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4년 7월 17일 (수요일)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김아영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원화 변호사(이하 이원화) : 그날은 인천에 있는 몇몇 고등학교의 축제 기간이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본인들이 몇 달 동안 준비해온 이벤트를 잘 마쳤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풀렸고 이대로 그냥 집으로 갈 수 없다 생각했죠. 그렇게 아이들은 인현동의 한 호프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신나게 축제 뒤풀이에 빠져들었죠. 그런데 그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돈을 내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며 아이들을 가로막았던 호프집 사장. 그렇게 아이들은 호프집 사장의 탐욕에 가로막혀 화염 속에서 쓰러져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화재 사건 중 세 번째로 사망자가 많았던 1999년 인현동 화재 참사 이야기인데요. 올해로 25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아이들의 탈출을 막았던 가해자는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응당한 처분을 받았을까요?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엑스파일에서 이 사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김아영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 김아영 변호사 (이하 김아영) : 안녕하십니까 김아영 변호사입니다.
◇ 이원화 : 사건을 넘어 참사로 기억되는 그런 사건입니다. 1999년 인천 인현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 큰 불이 났었죠?
◆ 김아영 : 네 1999년 10월 30일 토요일 인천시 중구 인현동 상가 건물에서 난 화재로 건물 안에 있던 중고등학생을 비롯한 57명이 사망하고 79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이날은 인천시내 10여 개의 고등학교에 가을 축제가 있었던 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상가가 더욱 붐볐고요. 특히나 건물 2층에는 축제가 끝난 후에 모여서 뒤풀이를 즐기던 120명의 학생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 이원화 : 총 4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불은 지하 1층에서 시작된 것 같더라고요. 지하 1층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김아영 : 네 최초로 건물에 처음 불이 난 건 오후 6시 55분경이었는데요. 지하 1층 노래방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시작됐습니다. 공사 현장이었던 노래방에서 일하던 10대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담배를 켜려고 불을 켰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당시에 이제 노래방 내부가 도색 공사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작업자들이 사용했던 페인트, 그다음에 시너통 이런 것들을 내부에 잘 둔 것이 아니라 그냥 다음 날 또 써야 하니까 가운데에 그냥 놓았던 게 화근이 됐습니다. 그래서 노래방 청소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켜는 순간 밀폐된 공간에 가득 차 있던 화기성 유증기에 불이 붙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입구에 있었던 페인트 시너통 여기에 불이 번진 거죠. 그런 데다가 좁은 노래방 내부에 이제 순식간에 불이 붙어버린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 이원화 : 혹시 스프링클러가 없었나요?
◆ 김아영 : 원래는 이게 천장에 15대 정도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해요. 그러는데 도색 공사를 하고 있었던 공사 인부들이 공사에 방해된다면서 이걸 일단 모두 제거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 전혀 작동 자체를 하지 못했던 거죠.
◇ 이원화 : 지하 1층에서 시작된 불이 건물 위로 타고 올라간 거군요.
◆ 김아영 : 네, 1층은 고깃집이었는데요. 1층 고깃집에 있던 사람들은 불이 나자마자 바로 알아채서 지상이다 보니 바로 대피를 했어요. 그리고 3층은 당구장이었거든요. 그래서 당구장에 있던 사람들은 당구장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서 탈출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층이었어요. 그래서 2층은 50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호프집이었는데요. 이제 호프집이다 보니 테이블, 의자 이런 것들이 실내에 가득 차 있었고요. 심지어 테이블을 가득 놓다 보니까 이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한 사람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좁았다고 합니다.
◇ 이원화 : 그런데 방금 2층이 문제였다 말씀 주셨는데 3층에서도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서 부상자는 나왔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하셨잖아요. 그런데 2층이라고 하면 3층보다 한층 더 아래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탈출이 더 쉽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게 아니었나?
