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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를 움직이는 일본회의... 왜 강력한 지도자를 희망하나?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8-09 11:02  | 조회 : 2532 
YTN라디오(FM 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9년 8월 9일 (금요일)
□ 출연자 :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노영희 변호사(이하 노영희): 날이 갈수록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한일관계가. 그 배경에는 아마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일본 정치계의 우경화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그냥 우경화도 아니고 극우집단 세력의 장기집권, 이게 바로 문제다. 이런 문제점을 제기해주신 분이 계십니다. 왜 일본은 총리부터 삼권분립도 모르는 나라가 되었을까, 그 근본적인 이유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이하 하종문): 안녕하십니까.

◇ 노영희: 지금 일본 정치계 상황을 먼저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아베 내각이 어떤 극우세력이라고 불리워지는 사람들도 다 채워져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던데, 맞습니까?

◆ 하종문: 네, 사실은 정치가의 성향은 물론 보수-진보 이렇게 나눌 수 있는데요. 지금 현재 아베 내각의 각료의 구성원은 대략 전체 2/3 정도가 좀 이따 설명을 드리게 될 일본 내 우익의 산실이라고 얘기되는 총사령탑인 일본회의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일본회의 내각이다, 이렇게 불리는 이유도 있는 것이죠.

◇ 노영희: 일본회의라는 단체가 사실 60년대부터 있었던 단체 아닌가요? 그런데 갑자기 요즘 이렇게 부각되는 이유가 정확히 뭡니까?

◆ 하종문: 60년대부터는 아니고, 60년대부터 있었던 것은 종교우익들이 있었고요. 이게 70년대에 있었던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있고, 그다음에 다시 80년대에 있었던 ‘일본을 지키는 모임’ 이런 게 합쳐져서 1997년에 만들어집니다, 일본회의가.

◇ 노영희: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까지 모여져서 세력화 돼서 한 게 바로 아베 내각이 장기집권하면서일까요, 그러면?

◆ 하종문: 그렇습니다. 사실은 1997년에 이게 만들어졌다라는 시기도 대단히 의미심장하고요. 아베 수상이 그때 정치에 입문한 초년생이었습니다. 초년생이던 아베 수상을 훈육해서 역사수정주의 포함해서 우리가 아는 우경화의 기수로서, 그리고 일본을 이끄는 수상으로서 키워낸 사실은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일본회의, 그렇게 되는 것이죠.

◇ 노영희: 일본회의가 아베를 키운 거다.

◆ 하종문: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 노영희: 그러니까 일본회의의 영향력은 당연한 거다,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요. 아베 총리를 비롯한 극우정치인들은 집안부터 남다르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아소 다로 부총리도 집안이 상당하다는데, 집안이 상당하다는 것의 의미가 정확히 뭡니까?

◆ 하종문: 집안이 상당하다는 얘기는 1차적으로는 세습의원입니다. 아버지가 다 중의원 의원이었고, 그것도 그냥 보통의 의원이 아니라 장관 정도 지낸 굉장히 유력한 정치인이고요. 거기서 더 올라가게 되면 집안 자체는 가령 아소 다로 같은 경우에는 조선인 강제동원으로도 악명이 높은 아소탄광, 후쿠오카에 있습니다만 아소탄광의 창업주와 연결됩니다. 그런 면에서는 재벌가의 자식이고요. 그다음에 아베 신조 같은 경우에는 외할아버지가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악명이 높은 기시 노부스케라고 하는 A급 전범 용의자였습니다. 전범으로 소추된 건 아니에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가 되고요. 그다음에 기시 노부스케의 양자로 갔습니다만 사토가 양자로 갔던, 사토 에이사쿠는 형제로서 일본의 처음으로 수상이 되었던 집안입니다. 그러니까 형제가 수상이 되었던 그 손자가 아베 신조라는 것이죠.

