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성기, 오늘
  • 진행자: 김명숙 / PD: 신아람 / 작가: 조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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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웃음” - 개그맨 이홍렬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6-06-16 11:35  | 조회 : 5144 
YTN라디오(FM 94.5) [당신의 전성기 오늘]

□ 방송일시 : 2016년 6월 2일(목요일)
□ 출연자 : 개그맨 이홍렬


감성 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웃음”


◇ 이익선 DJ(이하 이익선): 매주 목요일은 내 안의 무뎌진 감성을 찾아 청춘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감성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이 시간 마련하고 있어요. 사회 각계에 다양한 분들의 지혜를 빌려보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 모실 분, 정말 언제나 밝은 청춘이십니다. 날씨로는 맑음, 이 음악을 들으시면 오늘 나오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아채실 수 있을 거예요. (귀곡산장 주제곡) 아셨죠? 개그맨이시면서 또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이홍렬 씨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개그맨 이홍렬(이하 이홍렬):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익선: 이 노래가 언제적 노래죠?

◆ 이홍렬: 저를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웃음) 93년도죠. 93년도에 M본부에서 방송되었던 ‘오늘은좋은날’의 ‘귀곡산장’이라는 코너 주제가 송인데요.

◇ 이익선: 할머니로 나오셨죠?

◆ 이홍렬: 그렇죠. 예전에 임하룡 씨하고 같이 이 노래를 부르고 했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아직까지도 귀곡산장을 기억해주시는 분이 많아가지고,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보통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들이 얼마나 많이 생겨났다가 사라집니까? 그런데 그게 93년이면 벌써 25년 가까이 되는데,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코너 이름을 알아주신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나저나 오래간만입니다.

◇ 이익선: 네, 반갑습니다.

◆ 이홍렬: 너무 반가워요. 예전에 그 ‘여유만만’에서 제가 사회 볼 때 결혼직전에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 이익선: 맞습니다.

◆ 이홍렬: 그게 몇 년 전이죠?

◇ 이익선: 벌써 한 12년 되었어요.

◆ 이홍렬: 그동안 애는 몇이나 나았어요?

◇ 이익선: 둘 낳았어요.

◆ 이홍렬: 벌써 많이 컸겠네요. 몇 학년이에요?

◇ 이익선: (웃음) 아니 그런데, 오늘은 제가 사회를 보고...

◆ 이홍렬: 궁금한 거 먼저 물어볼 수도 있지.

◇ 이익선: 초등학생입니다.

◆ 이홍렬: 남편 되시는 분이 예전에 교수인가 그러셨던 것 같은데...

◇ 이익선: 아니에요. 회계사예요.

◆ 이홍렬: 맞아, 서로 얼마나 좋아들하고 그런 모습이 비춰졌는지, 그때 이익선 씨가 기상 캐스터로 굉장히 많은 분들의 사랑을, 최절정으로 받고 있을 때예요. 그래서 많은 분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래서 과연 이익선 씨를 데려갈 신랑이 누구인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졌었죠.

◇ 이익선: 감사합니다. 제가 ‘당신의 전성기 오늘’을 맡고도 제 이야길 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또 기회를 주시네요.

◆ 이홍렬: 그런데 여기 팀이 굉장히 재밌는 게 뭐냐면, 여기 PD하고도 제가 사전에 통화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남대문으로 가면 되죠?”하고, 제가 농담으로 한 이야기거든요. 제가 여기 TV에서도 ‘소나기’라는 프로를 했었잖아요. 사옥 옮긴 걸 얼마나 잘 알겠어요. 그랬더니 기겁을 하면서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오늘은 또 제가 “여기 남대문이에요.” 그랬더니, 또 익숙해졌다고 “네, 서울역으로 마중 나갈게요.” (웃음)

◇ 이익선: (웃음) 그러셨구나, 재치만점이에요.

◆ 이홍렬: 그래서 우리는 어디 가서 이렇게 툭툭 치는 게 버릇이 되어 있는데,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계셔서 황당할 때가 있어요.

◇ 이익선: 저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었는데, 이제 적응이 막 되려고 합니다.

◆ 이홍렬: 제가 한 번은 어떤 가게에 가가지고, 그때까지 한 1만 원 정도 나왔을 때예요. 그래서 카드 결제를 하려고 카드를 드렸더니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일시불로 하실래요? 카드로 하실래요?” 이거 꼭 물어보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저, 10년 할부로 해주세요.” 즐겁자고 한 이야기예요. 그랬더니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저희는 그렇게 길게는 안 되는데요.” (웃음) 그러면 제가 갑자기 할 말을 일어요.

