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국민은 명절에 1원 한푼 못받는데, 국회의원은 떡값 850만원..거절할 수 있는 정치인돼야
- 주목하고 있는 현역 의원 있다, '세비 삭감', '특권 내려놓기'로 파란 한번 일으켰으면
◇ 이익선 : 점심 드시고 차 한잔 하시면서 함께 하시겠어요. 이슈 앤 피플의 작은 응접실, 쌀롱 드 상암. 오늘은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시죠 김홍신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홍신 : 네 안녕하세요.
◇ 이익선 : 방송인이시기도 하고 정치인이시기도 하고 타이틀이 워낙 많으신데 그냥 작가님으로 하겠습니다.
☆ 김홍신 : 그럼요. 저는 제일 좋습니다.
◇ 이익선 : 신간이 나왔어요. 따끈따끈합니다. ‘겪어보면 안다’ 제목부터 너무 와닿는 이 책 소개 좀 해주세요.
☆ 김홍신 : 오래전에 제가 쓴 시인데요. 그 시를 다른 방송에서 낭송을 했는데 열 줄밖에 안 돼요. 근데 그게 작년부터 숏폼에 엄청나게 이렇게 돌았어요. 이제 겪어보면 안다가 이제 처음에는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 이익선 : 작가님 그러면 한 번 시 낭송 해주시겠어요?
☆ 김홍신 : 제가 다 못 외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맨 마지막은 그거예요.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 그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그런 것들을 소재로 사람은 이렇게 겪어보면 알긴 알아요. 그런데 겪을 때만 알아요. 지나면 잊어버려요. 근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이제 저 같은 경우는 활동을 많이 했으니까 다 인생을 제대로 잘 살겠거니 하는데 안 그래요.. 쟤들 같은 경우 더 놓쳐요. 놓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오늘은 결심을 해요. 근데 이제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살던 대로 사는 게 습관이 됐고 편안하잖아요. 그렇게 살아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 제일 놓치는 게 뭐냐 하면 행복, 건강, 사랑, 용서, 배려, 베풂 이런 것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돼요. 그래서 그거를 겪어보면 안다. 놓치지 말자 이거죠. 그래서 ‘생각 사용설명서’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그다음에 생각 비틀기 또는 그 생각의 그물. 그러니까 우리는 그 그물에 빠져 살아요. 그래서 거기서 벗어나자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겪어보면 안다 그 물에 빠져나오자 이런 이야기를 나열한 것입니다.
◈ 최수영 : 작가님 그 책에 보면 겪어보면 안다가 또 한 챕터로 따로 또 돼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걸 보면서 딱 느낀 게 저도 한마디 꼭 그때 생각이 나는 게 있습니다. 사람은 꼭 그때였음을 늘 지나고야 안다. 그러니까 제가 그 생각이 그때였음을 늘 지나고야 알아요. 그 당시에 모르고요.
☆ 김홍신 : 그러니까 또 이별하면 안다. 그 이가 천사인 걸. 이랬더니 사람들이 폭소를 일으켜요. 그러니까 사람은 늘 자기 가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거를 잊어버려요. 근데 그 사람이 떠났을 때 맞아요.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 최수영 : 어제 광화문 대형 서점에 한번 갔었는데요. 신작 에세이 쪽에 ‘겪어보면 알다’가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흥미롭게 뒤져보고 있는 걸 제가 뒤에서 보면서 내일 우리 작가님 초대해 놨는데라고 하면서 사실 흥미롭게 봤었습니다.
◇ 이익선 : 전문이 짧아서 우리 밖에서 저희한테 타이핑해줬는데 이거는 청취자 여러분들을 위해서 읽어주고 가겠습니다. 감히 작가님 앞에서 제가 읽겠습니다. ‘겪어보면 안다’ 김홍신.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 걸.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엄청 큰 재산인 걸...” 일단 여기까지만 가겠습니다.
◈ 최수영 : 그러니까 늘 지나고 알아요.
◇ 이익선 : 그러니까 아까 말씀 중에도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글을 너무 와닿았는데 방금 그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러면 작가님이 겪으면서 알아가신 것들 그중에 가장 의미있는 게 무엇입니까?
