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 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이혜민

인터뷰 전문

[잠시만요] 작은별 가족 강애리자 "치매 어머님과 함께 부른 노래, 시청자 눈물 짓게해"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4-10-16 05:43  | 조회 : 338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4년 10월 06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가수 강애리자 (그룹 작은별 가족 소속)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 작은별 가족 기억하시죠? 70~80년대 왕성하게 활동했던 가족 음악단입니다. 오늘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의 주인공은 작은별 가족의 6남 1녀 자녀들 가운데 홍일점이죠. <분홍 립스틱> 기억하실 겁니다. 이 곡을 유행시킨 그 강애리자 선생인데요. 최근에는 90대 어머니와 함께 부른 노래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습니다. 강애리자 선생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가수 강애리자 (그룹 작은별 가족 소속) (이하 강애리자) : 안녕하세요. 작은별 가족의 강애리자입니다. 반갑습니다.

◆ 이성규 : 강애리자, 작은별 가족. 이 이름을 들으시면서 반가워하실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 데뷔하셨죠?

◇ 강애리자 : 제가 사실 데뷔가 언제냐고 물어보면 참 까마득한게..

◆ 이성규 : 까마득한..

◇ 강애리자 : 제가 정식으로 연예계에 데뷔한 거는 만 3살입니다.

◆ 이성규 : 3살.

◇ 강애리자 : 네. 그러니까.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연출가셨어요. 극작가셨고. 그래서 아버지가 연출하신 그 드라마.

◆ 이성규 : 드라마의

◇ 강애리자 : 라디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여자. 그러니까.. 3살. 그 때 데뷔했죠. 

◆ 이성규 : 3살.

◇ 강애리자 : 네. 그러니까 지금 60년 정도 돼가고 있죠.

◆ 이성규 : 그 때는 이름이 뭐예요?

◇ 강애리자 : 똑같았죠. 저는.

◆ 이성규 : 아니 그러면 그 애리자를..

◇ 강애리자 : 네. 제 본명입니다.

◆ 이성규 : 본명으로. 성당에서 받으신 게 아니고..

◇ 강애리자 : 그러니까 엘리사벳, 저희 이제 집안이 다 천주교예요.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 엘리사벳인데. 이제 한국 이름으로 저희 아버지가 '사랑 애'자, '매끄러운 리'자, '아들 자'자 해서 강애리자 그렇게 하신 거죠.

◆ 이성규 : 9인 가족 규모나 구성 면에서 국내 최초였는데. 이 팀이 어떻게 해서 꾸려졌습니까?

◇ 강애리자 : 저희 친정 엄마가 서울음대 성악과를 나오셨어요.

◆ 이성규 : 네. 완전히 음악 가족에다가 예술 집안이네요.

◇ 강애리자 : 피가 그렇게 있었겠죠? 근데 자식을 많이 낳으시고. 아들이 많으니까. 좀 삭막한 것 같아서 저희 엄마는 무조건 자식이 3살이 되면 피아노를 안 치셨어요. 그래서 피아노를 이제 다 배우고. 그러다 보니까 오빠들이 "저는 바이올렛 할래요", "저는 플룻 할래요" 그렇게 돼서 자연스럽게 합주가 되고. 그렇게 돼서 음악을 같이 하게 된 거죠.

◆ 이성규 : 그러셨군요. 이제 아까 말씀드렸는데 분홍 립스틱 배우 송윤아 씨 노래로 알려졌는데.

◇ 강애리자 : 글쎄 그...

◆ 이성규 : 이 오빠 되시는 강인구 씨가 작사 작곡한 노래죠?

◇ 강애리자 : 네. 그렇습니다. 바로 제가 이제 오빠가 다섯 분이 계신데.