◇ 이익선: 네, 아마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벌써 눈치 채셨을 것 같아요. 왜 이홍렬 씨를 모셨는지를.

◆ 이홍렬: 왜요?

◇ 이익선: 진행자인 제가 지금 진행을 못하고 웃고 있으니까요. 웃음 때문에 모셨습니다. 그나저나 잘 지내셨어요?

◆ 이홍렬: 네, 잘 지냈습니다. 요즘은 그렇게 방송이 많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잘린 방송들이 많고요.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격주로 종편에서 녹화나 하고, 그리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까 아프리카도 다녀오고 해외 촬영도 다녀오고, 그런데 작년에 했던 악극에서 변사 역할을 맡았거든요.

◇ 이익선: ‘불효자는 웁니다’죠? 장안의 화제...

◆ 이홍렬: ..까지는 안 됐지만, 조금 화제는 되었어요.

◇ 이익선: 변사 역을 엄청 재미있게 잘 하셨잖아요?

◆ 이홍렬: 네, 그래가지고 거기서 다시 하게 되어서 9월, 10월에 그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들어가야 하고요.

◇ 이익선: ‘여보 나도 할 말 있어’는 뭐예요?

◆ 이홍렬: 그건 소극장 연극인데요. 그걸 같이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연극이나 악극, 이런 걸 참 하고 싶었는데, 방송에 밀리고 하다보니까 할 기회가 없었는데, 또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기회가 주어져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 이익선: 그렇군요. 그런데 S본부에서 하는 희망TV, 개그맨 최초로 아프리카 방문을 하셨어요.

◆ 이홍렬: 네, 저도 몰랐는데 갔다와보니까 개그맨으로서는 처음 갔다 왔다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 이익선: 그런데 그때 올라온 사진들을 봤는데요. 제가 일찍이 본 적 없는, 가슴 깊이 감동하고 울컥하시는 그 표정이 있으신 거예요. 어떠셨어요?

◆ 이홍렬: 그럴 수밖에 없죠. 특히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는 6.25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한국전 참전했던 유일한 나라잖아요? 그런데 그 나라는 우리를 도와줬는데, 우리는 이렇게 우뚝 섰는데 아프리카는 여전히 힘들거든요. 그래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이익선: 네, 이홍렬 씨를 모시고 오늘과 다음주, 2주에 걸쳐서 방송할 텐데요. 오늘 우선 중장년층 여러분의 웃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다음 주는 나눔으로 할 거고요. 3041님, “와우, 홍렬 아저씨다, 완전 반가워요 뺑코 아찌!”

◆ 이홍렬: 네, 감사합니다.

◇ 이익선: 1775님, “옛날 귀곡산장 기억나네요. 옛 추억이죠. 오늘도 전성기세요.”하셨고요. 5917님, “옆집에 계실 때 여기 저기 돌아다녀봐야 별 거 없다고 채널을 용접해버리시더니, 여기서 뵙네요. 요즘 어디 계세요?” 이게 무슨 말이죠?

◆ 이홍렬: 아, 제가 라디오 교통방송 진행할 때 다른 데로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그 채널로 용접해 놔라, 이렇게 말했었는데요. 지금은 여기로 용접해 놓으면 됩니다.

◇ 이익선: 네, FM 94.5MHz입니다. 4992님 “홍렬이 형, 당신의 전성기 오늘에 오신 거 환영합니다.”

◆ 이홍렬: 아유, 감사합니다.

◇ 이익선: 그런데 개그맨이라는 직업은 항상 남을 웃기다보니까, 그리고 인터뷰이가 되어서 역할을 하시는 게 많지 않으시잖아요? 주로 남에게 질문을 해주시고 그러시니까요?

◆ 이홍렬: 조금 편한 건 있어요. 물어보면 대답하며 되니까요.

◇ 이익선: 웃기는 능력은 타고 난 건가요? 노력한 결과인가요?

◆ 이홍렬: 타고 난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나중에는 노력을 제가 많이 했었고, 제 소질을 제가 스스로 발견하고 더 노력을 많이 했는데요. 타고 난 것도 조금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를 보니까 그 피도 조금 이어 받았다, 어머니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옛날에 참 어려웠잖아요. 밥상에 둘러앉으면 누구 밥 먹는 흉내 내고, 어머니께서 이렇게 막 해가지고 우리들이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나고요. 저희 아버지는, 옛날 아버지들이 다 그렇죠. 집에 와서는 조금 과묵하신 편이었는데, 밖에 나가면 진짜 가마니 한 장만 깔아놓으면 그 위에서 많은 분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시고 그랬대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저는 잘 몰랐죠. 집에 오시면 말씀을 잘 안 합니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러시잖아요? 어쨌든 그래서 그 피를 내가 이어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것이 없다고 해서 많이 원망을 한 기간도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 들어서 돌이켜보면 내가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이런 DNA를 물려주셨구나, 이에 얼마나 감사하게 느껴지는지 몰라요.