☆ 김홍신 : 예. 그러니까 딱 코로나! 그다음에 해외 여행 중에 국경경비대 거기에 이제 써 붙여 있지 않습니까? 근데 그 나라 말을 제가 모르니까 거기를 그냥 모르고 들어갔더니 기관총이 제 가슴에다 푹 대는 거예요. 근데 그 짧은 순간에 어마어마한 어려서부터 왜 중요한 사건들 있죠? 어마어마한 것들이 한꺼번에 쫙 떠올라요. 아주 짧은 순간에요.
◈ 최수영 : 파노라마처럼 하는데 그게 압축으로 떠올랐나요?
☆ 김홍신 : 압축으로 떠올라요. 그래서 제가 어떤 신부님한테 무슨 얘기하다가 그 얘기를 했더니 이제 물론 산 사람이지만, 다리 위에서 옥상에서 떨어졌는데 산 사람들 있잖아요. 그분들 얘기하고 똑같다는 거예요. 그분들도 뭐냐 하면 거기서 뛸 때는 에이 죽자 하고 뛰었는데 내리는 그 짧은 순간에 뛰어내리는 그 짧은 순간에 온갖 것이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파노라마가 아주 압축적으로 떠오르거든요. 그런 걸 떠오르고 나면 살았을 때의 황홀감 있죠. 이걸 느끼게 돼요. 그래서 제가 학생들한테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게 생명의 존엄성 어떠한 경우라도 자기 목숨은 이 지구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내 자신을 위해서 지켜줘야 된다. 이런 걸 강조합니다.
◇ 이익선 : 근데 그 국경경비대가 있는 나라는 어디였어요?
☆ 김홍신 : 리비아였습니다. 카다피를 만난 다음 날인데 거의 국경 경비대인데 그걸 모르고 제가 바닷가 바위 뒤로 갔거든요. 근데 그 앞에 써붙여 있는데 근데 그 앞에 그게 써 있는 게 뭐냐 하면 거기로 오면 무조건 발포한다. 이거였다는데 글자를 모르잖아요. 그냥 바다 경치 때문에 그냥 들어갔던 거죠.
◇ 이익선 : 안내하는 분들도 안 계셨어요?
☆ 김홍신 : 아니 이제 뒤에 있는데 그분이 저를 안내하던 분이 뭐냐 하면 옛날은 카메라 필름 갈아 끼우잖아요. 그게 저를 사막에서 사진 찍어주고 카메라 필름을 갈아끼는 사이에 그 사람하고 같이 갔어야 되는데 제가 앞으로 간 거예요. 찰나의 순간이죠.
◇ 이익선 : 지금 국경경비대 말씀 전에 코로나 얘기를 하셨거든요. 코로나 때 무슨 일 있었어요?
☆ 김홍신 : 코로나로 제가 응급실, 음압실, 일반 병실에서 한 20여 일간 그러니까 죽음을 겪은 거죠. 그리고 거기는 하루에 사람을 5번 이상은 못 봐요. 간호사, 의사 그 하루에 5번밖에 못 보는데 그분들도 저는 지금 눈만 기억이 나요. 우주복 같은 걸 입고 눈도 고글 같은거 썼거든요. 그러니까 눈밖에 기억을 못하는데 거기에 있으니까 죽음을 선고받은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분들은 이제 천사예요. 저한테 몸에 주렁주렁 매달려 놓고 뭐 맨날 그러지만은 천사였는데 참 사람이 얼마나 간사하냐면요. 이제 일반 병실로 퇴원하고 다음날 보니까 분명 천사였거든요. 근데 다음날 보니까 간호사, 의사 선생님이더라고요. 천사가 아니고 사람이었어요. '겪어보면 안다‘ 에 그런 얘기를 다 써놨습니다.
◈ 최수영 : 아니 근데 지금도 이번 책이 무려 139번째에요?!
☆ 김홍신 : 예 39번째 책입니다.
◈ 최수영 : 아니 어떻게 그렇게 이런 다작을 그리고 또 대중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시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시는 겁니까?
