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 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이혜민

인터뷰 전문

[잠시만요]낙마 사고로 한쪽 눈 실명한 윙크 의사"장애인이 되고 보니..."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4-07-09 01:45  | 조회 : 208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날짜 : 202479(일요일)

진행 : 이성규 교수

대담 : ‘씨 유 어게인출간한 윙크의사서연주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성규 : 낙마 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했지만 이제는 인생 이막을 펼치고 계시죠? 윙크 의사라고 불립니다. 병원에서 SNS에서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서연주 의사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연주 : 네 안녕하세요.
 

이성규 : 네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께 자기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서연주 : 네 안녕하세요. 저는 현직 내과 전문의이고요. 윙크 의사 연주당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서연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씨유어게인이라는 에세이를 출간한 저자이기도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성규 : 그 씨유어게인 지금 제가 들고 있는데 파란 풀밭을 이렇게 그리시고 이랬는데 이 에세이집 씨유어게인 한번 소개 좀 해 주시겠어요?
 

서연주 : 네 제가 사실은 1년 반 전에 이제 강원도 외승지에서 낙마하는 사고를 겪게 돼요. 그래서 이 사고로 제가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됐는데요. 그리고서 이제 당시 의사로 근무하던 병원에 제가 환자가 돼서 실려갑니다. 그리고 수차례 수술도 받고 제 인생에 닥친 여러 시련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면서 이 과정에서 느낀 치열하고 또 새로웠던 회복 과정을 담은 기록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성규 : 낙마 그런데 보니까 이제 말에서 떨어지신 거군요.
 

서연주 : 네 맞습니다.
 

이성규 : 씨유어게인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뭐에요?
 

서연주 : 일단은 제가 그 사고 당시의 상황이 되게 절망적이었는데요. 일단은 오염된 환경에서 다쳤기 때문에 제 안구 그러니까 이제 다 파열돼서 그 안쪽에 있는 내용물이 다 바깥으로 빠져나왔을 뿐만 아니고 외부에 있는 감염된 균들이 이제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다치지 않은 쪽의 안구도 적출해야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어요.
그래서 어쩌면 제가 영영 앞을 보지 못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컸었는데요. 하지만 너무 다행이게 이제 다른 쪽 눈은 무사히 살려서 제가 앞을 보는 기능은 유지하고 있고요.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까 제가 이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요. 한쪽 눈을 실명해서 그 왼쪽 눈인데 이 왼쪽 시야가 좁아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세상을 보는 시야가 확장된 것처럼 느껴졌고 저에게 생소했던 또 장애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제가 경험을 해보는 계기가 되면서 제가 다시 보게 된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반가움을 표현하는 제목이 씨유어게인입니다.

 

이성규 : 네 씨유어게인. 다시 이 세상을 본다. 낙마 사고 당한 게 언제였다고 그러셨죠?
그 이후에 막 몇 차례 수술을 하고 재활도 길게 하셨을 것 같은데.

 

서연주 : 네 맞아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사고는 2022116일 일요일 오전에 났고요.
그 전날인 토요일 저녁까지 제가 병원에서 교수님들하고 같이 의사로 세미나를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 밤에 강원도로 이제 운전을 해서 갔고 다음 날 아침에 사고가 난 거죠.
말에서 떨어지고서 제가 한 5분 정도 끌려갔다고 하는데 의식을 잃어서 당시에
기억은 전혀 안나요.

이성규 : 그게 왜 끌려 갔을까 어디 이렇게 걸렸나봐요.
 

서연주 : 발이 걸렸던 것 같아요. 등자에 걸렸던 것 같고 당시 그래서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어떤 기전으로 이렇게 눈이 파열됐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아직도
 

이성규 : 기절 상태였나요? 그때?
 