◆ 이성규 : 5분

◇ 강애리자 : 네. 바로 위에 오빠가 1988년도에 저한테 준 노래죠. 어디 가서 행사 가서 물어보면 제가 불렀다고 알고 있는 분도 계시고.  "아줌마가 이걸 왜 불러요?" 그러는 젊은 친구도 있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 이성규 : 아니 그러니까. 자녀분들 중에 여섯째 따님이시고, 또 남동생이 또 있죠?

◇ 강애리자 : 남동생은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이라는 노래를 부른 자전거 탄 풍경의 강인봉입니다.

◆ 이성규 : 다 모이시면 난리 나겠어요. 우리 강애리자 가수분은 분홍 립스틱만 가지고 뜬 게 아니고 그전에 3살 때도 하셨고 만화 주제가로도 유명하셨죠?

◇ 강애리자 : 만화 주제가를 저도 그렇게 많이 불렀는지 몰랐는데. 굉장히 많이 불렀더라고요. 그러니까 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계속 불렀으니까 만화가 굉장히 많겠죠.

◆ 이성규 : 제가 그래서

◇ 강애리자 :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시는 마징가제트, 요술공주 세리, 플랜더스의 개 마린보이 아톰 황금박지 요괴 인간 또 뭐 엄청 많습니다.

◆ 이성규 : 지금도 지적 소유권에 대해서 상당히 풍부하시겠습니다?

◇ 강애리자 : 아니요. 그 때는 지적 소유권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없습니다.

◆ 이성규 : 아하... 이런... 그리고 이 작은별 가족 활동 당시에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계기가 있었죠. 정부에서 이제 해외 공연 못가게 해가지고.

◇ 강애리자 : 그건 주목을 받았던 게 아니고요. 저희가 사람들이 "왜 작은별 가족이 왜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끊겼을까요?" 그거에 대한 궁금증이 많으신데. 그 당시에는 이제 얘기를 못 했었는데. 지금은 이제 말할 수 있죠. 사실은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사회적인 분위기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어요.

◆ 이성규 :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강애리자 : 그래서 산하제한이라는 게 있었는데. 저희가 방송에 나오면 무조건 방송 정지가 많이 됐었어요.

◆ 이성규 : 네. 대가족이라.

◇ 강애리자 : 활동을 못한 거죠. 그래서 흐지부지.. "잠깐 쉬자", 그러고서 이제 쉬는 사이에 그러면 군대 문제가 있잖아요? 남자들이 많으니까.

◆ 이성규 : 그러니까요.

◇ 강애리자 : 저희가 만약에 여자 형제가 많았으면 괜찮았을텐데... 남자가 많으니까. "군대를 갔다 오자".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저희 부모님께서 조금 생각을 잘못하셨던 게. 왜 꼭 7명이 활동을 해야 했는지. 6명이나, 5명씩 이렇게 돌아가면서 하면서 군대를 갔다 왔으면 되는데. 한꺼번에 1번 오빠부터 4번 오빠까지 군대를 확 가버렸어요. 그 남은 3명이 뭘 하겠어요? 그러니까 그거를 기다리다가 보니까 뭐... 점점 희미해져가고. 그렇게 된 거죠. 뭐...

◆ 이성규 : 근데 이제 해외 공연을 예약했다가 못 가게 된 그런 케이스도 있었겠네요. 그럼?

◇ 강애리자 : 그럼요. 그러니까 제가 기억하기로 70년대 후반인가에. 그러니까 자전거 타 풍경 지금 활동하고 있는 강인봉 군이 15살 때인가, 13살 때 7분짜리 곡을 하나 만들었었어요.

◆ 이성규 : 7분짜리

◇ 강애리자 : 네. 작사, 작곡해서 해외 가요제에 이렇게 보냈는데. 그 나라에서 난리가 난 거예요. "이게 정말 한 가족이 그냥 직접 연주를 한 거냐? 작사·작곡을 한 거냐 노래도 한 거냐?", "맞다" 그랬더니. "예산 필요 없고, 우리가 다 그냥 대줄 테니까. 와라. 무조건 너네는 본선 진출이다." 그래서 저희는 가려고 딱 했는데. 나라에서 딱 막은 거예요.