◇ 노영희: 그러네요. 그런데 참 피는 못 속인다, 이렇게 보는 게 맞을까. 또 플러스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 이런 것들이 결국 현재 오늘의 일본의 극우세력들을 만들어낸 걸로 보이는데. 그런데 일본 정치계에도 늘 지금처럼 사실 극우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던 건 아니잖아요. 아베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이야기가 잘 되는 쪽이었던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물론 자민당이 장기집권 해온 건 맞지만, 이게 제가 듣기로는 자민당 안에 있는 여러 계파 중에 특히 아베가 주장하는 계파가 좀 더 세게 극우적인 성향을 보여서 그런 거다, 이런 얘기 있던데 맞아요?

◆ 하종문: 예, 그 말씀도 일부는 맞습니다. 일본은 지금 현재 자민당은 물론 공명당과 연립정권입니다만 만들어진 게 1955년이고요. 그때 일본의 일본민주당과 자유당이 합당한 겁니다. 그래서 자유민주를 따서 자민당이 됐는데. 그때 당시에 자유민주당 자민당은 사실은 어떤 정당이었냐면 일본이 경제부흥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가 강력한 일종의 경제개발 드라이브를 거는 거죠. 그렇게 보면 어떤 형태의 자민당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냐면 사실은 사회민주주의에 가깝습니다. 진보정당에 가까운 형태로 국가가 견인하는 경제개발 방식, 이런 것들이 90년대까지 작동하다가 1993년에 자민당이 일단 무너지게 되고 정권을 내어주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그동안에 있었던, 자민당 내에 있는 다양한 파벌 자체가 정치제도의 변혁에 의해서 사실은 한 색깔을 갖는 쪽으로 수렴이 되게 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말씀하신 파벌의 부분은 55년에 정당이 만들어지고 나서 다양한 형태의 파벌, 거의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파벌부터 극우보수까지를 망라하는, 스펙트럼이 넓은 정당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기반을 하고 있었던 것은 중선거구제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5명 내지 3명을 뽑는 정당이니까 다양한 파벌이 공존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게 1993년에 일본이 소선거구제 지금 현재 비례대표제로 바뀌면서 결국에는 수상이 가지고 있는, 당 총재가 가지고 있는 공천권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파벌의 힘이 약해지게 되고 당 총재가 가지고 있는 당을 지배하는 힘, 이런 것들에서 결정적으로 흐름을 탄 것이 바로 아베 수상이다.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노영희: 아베가 극우적인 성향으로 빠지게 된 계기 같은 것들은 그럼 정확히 뭔가요?

◆ 하종문: 아베가 가지고 있었던 부분은, 물론 아베 수상은 가끔씩 이야기를 하는 게 외할아버지의, 기시 노부스케의 무릎에 앉아서 그때 당시 일본의 안보협정을, 미국과의 안보협정을 개정하는 것들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이미 헌법을 개정하고 싶은 게 외할아버지의 사실은 평생 소원이었는데 그것을 본인이 이어서 한다라는 이야기를 선거운동 유세할 때마다 자주 하곤 합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이른바 일본의 보수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시 노부스케의 할아버지의 유언을 본인이 손자가 이어서 간다라는 것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출발부터 이미 보수라는 틀이 잡혀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90년대 이후에 일본 전체의 사회환경이 바뀌게 되고 정치경제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애국주의 이런 것들이 커지게 됩니다, 내셔널리즘. 그러니까 이런 전체적인 사회의 보수화 무드와 맞춰서 아베 수상이 그런 것들을 더욱더 개헌으로 견인해나가는, 그러니까 보수의 완전한 기대주로 성장하게 된 것이죠.

◇ 노영희: 그런데 아베가 이렇게 장기집권을 하게 된 것은 결국에는 물론 아베가 어느 정도 방향성을 보여줬는데 그 방향성이 국민들에게는 좋은 쪽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특히 결과가 나왔다. 이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 하종문: 그 점도 지적을 할 수가 있겠죠. 더더군다나, 정치 부분은 아닙니다만 아시다시피 2012년에 아베 수상은 2기에 걸쳐서 하는데요. 2006년에 집권했을 때는 1년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쓴 잔을 마시면서 절치부심 하고 2012년에 재집권 하면서 지금 일본 역사에서 두 번째로 오랜 수상을 하고 있는데요. 그랬을 때 커다란 요인이 뭔가. 사람들이 얘기하는 부분은 아베노믹스라고 하는, 일본이 20년 이상의 장기불황에서 그나마 기업에 조금 더 활기가 돌게 만들고 사람들도 월급은 올라가지 않았지만 뭔가 좀 경제적으로 괜찮은 무드, 이런 것들이 아베 수상을 지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이죠.

