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시간 : [월~금] 17:0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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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로드 4000km “걷지 않은 길이 사라졌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5-24 19:22  | 조회 : 2639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5월 24일 (금요일)
■ 대담 : 김종훈 ‘임정로드 4000km’ 저자


임정로드 4000km “걷지 않은 길이 사라졌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열 번째 시간입니다. 임시정부가 무려 27년 동안 유지됐다는 사실은 이제는 많이들 알고 계실 텐데요. 남의 나라 땅에서 숱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유지됐던 임시정부. 그 흔적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요? 이 물음에서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4,000km에 이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간의 발자취를 직접 따라가 본 분입니다. ‘임정로드 4000km’의 저자,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 나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종훈 ‘임정로드 4000km’ 저자(이하 김종훈)> 네, 안녕하십니까. 

◇ 이동형> 4,000km. 이게 말이 4,000km지, 서울에서 부산을 우리가 흔히 500km라고 이야기하니까 엄청난 거리인데, 어떻게 이렇게 4,000km를 내 발로 밟아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셨습니까?

◆ 김종훈> 100년이잖아요. 100주년이라 청년 기자로서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 이동형> 언제, 얼마 동안 다녀오신 거죠?

◆ 김종훈> 실질적으로 책을 위해서 간 것은 후배들과 함께 작년 여름에 20박 21일 동안 갔지만, 그 전에 답사하고, 그 후에 보충하려고 한 두 달 반 정도 다녀온 것 같습니다.

◇ 이동형> 저도 이거 과거에 한 번 마음속에 기획만 했던 건데, 못 했는데요.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시네요.

◆ 김종훈> 아닙니다.

◇ 이동형> 따라가보니까 당시의 흔적들, 기록들이 많이 있던가요?

◆ 김종훈> 그러니까 책을 썼습니다. 생각보다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 이동형> 설명을 해주시죠.

◆ 김종훈> 왜냐하면 임시정부를 생각해보면, 지금 임시정부에 있는 위치들이 대부분 도심지입니다. 우리나라도 중요한 대사관들이 도심지, 서울 중심에 있지 않습니까? 입장을 바꿔서 당시 우리나라 임시정부의 주요 청사들은 다 도심지에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남아있습니다.

◇ 이동형> 그게 어떻게 제대로 복원은 다 됐습니까?

◆ 김종훈> 이게 생각보다 큰 주요 도시들은 복원이 되어 있는데, 임시정부의 흔적들은 그래도 복원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요. 의열단이라든지, 조선의용대와 관련된 흔적들은 애석하게도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 이동형> 그 점은 조금 안타깝네요. 1919년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그래서 올해가 100주년 아니겠습니까? ‘김신부로’ 길. 거기도 아마 가보셨을 텐데, 책 제일 앞에 나오더라고요. 조금 안타까운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 김종훈> 그렇죠. 말 그대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고, 우리의 임시 헌법이 만들어진 곳인데,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서금이로’라 불리는 곳인데, 남북으로 한 4km 정도 길게 뻗은 곳입니다. 성인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걸어가야 되는데요. 아무런 흔적이 없어요.

◇ 이동형> 표지석도 없습니까?

◆ 김종훈> 없습니다.

◇ 이동형> 사실 1919년 4월 10일 밤, 바로 그곳에서 우리 지금의 역사가 시작됐다고도 봐야 하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조금 아쉽네요.

◆ 김종훈> 그렇죠.

◇ 이동형> 그러면 지금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는 어떤 곳이에요?

◆ 김종훈> 열두 번째 청사입니다. 상하이에서만 청사가 열두 번 옮겼는데요. 1926년부터 32년 4월까지,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을 때까지 사용했던 마지막 청사입니다. 그곳이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상하이의 청사로 기억하고 있는 곳입니다.

◇ 이동형> 어떻습니까, 못 가보신 우리 국민들. 아이들 데리고 가면 많이 볼만 합니까?

◆ 김종훈> 네, 그럼요. 아무래도 6년 이상 실제로 운영됐던 곳이기 때문에 잘 보전되어 있고, 우리 정부에서도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위치가 참 편합니다. 신천지역이라는 곳 6번 출구에서 내려서 불과 200m만 가다 보면 좌측에 위치해서 가기 쉽습니다.

◇ 이동형> 교통도 좋고요?

◆ 김종훈> 네, 교통도 좋고요.

◇ 이동형> 들어갈 때 입장료 같은 것도 내나요?

