석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13분 분량의 영상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이 영상을 보고 중앙일보가 보도했습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해방 이후에 들어온 소련군은 해방군이었고, 미군은 점령군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김 회장의 해당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려서 북한은 소련군이 들어오고 남한은 미군이 들어왔다. 소련군은 ‘조선인이 독립과 자유를 되찾은 것을 참 축하드린다’ ‘조선인의 운명은 향후 조선인들이 하기에 달렸다’ ‘조선 해방 만세’ 이렇게 포고문을 붙였다,
비슷한 시점에 남한을 점령한 미군 맥아더 장군은 ‘우리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다’ ‘앞으로 조선인들은 내 말을 잘 들어야 된다’ ‘내 말을 안 들을 경우에는 군법회의에 회부해서 처벌하겠다’ ‘그리고 모든 공용어는 영어다’. 이런 포고문을 붙였다.”

◇ 김양원> 당시 북쪽에 주둔한 소련군은 ‘조선 해방’이란 표현을 포고문에 쓴 반면에 미군은 스스로 ‘점령군이다’란 표현을 썼다? 

◆ 송영훈> 네. 중앙일보의 보도가 있고 나서 광복회는 반박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포고령 내용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본 영상은 현재 삭제가 된 상태입니다. 광복회 측에서는 불필요한 논란을 우려한 학교 측의 요청으로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상태라고 알려왔습니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논란으로 이어졌고, 이재명 지사도 지난 1일에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차기 대권 후보 지지율 1~2위를 다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과 이를 비판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발언으로 논란이 더 커졌습니다. 

◇ 김양원> 광복회장이 인용한 포고문, 확인이 됐나요?

◆ 송영훈> 네, 여러 사료로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북한 지역에 진주한 소련군의 포고문 제1호는 북한 점령을 담당한 극동군 제25군 사령관 이반 치스차코프 대장의 이름으로 발표됐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제작 운영하는 우리역사넷 등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나오고요. (포고문 원문 전체는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가 1969년에 발간한 북한연구자료집, 북한 통신사인 중앙조선통신사가 발간한 조선중앙년감 1950년판)

제가 확인해본 결과, ‘자유와 독립’, ‘해방 조선인민 만세’ 등 광복회장이 언급한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새 조선역사의 첫 페이지가 될 뿐이다. 노예적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진저리나는 악몽과 같은 그 과거는 영원히 없어져 버렸다. 조선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들의 수중에 있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죄다 당신들에게 달렸다. 붉은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 만한 모든 조건을 지어주었다. 붉은군대사령부는 모든 조선기업소들의 재산보호를 담보하며 그 기업소들의 정상적 작업을 보장함에 백방으로 원조할 것이다. 해방된 조선 인민 만세!“ 등입니다.

◇ 김양원> 미군의 포고문은 확인가능했습니까?

◆ 송영훈> 맥아더 사령부 포고 제1호로 불리는 태평양미국육군사령부포고문 제1호는 1945년 09월 24일 민중일보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 된 원문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찾을 수 있고, 국가기록원과 미국 국무부 사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일본의 항복에 의하여 미군은 38도선 이남 조선을 점령한다’,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기 위한 연합국의 결심’ 등을 언급했습니다. (“미국 태평양 방면 육군 총사령관으로서 이에 다음과 같이 포고한다. 일본 제국 정부의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은 아래 여러 국가 군대 간에 오래 행해져 왔던 무력 투쟁을 끝나게 하였다. 일본 천황의 명령에 의하고 또 그를 대표하여 일본 제국 정부의 일본 대본영이 조인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 조선 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조선 인민은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그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는 것을 새로이 확신하여야 한다. 따라서 조선 인민은 이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원조 협력하여야 한다. 본관(本官)은 본관에게 부여된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의 권한으로써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 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세우고 다음과 같은 점령에 관한 조건을 포고한다.)

◇ 김양원> 두 포고문 원문을 그대로 보면,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김원웅 회장의 주장이 틀린 건 아니네요?

◆ 송영훈> 물론 'Occupy'라는 단어의 해석이 갈리긴 하지만 그렇습니다.‘우리역사넷’도 “미군의 포고문이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표현인 반면, 소련의 포고문에는 호의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군정에 대한 우려는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1946년 6월 1일자 ‘법령 제72호의 의도, 맥 원수 포고 제2호의 부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법령칠십이호는 일정시대 조선인의 자유를 극도로 탄압하던 치안유지법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라는 기자단의 질문과 “동 법령을 치안유지법이라고 믿는 것은 오해”라는 미군정의 답변을 소개했습니다. 당시 미군정에 대해 그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은 분위기였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포고문과 실제 군정은 달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여기에 더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지역에 주둔한 소련군의 모습은 포고문과는 크게 달랐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북한 지역의 소련군정 체제에 대해 “실제로 그러한 선언은 허구적 기만에 불과함이 곧 드러났다. 예컨대 소련은 광복되던 해부터 북한산 쌀을 가져갔고, 수풍발전시설·흥남비료공장 등의 시설을 접수하였으며, 모든 생산수단의 개인소유를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남쪽에 주둔한 미군정에 대한 평가는 매체별로 좀 다릅니다. 사료나 다수 역사학자의 의견을 빌어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견해에 힘을 싣는 보도가 있는 반면, 일부 소수의 학자나 관계자의 발언을 근거로 해방군에 비중을 두는 매체도 있었습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점령군의 성격이 강했다는 의견이 좀 더 많았습니다.

◇ 김양원> 정리하면, 해방 후 소련군과 미군의 포고문만 보면 김원웅 광복회장의 발언에 무게가 실립니다. 하지만 실제 통치내용을 평가한 당시 언론 보도와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해방군과 점령군으로 양분해서 볼 수 만은 없다는 건가요?

◆ 송영훈> 네, ‘절반의 사실’ 정도로 판단했습니다. 다만, 70년도 넘은 역사적 사실과 평가를 두고 정치인들이 편을 갈라서 논쟁을 한다는 것이 아쉽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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