◇ 노영희: 아베노믹스 이제 좀 있으면 오히려 버블경제 비슷하게 나올 거다라는 걱정도 많이 있던데, 이게 현실화가 되기 전에 그러면 일본 아베가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이런 것도 있을 수 있겠네요.

◆ 하종문: 그 맥락하고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 아베노믹스 자체는 분명히 재정을 확장하면서 돈을 많이 뿌리면서 이른바 인플레를 만드는 작업에는 성공을 했는데 경제 자체의 구조를 개혁해서 성장의 동력을 만드는 작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합니다.

◇ 노영희: 그렇죠. 그러면 진짜 아베노믹스로 촉발된 여러 가지 경제 문제도 어떻게 풀려나갈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가장 핵심은 그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서 1990년대에 만들어졌던 일본회의라고 하는, 여러 집단이 합쳐져서 만들어지게 된 일본회의가 결국 아베를 떠받치고 있는 중심적인 힘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 일본회의라고 하는 것의 본질을 우리가 판단해봐야지만 현재 지금 아베의 행동이 이해될 것 같고 앞으로 방향성이 보일 것 같습니다. 좀 설명해주시죠.

◆ 하종문: 예. 일본회의는 1997년에 만들어졌습니다. 97년이 왜 중요한 시기냐. 제가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일본의 이른바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새역모라는 모임이 만들어진 것도 97년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냉전이 해체되고 나서 동아시아 상황에서는 결국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서 내셔널리즘이 바로할 것이다. 그럼 일본도 거기에 맞춰서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강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민운동이 필요하다. 여기에 맞춰서 교과서 부분에서는 새역모가 만들어지고, 전체 보수운동을 우익운동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만들어진 게 일본회의거든요. 그런데 일본회의는 성격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종교우익입니다. 일본에는 아시다시피 신도가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불교 종파라든지 이런 것들이 결합되면서 자금과 지역에서의 일종의 인적동원에 대한 부분을 책임집니다. 그다음 또 하나 부분은 이른바 최고재판소,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대법원장을 지낸 사람이 2대 일본회의의 대표가 되게 됩니다. 무슨 얘기냐면 우리나라의 대법원장을 지낸 사람이 보수우익 단체의 회장이 된다는 이야기는 일본의 파워엘리트가 결집한 곳이 곧 일본회의라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는 자금력과 동원력과 그리고 명망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 일본회의라고 볼 수 있고, 그 일본회의가 사실은 아베를 비롯해서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만 최종적으로 낙점한 사람이 아베 신조 수상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죠.

◇ 노영희: 미국의 티파티 같은 그런,

◆ 하종문: 훨씬 더 강력합니다. 일본회의는 일본의 47개 도도부현이 있는데요. 거기에 전부 다 지부를 가지고 있습다. 그리고 그 지부에 있는 이른바 지역에 있는 지방의원들 전체를 거의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국회의원 중에서도 전체 260명 정도면 전체 의원의 과반 정도 가까운 의원을 일본회의의 간담회란 형식으로 네트워크가 조직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앙의 의회와 지방의회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 바로 일본의회란 것이죠.

◇ 노영희: 그런데 그러면 좀 이상해요. 왜냐면 우리가 보기에, 물론 어느 정도 이런 식의 힘이 국민들을 견인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또 의식이 있거나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뭔가 이상하다라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한데, 지금 생각을 해보게 되면 일본 시민사회들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지난번에 일본변협 회장 지냈던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와 인터뷰했을 때에도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언론이 아예 다루지도 않고 일본 사람들은 그냥 순종적으로 아베가 말하면 그게 맞는가 보다, 라고 그냥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얘기했거든요. 맞습니까?