◆ 김아영 : 네 3층 같은 경우에는 이제 창문이 열리는 창문이다 보니까 깨거나 열거나 해서 모두 다행히 탈출을 했는데 2층 창문은 통유리였어요. 인테리어상으로 그래서 통유리를 깨지 못했고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석고보드로 모두 막혀 있었다고 합니다.
◇ 이원화 : 그런데 애초에 아이들이 들어간 출입문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문으로는 나올 수 없었던 상황인 겁니까?
◆ 김아영 : 120명이 북적이고 있었는데 화재를 뒤늦게 알아챈 아이들이 대피하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사장이 돈 내고 나가라라고 하면서 출입구를 막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가려고 하고 사장은 막으면서 실랑이가 벌어지면서 점점 불길이 더 심해지고 유독가스는 또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거죠. 특히나 내부가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뿜는 인화성 물질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해요. 아이들이 정신이 혼미해지는 틈에 불이 나면 전기가 또 끊깁니다. 그래서 주위가 깜깜해지니까 더욱더 출입문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는 거죠.
◇ 이원화 : 아이들이 착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나,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그러면 창을 깨고 나갈 수도 없고 출입구도 막혔고 혹시 비상구는 없었나요?
◆ 김아영 : 출입구도 막히고 창문도 막히고 게다가 전기가 나가서 어둡고 희뿌옇고 연기는 나오니까 아이들이 막 우왕좌왕하다가 비상구 불빛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이들이 모두 그쪽으로 몰려갔는데요. 아주 비극적으로 이 비상구 불빛이 가짜였습니다. 이게 소방 점검을 위해서 눈속임용으로 그냥 달아둔 거였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비상구 문을 여니깐 화장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불길 자체는 35분 만에 잡혔는데 사건으로 결국 57명이 죽고 75명이 큰 부상을 입는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 이원화 : 그래서 소방관들이 아이들을 구조하러 왔을 때 화장실 앞과 안쪽으로 수십 명이 뒤엉킨 채 발견됐다고 합니다. 특히 화장실 문 안쪽으로 탈출하려던 아이들의 까만 손자국이 가득했다고 하는데 정말 너무 끔찍하고 충분히 이 아이들이 대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잖아요.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그런 참사가 아닌가 싶은데 이 호프집 사장 이 사람도 탈출 못했겠네요.
◆ 김아영 : 사장은 호프집 내부 구조를 잘 알지 않습니까? 그래서 창문도 못 나가고 출입문은 막혔고 비상구는 원래 가짜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주방으로 빠르게 뛰어갑니다.그래서 주방 환풍기를 뜯어내요. 그래서 그곳을 통해서 탈출했습니다.
◇ 이원화 : 너무 충격적이고 사실 그렇게 도망갈 거면 아이들을 데리고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드는데요. 이 사장이요 심지어 사건 발생하고 도망쳤다는 얘기가 있어요. 어떻습니까?
◆ 김아영 : 네 본인도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알겠죠. 그래서 화재 직후에 잠적을 했는데요. 사고 발생 3일 후에 자수를 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장이 인근에서 노래방, 호프 PC방 가게 8곳을 운영하는 제법 큰 규모의 큰 손이었습니다. 그래서 불이 시작된 지하 노래방 역시 그 사장의 소유였고요. 그리고 불이 번졌던 2층 호프집 그래서 운영하던 업소가 모두 그의 소유였는데요. 이 인근에 다른 8곳 또 모두 문제가 있는 무허가 업소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2층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호프집 같은 경우에는 3월 안전 기준 미달로 적발이 된 상태여서 관할 관청으로부터 영업장 폐쇄 명령을 심지어 받은 상태였대요. 그런데 사고 당시에는 버젓이 무허가 영역을 그렇게 위험하게 했던 거죠.
◇ 이원화 : 단속을 교묘히 잘 피하는 노하우라도 있었던 건가요? 어떻게 그게 가능했습니까?