☆ 김홍신 :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죠. 뭐 그러니까 미치고 싶었는 게 그 어려서부터 제가 그 제 나이에 유치원 다닌다면 거짓말로 알아요. 그게 53년도 졸업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졸업 사진을 보니까 흑백인데 거기는 단기 4,300만년 써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그 성당 유치원인데 그 불란서 신부님이 외국 만화를 갖다가 전부 말풍선을 우리말로 바꿔줬어요. 그러니까 유치원 다니면서 한글을 뗐으니까 만화에 말하자면 미친 거죠. 그리고 그러다 보니까 초등학교 때도 만화에 미치니까 어머니는 만화를 읽으면 나쁜 짓 하는 걸로 알았어요. 그러니까 동화 소설 뭐 이제 옛날에 책이 없으니까 닥치는 대로 그래서 그 활자 중독인데 지금도 활자 중독이 돼 있습니다. 오죽하면 집에서도 신문을 4개나 봤고요. 잡지 이렇게 봐야죠.
◇ 이익선 : 아니 이렇게 안경을 이렇게 눈 괜찮으세요?
☆ 김홍신 : 눈이요 사람을 살리느라고 그랬는데 그전 멀리는 잘 보이고 앞에 거는 안경을 썼거든요. 근데 지금은 앞에가 잘 보이고 멀리가 안 보여요.
◈ 최수영 : 건강하시고 정정하시네요.
◇ 이익선 : 아니 그런데 몇 남매 중에 몇 째세요?
☆ 김홍신 : 외아들입니다.
◈ 최수영 : 그러니까 성당 유치원 다니신 거예요.
◇ 이익선 : 그러셨구나. 그러니까 또 어머니께서 이거 만화 안 된다. 하신거군요.
☆ 김홍신 : 그렇죠. 그리고 이제 제가 의대를 떨어지고 나서 국문과를 저가 몰래 선택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그 글쟁이는 배고프죠. 폐병쟁이 배고픈 거 그다음에 말썽꾸러기 뭐 어머니는 그렇게 알더라고요. 근데 저는 죽어도 그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 이익선 : 그때 꺾으셨으면 나중에 후회하셨을 것 같아요.
☆ 김홍신 : 그렇죠. 근데 제가 재수할 때 부모님은 제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사실은 재수할 때 소설을 7편을 썼습니다.
◈ 최수영 : 그때 쓰신 7편이 결국 139건까지 온 거죠.
☆ 김홍신 : 그런 걸 쓰는 이제 기초가 됐던 것이죠.
◇ 이익선 : 아니, 근데 소설을 쓰려면 글감이 있어야 되잖아요. 상상하셔야 되고 모티브가 있어야 되고 관찰하셔야 되잖아요?
☆ 김홍신 : 그러니까 책을 많이 읽은 덕하고 그다음에 제가 여러 가지 일을 젊어서부터 많이 저질렀어요. 그냥 순탄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저지르는 것이 소재가 됐고 그다음에 제가 첫 번째 직장에 군 장교로 ROTC 장교로 제대하고 첫 직장이 지금은 이제 월드비전이는데 옛날에는 선명회라고 했어요. 거기에 선명회 산하에 지금으로는 한센병인데 옛날에 나환자... 거기에 제가 그 당시 나환자들하고 2년을 함께 살면서 나환자들이 먹는 DDS라는 약이 있어요. 굉장히 독한 약이에요. 그 약을 6개월간 먹었어요. 연대의대 유진 박사님이 제가 하도 한센병 환자들하고 같이 밥 먹고 돌아다니고 자고 하니까 그 뭐라고 그러죠? 불안하다. 그래서 그분이 예방 차원에서 일부러 약을 먹였어요. 강제로 저는 먹기 쉽지 워낙 약이 독한 거였어요.
◇ 이익선 : 그 외아들이 지닌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본인이 마구 뛰어넘고 길들이지 않는 말처럼 살았네요.
☆ 김홍신 : 그러니까 어머니는 늘 그랬어요. 저거 인간이 될까 모르겠네.. 그랬는데 인간이 됐지 않습니까?
