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시간 : [월~금] 10:15~11:30
  • 진행: 박귀빈 / PD: 이은지 / 작가: 김은진

인터뷰 전문

"尹 역겹다, 역사 못 배운 무식한 행동" 역사학자, 계엄에 분노... 참담한 심정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4-12-04 13:28  | 조회 : 458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4년 12월 04일 (수)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김재원 역사강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아나운서 (이하 박귀빈) : 많은 분들이 ‘이게 영화 아니냐’ 이런 의견들을 많이 주고 계십니다. 어젯밤 10시 25분쯤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있었죠? 정말 국민이 패닉에 빠졌는데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당시 계엄령 이후에 45년 만의 일입니다. 정부 출범 이후에는 17번째 계엄령이라고 하는데요. 대한민국 계엄의 역사 근현대사 전문가와 정리해 보겠습니다. 김재원 역사학자 전화 연결합니다. 강사님 안녕하세요.

◇ 김재원 역사강사  (이하 김재원) : 네 안녕하십니까?

◆ 박귀빈 : 어떻게 간밤에 잠은 주무셨어요?

◇ 김재원 : 아니요. 거의 잠을 못 잤고 한 새벽 4시쯤에 계엄 해제되는 거 보고 잠들었다가 인터뷰 연락 받으면서 깼습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요. 바로 저희 제작진이 전화를 드렸는데 바로 받으셨다고 저희도 다 잠을 설쳤는데요. 45년 만에 비상계엄인데 어떻게 선생님도 이게 처음 겪는 계엄이신 거죠?

◇ 김재원 : 네 저도 처음 겪는 거다 보니까 조금 복잡한 심정이기도 하고 사실 경험하면 안 되는 건데 경험을 한 거라 역사학자로서 굉장히 좀 참담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 박귀빈 : 계엄이라는 것이 저희가 정말 역사책에서만 봤던 거여서 이게 사실은 현실감이 없었던 거긴 하거든요. 아무리 역사에서 배웠지만. 근데 어젯밤 아주 짧은 시간이었고 사실은 지금도 계엄이 해제되기는 한 상황이지만 많은 분들이 좀 지켜보고 계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우리나라의 계엄의 역사 한번 좀 짚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때, 왜 이 계엄이 선포가 됐고 당시에 어떤 상황이었으며 그게 어떻게 해제가 돼서 마무리가 됐는지를 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좀 선생님이 짚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역사상 첫 번째 계엄 언제 선포됐습니까?

◇ 김재원 : 첫 번째 계엄은 1948년 10월 21일이고요. 48년의 계엄이 선포됐었던 건 여수 순천 사건. 흔히 여순 사건이라고 부르는 그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 박귀빈 : 그럼 당시에 그 사건, 제주 4.3 사건이 발단이었다는 건가요?

◇ 김재원 : 4.3 사건이 시작이고 4.3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 여수 순천 지역에 있는 군들을 동원하려고 했었는데 그걸 거부했고요. 그걸 거부했었던 여수 순천 지역의 군인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계엄령을 선포한 건데 사실 계엄령을 선포하고 난 다음의 행동들이 굉장히 폭력적이었고 상식과는 맞지 않는 행동들이 나왔었던 거죠. 그 지역에 있는 민간인들도 같이 희생이 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면서 첫 번째 계엄부터 한국 현대사에서는 굉장히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박귀빈 :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던 거군요.

◇ 김재원 : 예 맞습니다. 당시에는 여수 순천 지역에 있는 민간인들도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는 반란을 일으켰다라고 이야기했었던 군인들과 싸잡아서 희생시키고 학살을 하고 실제 그렇기 때문에 민간인 사망자까지 굉장히 많이 나왔었던 일로 번졌었던 거죠.

◆ 박귀빈 : 이승만 대통령 때입니다. 대한민국의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총 4명이네요. 지금 4명이 됐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 이렇게 4명이 됐는데요. 이렇게 순서대로 정리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48년도에 첫 비상계엄령이 선포됐을 때 그때도 계엄법이 있었던 건가요?