◆ 김아영 : 이 모든 비극은 이 사장과 관내 경찰 담당 공무원들과의 유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벌어진 일이었는데요. 심지어 이 사장은 아이들 학교 앞에서 술집, 노래방 당구장 할인권을 나눠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서는 절대 단속되지 않는 술집이다 이렇게 입소문까지 났다고 합니다. 한 경찰관은 의경을 관리하던 방범 순찰대장으로 재직할 때 이 사장의 호프집 수리를 할 때 의경 3명을 지원 근무를 보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또 다른 경찰관 중에는 이 사장 소유의 고급 주택에서 전세로 사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 이원화 : 같은 어른으로서 정말 부끄럽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데 방금 호프집 사장과 유착관계에 있었던 경찰 공무원들이 19명이라고 했었던 것 같아요.이 사람들도 당연히 다 처벌받았겠죠?
◆ 김아영 : 네 당시 해당 호프집 불법 영업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경찰관 그리고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징계를 받았고 수사 대상이 됐습니다. 그래서 당시 대통령이 화재 참사 과정에서 경찰들 비리가 잇따라 드러나니까 사고 13일 만에 경찰청장을 전격 경질까지 했는데요. 하지만 검찰이 19명을 재판에 넘겼지만 실형을 받은 이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 이원화 : 이게 벌써 25년 전의 일이잖아요. 물론 단순 비교는 어렵겠습니다만 지금 이런 관계가 드러났다면 결과가 좀 달랐겠죠.
◆ 김아영 : 네 과거는 유야무야 지나갈 수 있었던 그런 시대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다르죠. 인터넷도 워낙 발달되어 있으니까 국민들 정서도 과거와는 다르고 제 생각에는 직무유기, 직권남용수뢰죄 이런 죄들이 포함되면서 수뢰후부정처사죄의 죄도 포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이원화 : 역시 근데 가장 궁금한 건, 이 호프집 사장 합당한 처벌 받았습니까?
◆ 김아영 : 네 호프집 사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혐의로 구속이 돼서 기소가 됐고 징역 5년이 확정됐습니다.
◇ 이원화 : 5년이요. 변호사님은 이 형량이 납득이 가십니까?
◆ 김아영 : 양형 기준 측면에서 보면은 사고 구호 조치 취하지 않고 또 초반에 사고를 발생하게 된 무허가 영역 상태들로 봐서 법정형에 따라서 처벌을 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화가 나는 경우는 초반에 아이들한테 술값 내고 가라고 아이들을 막아선 행위지 않습니까? 예전에 좀 오래된 판례이기는 한데 집에 불을 내고 그 집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을 막아서 불에 타죽게 한 끔찍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때 우리 판례는 집에 불을 낸 죄와 살인죄를 모두 인정했거든요. 저는 이 사건 같은 경우에는 그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그 사장이 잘 알면서 아이들을 막았던 것이 아이들을 죽이려는 의도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살인죄 성립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이원화 : 맞습니다. 최소한 미필적 고의는 인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작 가해자는 겨우 5년형 받았으니까 진작에 사회에 나왔겠네요.
◆ 김아영 : 네 이 사장은 교도소에서 5년간 복역을 해서 출소를 했습니다. 당시 나이가 34세의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아마 재판을 받고 해도 한 40세 전후가 되었겠죠.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아이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졌어요. 그래서 이 사장이 출소한 이후에 위령비를 찾아갔다고는 전해지는데 과연 이렇게 위령비를 찾아가는 것만으로 아이들에 대한 잘못을 비는 것이 끝이 날 수 있을까 그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 이원화 : 당시 희생자와 유족들은 호프집에 갔다 사망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비난 2차 가해를 당해야 했고, 그 시선은 지금도 여전하죠.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이 사태의 본질은 애초 그 아이들이 왜 그 호프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지, 또 불법을 모르는 척 눈 감아준 사회적 시스템이 얼마나 망가져 있었는지일 겁니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