◇ 이익선: 그렇군요. 4111님, “이홍렬 씨 하면 학구열이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도 공부해야 하나요? 그래서 유학가신 건가요?” 저도 기억나거든요. 만학도셨죠?

◆ 이홍렬: 그렇게 말씀하시면 조금 쑥스럽고요. 이 직업을 오래 가져야 하면 아는 게 많고, 조금은 산 경험들이 많아야겠다 싶어서 스스로 실행에 옮긴 건데요. 사실 실행에 옮기면서 느낀 게 많습니다. 어떤 것들을 느꼈냐면 나는 공부 머리가 정말 아니구나, 해도 해도 안 되는 게 정말 많다, 이런 점을 느꼈고, 그래도 공부 머리가 아니더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직업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이익선: 그런데 그때 유학을 일본으로 가셨죠?

◆ 이홍렬: 그게 벌써 언제적 이야기인데요.

◇ 이익선: 91년이죠?

◆ 이홍렬: 네, 91년에 가서 93년에, 제가 대학을 조금 늦게 들어가서요.

◇ 이익선: 87학번이시더라고요.

◆ 이홍렬: 맞습니다. (웃음)

◇ 이익선: 조사를 다 했습니다.

◆ 이홍렬: 네, 그래요. 졸업을 91년에 하고, 그때 2년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25년이 넘었네요.

◇ 이익선: 저는 기사 나오는 걸 봤거든요. 일본 유학가신다고요. 79년에 데뷔하셨고, 87년에 대학에 가시고, 그리고 유학도 갔다 오신 거죠.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시는 거잖아요?

◆ 이홍렬: 그렇죠. 그런데 왜 질문 하시고 다른 곳을 자꾸 보세요?

◇ 이익선: (웃음) 광고 듣고 와야 해서요.

◆ 이홍렬: (웃음) 듣고 와요.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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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선: 감성 토크쇼 청춘을 깨워라, 이홍렬 씨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늘 웃음 이야기인데요. 길거리에서 가만히 신호대기 중에 사람들 표정을 보면 웃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 이홍렬: 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웃는 횟수가 점점 적어지고, 또 나이가 60, 70, 이렇게 넘어가면 나중에는 제로가 됩니다. 제로가 되는데 제가 그 쪽에 강의를 많이 하러 다닙니다. 즐겁게 사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니는데, 지금 그 말씀 하시니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남자의 경우에는 나이 40이 넘으면 거울 앞에 섰을 때 아버지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대요. 그 이야기가 뭐냐면, 예전에는 아무리 아버지 닮았다고 해도 실감이 안 났는데 자기가 나이가 들게 되면 아버지 모습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요. 그게 참 마음에 와 닿고요. 그 다음에 그 나이가 넘어가서 50대, 60대가 되면, 거울 앞에 서면 어떤 걸 느끼냐면, 내가 화 나 있어요. 나이가 들면 가만히 있으면 화난 얼굴이에요. 만유인력에 의해서 밑에서 피부를 당기는데, 젊었을 때는 당겨도 피부가 안 가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가죠. 가지 말라도 그쪽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거울 보면 화난 얼굴이 되죠.

◇ 이익선: 입술이 거꾸로 U자 모양이 되죠.

◆ 이홍렬: 그래서 저는 웃음을 줘야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니까 나오기 전에 억지로 몇 번 웃다가 나오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 이익선: 일부러?

◆ 이홍렬: 네.

◇ 이익선: 그게 어떻게 되세요?

◆ 이홍렬: 되죠. (웃음) 이렇게 몇 번 하다보면 또 되고요. 그게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제가 꼭 주장하는 게 뭐냐면 웃을 때 조금 더 웃는 거예요. 약간씩만 오버하게 되면 그게 습관이 조금 붙을 수 있죠. 그래서 웃는 다는 게 참 중요한 거고요.

◇ 이익선: 억지로라도 소리 내서 웃는 연습을 한다?

◆ 이홍렬: 네, 어렵지만.