◇ 김재원 : 계엄법이라고 하는 거는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 계엄법과 관련된 법들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헌 헌법의 제5조 64조에 대통령은 법률에 정하는 바에 의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지만 이것과 관련된 법령이 제정되지는 못했었거든요. 긴급적인 상황이라고 하는 걸 핑계로 헌법 아래 있었던 다른 관련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냐하면 계엄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된다, 그다음에 어떤 식으로 절차를 거쳐야 된다라는 게 같이 마련이 돼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게 아직 제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계엄령을 내리고 진압을 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진압 과정이 법적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졌었던 행동들은 아니었던 거죠.

◆ 박귀빈 : 48년 10월 1일입니다. 첫 번째 헌정사 비상계엄이 선포가 됐고 이게 언제 해제됐습니까?

◇ 김재원 : 해제됐었던 것은 제 49년 2월 5일이고요. 그 과정에서 4.3 사건 관련된 행동들도 나오게 되는 겁니다.

◆ 박귀빈 : 이 첫 계엄,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봐야 될까요?

◇ 김재원 : 이걸 뭐라고 이야기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첫 번째 계엄 같은 경우에는 순서가 조금 독특합니다. 군이 먼저 계엄을 선포하고 정부가 사후 승인하는 과정을 거쳤던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계엄령에 대한 제대로 된 절차 같은 것들이 마련돼 있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계엄군이 굉장히 큰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되면서 그때 당시에 수많은 만행들도 일어날 수 있게 됐었던 근거가 되는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헌법이라고 하는 걸 핑계로 민간인을 학살했었던 첫 번째 사례가 계엄령 아래 일어났었다고 하는 게 역사적으로 좀 중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두 번째 계엄령은 역시 이승만 전 대통령 시기인데요. 이거는 6.25 전쟁 시기군요.

◇ 김재원 : 6·25 전쟁 때도 있었고요. 6·25 전쟁 중간에 부산 정치 파동이라고 직선제 개헌을 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굉장히 반헌법적인 계엄이 일어나게 되고 그 안에서도 또 큰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 당시에 있었던 그 이후의 계엄들이 다 전쟁과 관련돼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52년 5월에 부산 정치 파동, 60년 4월 19일에도 4·19혁명을 진압하기 위한 계엄도 있었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에서는 그 이후에도 두 차례에 걸쳐서 전쟁과는 상관없는 계엄을 선포했었던 적이 있었던 거죠.

◆ 박귀빈 : 그러면 이승만 대통령 시기에 몇 번 계엄이 선포됐던 건가요?

◇ 김재원 : 전쟁과 관련된 걸로만 따지면 5번 정도가 있었고 그 외에 여순 사건 관련된 거 한 번 있었고, 그 가운데서 제주 4.3 사건 때 한 번 더 있고요. 부산 정치 파동으로 한 번 있고, 4·19 그때 있었으니까 전쟁과 무관한 걸로 따지면 4번 정도. 4번의 계엄령이 있었습니다.

◆ 박귀빈 : 그리고 전쟁과 관련해서 5번. 총 9번. 박정희 정부시기로 한번 넘어가 보겠습니다. 61년부터 79년까지인데 박 전 대통령 때는 총 3번에 걸쳐서 비상계엄이 선포가 됐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당시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던 건가요?

◇ 김재원 :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3번인데요. 군사정권 때, 그러니까 5·16 쿠데타까지 합치면 총 4번입니다.

◆ 박귀빈 : 그러면 대통령 신분이 아닐 때에도 계엄령 선포가 됐던 겁니까?

◇ 김재원 : 5·16 쿠데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계엄이 선포가 되고요. 그 이후에 64년에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시위, 흔히 6·3항쟁이라고 부르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박정희 정권 때 첫 번째 계엄이 있고요. 그 이후로 72년 10월 17일 날 우리가 10월 유신이라고 불리는 친위 쿠데타 당시에 계엄이 한 번 더 있고, 79년 10월 18일에 부마항쟁을 진압하기 위한 계엄까지 해서 박정희 길게 봤을 때 박정희 정권 시기에 총 4번의 계엄이 선포됐다.

