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 방송시간 : [월~금] 1·2부(7:15~8:00), 3·4부(8:10~9:00)
  • 진행: 노영희 / PD: 신아람, 장정우 / 작가: 황순명, 김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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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우리 역사 속 검찰이 무소불위가 되기까지"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10-10 10:46  | 조회 : 356 
YTN라디오(FM 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9년 10월 10일 (목요일)
□ 출연자 :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 검찰이란 개념은 일본에서 와
- 1894년 갑오개혁 때 재판권 개혁하며 이듬해 검사란 표현 역사 속 첫 등장
- '공소'의 소, 억울한 내용을 위에 올리는 뜻
- 검사들 입장에선 자존심 상할 표현일 것
- 광복 이후 사법부가 정부에서 분리, 검찰보다 정부 정보기관이 더 큰 권력 가져
- 민주화 과정 속에서 정보기관 힘 줄어들며 무소불위의 검찰로 이어지게 된 것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노영희 변호사(이하 노영희): 검찰이라는 조직에 대해서 정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는 요즘인데요. 도대체 왜 검찰은 이렇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까. ‘무소불위'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까지 검찰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시작점을 찾아보는 시간 오늘 마련했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님 모시고 이야기하는 코너인데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이하 전우용): 안녕하세요.

◇ 노영희: 오늘 어떤 이야기를 우리가 한 번 역사적 시선으로 다뤄볼까요? 제가 좀 전에 말씀드린 했습니다만.

◆ 전우용: 말씀하신 대로 검찰인데. 워낙 익숙한 말이니까요. 그런데 우리 역사로 보면 굉장히 낯선 단어이기도 해요.

◇ 노영희: 검찰이요? 저는 되게 익숙한 단어있는데, 낯선 단어군요.

◆ 전우용: 변호사님이니까 검사님들 늘 만나시니까 익숙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검이라는 글자는 원래 중국 고대에는 문서함이라는 뜻이었어요. 문서상자, 문서를 넣는 상자였고요. 그래서 우리가 검이라는 글자를 한국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때가 언제냐면 초등학교 입학한 다음에 숙제 검사할 때.

◇ 노영희: 그렇죠.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주시잖아요.

◆ 전우용: 원래 의미 자체가 문서함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문서를 보고 무엇이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살피는 그런 일이라는 뜻이 검이었어요. 숙제 검사를 노트에다가 ‘참 잘했어요’ 찍어주고 하는 것이 숙제 검사잖아요.

◇ 노영희: 너무 좋잖아요, 그거 받으면 기분이.

◆ 전우용: 그러니까 검사라고 하는 사람, 검찰이라고 하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은 일본식, 일본에서 만들었고요. 우리 1894년 갑오개혁 때 지방관에, 원래는 우리가 입법·사법·행정의 입법은 빼고 사법·행정·군사 전체를 지방의 현령, 군수, 목사 이런 사람들이 담당을 다 했거든요. 그게 불합리하다고 해서 재판권을 지방관에서 떼내어서 전문 사법 담당자들에게 넘기는 개혁이 1894년에 이뤄졌고, 그 이듬해 1895년에 재판소구성조례 이걸 만들면서 그때 판사와 검사의 역할을 분리해요.

◇ 노영희: 이게 1895년부터 있었던 거예요?

◆ 전우용: 예. 그때 검사라는 직함이 처음 나오고요. 검찰이라고 하는 것이 개념으로 자리잡죠. 

◇ 노영희: 정말 신기하네요. 원님재판이 그러면 1895년부터는 없어졌단 얘기네요?

◆ 전우용: 그렇죠. 기본적으로 1895년부터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하고, 기소라는 말 자체가 좀 말이 안 되는 겁니다만, 그다음에 재판도 하는 이런 게 없어지고. 그래서 그때 검찰이 독립되면서 공소장이라고 하는 게 처음 나와요. 그런데 이것도 공소장이라는 종류의 문서도 1895년 처음 만들어졌는데 변호사님 많이 보시잖아요.

◇ 노영희: 네, 저는 좀 봅니다.

◆ 전우용: 그런데 공소라고 할 때 이 소가 무슨 글자겠어요. 이게 참 어떻게 보면 검사들이 뭐랄까요. 자존심 상해 할 표현이긴 해요. 소는 억울함을 하소연하단 뜻이잖아요. 원래는 소장이라고 하는 것은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위에다 올리는 글이었거든요.

◇ 노영희: 그렇죠. 사실 저희가 원고가 돼서 항상 내는 게 소장이니까.