◆ 이성규 : 어느 나라 거였어요?

◇ 강애리자 : 잘 지금 기억은 잘 안나요.

◆ 이성규 : 어디 유럽 쪽?

◇ 강애리자 : 네. 유럽 쪽인 것 같아요. 그런데 나라에서 막은 게. "너네가 갔다 오면, 금의환향을 하면. 사람들이 아, 저렇게 자식을 많이 낳으니까 좋은 일이 있구나. 자식을 많이 낳지 않겠느냐? 가지 마라." 그래서 못 갔어요.

◆ 이성규 : 참 그때는 가슴 아픈...

◇ 강애리자 : 지금 같으면 안 되겠죠. 그 때 갔다 왔으면 뭐...

◆ 이성규 : 가슴 아픈 시대적 정신이...

◇ 강애리자 : 그 때 갔다 왔으면. 제가 뭐... 달라졌겠죠.

◆ 이성규 : 그 때 그렇게 됐으면, 이제 월드스타가 된 거죠. 그 때 다녀오셨으면.

◇ 강애리자 : 저는 지금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아니 지금도 월드스타잖아요.

◇ 강애리자 : 감사합니다.

◆ 이성규 : 근데 지금 7남매.

◇ 강애리자 : 네.

◆ 이성규 : 7남매분들이 이제 전부 가정을 꾸리셨죠?

◇ 강애리자 : 그렇죠.

◆ 이성규 : 대단하십니다. 그것도. 근데 그 분들이 또 다 자녀들도 있고 그러실 텐데.

◇ 강애리자 : 그럼요.

◆ 이성규 : 이 분들 다 모이시면 결혼식장이나. 뭐, 이런 거 빌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 강애리자 : 안 그래도 어저께 제가 무슨 방송 녹화를 하는데. "식구들이 몇이세요?" 근데 제가 막 손을 꼽아봤어요. 몇인가 그랬더니. 정확하게 47명이더라고요.

◆ 이성규 : 47명.

◇ 강애리자 : 직계 가족만. 근데 47명 중에 3분의 2 이상이 모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한 20년 동안.

◆ 이성규 : 다 못 모여요?

◇ 강애리자 : 네.

◆ 이성규 : 이름도 모르시겠네요? 못 외우고.

◇ 강애리자 : 저희는 이름을 얘기 안 하고. 저희는 이제 "1번 오빠", "2번 오빠"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2번 오빠의 두 번째 이제 조카다 그러면. "너 몇 번이냐?" 그러면, "저 2-2입니다." 이렇게 얘기하죠.

◆ 이성규 : "2-2". 하하. 이게 이름을 외운다는 것도 진짜 보통 난해한 일이 아니네요.

◇ 강애리자 : 누구 한 명 이름을 하려면. "야. 너. 누구, 누구, 누구...", "너 누구구나?" 이렇게 나오시더라고요. 아버지도.

◆ 이성규 : 그렇게 해서 이제 뭔가 그 3분의 2 이상 다 못 모였는데 그래도 정기적으로 어떻게 모임은 가지세요?

◇ 강애리자 : 네. 1년에 한 서너 번은 모이죠.

◆ 이성규 : 아니 그리고 공연 같은 거 있으면, 이제 또 그 형제 간에는 모이나요? 남매. 칠남매.

◇ 강애리자 : 요즘은 공연할 시간도 없고. 또 자리도 없고. 뭐.. 막내가 만약에 자전거 탄 풍경 공연을 한다 그러면, 이제 몇 명이 가서 응원도 해주고 그러죠.

◆ 이성규 : 아니 가수 강애리자님의 이제 출연 요청이 상당히 이 방송 이후에 쇄도할텐데.

◇ 강애리자 : 그랬으면 좋겠네요.

◆ 이성규 : 그러면 이제 바빠지실 텐데요. 어떤 노래 하나를 소개시켜 주시겠습니까?

