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쓴 정상원 씨는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르꼬숑'의 대표이자 ‘문화총괄 세프’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요리사입니다.
저자는 요리사로서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니며 요리의 맛뿐만 아니라 그 맛에 얽힌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까지 쌓았다고 합니다. <탐식수필>에서는 바로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데요, 저자의 수려한 글솜씨로 인해 굉장히 맛있게 읽히는 글이기도 합니다.
한 대목 들어볼까요?
“전쟁은 역설적으로 단절되어 있던 경계를 허물고 문물을 소통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지배하는 쪽과 지배받는 쪽 양방향으로 흘러 들어간다. 영국이 인도를 정복한 시절 인도의 카리는 영국으로 건너가 커리가 되었다. 영국 해군이 즐기던 커리는 일본 해군에 의해 카레가 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커리는 오뚝이처럼 세계여행을 이어간다. 커리의 노랗고 매콤한 아이러니는 그렇게 세상을 물들이게 된다.”
저자는 전혀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우리네 음식과 너무나도 흡사한 음식을 만나 편안함으로 위로받기도 하고, 같은 재료가 나라에 따라 하늘과 땅 만큼 서로 다른 대접을 받는 모습도 흥미롭게 소개합니다.
한 나라에서 시작된 음식이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변신을 거듭하며 정착하거나, 몇몇 재료가 세계 공통의 음식 문화를 만들어내는 기준이 되기도 했던 일들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동치미와 거의 같은 맛에, 장독에 담는 발효과정까지 유사한 스페인의 음식을 소개하는 대목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동치미를 스페인 마드리드 남부의 황무지 라만차에서 발견합니다. 라만차 동치미의 시원한 맛의 비결은 숨 쉬는 항아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항아리 카수엘라는 흙으로 빚은 우리의 장독과 유사하다는데요. 스페인 중부에서는 아직도 장독을 땅에 묻어 지열을 이용해 발효시킨다고 합니다.
채소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어 장독에서 숙성시키니 그 맛이 김치와 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탐식수필>을 읽다 보면, 한 그릇의 요리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