◇ 이익선: 그렇군요. 9110님, “정동 MBC 앞에서 우연히 뵀었는데 그 기억이 새롭네요. 그땐 마르셨고 얼굴에 코만 보였어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고 계셨는데 재미난 리액션도 기억납니다.”

◆ 이홍렬: 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게 우리로서는, 정말 매사에 행동을 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 이익선: 그렇죠.

◆ 이홍렬: 예전하고 달라서 요즘에는 언제 어느 때에 카메라가 돌고 있을지 몰라요. 언제 나를 비추면서 동영상으로 담을지 모르니까요.

◇ 이익선: 이제는 리액션도 신경을 쓰시나봐요?

◆ 이홍렬: 그런데 제가 수다를 워낙 많이 떠니까요. 한번은 집사람이 인터넷을 보면서 막 깔깔거리고 웃는 거예요. 그래서 뭔지 보니까 인터넷에 저를 봤다는 사람이 글을 올렸어요. 그런데 그 댓글 달린 게, 저희 집사람이 겨울에 아주 두꺼운 패딩 입고 저하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거든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 옆에 어떤 아저씨가 수다 떨고 가고 있더라, 그래서 봤더니 이홍렬 씨더라, 이렇게 올린 글을 보고서, 언제 어디서나 수다 떠는 걸 누가 지켜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익선: 정말 피곤하시겠어요. 그런데 제가 드리려는 질문을 1341님이 주셨어요. “이홍렬씨도 웃음이 안 나오실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보통 개그맨들한테 사람들이 자꾸 웃겨주세요, 이러는데 내가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거나, 일도 아니고, 그냥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 이홍렬: ‘웃겨 주세요’하고 말을 걸게 되면 벌써 그게 걸림돌이 돼요. 부담으로 다가오니까요. 그러니까 웃겨달라기 보다도 말을 유도해내는 것이 더 좋죠.

◇ 이익선: 그러면 그걸 떠나서 이홍렬 씨가 지금까지 사시면서 인생에서 웃을 수 없는 시기가 있으셨잖아요? 당신의 전성기 오늘이라는 프로가 존재하는 이유도 웃을 수 없는 삶 속에 있으시더라도 힘내시라고 하는 메시지거든요.

◆ 이홍렬: 그런데 저는 그때는 정말 웃을 수 없었던 건데, 데뷔 때입니다. 79년도, 정확하게는 78년도에 허참 씨가 데뷔를 시켜주셨는데, 79년도 1월 1일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또 80년 1월 15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요. 그러니까 저는 데뷔 초에 부모님을 다 잃었어요. 그런데 그 데뷔 때에, 직업이 개그맨이니까 웃음을 주로 다녀야 하고, 그때가 굉장히 힘들었고, 굉장히 슬펐고, 정말 웃을 수 없는 기간이었는데 남을 웃기기 위해서 제가 조금 웃어야 하기도 했고, 그랬던 힘든 그때였던 것 같아요.

◇ 이익선: 그걸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 이홍렬: 시간의 힘으로도 이겨내고, 그리고 나는 반드시 가난의 고리를 내 대에서는 끊어야 한다, 그래서 정말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죠.

◇ 이익선: 하긴, 이홍렬 씨 옆에서 뵈면 성실하시다는 게 정말 느껴져요. 생활이든 뭐든, 아까도 제가 대기실에 있는데요. YTN에 다른 층에 멀리 근무하는 앵커들, 기자들, 와가지고 선생님 하면서 인사를 막 왔어요.

◆ 이홍렬: 두 명이었어요. 뭐. (웃음) 같이 방송하던 프로그램의 제작진하고 작가하고 반갑다고 왔었죠.

◇ 이익선: 네, 그게 그 전에 얼마나 잘하셨으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다른 층에...

◆ 이홍렬: 그런데 그건 있어요. 제가 느끼는 게, 살아보니까 특히 개그맨은 웃음을 주는 직업이니까 조금 가볍게 비춰질 수 있거든요. 그런 사람일수록 더 성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고요. 성실하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다 성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돌이켜보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키가 커요? 얼굴이 잘생겨요? 개인기가 있습니까? 그저 주어진 것에 성실한 것만이 또 한 번 나를 찾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죠.

◇ 이익선: 그렇죠. 제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할 수 없네요. 다 사실만 이야기하셔가지고요. (웃음) 그나저나 5788님이, 요즘 아재개그가 뜨잖아요? “제가 웃기려고 하면 분위기가 더 나빠져요.” 이거 진짜 너무 속상하잖아요?