◇ 강애리자 : 누구나 다 그렇지만 모든 엄마가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제가 나이가 들어보니까, 아니잖아요?

◆ 이성규 : 왜냐면

◇ 강애리자 : 제가 엄마가 되어보니까. 엄마가 그게 아니구나. 그래서 그런 마음을 담아서 제가 작사를 해서, 또 <분홍 립스틱> 작곡한 오빠가 작곡한 <울 엄마>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울 엄마>, 그 노래를 꼭 들려드리고 싶어요.

◆ 이성규 : 네.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가수 강애리자 선생님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소개해 주신 강애리자 본인이 부르신 <울 엄마> 듣고 오겠습니다. 네. 강애리자의 <울 엄마> 듣고 오셨습니다. 강애리자 선생님.

◇ 강애리자 : 네.

◆ 이성규 : 지난 추석 때 그 한 예능 특집 방송에 나오셔서 어머님과 함께 부르신 노래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안방 극장들이 다 촉촉하게 젖고, 난리가 났던데. 어머니 연세가 지금 어떻게 되세요?

◇ 강애리자 : 저희 어머니께서 지금 92세가 되셨어요.

◆ 이성규 : 아흔둘.

◇ 강애리자 : 저는 그렇게 이슈가 될 줄 몰랐는데요. 방송국. 모 방송국에서 "엄마하고 한번 노래를 해보는 게 어떠냐?" 그렇게 제의가 왔을 때. 처음에는 사실 망설였어요. 왜냐하면 저희 엄마가 서울음대 성악과 나오셔서 노래를 진짜 정말 잘하셨는데. 지금 치매라서. 뭐.. 가사도 잘 모르시고. 음정도 잘 틀리시고 그래서. 나가서 혹시 창피나 당하지 않을까 그랬는데.. 그냥 엄마와의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고, 엄마와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해서 제가 이제 연습을 시켜서 같이 나갔죠. 그런데 나가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 이성규 : 그 때 두 곡을 하셨다면서요? 아마 <아베마리아>하고 <천개의 바람이 되어>

◇ 강애리자 : 네. 사실은 그거를 잘 못하셔서 제가 이제 악보를 그려가서, 손으로 짚어가면서, 이제 녹화를 했어요. 그런데 그래도 열심히 끝까지 부르시더라고요.

◆ 이성규 : 그런데 그 치매 상태에서 그 곡을 익히려면 시간이 꽤 걸렸겠어요?

◇ 강애리자 : 익혔다기보다는... 그냥 계속 매일매일 새로운 곡이죠. 엄마한테는.

◆ 이성규 : 그렇군요.

◇ 강애리자 : 네. 근데 한 한 달 반 정도를 했는데. 제가 그 한 달 반 동안 정말. 살이 한.. 2KG 빠지면서, 너무 많이 울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또 엄마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서 많이 울었는데요. 방송 끝나고 나니까. 모든 분들께서 저한테, "너무 잘 봤다고, 엄마가 너무 예쁘다고" 그래서 아주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은.

◆ 이성규 : 이 치매. 참... 온 가족을 힘들게 하는 커다란 병이죠. 근데 어머님이 이 치매라는 거를 앓게 되셨구나라는 걸 언제 아셨어요?

◇ 강애리자 : 한 4~5년. 3~4년 전쯤에. 그러니까 한 4~5년쯤 됐나 봐요. 그러니까 이제 코로나가 왔을 때 엄마 행동이 조금 이상해지신 건 제가 느꼈는데. "아, 이거 건망증 같은 건가 보다" 생각했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오빠들이 모시고 갔는데. 치매 초기라고 이렇게 진단받으셨더라고요.

◆ 이성규 : 네.

◇ 강애리자 :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은 안 했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제가 이제 엄마를 모시게 됐거든요. 그래서 모시다 보니까.. "저희 엄마가 확실히 치매구나", 그렇게 알게 됐죠. 

