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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野, 3당합당 전-후로 YS 구분하는 건 당시 상황 잊은 것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5-11-26 09:40  | 조회 : 2599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5년 11월 26일(목요일)
□ 출연자 : 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영삼 정부 초대 비서실장)


“YS의 소원은 완전한 민주주의, 하지만 지금 정치권은 후퇴 중”

- YS는 용기와 결단, 신념의 지도자
- 3당합당은 정치적 운명을 건 선택, 몇 날 며칠 고민
- 3당합당으로 우리 시화는 안정의 길로 접어들어
- 하나회 척결, 대단한 용기. 옆에서 잠도 못잘 정도로 불안
- YS 대통령 자리에서 목표는 “민주화 완성”
- YS 상주를 자처한 정치인들, 새로운 느낌을 가져야



◇ 신율 앵커(이하 신율):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양심을 아무도 뺏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벽이 지나,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시기에 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 오늘 국가장으로 치러지죠. 그의 마지막 길, 김영삼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내신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생각해보겠습니다. 박관용 의장은 문민정부 초기 2년 동안 비서실장을 지냈고요. 이때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그리고 쿠데타의 싹을 잘랐던 하나회 척결 등 개혁과제 등을 수행한 인물입니다. 오늘 발인에도 함께한다고 하시죠, 박관용 전 국회의장 전화 연결되어 있습니다. 의장님 안녕하십니까?

◆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하 박관용): 네, 안녕하세요.

◇ 신율: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셨던 분으로서 오늘 참 착잡하시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뵌 게 언제입니까?

◆ 박관용: 금년 초에 서울대학교 병원에 입원해계실 때 찾아뵈었는데요. 원체 몸이 쇠약하고 면역성이 떨어진 것 같아서 비서진들에게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몇 달을 못 뵈었습니다.

◇ 신율: 의장님과 김 전 대통령과는 언제 인연이 맺어진 거죠?

◆ 박관용: 4.19가 있은 직후에 김영삼 당시 의원께서 부산에 오셔서, 4.19에 앞장섰던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몇 사람이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격려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죠.

◇ 신율: 그러시군요. 의장님도 그 이후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적 궤적을 상당부분 같이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박관용: 네,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같은 당에 입당해서 당 생활을 했습니다만, 국회의원을 하고 난 연후에는, 계파로 말하면 저는 계파가 없는 중도입장에서 정치를 시작했죠.

◇ 신율: 네, 하지만 민주화라는 과정에서는 함께 하셨던 분인데요.

◆ 박관용: 물론이죠.

◇ 신율: 의장님께서 생각하실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십니까?

◆ 박관용: 한 마디로 말하면 용기와 결단의 지도자, 그리고 신념의 지도자, 어떤 경우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방향과는 타협을 하지 않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 신율: 네, 지금 정치권에서는 사실 ‘YS 마케팅’이라고 할 정도로 김영삼 전 대통령 재평가와 끌어안기, 정말 열풍에 쌓여 있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은데요. 먼저 어떤 부분이 저평가 되었고, 재평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박관용: 여러 가지 평가가 그동안 있었습니다만, 지금 연세가 88세니까, 젊은 분들은 그 분의 과거 역사를 모르죠. 26살 젊은 나이에 정치에 입문해서, 바로 그 다음해부터 민주화 투쟁이 들어갑니다. 그 민주화 투쟁의 길은 정말 고되고 험난했습니다.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단 한 번의 타협도 없이, 민주화를 위한 그의 투쟁은 정말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열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 내가 민주화를 완성시키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마지막에 3당합당을 하는 그 모습에서 또 한 번의 결단력을 보게 됩니다. 그 고난의 세월을 평생 보내고, 영광스러운 자리라는 대통령에 앉았지만, 민주화를 완성시키고 부정부패를 없애고, 실명제를 하고, 군을 정리하고, 수많은 어렵고 정말 위험한 길을 결단과 용기로서 헤쳐나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참 병마와 싸우는 그 모습, 일생을 쳐다보면 과연 이런 분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합니다.

◇ 신율: 일단 하나씩 좀 짚어보죠. 제가 볼 때는 하나회 척결이요. 이거 진짜 속전속결로 이루어지고, 세 시간 만에 별들을 우수수 떨어트렸는데요. 이거 진짜 김영삼 전 대통령 아니면 할 수가 없는 일이었을 것 같아요. 쿠데타의 가능성을 그때 완전히 싹을 자르지 않았습니까?

