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시간 : [월~금] 17:30~19:30
  • 진행: 이동형 / PD: 김양원, 장정우 / 작가: 임미인, 김승현 / 조연출: 차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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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승부] 우당기념관 개관과 신흥무관학교 개교 110주년이 주는 오늘날의 의미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1-06-10 21:25  | 조회 : 333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방송 : FM 94.5 (17:30~19:30)

방송일 : 2021610(목요일)

대담 :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방학진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정면승부] 우당기념관 개관과 신흥무관학교 개교 110주년이 주는 오늘날의 의미

 

 

이동형 앵커(이하 이동형)> “대한의 청년동지 여러분! 지금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우리가 추운 땅 만주에서 무관학교를 세우고 소정의 교육을 받는 것은 조국을 다시 찾겠다는 군인 정신의 총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군의 뿌리죠, 독립군 양성소라고 불렸던 신흥무관학교의 초대 교장이었던 석오 이동녕 선생의 조회사 중 일부를 읽어드렸습니다. 요즘 우리 국군이 부실 급식부터 성폭력과 폭행까지, 좋지 않은 일들로 얼룩져서 부정적인 인식을 주고 있는데요. 다시금 석오 선생의 군인 정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작금의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할 두 분을 모셨습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인 우당 이회영의 손자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방학진 사무국장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이하 이종걸)> , 안녕하세요.

 

방학진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하 방학진)> , 안녕하세요

 

이동형> 이 전 의원님은 엊그제가 우당 기념관 개관식이었어서, 후손으로서 감회가 남다르실 거 같아요?

 

이종걸> 특별히 요번에 서울시에서 이회영 기념관을 만들면서요. 이회영 기념사업회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장으로서 이제 서울시의 시설을 잘 운영해야 되는 사람이 되어서 임무도 있습니다.

 

이동형> 윤 전 총장은 어떤 인연으로 참석을 하시게 되었습니까?

 

이종걸> 서울시에다 참석을 해보겠다고 요청이 온 것 같고요. 가까이에 이종찬 의원장님의 아들, 저한테는 이제 당질, 조카인데 이철호 교수하고 굉장히 오랜 연분이 있는, 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이고. 굉장히 이런 관계에서 연결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이동형> 우당 선생, 윤 전 총장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만 대표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이죠? 육형제가 모든 재산을 털어서 독립운동에 바치고 망명을 택했는데. 신흥 무관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시죠? 박범래가 신흥무관학교 이야기도 했는데.

 

이종걸> , 이제 여섯 형제분이 전 재산을 털어서 만주로 갔을 때, 그 때 재산을 댄 분이 둘 째 이신 이석형 선생님이시고요. 초대 교장을 한 분이 이철형, 셋 째 이고. 넷 째 이회영 우당 선생은 그것을 전체 주관을 했다 이렇게 보고요. 그런데 이제 신흥 무관학교를 여러 번 옮기기도 하면서 교장도 바뀌고 그렇게 되었죠.

 

이동형> 6형제가 전 재산을 털어서 망명을 떠날 때, 지금 돈으로 환산을 하면 한 6000억 정도이다, 그런 이야기도 있는데.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우당선생들 가족들 전체가 밥 굶는 것을 여사로 해서 일어날 기력도 없었다고 하더라, 이런 증언들이 있어요.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이 우당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자기들 옷도 벗어주고 왔다, 이런 이야기도. 그 많은 돈을 독립운동에 쓰시고 마지막엔 그렇게 좀 가난하게 사셨던 겁니까?

 

이종걸> 특히나 여섯 째 중에 둘 째, 이석형 선생이 재산을 많이 출현을 했는데, 그 재산이 지금의 돈으로 하면 한 2조다, 5조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 분이 막판에 굶어서 돌아가셨다, 라는 것이 저희에게 알려지면서 더 큰 슬픔이었고. 그것보다도 그 분의 첫째 아들인 이규진 선생께서는 당월당 단장으로 밀정들, 변절한 밀정들을 수없이 처단하다는 그런 최고의 책임자로써, 하지만 지금 아직은 무훈으로 알려져 있어서 저희들이 좀 더 죄스러운 느낌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동형> 알겠습니다. 방학진 선생님 신흥무관학교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할 거 같아요.