◆ 이성규 : 네.

◇ 강애리자 : 그런데 그냥 받아들이고, 같이 더불어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힘든 거는 잘 모르겠어요.

◆ 이성규 : 지금도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니시면서 더 악화되는 거를 막는다거나...

◇ 강애리자 : 점점 더 악화되고 계시죠.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고. 그렇게 다르시더라고요.

◆ 이성규 : 그 원인은 뭐였대요?

◇ 강애리자 : 그건 아무도 모르고요. 혈관성 치매하고, 알츠하이머하고. 두 가지 다 있다고.

◆ 이성규 : 다 겹쳤구나... 아이고... 근데 아까 이제 어머니가 음대 나오셔서 또 성악가로. 소프라노셨다면서요?

◇ 강애리자 : 네. 소프라노 위에 콜로라투라라고, 하이 소프라노에요.

◆ 이성규 : 하이 소프라노. 그 당시에 어머니 기억하세요?

◇ 강애리자 : 저는 이제 10대 때. 엄마가 저희 꼭 무대에 마지막에 올라오셔서 노래했던 거는 기억을 하죠. 정말 엄마가 와서 노래를 부르면 온 모든 분들이 일어나서 기립박수 쳤던 건 제가 기억을 해요. 외국을 가도 그렇고. 정말 목소리가 청아하시거든요.

◆ 이성규 : 네. 청아하세요?

◇ 강애리자 : 네.

◆ 이성규 : 들어보고 싶네요. 아까 이제 어머니 모시게 됐다고 그랬잖아요. 지금 그 삶이 어떠세요?

◇ 강애리자 : 저는 오히려 더 행복해요. 왜냐면 아버지 엄마가 같이 사실 때는 아버지가 엄마의 곁을 저한테 하나도 안 주셨어요. 아버지가 올곧이 차지하시고서는 그냥 엄마 옆에 저를 있지를 못하게 하더라고요. 같이 여행도 못 가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버지한테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엄마를 제가 100%를 차지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엄마랑 여행도 가고 싶으면 가고. 물론 뭐.. 엄마가 점점 아이가 되어 가시니까 제 손이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냥 행복하게 저는 더 행복해요.

◆ 이성규 : 근데 이제 따님은 행복하다고 그러시는데. 밖에 계신 남편분이면서 매니저신 것 같은데. 박용수 선생님. 남편의 반응은 어떠셨어요? 저기 의식하지 말고,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 강애리자 : 남편은, 남편도 사실 한 3년 전에 엄청 아팠었어요. 췌장암 말기로 6개월 선고를 받았었는데. 어찌어찌 해서 지금 살아났습니다. 아직 완치 판정은 안 났지만. 이제 완치 판정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제가 늘 그랬어요.

◆ 이성규 : 어떤 병이셨어요?

◇ 강애리자 : 췌장암 말기였습니다.

◆ 이성규 : 그거는 완치되기가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데. 참 다행입니다.

◇ 강애리자 : 0.8%의 기적을 갖고, 지금 완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완치 판정을. 그런데 그 때 아픈 와중에도 제가 늘 "아버지 돌아가시면 엄마는 내가 모시고 싶다." 물론 오빠들이 모시고 싶어 할 수도 있지만. 오빠들이 모시면. 그건 오빠가 아니고 언니가 모시는 거기 때문에. 그냥 내가 모시고 싶다 딸이 하나니까 늘 제가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근데 막상 제가 모신다고 그랬더니 남편은 정말로 기뻐해 줬어요. 왜냐하면 본인 저희 시부모님께서도 이제 치매로 돌아가셨는데요.

◆ 이성규 : 네

◇ 강애리자 : 잘 못해드렸던 게 마음에 남아 있어서. 정말로 내 부모처럼 같이 잘 모셔보자. 그래서 요즘 제가 혹시라도 가끔. 저도 이제 가끔 짜증을 내거나 그럴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남편이 말려요. "그러지 말어. 나중에 후회하니까. 그냥 점점 아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모셔보자." 그랬고. 정말 잘 모시고 있습니다. 저보다도 더 잘. 남편이.