◆ 박귀빈 : 그렇군요. 그 첫 번째가 5·16 군사정변 때라는 건데 대통령 신분이 아닐 때 이것도 역사적으로 좀 짚어볼 만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김재원 : 첫 번째로 쿠데타의 의한 계엄령이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가 있고요. 군이 사실 마음만 먹으면 총과 탱크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긴 거거든요.

◆ 박귀빈 : 네네.

◇ 김재원 : 그러다 보니 저희가 역사에서 다 배운 것처럼 그 이후에 이어지는 수차례의 계엄령 선포의 서막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고요.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은 군이 대한민국 사회를 장악하기 시작하는 시발점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리고 좀 짚어보고 싶은 것이 10월 유신 계엄령인데요. 이것 좀 설명 좀 부탁드려요. 당시 명목이 뭐였습니까?

◇ 김재원 : 명목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상한 건데요. 민주주의의 토착화. 그러니까 여기서 민주주의라고 할 때 또 앞에 붙이는 게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 그리고 ‘조국 평화 통일’이라고 하는 걸 들거든요. 그게 굉장히 조금 특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이건 71년부터 시작되는 전사가 있긴 있습니다. 1972년 10월에 유신이 발표가 되지만 71년에 국가비상사태를 먼저 선포를 하거든요. 이때 담화문의 내용들을 보면 10월 유신이 어떤 과정에서 만들어졌는지가 좀 보이는데 당시에 담화문 안에 최근에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대결에서 협상으로 이른바 평화지향적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발표를 합니다. 그러니까 평화라는 이야기를 계속적으로 이야기를 하거든요. 이게 당시에 세계적으로 사실 동서냉전이 사회 분위기로 바뀌는 이른바 데탕트라고 불리는 국면으로 변환되는 시점이었는데, 이런 세계적인 데탕트 국면이랑은 조금 반대로 한반도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북괴가 적화통일 야욕을 보이고 있고 여전히 긴장이 고조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적으로는 세계적인 평화라고 하는 것과 반대로 무절제하고 무궤도한 국가 안보에 유해 되는 행동들을 자기가 진압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까지 쭉 이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세계 평화라고 하는 것을 핑계로 댔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굉장히 이상하게 해석을 하면서 그걸 국내 정치를 진압하는 용도로 사용하게 됐었던 거죠.

◆ 박귀빈 : 명목은 평화 통일 이런 거였지만 당시에 계엄령을 선포한 실질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나중에 분석 평가가 나오는 것은 어떻게 지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거예요?

◇ 김재원 : 쉽게 얘기하면 그때 당시 박정희 정권의 생각은 전 세계의 자유 진영이 공산주의 세력에게 속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우리는 거기에 속아서는 안 되고 우리가 일치단결하고 총화해서 이러한 세력들을 전 세계적인 변화와는 상관없이, 우리만이라도 민주주의를 억압하면서라도 이걸 막아내야 한다라고 하는 걸로 국내에 있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요구들 이런 것들을 말살하는 걸로 쭉 이어질 수 있었던 거죠.

◆ 박귀빈 : 10월 유신 계엄령에 대해서 그렇게 설명을 해주셨고요.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사망 전 마지막 비상계엄이 선포됩니다. 79년 10월 이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김재원 : 다들 아시는 것처럼 10월 26일 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를 하는데 사실 그 이전부터 국내적으로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한 20일 정도 무렵까지 부산이랑 마산 지역에서 유신 체제에 대항하는 민중항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미 그게 흔히 부마항쟁이라고 불리는 거고요. 발단의 배경이라고 본다면 79년 중순 무렵에 있었던 YH무역 사건. 그리고 10월 유신 이후에 야당 세력이 대정부 반대 투쟁을 계속적으로 하게 되면서 식민당 총재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이 되고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정권과 야당 그리고 노동자들이 함께하는 시위로 발전을 했었고요. 이게 좀 크게 확대되기 시작하는 게 10월 16일에 부산과 마산에서의 부마항쟁인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이 과정에서 내부적인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기게 되고 10월 26일에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사건까지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 박귀빈 : 그렇군요. 10·26 사태에서 대통령 시해 사건까지 연결이 되는 거군요. 그게 마지막 계엄령 직후의 사건인 건데 그런데 신군부가 또 바로 등장을 합니다. 영화 서울에 봄 배경이 된 사건이죠. 12·12 전두환의 첫 비상계엄 아마 이 부분은 영화를 보셔서 많은 분들이 역사적으로도 좀 익숙하실 것 같은데 간략히 정리 좀 부탁드려요.