◆ 김종훈> 네, 내야 합니다. 3,400원 정도? 그 정도 됩니다.

◇ 이동형> 가면 그런 거 있나요? 독립운동가들이 썼던 방이라든가, 백범이 기거했던 방이라든가, 이런 게 있나요?

◆ 김종훈> 네, 다 남아있습니다. 

◇ 이동형> 좋네요. 상하이에 가서 임시정부 청사 보고, 그다음은 어디에 들르면 좋을까요?

◆ 김종훈> 개인적으로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장소가 한 군데 있는데, 만국공묘라는 곳입니다. 말 그대로 여러 나라의 요인들이 잠들어있는 곳인데, 지금은 쑹칭링능원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쑨원 선생의 부인을 모신 곳인데요. 이곳 안쪽에 예관 신규식 선생과 우리나라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 이동형> 우리 선생들의 묘가 또 거기에 있네요. 

◆ 김종훈> 물론 93년에 예관 선생을 비롯해서 애국지사들을 현충원으로 모셔오기는 했지만, 70년 동안 잠들어계셨던 선생들의 묘가 그곳에 남아있습니다.

◇ 이동형> 그렇군요. 예관 선생을 소개해주시죠.

◆ 김종훈> 예관 선생. 대한제국의 군인 출신입니다. 예관, 흘겨보다는 뜻의 호를 가지신 분인데, 왜 흘겨봤냐. 독약을 두 번 마셨습니다. 우리나라가 외교권을 뺏겼을 1905년에 한 번 독약을 마셨고, 구사일생해서 다시 태어나서 살아갔는데,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 다시 한 번 독약을 마셨습니다. 이 망한 나라에서는 살 수 없다는 이유로 상하이로 초반에 망명했고, 이후에 카이저수염과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면서 자기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지내면서 상하이에서 애국지사들이 올 수 있도록 기반을 다졌던 분이 바로 예관 신규식 선생입니다.

◇ 이동형> 카이저수염이라는 게 콧수염이 하늘로 올라간 멋있는 수염이죠.

◆ 김종훈> 멋있는 수염이죠. 우리나라 분들이 이런 수염을 갖기가 쉽지가 않죠.

◇ 이동형> 아까 상하이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일으킬 때까지 있었다, 이렇게 말씀해주셨는데, 그러면 김구 선생이나 윤봉길 의사의 흔적은 남아있어요?

◆ 김종훈> 윤 의사의 흔적이 홍커우 공원에 그래도 잘 전시가 되어 있는데, 제가 책에서 강조했던 부분이 우리가 흔히 역사에서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게 윤 의사와 김구 선생의 마지막 날. 서로 밥을 먹으면서 시계를 교환한 장소가 있지 않습니까? 회중시계를. 원창리 13호라 불리는 곳인데, 남아있습니다.

◇ 이동형> 그 식당이 남아있습니까?

◆ 김종훈> 그 집입니다. 2층집이 남아있습니다. 그 장소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 이동형> 우리가 가면 볼 수 있나요?

◆ 김종훈>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방금 말씀드린 예관 신규식 선생 집에서 불과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 이동형> 관광객들도 조금 가십니까?

◆ 김종훈> 표지석 하나 남아있지 않습니다.

◇ 이동형> 그건 조금 안타깝네요.

◆ 김종훈> 그런데 다만 워낙 100주년을 기념해서, 저도 작년에 한 3~4차례 가서 관리인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했거든요. 여기 우리나라의 위대한 애국지사들이 이곳에서 의거를 일으키기 전에 모였다. 그래서 그런 게 남아있고, 얼마나 백범 선생이 자기 백범 일지에서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마지막을 이렇게 서로 자리하고, 그 뒤 4시간 뒤에 실제로 의거가 일어나고, 윤봉길 의사는 시계를 건네면서 선생님, 제게는 한 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요. 그 한 시간이 왜 한 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았느냐? 그 집에서부터 홍커우 공원까지의 거리입니다. 그전 날에 사전답사를 해서.

◇ 이동형> 내 시계는 새 시계니까 김구 선생 시계와 바꿉시다, 이렇게 된 거죠. 홍커우 공원하고도 그러면 바로 가깝겠네요?

◆ 김종훈> 아닙니다. 한 시간 거리입니다.

◇ 이동형> 도보로? 자동차로?