서연주 : 기절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근처 병원의 응급실로 먼저 실려갔고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사실 제가 왜 강원도에 있는지 왜 말을 탔는지 누구랑 있는지도 모른 채 소식을 들으셨어요. 그래서 응급실로 부모님이 이렇게 오셨고 오셔서 저희 아버지가 저에게 연주야라고 부르는 그 순간부터 제 기억이 시작되거든요. 그래서 그때 눈을 떠보니까 상황이 너무 안 좋았고 그래서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제가 근무하고 있던 병원으로 이제 옮겨지게 됐고 그래서 저는 결국 이제 24시간 만에 의사로 세미나를 듣다가 갑자기 피투성이의 환자가 돼서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에 도착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그 당시가 이제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소화기내과 분과 전임의 1년 차로 근무를 시작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이제 퐁당퐁당 당직도 서고 쉴 시간 없이 바쁜 삶을 지속하다 보니까 몸과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었어요. 많이 지쳐 있었고 그래서 그 조금이라도 생기는 여유를 되게 폭발적으로 소모를 시켜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에 여러 가지 승마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위험한 취미들을 즐기기도 했고 그러다가 이제 다쳤고 다치고 나서 실명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도 물론 힘들었지만 그거는 어쨌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였는데 그 이후에 생기는 여러 합병증들이 있었어요. 수술한 눈 쪽에서 감염이 생기고 그리고 넣었던 그 안구를 뼈 대신 바치는 티타늄 임플란트액 농양이 잡히고 그래서 수차례 수술을 반복했죠. 그러면서 환자와 의사의 사이를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아요.
 

이성규 : 그러니까 이제 지금 그런 거를 겪으면서 이거를 책으로 써봐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신 건데요. 이것도 참 쉬운 결정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나의 이야기고
 

서연주 : 네 맞아요. 이제 처음에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고요. 사실은 어떤 생각이었냐면 당시에 저는 이 비극이 나한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 그리고 내가 이전에 두 눈이 보이던 삶도 나의 삶이지만 앞으로 내가 한쪽 눈으로 살아갈 삶도 나의 삶이니까 이 과정을 힘들지만 기록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순간을 헤쳐나가는 제 자신을 남기기 위해서 글을 썼고, 근데 그러다 보니까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어서 제 마음도 몸도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그러다가 그 글이 책으로 연결된 거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정말 컸는데요. 이 제 이야기를 SNS에도 올리고 했더니 그 주변에 제 친한 동료들이 연주야 너의 경험은 네가 일하던 병원에 환자로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이렇게 헤쳐나가는 경험은 아무나 하는 경험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거를 더 많은 사람들한테 알리고 공유하기 위해서 책을 써보는 건 좀 어때? 내가 도와줄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어서 너무 감사하게도 책이 나오게 됐습니다.
 

이성규 : 많이 팔렸습니까?
 

서연주 : 그거는 잘 모르겠어요.
 

이성규 : 아마 오늘부터 불티나게 팔릴 겁니다. 책에는 지금 말씀하셨듯이 환자이자 의사로서 느낀 의료현장 얘기가 많이 나와 있더라고요. 그중에서 환자의 입장을 경험하면서 내가 과거 의사로서 무심했었던 부분이 있구나라고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한 부분이 저는 참 인상적이었어요.
 

서연주 : 정말 저한테는 아팠지만 저의 세상을 확장시켜준 그런 시기였던 것 같은데요.
사실은 이제 전공의 때 병원에서 오랫동안 이제 36시간 연속으로 일을 하고 뭐 퐁당퐁당 당직을 서면서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는 갈 꿈도 못 꾸고 이제 병원에서 먹고 자고 했었죠. 그때는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의사들을 이해를 못해주는 환자들이 가끔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거든요. 근데 이제 제가 갑자기 환자가 돼버린 거예요. 하루아침에. 근데 막상 환자가 되어서 제가 일하던 그 공간에 제가 환자가 돼서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니까 이게 너무 다른 공간 같은 거예요. 그리고 저도 의사라서 이 과정을 다 알고 그리고 예측이 됨에도 불구하고 너무 불안하고 또 두려운 거죠. 이게 내 입장이 돼보니까 참 많이 다르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 의사도 환자도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고생하는데 그리고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데 양측이 서로 잘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두 가지의 상황을 다 경험해 보고 나서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게 됐죠.

