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 방송시간 : [월~금] 1·2부(7:15~8:00), 3·4부(8:10~9:00)
  • 진행: 김호성 / PD: 신아람 / 작가: 황순명, 김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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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온 "5.18, 전두환과 신군부가 정권 찬탈을 위해 기획"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9-05-16 08:30  | 조회 : 419 
YTN라디오(FM 94.5)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9년 5월 16일 (목요일)
□ 출연자 :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전두환이 창당한 민정당이 이어져 자유한국당
-5.18 망언, 자유한국당 속죄하는 마음으로 정리할 때
-자유한국당 하루 빨리 특조위 구성해 진상규명 나서야
-황교안, 정치지도자라면 기념식 취지에 맞는 언급 해야


◇ 김호성 앵커(이하 김호성): 5·18 민주화운동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 직전 광주를 방문했다. 그리고 사살명령을 했다”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한 중요한 증언들이 5.18 민주화운동 39주년을 앞두고 나오고 있습니다. 관련 증언자들의 기자회견을 주관한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최고위원, 연결하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하 박광온):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호성: 지난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 열린 자리에서 있었던 말입니다. 그때 의원께서 사회를 맡으셨잖아요. 어떤 자리였습니까? 설명을 좀 해주십시오.

◆ 박광온: 저는 그때 두 분 증언을 들으면서 그동안 그냥 뭐라고 규정된 게 5·18 민주화운동 이렇게 그냥 우리가 이해했잖아요, 표피적으로 .그런데 그날 들으면서 저는 이것은 신군부의 국민학살 만행이다. 그렇게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서 기획했다. 충돌과 무력진압까지 다 기획한 것이라는 게 그 두 분 증언의 골자거든요. 그리고 그것을 광주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했고 항쟁했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다는 건데. 사실 5·18이 1980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지금 아마 이 방송을 듣는 분 가운데서도 그 사태가 있기 전에 태어나지 않은 분도 꽤 많으실 거예요. 그러니까 교과서라든지 미디어라든지 이런 걸 통해서 접하셨을 텐데, 그날 그 두 분의 증언을 들으면 정말로 이게 과연 한국사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일까. 정말 국민들을 향해서 군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국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이런 만행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런데 그게 버젓이 있었고 실제 그 사람들이 다 집권을 했어요. 집권해서 10 몇 년 동안을 대한민국을 사실 지배했단 말이죠. 정말 굉장히 아픈 역사고, 또 하나 광주시민들이 그것을 끝까지 목숨 걸고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지킨 것은 정말로 높이 평가돼야 할 일이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그 증언을 한 분들은 굉장히 사실에 가깝게 있었던 분들이더라고요. 말씀하는 걸 들어보면 김용장 선생은 당시 미 육군 정보여단 정보관으로 그 열흘 동안 무려 40건의 보고서를 미 국방부에 보냈다는 것 아닙니까. 그게 1년 동안 그 부대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정보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당신 혼자서 40건을 보냈으니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열흘 동안 있었는가 하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고요. 또 하나 허장환 선생은 당시 그 전두환 신군부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보안사령부의 특명부장이란 자리를 맡고 있었어요. 그래서 광주에서 일어난 처음부터 끝까지를 이 양반이 다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런 기획과 음모와 오갔던 이야기들,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어서 저는 그날 그 회견이 그동안 뭔가 미흡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5·18의 진상에 접근할 수 있는 핵심적인 키, 열쇠를 제공했다고 보고요. 지금까지 5·18을 폄하하고 부정하고 모욕하는 사람들, 왜곡된 정보, 북한군이 와서 일으킨 폭동이라는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흔들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경고한 회견이었다. 이렇게 느꼈습니다.

◇ 김호성: 지금 두 사람 말씀하신 김용장 씨와 허장환 씨 두 분의 이야기를 보면 첫 번째 밝혀졌다고 하는, 증언을 밝혀진 내용은 당시에 전두환 씨가 광주에 왔다라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것을 미군에 보고까지 했던 증언이었잖아요.

◆ 박광온: 그렇죠.

◇ 김호성: 그렇다면 그때 당시 전두환 씨가 광주에 갔다면, 거기에서 우리가 쟁점화할 수 있는 사안들 중요한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을 우선순위를 둬야 할까요? 

◆ 박광온: 핵심은 지금까지 전두환 씨는 자기가 광주에 간 적 없다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회고록에서도 그렇고 재판에서도 그랬는데. 이 두 사람은 그때 당시 광주에서 일어났던 보안사령부를 중심으로 한 그런 기획 시나리오 이것에 가장 가깝게 접근해 있었던 사람들인데, 이분들이 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5월 21일 12시 무렵이고 그 장소는 K57, 이건 전투비행단의 이름인데요. 광주 전투비행단에 왔다. 그리고 거기서 회의를 했다. 이게 이야긴데 그러고 나서 한 시간 뒤에 도청 앞에서 사격이 이뤄졌고 그 사격으로 광주시민들이 쓰러졌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 두 분은 ‘합리적 추정’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김용장 씨는요. 그런데 그분은 정보관 출신답게 굉장히 자기가 보고한 것 팩트와 그리고 내가 추정하는 것을 구별해서 이야기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절제된 표현을 쓰던데요. 그래서 오히려 자신의 보고의 신뢰도를 높였다, 이렇게 저는 보는데. 그분은 그 둘 사이의 연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야기했고요. 허장환 씨는 그것보다 사실 더 깊숙하게 당시 신군부의 핵심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사살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렇게 증언했어요.

◇ 김호성: 발포명령 했다는 이야기죠?