◆ 이성규 : 그러니까 남편분도 치매 앓는 부모님을 모신 적이 있어서 그 경험을 공유하고 계시군요. 근데 지금 더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무리 살가운 부모, 자식 사이도. 이게 따로 살면 몰라도. 같이 살면.. 아까 짜증 말씀하셨잖아요? 그거 말고도 막 터지고, 막 이러는 거 없어요? 아웅다웅 화도 내시고, 막 이런 거.

◇ 강애리자 : 제가 지금 만약에 엄마한테 화를 내봤자, 엄마를 엄마는 모르세요. 제가 뭐.. 화를 내면 저만 혼자 속상한 거니까. 제가 원래 잘 화 같은 거를 잘 안 내요. 그리고 맨 처음에는 엄마 모시면서 좀 엄마가 예전 모습이 아니니까, "엄마가 이런 모습이 아닌데.. 왜 그러지?" 그리고 제가 화가 날 때도 있잖아요.그러면 엄마 이러면 남편이 옆에서 저를 툭 치면서, "그러지 마. 나중에 후회해." 그러니까 제가 이제 방법을 바꿨어요. 엄마한테 항상 부를 때 "엄마!" 이러고 부르는 것보다, "이쁜 엄마!" 이러고 불러요. 그러면 엄마가 절 보고 환하게 웃으세요.

◆ 이성규 : 그냥 "엄마." 그러시면, 대답 안 하시고.

◇ 강애리자 : 아니요. 하시죠. 근데 이제 그거보다 제가 오히려 이제 "이쁜 엄마" 그러면 이제 환하게 웃으시니까. 그러면 그 얼굴에 대고 어떻게 화를 내요? 제가 그 방법을 제 나름대로 이제 깨달은 거죠.

◆ 이성규 : 한 번 치매 가족들이 공감하실텐데. 하루 일과를 어머니와 함께.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마무리되세요? 하루가가?

◇ 강애리자 : 사실 치매 부모님을 모신다는 게 24시간 보고 있어야 되거든요.

◆ 이성규 : 그렇죠.

◇ 강애리자 : 네. 그러니까 아침에 눈 떠서, 이제 엄마 씻겨드리고.

◆ 이성규 : 씻겨드리고

◇ 강애리자 : 아침 드리고.

◆ 이성규 : 아침 드리고.

◇ 강애리자 : 저희 엄마는

◆ 이성규 : 아침은 잘 드세요?

◇ 강애리자 : 드시는 건 아주 잘 드세요. 근데 이제 소화 능력이 떨어지셔서 다 다져드려야 돼요. 근데 굉장히 저희 엄마는 치매 치고는 굉장히 얌전하세요.

◆ 이성규 : 네. 아이고 그것도 다행입니다.

◇ 강애리자 : 그런데 점점 말씀이 없어지는 것 말고는 굉장히 얌전하시고. 그런데 이제 대소변을 못 가리시니까. 이제 그거 하는 게 약간 힘들지.

◆ 이성규 : 네.

◇ 강애리자 : 저희 엄마는 무조건 뭐 말씀을 드리면, "응."을 하세요. "엄마, 이렇게 하자." 그러면 "응", "엄마. 옷 갈아입자.",  "응", "엄마, 이거 이렇게 할까?" "응."하시니까. 별로 힘든 건 없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이 가는 거 일반인하고 똑같아요. 저희 엄마는. 그렇죠 그냥 아침 드시고 또 저희랑 같이 테레비 보시다가 제가 어디 나갈 일 있으면 같이 모시고 나갔다가 또 점심도 먹고 또 오후에 만약에 괜찮으면 동네 산책하시고. 또 오빠들이라도 오면 같이 놀고. 그러다가 이제 저녁 드시고, 그냥 잠자리 드시는 거. 똑같아요.