◆ 전우용: 우리 이렇게 이렇게 억울한 일 당해서 정말 억울합니다, 풀어주십시오, 인데 공소라고 하는 것은 검사가 국가를 대신해서. 국가가 억울한 일을 백성들한테 하는 거잖아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검사 입장에서 보면 공소장을 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좀 뭐랄까,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국가를, 검사의 일은 뭐였냐면 기본적으로는 국가를 대신해서 분쟁이 있었을 때 공소장을 쓰는 것, 억울한 일을 쓰는 것. 범죄라든가, 일반 사인의 범죄라든가 또는 법 위반 같은 경우는 국가의 권위를 손상시켰고 국가의 권리를 침해했다. 이렇게 판단하는 거죠. 그렇게 판단해서 검사가 공소장을 쓰도록, 국가를 대신해서 소장을 쓰도록 만든 것이 1895년에 재판소 관련 조례였습니다. 

◇ 노영희: 저는 공소장이 그런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국가가 오히려 국민한테 우리 억울하다라고 말하는 거다. 정말 새로운 걸 많이 배웠는데요. 그러면 이런 식의 검찰권이 생긴 게 1895년인데 일제강점기로 들어오면서 이게 엄청나게 강해졌단 말이죠. 왜 그런 거예요?

◆ 전우용: 사실 강해졌다기보다는 대한제국, 조선 말 대한제국 시대의 검찰권 자체가 정부 산하, 삼권분립은 아니었던 것이죠. 입법·행정 전권이 다 황제에게 가 있고 검사와 판사가 같은 재판소 직원이었어요. 역할만 나눠서 하는 것이죠.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조선총독부 재판소가 검사와 판사를 다 두고 하도록 돼 있었는데. 검사, 워낙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등의, 요즘 1980년대 식 표현으로 하면 시국사건이죠. 시국사건 관련자들이 많고 이걸 수사할 일들이 많아지니까 점차 검사가 경찰을, 다른 직종이거든요. 재판소하고 경찰관서는 다른 직렬인데 검사로 하여금 경찰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이런 관행들, 이런 법규들이 만들어지면서 검찰의 권한들이 계속 강화돼서 수사권까지 갖게 되는 거죠.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검사는 경찰이 수사하면 그 문서를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서 중심주의자였어요. 직접 사람 불러다 놓고 수사하고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그런 편의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담당하고 하는 과정에서 애초에 처음부터 같이 하는 게 맞다. 그래서 검찰이 경찰을 수사 지휘하도록 하는 그런 제도가 생겼던 것이죠.

◇ 노영희: 정확한 의미에서 판검사 이런 시스템보다는 일단 국민들을 억압하고 혼내주기 위한 이런 제도가 정착이 되면서 검찰권이 만들어졌다. 이런 얘긴데요. 그렇다면 이게 그 당시 우리 민족이 독립운동 하다가 잡혀가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정당한 재판도 못 받고 검찰이 내놓은 그 문서에 그냥 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식으로 결정이 나고 그랬던 건가요?

◆ 전우용: 사실은 일제강점기, 1910년대 같은 경우에는 이런 재판에 회부되는 게 차라리 나았어요. 검사를 만나는 게. 1910년 경찰범처벌규칙이나 조선태형령이나 이런 특수법규를 제정해서 경미한 범죄인 경우에는 재판 없이 경찰이 즉결처분할 수 있다. 이걸 또 법으로 만들어요. 그게 일본식 법치죠. 경미한 범죄라고 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은 것들, 예컨대 일본 통치에 불만을 표시한다든가, 당시 경찰범처벌규칙을 보면 내용들이 굉장히 좀 기가 막혀요.

◇ 노영희: 예를 들면 뭐가 있을까요?

◆ 전우용: 관헌의 지시를 받고도 굴뚝을 청소하지 않는 자라든가, 아니면 잡지나 신문 등의 구독을 강요하는 자. 그러니까 이를테면 독립 관련 문서들, 이런 것들을 보라고 강요하는 것. 이건 강요죄에 해당하는 것이죠.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현재 이른바 경범죄의 원류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런 것들을 처벌하도록 하고. 또 재판을 했을 경우에 형량이 가벼울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라면 재판을 거치지 않고 경찰관서에서 즉결로 태형, 때리는 형벌을 집행할 수 있도록 그렇게 법을 만들어놨던 거죠. 그렇게 해서 태형으로 박원식 선생의 얘기에 따르면 수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글쎄, 약간 과장됐다 하더라도 경찰관서에서 처벌받는 것보다는 어쨌든 법정에서 검사와 판사에게 이야기, 말로써 징역형을 받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고, 또 일본도 현실적으로 농촌 지역에서는 경찰에 의한 태형을 집행하면서도 도시에서는 문명 통치라고 하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 적어도 재판소 내에서, 법정 내에서 검사와 판사 사이에서 논쟁하고 이야기하고, 또 변호인이 들어가고. 이런 구조는 만들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 노영희: 일부러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그래도 뭔가 테를 갖춰서 벌을 내리는 것이 맞다고 봤다는 건데요. 광복 이후에 그러면 검찰은 어떤 모습으로 봅니까?