◆ 이홍렬: 그런데 거기에 굴하지 마시고 계속 하세요. 계속 하시면 그 노력에 의해서 또 많은 분들이 즐깁니다. 아재개그가 요즘 타이틀이 바뀌어서 아재개그이지, 옛날로 치면 최불암 시리즈, 이런 거잖아요? 최불암 시리즈라고 하면 저는 지금도 재밌는 게 하나 있는데, 이게 누구나 다 아는 건데 제가 열심히 하는 것 보고 재밌게 들으면 또 재밌게 들리는 거예요. 감자 삼형제 이야기인데요. 감자 삼형제가 어느 날은 자기들이 진짜 감자인지 아닌지 너무 궁금해서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일 큰 감자가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물어봅니다. ‘할아버지, 제가 감자 맞나요.’ 그랬더니 할아버지 대답이 ‘당근이지.’ 그래서 이 감자가 너무 좌절을 해서 ‘아, 나는 정말 감자가 아니구나.’ 그래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해서 그 감자가 감자튀김이 되었대요. 그래서 두 번째 감자가 자기도 감자인 걸 확인하려고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할머니 저 감자 맞아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오이야’ 그래서 두 번째 감자도 실망을 하고 장렬한 죽음을 맞이해서 포테이토칩이 되었어요. 막내 감자가 남았잖아요? 이 막내감자가, 두 형은 아니더라도 꼭 자기는 감자인 걸 확인받고 싶어가지고 이번에는 최불암 씨를 찾아갔습니다. ‘저 감자 맞아요?’ 그랬더니 최불암 씨가 하는 이야기가 ‘파~’ 그래서 이 감자도 실망을 하고, 감자탕이 되었는데요. 지금도 감자탕에 뒤져보면 파하고 자그만 감자하고 엉켜 있는 걸 볼 수가 있어요.

◇ 이익선: (웃음) 이게 아재개그죠.

◆ 이홍렬: 이거 다 아는 거잖아요?

◇ 이익선: 그런데 왜 웃기죠?

◆ 이홍렬: 다 아는 건데도 웃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웃는 거고, 또 해도 재밌는 거죠.

◇ 이익선: 그러면 내가 웃기고 싶은데 웃길 수 없을 때, 막 메모해가지고 그걸 보면서 해도 되나요?

◆ 이홍렬: 그렇죠. 아주 좋은 질문을 했어요.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면 두 번 웃을 수 있어요. 너무 재밌어서 메모를 하고, 또 그 메모한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를 하는데, 이걸 이야기할 때 주의점은 자기가 먼저 웃으면 안 돼요.

◇ 이익선: 제가 그래요.

◆ 이홍렬: 꼭 자기가 먼저 웃는 사람 있죠. 재밌는 이야기 하다가 자기가 먼저 가버려요. 그러니까 그것만 조심하시면 되는데요. 이야기를 이렇게 전달하다보면 자기 스스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알게 되요. 이 이야기는 먼저,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게 더 효과가 있더라, 이걸 알게 되는 거죠.

◇ 이익선: 그렇군요. 일단 오늘 두 가지 팁 주셨어요. 내가 지금 웃을 기분이 아니거나 웃을 준비가 안 되었어도 일단 소리 내어서 웃는 연습을 하라, 그걸 먼저 팁을 주셨죠.

◆ 이홍렬: 그것보다 자기가 웃을 때 조금 더 오버해서 웃는 버릇을 들이면 좋아요. 소리 내서 억지로 웃는 건 어려워요. 그러니까 자기가 웃을 때, 그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어른들은 하루에 20~40번 웃고, 아이들은 200~400번 웃는데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이후에도 웃을 일이 있어요. 그게 즐거운 대화 가운데에 오거든요. 그때 조금만 더 웃으면 됩니다.

◇ 이익선: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들을 웃기고자 할 때는 많이 메모하고, 본인이 먼저 웃지 말아야 한다, 네, 팁이 되셨을까요? 2080님, “홍렬님 요즘 보고파서 눈이 짓물렀어요. 어서 라디오 복귀하세요.”

◆ 이홍렬: 라디오, 라디오는 한 번 잘리면 조금 기간이 필요해요. 가만있어봐, 여기 더블 DJ로 가면 괜찮을 것 같은데, 여기 비벼볼까요?

◇ 이익선: (웃음) 오늘 저희가 ‘당신의 전성기 오늘’, 목요일 코너인 ‘감성 토크쇼 청춘을 깨워라’에서 이홍렬 씨 모시고 웃음에 대한 이야기 나눴는데요. 다음 주에 한 번 더 나와 주세요.

◆ 이홍렬: 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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