◆ 박관용: 그런 측면보다도, 과연 두 번의 쿠데타를 경험한 나라, 60만 명의 군인이 있는 나라,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 아래에서 숙군을 하고 군을 숙청한다는 일은 결코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일본 호소카와 총리가 한국에 와서 한일정상회담을 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호소카와 총리하고 저하고 급히 차 한 잔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김영삼 대통령이 많은 개혁을 하리라고는 믿었지만, 이런 엄청난 군부 세력을 숙청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정말 용기 있는 정치지도자다.’ 이런 이야기를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당시 그 하나회 척결이라는 어려운 일에 착수했을 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저는 솔직한 이야기로 굉장히 불안했습니다. 밤잠을 못 잤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저항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걸 눈 하나 깜짝하지 아니하고 해낸 용기를 저는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신율: 그렇죠. 그게 그 당시 분위기로 봤을 때 상당히 겁나는 이야기인데요. 그걸 하셨다는 것.

◆ 박관용: 그런 일은 전격적으로 할 수밖에 없죠.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고 정권인수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정권인수위원회 제1분과위원장이었는데요. 제가 맡은 안기부, 국방부, 외교부 중에서 국방문제만 제가 잘 몰랐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장성급 예비군도 만났고, 영관급도 만났고, 위관급도 만났고, 군 소속도 만나고 했는데,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당선자께 ‘조용히 보고 말씀 드릴 게 있습니다’ 하고 말을 꺼냈더니 다 들으시고는 ‘나도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소, 이 이야기는 당신과 나 둘만 알고 일체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인수위원회 보고서에 하나회 척결이라는 말은 전혀 안 나옵니다. 그래서 집권하고 난 이후에 얼마 안 되어서, 3월 9일 아침에 저에게 전화해서 빨리 내 방으로 오라고 해서 뛰어 갔더니, ‘오늘부터 합니다. 국방부장관을 지금 바로 부르십시오.’ 누구도 모르게 전격적으로 하는 방법이라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참 용기의 대통령이시구나, 그래서 두 시간 반 만에 육군참모총장을 바꾸고 새로운 참모총장을 임명하는, 그런 선택을 하신 분이죠.

◇ 신율: 네, 그것만 보더라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단력과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알 수 있는데요. 그런데 3당합당에 대해서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는, 3당합당 이전의 YS와 이후의 YS를 구분합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 박관용: 그 당시 상황을 지금 많은 분들이 잊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때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에 국회가 여소야대였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무언가 요즘과 같이 전혀 처리가 안 되었습니다. 매일처럼 사당이 계속해서 이해관계에 따라서 시비가 걸렸고, 바깥 사회는 노태우 대통령이 6.29를 선언한 이후에 노조는 노조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지리멸렬이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시겠습니다만, 어느 공장, 어느 회사, 어느 창고마다 빨간 페인트로 온갖 낙서가 이루어지고, 노조는 노조대로 강압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아주 공장마다 파업이 이루어지는 대단히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때 많은 지식인들이 우리 정치인들에게 이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양대 산맥을 만들어서, 그분들이 그런 식으로 두 세력이 타협하고 경쟁하는 시대로 바꿔야지, 이렇게 진보인지 보수인지 모르게, 지리멸렬하게 4개 정당이 이렇게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적 여론이었습니다. 그때 이 분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진보와 보수 양대 세력으로 정치권이 나뉘어서 정치를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겠구나 하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군부세력을 종식시키는 길은, 다시 말해서 호랑이를 잡는 길은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 결단은 정치적인 운명을 건 선택이었습니다. 국민들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정치적인 생명이 끝나는 것인데요. 그걸 혼자서 몇 날 며칠 고민하다고 선택을 한 거죠.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가 안정의 길로 오히려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 신율: 사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지금 친박계 좌장 서청원 전 대표나, 비박계의 좌장 김무성 대표나 모두 민주계, 상도동계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 구성을 보더라도 서청원 전 대표, 김무성 대표, 이인제 최고위원, 김태호 최고위원까지, 사실 YS와 전부 관련이 있는 분들 아닙니까? 그러니까 실제로 접수를 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그렇죠?

◆ 박관용: 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 신율: 오늘 바로 그런 의미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례식 참석 여부도 관심인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오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올 것 같습니까?

◆ 박관용: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제 오후에 상가에 와서 조문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어제 빈소에 왔다갔으니까 오늘은 오지 않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 신율: 그렇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쭤보는 게, 지금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마케팅, 서로가 자기의 연관관계를 강조하고 이렇게 하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박관용: 글쎄요. 죽음 앞에 그런 시비에 관한 이야기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만, 김영삼 대통령의 일생을 우리 국민은 물론이지만,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들이 새로운 느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워서 이만큼이라도 민주화를 시켜놓았으면, 이제는 실질적인 민주주의, 또는 완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정치권이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김영삼 대통령이 남겨 놓은 유훈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소원이었다는 의미에서, 그래서 ‘통합과 화합’이라는 글을 쓰고 가셨다는, 그 유지를 정치인들이 되새기고, 이제 좀 새롭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 신율: 네, 오늘 국가장이 있는 날입니다. 끝까지 잘 지켜주시고요.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관용: 네, 감사합니다.

◇ 신율: 지금까지 김영삼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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