◆ 전우용: 일단 사법부가 정부에서 분리가 되죠. 사법부가 정부에서 분리되고 검찰은 과거에 하던 관행 비슷하게 정부산하에 법무부 산하에 배치가 되고.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그랬던 것처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었고, 기소독점권, 기소편의주의, 이건 다 검찰이 갖고 있었고 검찰은 또 하나다. 정부 기관이니까 검사 개개인의 개인적 의견을 인정하지 않고. 검사동일체 원칙이라고 해서. 그런 것들이 다 일부는 일제강점기에서 물려받았고 또 법원과 검찰이 분리되는 것은 이른바 민주공화국의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서 새로운 체제에 들어선 거잖아요. 굉장히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검찰 내부에서도. 이건 해방되고 나서 경찰이 혼란을 겪었던 것처럼 검찰도 혼란을 겼었을 텐데. 그런데 문제는 사실은 일제강점기에 검찰이 있고 경찰이 있고 헌병이 있고 일본군이 있고 그런데 실제로 가장 권력이 센 집단이 어디었느냐 하면 검찰은 아니었거든요.

◇ 노영희: 헌병인가요?

◆ 전우용: 그렇죠. 일본군 자체가 조선총독과 결합해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었고. 우리가 해방된 뒤에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했다 하더라도 바로 6·25 전쟁이 일어났고, 6·25 전쟁 이후에도 곳곳에 계엄령이 선포돼 있었고, 이승만 독재정권 하에서도 사실 군부의 힘이 굉장히 막강했고. 그 막강했다는 군부가 이승만이 하야한 다음에 다시 재등장 했던 것이 5·16. 해방 이후 사실은 19867년 민주화 때까지 검찰은 우리나라 최고의 군부라고 불리지 않았어요. 검찰이 기소독점권이나 기소편의주의를 가지고 다 법치의 영역에서는 모든 것들을 하고 있었지만, 근데 사실은 법치로 우리 정치가, 법치주의가 관철되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법이 할 수 있는 일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적어서 검찰이 당시에 정보기관이라든가 군이라든가 이런 데 눈치를 보고, 정보기관에서 사건 조작해서 넘겨주면 그냥 기소하는 역할만 맡았죠.

◇ 노영희: 안기부가 제일 셌죠, 그 당시에는.

◆ 전우용: 그렇죠. 오히려 지금 검찰 권력이 갑자기 무소불위의 검찰이다. 사실 무소불위의 검찰은 아니었어요. 무소불위의 정보부였죠. 

◇ 노영희: 그러면 무소불위의 검찰이 돼서 오늘날의 모습이 된 건 언제부터입니까?

◆ 전우용: 87년 이후에, 우리가 기억해보시면 바로 얼마 전까지도, 2016~2017년 촛불집회가 있을 때까지도 나중에 밝혀졌죠. 기무사에서 계엄령 준비 문건 나오는 것이 나왔고. 그러니까 뭐랄까요. 군사 쿠데타나 계엄령의 악몽이랄까요. 이 그림자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어른거리고는 있어요. 그런데 그 위협에 대한 걱정은 상대적으로 줄었죠. 또 과거에 이명박 정권 때, 박근혜 정권 때, 전전 정권 때나 전 정권 때 보면 간혹 그래도 국정원의 정치개입, 그다음에 간첩조작 이런 사건들이 나중에 밝혀져서 문제가 됐지 않습니까. 실제로 검찰 위에 서서 전체 정치에 개입했던 정보기관들 또는 군 기관들이 문민화 과정에서 이제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게 되니까 그 아래층에 있었던 검찰이 최고 권력을 가진 기관처럼 보이게 되는 거죠. 상황은 지금 그래서 늘 그랬듯이 민주화라고 하는 상황은 권력을 집중하고 견제 받지 않으면서 무소불위의 자기 조직 권력을 행사했던 집단들을 개혁하는 것이 늘 민주주의의 과제였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87년 민주화 운동 직후부터 한 10년 하다가 또 되돌아갔다가, 하다가 되돌아갔다가 했던 것이 바로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중지와 같은 국정원의 정치 개입 관여 금지였어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개혁과제였는데, 그 개혁이 어느 정도 진전이 되었다. 국정원의 정치사찰 문제들이 더 이상 이른바 시민 일반의 국민 일반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니까 그런 권력을 검찰이 가진 것처럼 보이고 있고, 또 검찰이 실제로 그런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이런 문제들 때문에 검찰 논란이 다시 부각된 거죠.

◇ 노영희: 그렇군요. 사실 저도 변호사입니다만 검찰이 무섭습니다, 솔직히.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전우용: 감사합니다.

◇ 노영희: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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