◆ 하종문: 예, 그 말씀을 하신 분은 역시 일본에 살고 계시니까 그런 것들을 피부감각으로 느끼시는 것 같아요. 일본회의가 가지고 있는 건 일본회의는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을 움직이고 지방의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일본회의 관련된 서적이 나오기 시작한 게 2015~2016년 정도입니다. 즉 아베 수상이 이게 만만치 않다라고 생각이 되고 이른바 개헌 자체도 거의 가시권 내에 들어왔다. 이렇게 위기감이 생기면서 일본회의에 대한 분석 책들이 막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그전에 일본회의는 힘은 있었지만 전면에 드러나진 않은 조직이었다면, 사실상 아베 수상이 중참의원에서 2/3를 접근하게 되면 개헌이 거의 현실적으로 발의가 가능합니다. 그러면 국민운동을 조직해야 하니까 일본회의도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이른바 우리가 말하는 진보적인 양심적인 세력 쪽에서도 이게 뭔지 분석을 하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일본의 정치 보수 우경화에는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그들이 힘을 가지시 시작한 것도 있습니다만 일본의 민주주의 전체가 사실은 취약해지는 구조. 일본이 이른바 우리가 금속 같은 부분들이 노쇠하고, 금속피로라고 얘기하는데 있는데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전체가 일종의 피로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는 거거든요. 그게 강력한 지도자를 희망하게 되고 아베 수상처럼 어쨌든 외부에 대해서도, 중국과 한국에 대해서도 만날 사죄만 하는, 왠지 일본이 자기들이 잘못한 느낌보다는 그냥 속 시원하게 사이다 같이 얘기해주는 아베 수상이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 자기에 대한 미래를 밝게 해줄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여지는 일본 전체의 보수 우경화는 곧 비판적이고 그다음에 제대로 된 생각을 갖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의 언로를 차단하는 부분하고도 같이 연결돼 있습니다.

◇ 노영희: 일본 국민들, 시민들은 아베를 아버지로 보고 그냥 뭔가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되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쭙겠는데요. 일본 극우세력의 장기집권이 결국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특히 개헌을 지금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내년이나 도쿄 올림픽 끝나고 나면 좀 더 박차를 가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 하종문: 아까 말씀을 드렸던 일본의 시민사회의 힘이 약하다. 그러면 결국 우리가 연대해야 하는 것은 일본 시민사회에서 아베 수상이 아닌 다른 대안을 뽑을 수 있도록 우리가 내정을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만 시민사회 연대를 활성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되고요. 이번의 수출규제는 물론 양국의 경제가 충돌하는 상황입니다만 그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항의되는 것은 일본 시민사회가 죽지 않았다라는 거거든요. 당연히 거기에 연계된 일본의 정당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한국에서 조금 더 일본의 시민사회의 목소리들을, 그리고 일본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가 장기적으로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일본을 바꿀 수 있는 카드가 될 것 같습니다.

◇ 노영희: 사실 우리가 남의 나라를 간섭할 수도 없고, 남의 나라 언론을 어떻게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 결국 핵심은 일본 사람들이 진짜 자기네들 정부가 뭘 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그게 옳은지 그른지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는, 또 게다가 실제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게 가장 문제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을 우리가 알려줄 수 있게끔 뭔가 하는 게 필요하다. 그게 바로 국민 개인들 간에 개인적인 교류, 이런 걸 통해서 가능하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 하종문: 그렇죠. 지금 현재는 이른바 정보화사회기 때문에 한국의 정보가 그대로 리얼타임으로 일본으로 넘어가고 일본 정보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굳이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않더라도 관심사를 교환하는 개인적인 작업이 곧 전체 집단을 바꾸는 작업이 되는 거기 때문에 저는 그런 면에서는 지금 현재의 환경에서 한일이 연대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고 이미 토대는 만들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어떤 것들을 쌓아나갈 것인가가 우리한테 주어진 과제이고 당연히 일본도 그런 것들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라는 것이죠.

◇ 노영희: 우리 냉정하게 일본 국민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하종문: 고맙습니다.

◇ 노영희: 지금까지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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