◇ 김재원 :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비상계엄은 전두환에 의해서만 된 게 아니라 박정희 피살 직후에 열렸었던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개혁입니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교화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고요.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에 임명이 됩니다. 그리고 두 달 뒤에 최교화가 유신헌법에 의해서 당선이 되는 건데요. 문제가 됐었던 것은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정승화를 비롯한 주변 세력과 군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가 갈등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회의 수장이었던 보안사령관이자 10·26 사건의 수사를 책임졌었던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간의 갈등 문제가 제일 컸고요.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은  제일 중요했었던 건 당시도 여전히 유신헌법에 의해서 최고 권력자가 권력을 독점하는 헌법 체제였었던 거거든요. 그 가운데서 최고 권력자가 사라졌었던 거니까 누가 그러면 최고 권력자가 되어서 권력을 통째로 먹을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서로 경쟁을 했었던 거고요. 그렇게 되면 전두환 입장에서는 계엄사령관과 현직 대통령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10·26 사건 당시에 있었다는 그 자리에 있었다는 명목으로 체포하려고 시도했었던 것이 12·12 쿠데타인 겁니다.

◆ 박귀빈 : 이 계엄으로 전두환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거죠. 

◇ 김재원 : 네. 그런데 당시에 전두환이 12·12를 통해서 완벽히 권력을 장악했다라고 보기는 어렵고요. 당시 여전히 야당 정치인들이라든지 제약 운동권 세력이라든지 학생운동권 세력들은, 이걸 흔히 서울의 봄이라고 부르는 거죠. 서울의 봄이라고 하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민주화를 향한 움직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 이 과정 속에서 군 내부의 단속 작업을 하게 되고 5월 17일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는데 흔히 5·17 쿠데타라고 부르는 그걸 통해서 확실하게 정권을 장악하게 되는 겁니다.

◆ 박귀빈 : 그리고 어제였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 발표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합니다. 이것도 역사에 기록이 되겠죠.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보셨어요?

◇ 김재원 : 참담하고요. 역사에서 배운 것이 전혀 없는 대단히 무식하고 무지하고 무례한 행동으로 비춰졌습니다. 

◆ 박귀빈 : 무엇 때문에 그렇게 보셨습니까.

◇ 김재원 : 이런 일련의 일들을 어제 그리고 오늘 새벽에 지켜보면서 굉장히 당혹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화도 나고요. 사실 굉장히 역겨웠습니다. 역겹기까지 했을 정도로 굉장히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 역사를 저도 계속적으로 배워오면서 길게 봤을 때는 한국 사회가 점진적으로 발전을 했지만 짧게 봤을 때는 진보와 퇴보를 계속적으로 반복했거든요. 그런데 어제와 오늘 저희가 확인한 건 짧게는 역사의 퇴보를 확인한 걸로 비춰질 수 있지만 길게 바라보며 진일보의 시작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박귀빈 : 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보셨을까요?

◇ 김재원 : 해방 후에 한국 현대사에서 수많은 계엄이 있었습니다. 제가 쭉 방금 말씀해 드린 것처럼. 그런데 그때마다 시민들은 늘 반헌법적인 계엄령에 늘 항거했고요.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헌법적인 행동들을 이겨냈던 역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이 부분을 기억하고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제 그리고 오늘 역사적인 장면이 퇴보로만 기억할 게 아니라 스스로 진일보의 한 페이지로 만들어야 되는 걸 기억해야 될 것 같고 지금의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걸 꼭 기억하고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게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고 저희가 역사를 지금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죠. 지금까지 김재원 역사 강사였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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