 

방학진>, 대통령께서 기회있을 때마다 국군의 날에도 말씀을 하셨고, 임시정부 기념일에도 말씀을 하셨는데, 신흥 무관학교가 우리 국군의 뿌리이다, 이런 것들을 우리 국군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을 해야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요. 역대 해방이후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신흥무관학교를 복건을 시킨 최초의 대통령이 바로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데요. 1910년에 국권이 빼앗겼을 때, 많은 독립운동 단체들이 있었습니다만, 왜 그중에서도 신흥무관학교를 콕 집어서 대한민국의 국군의 뿌리라고 말씀을 하냐면, 그 당시의 많은 의병들은 일제를 몰아내고 다시 전주 이씨에게 나라를 드리자, 라고 하는 복벽주의 보왕주의가 주의였다고 한다면. 신흥무관학교는 신민회가 중심이 되어서 민주공화제를 지향하고 일제에게 빼앗긴 국권을 찾아서 우리 국민들 모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 라고 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의 민주공화제에 지향과 같기 때문에 바로 이 신흥무관학교를 대한민국의 뿌리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동형> 일제에 의해서 강제 징병 당했던 학도들 같은 경우에도 며칠을 걸어서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간 그런 케이스들도 있고 말이죠.

 

방학진>장준하 선생님이 대표적이죠?

 

이동형> , 우리가 지금 육군의 뿌리, 한국군의 뿌리가 신흥 무관 학교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털어서 학교를 세우고 뜻있는 열사들이 그곳을 찾아가서 독립을 위해서 싸웠는데. 최근에 우리 국군의 부실 급식, 성추행, 성폭력 문제 이런 것이 많아서 국군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지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종걸> 신흥무관학교라고 하는 진짜 국군의 뿌리를 잘 찾아서, 지금까지 나라를 지키는 강건한 군인을 만들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지금부터 더 철저히 해야지 않겠냐는 생각이고요. 육군사관학교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신흥무관학교에서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진정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지금껏 계속 노력을 해온, 선량들을 만들어나간다는 목적이 있었고. 그 뿌리들의 일원들도 완전한 대한민국의 독립이다, 대한민국 독립은 지금같이 분단된 국가는 대한민국 독립이 아니잖아요? 통일 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온 전력을 다하는 애국심으로 학교가 이루어지고, 육군사관학교가 세워지고, 졸업생들을 배출해서 졸업생들이 큰 역할을 할 때 저는 이런 문제들은 자연히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이동형> 그런데 지금 분단된 조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저희 독립전쟁 사가 독립운동가들도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던 군인들에 대한 교육은 잘 안 받았던 거 같아요. 저 어렸을 적만 해도 방공 교육은 받았습니다만, 독립전쟁사는 받지 않은, 좀 소외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방학진> , 지금 저희가 20대 국회부터 조사햇던 것이 육군 사관학교를 포함해서 사관학교에서 커리큘럼이 어떤 가 조사를 해보았는데요. 우리나라 사관학교만큼 독립전쟁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 독립전쟁을 전공한 교수가 없다. 이것이 상징적인 것이죠. 우리나라 대통령께서는 상징적으로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 광복군 독립군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는데, 실제로 이것을 교육시킬 수 있는 육사의 교수 중에는 독립론의 전공자가 없다. 시급히 육사를 포함한 많은 사관학교에 독립 전쟁사를 전공하는 교수가 계셔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동형> 과거에는 만주군 출신이 대통령도 하고, 쿠데타 세력이 대통령이 되고 그랬다고 치더라도 21세기 들어와서는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방학진> 지금 군대에서 일어나는 많은 비리들의 경우에도 지금 육사교장이 56대 교장이신데. 54대 교장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때 2019년 이었는데, 장병들이 쓴 탄피를 녹여서 이회영 선생,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건립하면서 생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기억이 나요. 우리들은 지금 월급 받아가면서 세금으로 총도 국민들이 다 주시고, 옷도 주시는데,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은 자기 재산을 팔아서 독립운동을 하셨다. 그런 거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육사를 다녀야 하는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정신이 육사만이 아니라 모든 국군 장병들에게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동형> 제가 아까 어두에 우당 기념관 이야기를 했는데, 남산자락에 들어섰습니다. TBS건물을 헐고 들어섰는데, 지금 어떤 것들이 전시되어있죠?