 

이성규 : 재활을 하시고 그러시면서 운전 같은 것도 연습을 따로 하셨나요?
 

서연주 : 네 제가 사실은 일상생활의 회복이 뭘까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요. 근데 저한테는 잘 먹고 그리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그냥 일반적인 존엄에 관련된 영역을 넘어서서는 운전 그러니까 이동의 자유와 그리고 해외 여행 그런 취미 생활의 자유가 포함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운전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되게 고민이 많았는데 제가 단안장애거든요. 그러니까 한쪽 눈을 이 안 보이는 빛조차 이제 분간이 안 된 상태인데 그런 상태를 오픈을 하니까 여기저기서 우리 엄마도 한쪽 눈 안 보이신다 아니면 우리 누구 친척도 한쪽 눈 안 보이신다 이런 얘기를 되게 많이 해주셨고 그런 분들 다 운전 다 하신다 저한테 이런 용기를 갖게 하는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당연히 운전을 아무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줄 알고 이제 운전을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시야가 좁아져서 생기는 사각도 많아서 그런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서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이성규 : 네 어떻게 보완을 하셨어요? 좁아진 시야를?
 

서연주 : 저는 그래서 이제 일단 미러를 관광 미러로 바꿨고 보조 미러를 2개를 더 달아서 지금 눈이 3개예요. 그래서 안 보이는 쪽 눈은 3개를 달고 다닌다 그래가지고 그래서 안 보이는 시야를 좀 보완할 수 있게 그런 이제 기술과 물건을 이용을 해서 이렇게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성규 : YTN 라디오 이성규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서연주 의사와 얘기 나눠보고 있는데요. 우리요. 이쯤에서 노래 하나를 듣거든요. 우리 서연주 의사 선생님께서는 어떤 노래 하나를 추천하시겠어요?
 

서연주 : 네 저는 제가 또 치유에 되게 큰 원동력이 됐던 게 음악이었어요. 제가 눈으로 이렇게 뭔가를 많이 못 보니까 음악을 들으면서 치유를 많이 받았는데 그때 Look Up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우연히 발견을 해서 들었는데 이게 제 상황하고 너무 잘 맞고 그리고 제가 이제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실명한 상태가 됐지만 다시 세상을 올려다볼 수 있는 그런 용기를 주는 곡이었어요. 그래서 그 곡을 말씀드립니다.
 

이성규 : 그러면 소연주 의사 선생님께서 추천하시는 Anna PhoebeFrances Shelley의 연주곡 Look Up 듣고 오겠습니다. Anna PhoebeFrances Shelley의 연주 Look Up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윙크 의사 서연주 씨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근데 서연주 선생님 장애인이 된 이후에 아까 일상 얘기를 조금 하셨어요. 그 좀 많이 새로웠을 것 같고
 

서연주 : 네 맞아요.
 

이성규 : 또 때때로 이 새롭다는 것이 세상이 나를 거절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을 것 같고 또 나는 그럴 때는 내 자신을 새로 고쳐야 되나 하는 그런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서연주 : 일단은 저 스스로 기능적으로도 한쪽 시력을 잃고서 좁아진 시야에 적응하는 것이 아까 운전 말씀드린 것처럼 좀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새로웠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새롭고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이제 거울을 통해서 이제 매일 보는 얼굴인데 한쪽 눈이 이제 작아져 있고 또 완전히 빛을 잃어서 흐릿해져 있는 모습이 처음에는 참 마음이 아팠어요. 마음이 아파서 속상하기도 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던 것 같은데 결국에는 이제 이런 갑자기 달라진 모습도 받아들이는 이제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좌절도 많이 했고 또 내가 뭐 이런 일상을 누려도 될까 이런 생각도 하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찾아나가는 게 또 저는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사실 이 모든 과정에서 느끼는 새로움과 거절 그리고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 이런 부분들은 많은 또 장애인분들이나 보호자분들께서도 느끼시는 부분일 것 같아요.
 