◆ 박광온: 그렇죠. 김용장 씨가 구별해준 게, 발포명령과 사살명령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발포라는 것은 군인 수칙에서 초병이 위해를 당할 우려가 있을 때 또는 자기가 관할하고 있는 지역이 침탈당할 우려가 있을 때, 침탈당했을 때 발포를 하는 거라는 겁니다. 그건 발표하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발포라는 건 공포가 될 수도 있고 위협사격이 될 수도 있고 여러 형태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 5월 21일 1시 이후에 있었던 그것은 그냥 단순 발포가 아니라 정확하게 조준해서 사격했다는 겁니다. 허장환 씨가 당시 그걸 목격했다는 거예요. 무릎쏴 자세로 조준해서 사격했기 때문에 이건 그냥 발포가 아니라 사살이다. 이렇게 정의를, 딱 구별했어요, 허장환 씨가. 그것도 저는 굉장히 의미 있는 규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김호성: 두 사람의 증언 이후에 어제 나온 이야기들을 보면 일종의 속보 차원의 보도가 있었는데, 1980년 당시에 2군 사령부가 작성한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에 보면 전두환 씨가 ‘굿 아이디어’ 이런 식의 메모를 했다는 문건이 발견됐단 이야기가 있습니다.

◆ 박광온: 저도 그걸 봤습니다. 봤는데요. 그러니까 그것이 무력진압을 하겠다는 계획이죠. 거기에다가 ‘굿 아이디어’라고 썼는데 그건 동의하는, 승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장환 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신군부의 핵심 수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입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사회자님도 아시겠지만 1979년 10월 26일 그 사건 이후에 12월 12일 날 신군부가 군내 반란을 일으킨 것 아닙니까. 그래서 계엄사령관도 자기들 입맛대로 바꾸고, 전두환 씨가 보안사령관이 그때 당시 안기부장을 겸해요. 겸하고 또 합수부장도 맡고 있고. 그러니까 실제로 그때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권한, 전권을 전두환 씨가 쥐고 있었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전두환 씨는 사실상 실질적인 결정권자였다는 거죠. 모든 결정, 핵심적인 결정의. 그러니까 저는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문건이다, 이렇게 봅니다.

◇ 김호성: 결국 이 같은 내용들이 국회에서 진상조사를 통해서 매듭지어져야 하는데 지금 진상조사위원회는 출발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어떤 식으로 국회 안에서 이 문제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 박광온: 저는 그래서 지금 자유한국당 지도부에게 아주 절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일제 식민지 지배 특히 그 가운데 있었던 징병 징용 위안부 여러 가지 그런 식민지배의 부당함과 만행에 대해서 일본에 대해서 사과하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진상규명 제대로, 진상을 인정하고 과거를 똑바로 보고. 저는 자유한국당 지도부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사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집권하는데, 집권하기 전에 민정당을 창당하죠. 그래서 그 민정당이 쭉 내려와서 지금 자유한국당으로 온 거거든요.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저는 자유한국당이 이제는 과거의 그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제가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과거의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잘못한 것이다. 우리의 선배들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 이걸 인정하고 우리 새로운 미래로 가자. 이게 바른 자세지, 그것을 자꾸 부정하려고 하고 회피하려고 하는 일이 자유한국당 내에서 일어났잖아요. 전당대회 과정에서 5·18 유공자가 괴물이니, 북한군이 내려와서 일으킨 폭동이니, 이런 얘기들이 국회 안에서 이뤄졌어요. 이것에 대해서 징계하라고 요구했더니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유한국당이 이제는 이 문제를 솔직한 자세로 보고 정말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정리를 해야 할 때가 왔다. 그래서 저는 빨리 특조위 구성에 응하고 진상규명에 나서라는 겁니다.

◇ 김호성: 그렇다면 그 같은 연장선상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당장 이틀 앞으로 다가온 5·18 민주화운동 현장에 광주를 찾아가는 문제, 기념식 참석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게 사실 이미 지난 1997년에 법정기념일로 제정돼 있는 건데 그 현장을 제1야당의 대표가 찾아간다는 부분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박광온: 저는 사실은 보훈처에서 초청을 했잖아요. 이게 국가기념일이기 때문에 정당 대표를 초대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겁니다. 그것은 어떤 절차적 형식적 과정이고요. 정치적으로는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김용장·허장환 씨의 증언으로 해서 더욱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되어가고 있는 이 광주 학살에 대해서 정말 진정성 있게 뭔가 언급을 해야 해요. 제가 그 표현을 정확하게 하진 않겠습니다. 그건 그들 몫이에요. 사죄를 한다든지, 아니면 진상규명에 더욱 앞장서겠다든지. 뭔가 표현해야 하는 겁니다, 이 시점에. 그렇지 않고 광주를 간다는 것은 저는 광주의 희생영령이나 유가족이나 광주 시민들에게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칠 것인가,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가. 이거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제가 정말 충정으로 조언하는 거예요.

◇ 김호성: 의원님, 기념식 참석을 그러면 지금 얘기하신 전제조건, 사과 또는 사죄 이런 것 없이 참석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 박광온: 저는 그렇게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자유예요. 참석하고 안 하고는. 그러나 그 참석이 의미를 가지려면 왜 우리가 거기에 가서 참석을 하고 기념식을 하는 겁니까. 39년 전에 광주시민들의 무참한 희생, 그리고 저항정신을 배우고 기리고 당시 신군부의 학살 만행에 대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자리거든요. 그러면 저는 그 취지에 맞아야 한다. 적어도 정치지도자라면. 정치지도자가 아니라면 가만히 앉아있다 와도 관계없어요. 조용히 마음속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가야겠다, 이러면 되겠지만 정치지도자라면 공개적으로 그런 이 기념식에 참여하는 취지에 맞는 언급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 김호성: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박광온: 네.

◇ 김호성: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최고위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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