◆ 김종훈> 자동차로요. 당시에 한 시간 거리고, 지금은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서 한 35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 이동형> 홍커우 공원도 들르면 좋겠네요.

◆ 김종훈> 좋습니다. 홍커우 공원은 상하이 내에서도 중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시민들의 흐름을 그대로 다 볼 수 있고, 거기에 윤 의사의 의거지까지 있어서 더 좋습니다.

◇ 이동형> 홍커우 공원 가면, 매헌 선생이 던진 폭탄 장소라든가, 이런 동상이라든가, 이런 게 있나요?

◆ 김종훈> 매헌 기념관이 있는데, 문제는 의거지가 비석이 잘못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매헌 기념관 입구에 의거지 표식을 해놓았는데, 그 위치는 아니고, 위치가 일단 될 수가 없고요. 루쉰 동상 앞에 거대한 광장이 있습니다. 거기서 2만 명의 일본 군경과 시민들이 모여  있을 때 거기서 의거를 일으킨 것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 이후에 일제의 폭압이 더 심해졌고, 자금 사정도 좋지 않고, 동지들도 흩어지고, 이러다 보니까 중국 내에서 임시정부가 계속 떠돌아다니지 않습니까? 나라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었는데요. 어디, 어디를 떠돌아다닌 거죠? 그 여정도 한 번 따라가 보시죠.

◆ 김종훈> 윤 의사 의거 이후에 김구 선생을 비롯해서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자싱으로 피신을 했고, 주푸청 선생의 도움을 받아서요. 그리고 당시에 32년 5월부터 우리나라 임시정부는 항저우에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대장정이 시작되는 거죠. 45년 해방까지.

◇ 이동형> 그러면 항저우 청사도 당연히 가보셨겠네요?

◆ 김종훈> 네.

◇ 이동형> 항저우 청사도 보존은 제대로 되어 있죠?

◆ 김종훈> 네, 잘 되어 있습니다. 항저우 청사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관리하는 국가관리 시설로 우리나라 임시정부와 관련된 유적지 중에 유일한 시설이기 때문에 상당히 잘 되어 있고, 재밌는 점이, 보통 우리가 임시정부 관련된 유적지를 갔을 때 김구 선생의 초상화나 흉상이 1층에 있지 않습니까? 항저우 청사는 다른 분들이 있습니다. 김철 선생, 송병조 선생, 그리고 차리석 선생. 이 의미는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 백범 선생이 중심이 되어서 했지만, 그만이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중국 정부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인 거죠. 너무 재밌었습니다.

◇ 이동형> 이렇게 터가 남아있고, 복원공사를 해서 우리가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중국과 우리의 관계가, 뭐라고 할까요? 과거의 동지였다, 이렇게 생각해야 할까요?

◆ 김종훈> 그럼요. 저는 ‘츤데레’ 같았어요. 표현이 조금 그렇지만, 참 무뚝뚝하고, 잘 안 대해주는데, 막상 마음을 터놓고 보는 순간 거기서 우리도 관리를 안 하는 유적지들을 그렇게 애틋하게 생각해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특히 자싱 김구 선생 피난처 같은 경우는 제가 작년에 갔을 때 7명밖에 오지 않았어요. 정말 이대로는 없어질 게 눈앞에 뻔한 데도 잘 관리해주고, 지켜주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래요. 중국인들도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보면서 다들 가슴 뭉클해하고, 대견해하고 했으니까 말이죠. 난징에서는 어디를 가면 좋겠습니까?

◆ 김종훈> 난징에서는 참 여러 곳이 있는데, 제가 세 군데만 꼽자면 일단 김구 선생이 윤 의사 의거 후에 장제스 총통을 만나기 위해서 기다렸던 중앙반점. 그리고 김원봉 장군이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세웠던 천녕사. 마지막으로 박영심 할머니가 위안소 생활을 했던 리지샹 위안소 유적진열관을 가봤으면 좋겠습니다.

◇ 이동형> 난징에는 위안소 유적진열관이라고 따로 되어 있는 곳이 있어요?

◆ 김종훈> 정말 잘 되어 있습니다. 잘 되어 있다는 표현이 그렇지만, 2015년 12월에 박근혜 정부 당시 우리나라가 한일 위안부 협의안을 발표했을 때 앞서서 12월 1일에 중국은 아시아 최대 규모로 난징 최중심부에 위안소를 복원했습니다. 너무 가슴이 뭉클해요. 거기 1층에 들어가는 순간 거대한 벽에 70명의 위안소 출신의 할머니들 모습이 그대로 있는데, 그중 반이 우리나라 소녀들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제대로 기억도 못하는데, 중국은 완벽하게 복원을 해서 기억하고 있고, 거기에 두 번째 19번 방이 평안도 출신의 박영심 할머니가 생활했던 그 곳이 그대로 전시가 되어 있어요.