◈ 최수영 : 나중에 또 말씀드리겠지만 그래서 인간 시장이라는 또 어마어마한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 이익선 : 3661님 김홍신 작가님 저는 67세입니다. 올해 우리 전 인간시장으로 역대급 돌풍을 일으키셨는데 반갑습니다. 여전하세요. 항상 건강하시고 지금처럼 활동하시면서 많이 많이 행복하세요. 이렇게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인간시장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81년에 발표된 소설 주인공 장총찬이 나의 롤모델이다. 하는 분들이 정말 많으셨는데 멀지 않은 곳에 그런 분이 한 분 계셔서요.
◈ 최수영 : 제가 81년도면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수업시간에 제가 인간시장을 가지고 와서 보다가 선생님한테 뺏긴 적도 있지만 친구들이 이거 돌려보자고 하는 통에 제가 아주 성화에 아주 등살 시달렸습니다.
☆ 김홍신 : 그러니까 선생님이 오늘 그 자리에 계신 거예요.
◈ 최수영 : 그러면서 밤에 잘 때 꿈을 꿉니다. 제가 장총찬처럼 하는 꿈을 꿉니다. 그 꿈꾼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 김홍신 : 그러니까 장총찬이라고 속이고 다니는 사람들을 제가 많이 만났고 그다음에 가짜 김홍신이 있었죠. 그다음에 가짜 인간시장 책이 리어카 좌판에 돌아다녀 있죠.
☆ 김홍신 : 카피본도 아니고 그러니까 겉만 인간시장이고 안은 다른 내용이에요. 그래서 그걸 아주 싸게 파는 거가 있었고 별일이 다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짜 김홍신 생각해 보세요. 제 집을 찾아왔어요. 여성이. 보니까 그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막 우니까 아내가 이렇게 안아주면서 그러니까 많이 속은 거예요. 돈도 속고 자기가 김홍신이라고 하고 사기친 거죠.
◇ 이익선 : 세상에.
☆ 김홍신 : 근데 지금도 왜 가짜들이 많잖아요. 근데 저를 그제 가짜가 있었다는 게 세월이 지나도 물론 글로 썼지만 잊을 수가 없어요.
◇ 이익선 : 근데 그분은 또 얼마나 김홍신이 되고 싶었으면 그랬을까요?
◈ 최수영 : 아니 제가 살면서 저도 기억에 이승만 대통령 양자 사칭 사건 이후에 사람 사칭한 사건 처음 봅니다.
☆ 김홍신 : 그런 게 있었죠. 맞습니다.
◇ 이익선 : 근데 그 인간 시장을 쓰시게 된 어떤 결정적인 계기나 사건 이런 게 있으셨어요?
☆ 김홍신 : 있었죠. 제가 그 당시에 동아일보에 컬럼을 쓰는데 이게 이제 서울 요철이라고 그래갖고 뒷골목 얘기예요. 그런 얘기를 쭉 취재를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니까 취재를 하러 다녀야 되잖아요.
◇ 이익선 : 직접 취재를 하시면서요?
☆ 김홍신 : 그런 거를 한 데다가 그 당시에 제가 도둑놈과 도둑놈이라는 꽁트집을 샀는데 이제 헤엄 때 잡혀간 거예요. 그분이 언론 통폐합에 주모를 했던 분이고 국회의원까지 했는데 그분한테 잡혀갔어요. 근데 그분이 뭘 총괄했느냐 하면 이렇게 이게 신문,방송,잡지 뭐 이런 것들을 모두 그 뭐죠? 검열했잖아요.
◈ 최수영 : 간행물에 대한 모든 검열했죠.
☆ 김홍신 : 네 총책임자였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그 양반이 저를 잡아간 거든요. 그런데 가보니까 다 양복인데 권총 차고 있더라고요. 권총이 이렇게 양복 밖으로 볼록 나와요. 그래서 주인공 이름을 ‘권총찬’으로 지었는데 그때 그 편집국장 신민석 편집국장이 이번에 어디다 글을 쓰셨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검열이 안 나와서 장총찬으로 성을 바꿨다.
◇ 이익선 : 아하! 그렇게 하셨구나!