◆ 이성규 : 주무시는 거는 잘 주무시나요? 주무실 때는

◇ 강애리자 : 그게 이제 어쩔 때는 밤새 깨실 때도 있고. 화장실을 한 5번 가실 때도 있고.

◆ 이성규 : 혼자 다니세요? 화장실은?

◇ 강애리자 : 아니 이동 변기 놨죠. 

◆ 이성규 : 이동 변기.

◇ 강애리자 : 네. 방에. 그렇게 하고. 뭐.. 어쩔 때는 아주 푹 주무시고. 그러니까 이게 다 공감하실텐데. 종잡을 수가 없는 거예요.

◆ 이성규 : 그렇죠.

◇ 강애리자 : 오늘은 이랬다가, 내일은 이랬다가 그러니까.

◆ 이성규 : 그러니까그렇게 사시는 와중에 밖에 계신 남편분이 아까 췌장암 말기라고 말씀하시니까. 그러니까 두 분을 모신 거네요? 한 때는?

◇ 강애리자 : 그렇죠. 누가 누구는 그러더라고요. "한 손에는 췌장암 말기, 한 손에는 치매. 양쪽에 다 있구나" 그러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뭐, 아프고 힘들더라도 없는 것보다 낫잖아요?

◆ 이성규 : 네.

◇ 강애리자 : 그러니까 그냥 같이 옆에 놓고, 그냥 모실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네. 그래도 이 힘든 거를 보니까. 어머니. 그리고 남편. 아까 "한 손에 치매, 한 손에 췌장암" 그런 말씀하셨는데. 이게 말씀은 이렇게 담백하게 하시지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하루하루를 인간 강애리자를 이렇게 지탱해준 힘? 그런 거는 어디서 우리가 찾을 수 있을까요?

◇ 강애리자 : 글쎄 저는 성격이.. 약간 좋게 말하면, 그냥 편안하고. 나쁘게 말하면 잘 까먹어요. 그러니까 지나간 거는 저는 생각을 안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니까 늘 제가 하는 얘기가, "어제보다 오늘 조금만 더 행복하자", 그러니까 어저께는 지나갔고 내일은 안 온 거니까 오늘만 충실하게 살면 되니까.근데 제가 생각할 때 저를 지탱해 주는 힘? 노래라고 생각해요.

◆ 이성규 : 노래

◇ 강애리자 : 그러니까는 힘들 때 엄마랑 같이 노래하고. 또 힘들 때 남편이랑 같이 제 채널에서 같이 노래도 하고. 또 저를 늘 응원해 주는 그 팬분들도 계시고. 지금도 계속 저한테 이제 아프지 말라고 건강식품 같은 거 계속 보내주는 또 동생도 있고.

◆ 이성규 : 그래요?

◇ 강애리자 : 항상 만나서 밥 사주는 동생들도 있고. 그래서 그 사람들 덕에 제가 지탱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성규 :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 그리고 가족들과 어떻게 계속 살아가실지, 말씀 한번 해 주시죠.

◇ 강애리자 : 앞으로 계획은 제가 이제 남편 아플 때, 647일 동안 힘들었던 간병기를 책으로 썼어요. 그래서 그 책이 나왔는데. 그 책을 들고 다니면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분들께, 제가 뭐.. 몇 분이 모이시면, 가서 노래도 전해드리고. 그 책 내용도 하고. 제 그 용기를 북돋아 드리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 이성규 : 책 제목 한 번 말씀해주세요.

◇ 강애리자 :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 입니다.

◆ 이성규 :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

◇ 강애리자 : 그 책을, 북 콘서트를 조그맣게 하고 다니면서 힘을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거기서 조금이나마 수익금이 나오면, 암 환자들을 위해서 쓰고 싶습니다.

◆ 이성규 :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가수 강애리자 씨와 함께 했습니다.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 책도 내셨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강애리자 : 감사합니다.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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