◇ 이동형> 이 점은 우리가 반성할 필요가 있겠네요.

◆ 김종훈> 반성해야 합니다.

◇ 이동형> 물론 저희도 마포에 기념관이 있기는 합니다만.

◆ 김종훈> 다만 이것을 지금의 시선으로 보느냐, 아니면 당시 원형 그대로 잊지 말자고 하는 것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차이거든요. 저는 가서 봤을 때, 내부 촬영이 금지가 되어 있어요. 그만큼 증거 자료나 이런 것이 감당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 이동형> 중앙반점. 김구 선생과 장제스의 회담이 있었던 장소라고 하는데, 어쨌든 우리 입장에서는 장제스가 여러모로 우리를, 특히 임시정부를 많이 도와줬죠?

◆ 김종훈> 그럼요. 부인할 수 없습니다.

◇ 이동형> 특히 금전적으로 너무 많은 도움을 줬고. 그런 곳인데, 그래서 한 번 가볼 만하다.

◆ 김종훈> 그리고 지금도 숙소로 난징 최중심부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평가받고 있고, 방금 말씀드린 리지샹 위원소에서 걸어서 200m입니다. 

◇ 이동형> 지금 여기 그대로 호텔로 변한 거예요?

◆ 김종훈> 호텔로 쓰고 있습니다.

◇ 이동형> 여기 묵어도 되겠네요? 묵으면서 식사도 할 수 있고.

◆ 김종훈> 거기서 묵고, 리지샹 위안소도 바로 갈 수 있고요.

◇ 이동형> 책을 보니까 조식 포함해서 7만 원, 9만 원 정도 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비싸지도 않고요.

◆ 김종훈> 그런데 유의할 점은 제가 거기는 못 머물렀는데, 예약을 하고 갔음에도 머물지 못했습니다. 잘못 예약했기 때문에. 영어로 Center Hotel입니다. 그런데 바로 1km 옆에 Central Hotel이라고 있습니다. 외국 사이트로 예약할 경우는 헷갈릴 수가 있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난징 외곽의 천녕사. 사찰입니까?

◆ 김종훈> 네, 도교 사원입니다. 1932년에 김원봉 장군을 비롯해서 여러 의열단 열사들이 조선혁명간부학교.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들을 길러내기 위해서 난징 외곽에 훈련소를 만들었고, 3기가 훈련을 받았던 장소가 남아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천녕사입니다.

◇ 이동형> 지금 김 기자 임정로드 4000km 말고 김원봉 선생의 발자취를 쫓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요?

◆ 김종훈> 네, 다음 주에 출발합니다.

◇ 이동형> 다음 주에 출발해요?

◆ 김종훈> 한 3주간. 아시다시피 올해 의열단 100주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약산 로드라는 제목으로 또 김원봉 장군의 흔적을 청년의 시각으로 가서 사람들이 직접 걸을 수 있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상당히 먼 거리일 텐데요.

◆ 김종훈> 그래서 길림성을 시작으로 베이징 갔다가, 작년에 임시정부에 집중해서 4000km을 썼지만 실제로 간 거리는 한 7000km 이상입니다. 조선의용대의 흔적을 직접 다녔고요.

◇ 이동형> 제가 몇 년 전에 약산 선생에 대한 다큐를 만들려고 선발대만 파견한 적이 있거든요. 그 선발대가 굉장히 많은 길을 걸었는데, 결국은 사전답사만 하고 만들지 못했어요. 시간이 없는 관계로 만들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는데, 아마 저희 선발대가 갔던 그 길을 이번에 가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기록 많이 만들어서 오시기 당부드리고요.

◆ 김종훈> 진심을 다하겠습니다.