서연주 : 그래서 결국에는 이렇게 불편한 개인들이 배려받고 또 존중받을 수 있는 그게 비단 이제 장애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의 어떤 아픔을 가지고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어려움과 고군분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이해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좀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고요. 저 또한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성규 : 근데 그렇게 지금 정리된 말씀을 하셨는데 처음에 딱 다치셔서 병원에 가셔서 그 생각이 안 나고 아버지께서 연주야 할 때부터 생각이 난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에 그 심리와 멘탈 이런 쪽에 대해서는 별로 말씀을 안 해주셨어요.
 

서연주 : 그때 일단은 실려와서 저희 동료들이에요. 저희 동료들이고 제가 같이 일하던 간호사들이 저한테 다 달라붙어서 막 소변줄 넣고 또 라인 잡고 제 발에 발라져 있던 페디큐어를 아세톤을 막 빡빡 지워가지고 근데 저는 아무 힘이 없이 이렇게 나약하게 누워 있는 그 상태가 무기력하기도 했고 또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 같은 그런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미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불안 두려움이 들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응급 수술을 한 자정이 넘어서 끝나서 이제 병실에 입원을 했는데 저희 어머니가 같이 입원실에 들어오셨고 엄마가 다음 날 아침 새벽에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연주야 너 한쪽 눈 실명했대 이렇게 얘기를 하셔서 그 얘기를 사실 꺼내기가 되게 힘들었겠죠. 엄마 입장에서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요. 그렇냐 그리고 그냥 담담하게 있었지만 제 안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요동쳤죠. 이제 그럼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다른 쪽 눈은 괜찮은가 그리고 혹시 뭐 안구 이식이 되지 않을까 뭐 이런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성규 : 이제 윙크 얘기를 해봅시다. 새로운 삶에 이렇게 적응을 하신 거예요?
 

서연주 : 처음부터 막 윙크라는 생각을 제가 한 건 아니고 이건 되게 친한 20살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저한테 붙여준 별명이고요. 이게 뭐였냐면 지금은 그래도 눈이 조금 떠지는데 예전에 사고 나고 바로 당시에는 너무 심하게 다치고 해서 안구의 신경들이 다 망가졌었나 봐요. 그래서 36524시간 이게 눈이 감겨 있는 상태였거든요. 그 당시에는. 그럴 줄 알았고. 그래서 36524시간 저한테 이제 윙크를 하는 것 같다. 한쪽 눈이 감겨 있는 모습이
 

이성규 : 그 의미군요. 지금
 

서연주 : 그래서 제가 다치고 안 보이는 눈쪽이 아예 눈꺼풀이 닫혀 있었고 그 퉁퉁 부어서 닫혀 있는 그 모습이 윙크를 계속하는 것 같으니까 윙크 의사라는 별명이 어떠냐 해서 그런데 처음에는 이게 나는 이렇게 슬프고 비극적이고 불행을 당했는데 윙크라는 표현이 너무 가벼운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그 윙크 의사라는 별명을 제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윙크를 하려면 웃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그 웃는 버릇이 생기다 보니까 제가 삶을 좀 더 유쾌하고 또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시련을 잘 극복하게 된 아주 중요한 단어가 저한테는 윙크인거 같습니다.

 

이성규 : 이제 회복을 하신 이후에도 그 의사로 복직도 했고 그렇지만 또 상태가 악화된 게 한 두세 번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거 어떻게 이거를 하셨어요?
 