☆ 김홍신 : 그래서 저를 왜 그 신인을 연재소설을 쓰겠냐? 그랬더니 원고를 조금 줘도 되니까. 그래서 시켰는데 이게 대박이 났습니다. 그래서 83년인가요?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역사에 기록이 됐고. 그러니까 그때까지 이제 560만 부로 공식 기록이 그렇게 돼 있죠. 물론 더 팔렸지만요.
◈ 최수영 : 어느 작품이든 예술 작품이 그렇게 큰 엄청난 성공을 이룰 때는 그 시대적 상황과 욕망을 담고 있다라는 이제 그런 분석이 있는데 그 당시에 그러면 장총찬에 이렇게 몰입했던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 김홍신 : 그때 우리 국민들은 모두 특히 이제 광주 민주화 항쟁 그런 것들 때문에 모두 계엄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이렇게 울분에 차 있었어요. 근데 한국인은요 울분에 차 있을 때 명분이 주어지면 목숨 딱 내놓는 민족이에요. 그래서 그 작은 민족의 숫자가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서 그렇게 기가 막히게 한 민족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시장은 가진 자 쥔 자, 흔드는 자, 뽐내는 자, 이 사람들을 계속 물고 늘어지고 주먹으로 두들겨 패고 하니까 대리만족 이래서 이게 폭발적으로 그렇게 됐다. 이게 평론가들 주장이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근데 우리 국민이 참 위대한 것이 제가 국회의원이 딱 되는 순간 인간시장이 안 팔렸어요. 제가 권력으로 들어가니까. 저는 그걸 보고서 인간시장이 안 팔리는 시대가 저는 좋은 시대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이 책은 안 팔려야 된다고 작가의 말을 썼거든요. 출판사 사장이 뭐라고 그러는 줄 아세요? 아니.. 지금 책이 잘 나가는데 안 팔리는 시대가 좋다고 하니 나는 어떡하란 말이냐?.. 그래도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책이 안 팔릴 정도로 대한민국은 진짜 우리 국민의 DNA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 이익선 : 정말 이런 말씀 듣고 싶었어요. 제가 사실은 앞 코너에는 시사 코너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좌우 패널이 나와서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어요. 근데 논쟁을 벌이다 보면 청취자 입장에서는 피곤한 소리가 나올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모두를 교양시키는 말씀을 듣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 최수영 : 원래 정치에 입문하시면서 장총찬 하실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는데 진짜 정치해보시니 어땠어요?
☆ 김홍신 : 진짜 제가 별명이 여의도 장총찬이죠. 심한 경우는 이제 좀 여러 가지인데 상습적 당론 거부자에다가 마지막에는요. 오죽하면 제가 별명이 빈라덴까지요.
◈ 최수영 : 일종의 탈레반의 수괴다?
◇ 이익선 : 딴지를 걸으셔서요?
☆ 김홍신 : 대통령 총 지도부하고 계속 맞장을 붙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런 별명까지 얻었죠. 그러니까 저는 그렇게 해서 가장 국회의원으로 역할을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8년 연속 선정이 됐거든요. 그리고 그 내부에서는 미움을 되게 받은 거죠. 근데 첫날부터 받았어요. 국회의원은 5월 30일날 됩니다. 그러면 31일 이틀이요. 이틀 걸어서 한 달치 세비를 줘요. 그래서 세비 거부 운동을 시작한 거죠.
◈ 최수영 : 근데 다른 동료분들은 그러겠죠. 왜 잘난 척이야?
☆ 김홍신 : 혼자 그렇게 미움을 받았는데 그 세비가 지금은요. 일할 계산을 해요. 그러니까 이틀밖에 안 줘요. 지금은 근데 그 법을 바꾸는 데 5년 걸렸습니다. 그리고 더는 이제 반납을 다 해버렸죠. 반납해도 이게 문제예요. 반납을 해도 법적 근거가 없어요. 그래서 국고유치금에 집어넣어요. 넣으면 5년 동안 제가 소유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5년 뒤에 국고로 들어가요. 이게 말이 돼요?
◇ 이익선 : 그러면 상습적 당론 거부자 하셨으니까 우리 김양원 PD가 모두까기 원조시네요.
하셨는데 지금 정치인들에게 한 말씀해 주신다면요?