◇ 이동형>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 많은 곳을 소개는 못했는데, 또 이야기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이 책에서는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 김종훈> 제가 어찌 보면 임정로드 4000km를 쓸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서두에 나왔던 멘트잖아요. 백범의 계단에 서서 나도 사진 한 장 찍고 싶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은, 광복을 맞은 충칭 연화지 청사의 백범의 계단이거든요. 2017년 12월 11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고, 아시다시피 1945년 11월에 김구 선생을 비롯해 내각 요인들이 마지막 사진을 찍었잖아요? 그 계단에 서면, 좋은 옷을 입고 그 계단에 서면 뭉클합니다. 헛헛함도 같이 느껴지고요. 그래서 그곳은 꼭 가보셨으면 좋겠어요. 산티아고 순례길 가기 전에 저는 임정로드 먼저 갔다 오면 이거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고마움과 헛헛함이 동시에 느껴져요.

◇ 이동형> 왜 좋은 옷 입고 사진 찍은 거죠?

◆ 김종훈> 왜냐하면 그 귀한 장소에 그냥 막 가서 찍는 것보다 좋은 옷 입고 가서 찍으면 되게 오래 기억에 남거든요. 저도 실제로 20박 21일 동안 다니면서 진공 포장한 자켓을 마지막 날에 풀었는데, 그날 비가 오더라고요.

◇ 이동형> 아까 김원봉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의열단 단원들이 의거 전에 항상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사진을 찍었잖아요? 이 모습이 마지막일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좋은 옷 입고 찍은 건 아니고요?

◆ 김종훈>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저는 여행 책으로 이 책을 만들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가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고, 내가 좋은 옷을 입고 찍으면 다른 사람들이 가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리라고 보거든요. 당신도 가 봐라, 추천도 할 수 있고. 그래서 특히 마지막 장소인 연화지 청사 백범의 계단에는 좋은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 이동형> 지금 김 기자가 이야기한 산티아고 순례길도 좋지만, 임정로드부터 가자. 이거 좋은 아이디어네요. 저는 이런 국민운동이 한 번 있었으면 좋겠네요.

◆ 김종훈> 실제로 그랬으면 좋겠고요. 다행히 오늘 여름을 기해서 청년들이 실제로 이 책을 들고 많이 떠나더라고요. 저한테 연락도 많이 오고요.

◇ 이동형> 이런 관광상품 한 번 개발해 봐요.

◆ 김종훈> 오마이뉴스에서 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그렇군요. 아까 얼마 동안 다녀왔다고 했죠?

◆ 김종훈> 실제로 간 거리는 작년에 처음부터 끝까지 후배들과 20박 21일이지만 빠르게 가면 요즘에는 7박 8일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고속철이 워낙 발전해서요. 

◇ 이동형> 네. 우리 김 기자는 꽤 오랜 시간 돌아다닌 것 같은데.

◆ 김종훈> 저는 조금 농밀하게 보고 싶었어요.

◇ 이동형>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 김종훈> 헛헛하고 아쉬웠는데, 갔다 오고 나니까 굉장히 뿌듯해요.

◇ 이동형> 옛날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던 그 모습이 그려집니까?

◆ 김종훈> 실제로 신규식 선생이 살았던 100년 전 집이 남아있어요. 그래서 돌아오고 나서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뭐냐면 현충원을 찾게 되더라고요. 현충원에 가면 친일파들의 무덤과 애국지사의 묘역이 서로 100m 거리로 위 아래로 있어요. 신규식 선생과 박은식 선생을 93년도에 중국에서부터 모셔왔는데, 그 옆에 친일파 출신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알면 어떤 생각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할 일이 더 많더라고요.

◇ 이동형> 그래요. 지금 꽤 오랫동안 길 걸으면서 다양한 감정이 들고, 또 책으로 엮어내고,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았죠?

◆ 김종훈> 많이 팔렸습니다. 그리고 조금 가볍게 만들었잖아요. 많이 팔렸습니다.

◇ 이동형> 읽기 쉽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구나 다 읽고, 또 한 번씩 자취를 밟아보고 하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알겠습니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벌써 열 번째 시간을 맞았는데요. 오늘은 ‘임정로드 4000km’의 저자,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와 함께했고요. 김종훈 기자, 곧 약산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고 하니까 그게 또 뭔가 성과물로 나오면 다시 우리 방송 한 번 출연해주시기 바랍니다.

◆ 김종훈>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이동형> 끝으로 청취자 여러분들께 한 마디 하고 가주세요.

◆ 김종훈> 제가 걸으면서 많이 생각한 게 걷지 않는 길은 사라지고, 함께 걸으면 길이 된다는 생각인데, 많이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동형> 임정로드 4000km, 여러분들도 많이 사랑해주시기 바라고,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10편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김종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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