 

이종걸> 그곳에 특별히 모신나강, 브라우닝 건총, 소총들이 있는데요. 그것은 이제 제가 2년 전에 체코를 이것을 찾아보기 위해서 갔습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서 대한 독립군, 서로군정서군, 북로군정서군이 된 한 3500명의 대한 독립군이 홍범도 장군, 서열 장군, 김좌진 장군의 지휘아래, 일본의 러시아 군을 격파한 아주 정예부대인, 3만 명 35천 명의 일본군을 격파한, 봉오동전투, 청산리 전투에 쓰여진 총입니다. 그 총은, 모신나강 총은 실제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아리사가 총보다 약 200미터 이상 유효사거리가 긴 총이었어요. 그것을 체코 군으로부터 승계 받은 것이 2000점 정도 되는 것이죠. 그것과 우월한 군사력을 가지고 이긴, 일본을 격파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때 가지고 있었던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우리의 독립의지. 신흥무관학교에서 수련하고 배웠던 애국의지. 꼭 독립을 이루는 데 나의 몸을 던지겠다는 힘이, 바로 신흥무관학교와 그것을 설립한 이회영 선생으로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런 내용을 전시했습니다.

 

이동형> 우당 기념관이 교통편도 괜찮고요. 여러분들, 특히 아이들이 있으면 같이 손잡고 우당기념관을 들러보면, 공원형식으로 잔디도 잘 깔려 있고 하더라고요. 가서 역사교육도 되고 아이들의 올바른 정신교육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번씩 가 보시길 바라고. 전 재산과 온 일생을 독립전쟁과 군인 지도자 양성에 다 바친 우당의 정신,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계승해야할까? 이종걸 의장님 말씀해주시죠.

 

이종걸> 우리 백범 선생이 법정에 가셔서 당신 직업이 뭐요.” 이러니까 저는 독립운동가입니다.” 이러셨습니다. 아직도 독립이 되지 않은 분단의 국가를 이야기 한 것이죠. 이회영 선생도, 독립은 분단이 없다, 라고 하시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독립의 의지를 다지면서, 독립군들의 생각은 하나 된 조국, 앞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기판을 가진 조국을 꿈꿨다고 하는 그 점이 우리 국민들에게 꼭 좀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동형> , 9988님께서 존경합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 중에 국군 창설이나 훗날 지휘관이 있었습니까? 궁금합니다.” 이런 의견을 주셨는데.

 

방학진> , 지청천 장군이 계셨고요. 그다음에 권 준 장군도 계셨고. 그렇지만 이분들이 한국사의, 근대 역사에서 주류로 평가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죠.

 

이동형> , “다음 주 조카들 데리고 가보겠습니다. 현장학습으로 가 볼게요.” 이런 의견들 고맙습니다. 신흥무관학교 110주년 기념식은 어디서 열렸습니까?

 

방학진> 원래는 100주년 때는 서대문 형무소 마당에서 열렸는데요, 오래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기념식을 진행을 하고 있는데요, 오늘 저녁때 유튜브로 온라인 기념식 영상을 올릴 생각입니다.

 

이동형> 신흥무관학교 110주년 기념식이 왜 서대문 형무소에서 열렸죠?

 

방학진> 100주년 때, 10년 전의 100주년 기념식은 그 당시의 육군사관학교 교장 때 육군의 뿌리이기 때문에 육사 교정에서 하기를 원했지만 그 당시에는 거부를 당해서요. 육사에서는, 10년 전 육사에서는 신흥무관학교와 육사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래서 100주년 기념식장으로 육사를 내줄 수 없다. 했기 때문에 저희가 부득이 하게 서대문 형무소에서 했고요.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은 잘 현재 김완태 교장, 정진경 교장, 그리고 현재 김정수 교장까지. 축사도 많이 해주시고. 행사도 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주십니다.

 

이동형>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10년 전에는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방학진>지도자의 문제겠죠.

 

이동형>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육군사관학교에서 하게 되었고 코로나 때문에 이번에는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신흥무관학교 관련된 독립 지사들이 육사명예졸업장도 받고 있다고 하니까 잘 된 일이고요. 방학진 사무국장도 마무리 한마디 해주시죠.

 

방학진> 아까 말씀하신 이종걸 의장님이 무기를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그 당시의 장총의 값이 얼마냐면, 지금으로 따지면 1년 치 연봉입니다. 1년 치 연봉을 털어서 우리 민중들이 독립들에게 총 한 자루 마련을 해 준 것이거든요.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현재 어떤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바라보아야하고, 특히 국군 장병들이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한다고 바로 거기에서 나오는 거 같습니다.

 

이동형> ,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지금까지 111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우당 이회영의 손자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개교 110년을 맞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방학진 사무국장이었습니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이종걸> 감사합니다.

 

방학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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