☆ 김홍신 : 정말 국민들이 가장 비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현 국회의원들이거든요. 아쉬워요. 거기서 물론 훌륭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후배들이 그건 분명히 있어요. 그러나 대다수가 지금 말하자면 국민 감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 정신 차려야 돼요. 지금 잘못하면 현 국회의원들이 대다수가 나중에 역사에 간신이 될 수밖에 없어요. 정신 차려야 돼요. 왜냐하면 국회의원 됐으면 역사 인식 그다음에 국민 인식을 철저히 해줘야 돼요. 명절에 국민은 1원 한 푼 못 받죠. 자기가 세금 내는데도. 국회의원들은 명절에 떡값 850만 원 받아요. 이게 말이 돼요? 이거 거절할 수 있어야 돼요. 그다음에 또 하나 좀 정신 차려야 될 게 셀프 연봉이요. 지금 연봉이 1억 5천이 넘잖아요. 그다음에 각종 배려까지 다 받잖아요. 그다음에 특혜가 얼마 남아요? 셀프 특혜잖아요. 이걸 버려야 돼요.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거는 월급은 400여만 원이면 된다. 그다음에 말하자면 권위와 권력을 갖고 있잖아요. 그 두 가지의 가격은 어마어마한 거잖아요. 그럼 그것만 갖고 나머지는 놔야죠. 근데 몇십 가지의 특혜를 맞아 특권을 부리고 있잖아요. 이걸 내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간신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이걸 정신 차려야 됩니다. 그래서 현 국회의원 중에 젊은 친구 중에 저처럼 이 주장을 내부에서 강력히 하면서 세비 반납 운동 특권 내려놓는 운동 이걸 누군가 해줘야 돼요.
◇ 이익선 : 그럼 국민들 지지하죠.
☆ 김홍신 : 그렇죠. 당연히 지지하죠. 그러면 이제 내부에서는 미운 털은 분명히 있을 거에요. 그 미운털은 그 사람을 말하자면요.
◈ 최수영 : 한국의 마크롱이 될 수도 있다. ☆ 김홍신 : 그렇죠.
◈ 최수영 : 그럼 혹시 지금 현역 의원 가운데 작가님께서 주목하고 계신 정치인 꼽을 수 있을까요?
☆ 김홍신 : 글쎄 여야를 떠나서 분명히 있는데요. 지금 이름 대기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에게 제가 지금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는 이유가 뭐냐 하면 언젠가 빨리 특권 내려놓기와 세비 삭감과 그런 것들을 좀 주장을 적어도 몇 명쯤 해서 파란을 한번 일으켰으면 좋겠어요.
◈ 최수영 : 제가 오늘 인터뷰 기사에서 보니까 하여튼 국회의원들 그런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은 우리 행정부처에 한 4급 공무원 정도 월급 받으면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 김홍신 : 제가 그 주장을 한 거예요.
◇ 이익선 : 알겠습니다. 약간 공적인 얘기를 해드렸는데 저는 꼭 여쭙고 싶었던 게 작가로서의 그 섬세함과 말랑말랑한 선모운동하는 것과 공적인 역량이 정치인으로서 투쟁하는 거는 정말 다른 캐릭터인 것 같아요. 보기에 그 충돌을 어떻게 감내하셨어요?
☆ 김홍신 : 작가는 시대를 조명하는 사명이 하나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작가적 소명을 가지고 정치를 하니까 제가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그 내부에서 미운털이 박혀도 견딜 수가 있었던 것이죠.
◇ 이익선 :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잖아요.
☆ 김홍신 :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 이익선 : 병나잖아요.
☆ 김홍신 : 근데 병 안 난 이유가요? 뭐냐면 저를 쫓아내려고 별소리를 다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단상에 올라가서 마지막 발언할 때 이렇게 얘기해요. 그래 당신들이 그렇게 미우면 내가 국회의원 사표 내겠다. 대신 나가서 실명 소설을 쓰겠다.
◇ 이익선 : 최고의 복수인데요.
☆ 김홍신 : 그러면 조용해져요. 그러니까 제가 글이라고 하는 말하자면 소설이라고 하는 그 하나의 제 사명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저를 건드리다가 만 거였죠.
◇ 이익선 : 아까 왜 저기 국회의원 되자마자 책 안 팔린다 그러셔서 그 질문하고 싶었어요. 국회의원 되신 걸 후회하신 적 있으세요?
☆ 김홍신 : 없어요. 저는 정말로 기초생활보장법, 의약분업 예를 들어서 장애인복지법 등 그런 것들을 제가 주도적으로 만들었지 않습니까?
◇ 이익선 : 제정하신 것도 있으세요?
☆ 김홍신 : 지금 이건 제정한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만든 거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도 그러나 저는 기분 좋아요. 그러면서 제가 살면서 느낀 게 뭐냐 하면 제가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보답할 길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걸로 조금이라도 보답을 했다는 충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이익선 : 아니 무슨 시간은 이렇게 빨리 가죠. 40번째 책 출간하시면 저희 프로그램 또 나와주신다고 약속해 주세요. ☆ 김홍신 : 네 알겠습니다.
◇ 이익선 : 아빠로서는 어떤 분이였어요?
☆ 김홍신 : 그러니까 애들한테는 좋은 아빠는 아니었죠. 왜냐하면 제가 집에 들어가면 지금 식으로 얘기하면 그 책을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집에 딱 있는 동안은 제 집안이 고3이 하나 있는 거였죠. 집안이 조용해야 되고 그렇게 됐으니까 아이들하고 여행도 잘 못했고 놀지도 못했고 그러니까 아이들한테는 좋은 아빠가 아니었습니다.
◈ 최수영 : 저는 최인호 선생님하고 얘기하시면서 용서라는 말씀하신 대목이 저는 굉장히 닿았는데 그거 한 번 다시 설명해주세요.
☆ 김홍신 : 제가요. 그러니까 무명 때 제일 누구를 뒷담화 했냐 하면 최인호. 왜냐하면 질투 시샘 때문에 천재 작가고 너무 유명하니까. 그러고 나서 제가 그 뒤에 유명해져서 같이 문학상 심사를 하는데 너무 부끄러워 가지고 제가 선배님 그때는 선배님이라고 할때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선배님을 뒷담화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저를 물끄러미 보더니 탁 끌어안아요. 나 욕을 하고 용서해 달라는 사람이 최초라면서. 그래서 그날 밤에 술을 마시면서 의형제를 맺은 거예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의형제로 살았죠.
◈ 최수영 : 그러니까 그렇게 또 마음을 내려놓고 나시니까 그렇게 편하신거죠?
☆ 김홍신 : 세상에 용서해 달라고 했을 때 부끄럽지만은 할 수 있는 것도 용기거든요. 그다음에 그걸 용서를 받아주는 그 인호형의 큰 마음. 이것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 겪어보면 돼도 그 얘기를 썼어요.
◈ 최수영 : 저기 마지막으로 한번 여쭤보고 싶은 건 좀 아픈 얘기지만 아내와의 스토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좀 울림과 좀 잔잔함을 주셨습니다.
☆ 김홍신 : 예. 근데 아내가 워낙 오래 병상에 있었으니까 제가 그런 생각까지 했어요. 저렇게 고통스러우니 떠나야지 빨리 떠났으면... 근데요, 산 사람을 떠났으면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고백을 했어요. 사실은 당신 떠났으면 하고 제가 마음속으로 빈 적이 있다. 용서해 달라 그랬더니 막 울면서 그러는 거예요. 나도 빨리 떠나야 당신이 편하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내가 떠나면 제발 건강한 여자를 만나라 그러더라고요. 하도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가슴속에 있어요. 그래서 죽은 지 한 달쯤인가 됐을 때 제가 아내 휴대폰에다 전화를 걸었어요. 전화를 걸었더니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이게 뜨더라고요. 그걸 가지고 시한편을 썼죠. 별 얘기 다 했습니다.
◇ 이익선 : 가끔 시간 남으시면 좀 와주셔야 될 것 같은데 오늘 쌀롱 드 상암. ‘겪어보면 안다’ 신간을 내주신 139번째 책을 내주신 김홍신 작가님과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