서연주 : 일단 일단은 사실은 워낙 이게 다친 범위가 제가 넓다 보니까 수술 후에도 이렇게 다양한 합병증이 생겨서 고생을 좀 했는데요. 가장 최근에 이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는 수술 7번째 수술을 했고요. 전신마취만 했을 때 7번째니까 그러니까 다른 수술방에 들어간 짜잘한 수술까지 합치면 더 많겠지만 그 수술을 했고 이제는 막 수술을 하도 많이 받아가지고 수술장 가는 게 이게 뭐 되게 긴장도 안 되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사실은 이렇게 뭔가 문제가 생기면 저는 제가 본업이 의사니까 이 상황에 예를 들어서 감염 합병증이 생겼을 때 이 감염 합병증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내가 어떻게 얼마큼 삶의 제한을 받을지를 예측할 수 있으니까 그 점이 굉장히 좌절스러웠던 시간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또 예측하지 못하고 계속 발생하는 이런 문제들이 저의 발목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발목을 잡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 나는 좀 괜찮아져서 이제 날아오르려고 하고 있으면 저를 다시 발목을 잡아서 끌어당기는 저의 건강 상태가 한때는 참 원망스럽고 좌절스러웠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상황들까지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일이 생겨도 괜찮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서 제가 그 상황에 맞춰서 또 나를 좀 더 변화시키고 또 그 상황에 적응을 하면 된다. 그 상황에 맞춰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이제 제가 나빠지더라도 이제 저를 살피고 또 최선을 다해줄 의료진이 있으니까 믿을 수 있는 의사 선생님들이 계시니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그런 면에서 한편으로는 그래서 우리가 같이 이 의료를 정말 잘 지켜 나가야겠다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성규 : 지금 건강 상태는 어떠세요?
 

서연주 : 지금 건강 상태는 물론 이제 실명하고 다친 부분에 대한 합병증들이 남아 있어요. 예를 들면 이제 염증이 생기고 또 이쪽 부위에 감각의 마비가 볼하고 얼굴 입술까지 해가지고 감각의 마비가 있거든요.
 

이성규 : 아직도요? 마비는 있어요?
 

서연주 : 네 마비는 있어요. 이거는 좋아질지 안 좋아질지 모르는 상황이고 아마 저는 좋아지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상황이고요.
 

이성규 : 그 안면 이런 쪽에 마비가 있으면 말씀하시고 이러는데도 뭔가가 불편함이 있어야 되는데 그거는 또 괜찮으신 것 같아요.
 

서연주 : 근데 이게 또 되게 이상한 게 겉에서 저를 보실 때에는 되게 문제가 없어 보이잖아요. 근데 이제 제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이게 감각, 감각에 마비가 생기다 보니까 운동 신경에 장애가 지금은 마비가 풀려서 괜찮아졌는데 현재는 이제 감각 신경이 다 손상된 상태라서 제가 느끼는 주관적인 그 느낌이 달라지고 힘들어진 거죠. 그러다 보니까 남이 나를 보는 시선과 내가 느끼는 나의 어떤 건강 문제와 이런 것들에 괴리가 또 생기면서 또 환자분들이 불편했던 부분들이 겉으로 봐서 그러니까 검사를 해서 이상은 없는데 스스로 느끼는 그런 불편감이 있잖아요. 그런 불편감을 호소하시는 분들 많았는데 그걸 설명하기 참 어려웠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성규 : 네 매달 마음의 튜닝이라는 걸 하신다면서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
 

서연주 : 네 제가 이제 또 말띠여서 그런가 제가 또 이렇게 질주 본능이 있어가지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또 호기심도 많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지금은 한쪽 눈밖에 안 보이고 또 어떤 건강상의 여러 가지 염증도 쉽게 생길 수 있고 감염 합병증까지 생긴 상황에서 너무 무리를 하게 되면 몸이 안 좋아지는 그런 경험들을 반복해서 했었거든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좀 그런 무리하지 않고 나의 몸이 달려나갈 수 있는 속도와 마음이 달려나가고 싶은 속도를 맞추는 과정이 진짜 인생에서 필요하더라고요. 그거는 사실은 그 사람마다 누구나 다 노화 과정을 겪으니까 나이가 들면 체력이 떨어지고 몸도 한두 군데 계속 망가지기 시작하고 이러면 그때마다 이제 좌절감을 많이 겪으실 텐데 그걸 저는 좀 더 이른 나이에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매달 저는 이제 제 마음의 상태를 그리고 몸의 상태를 좀 점검하면서 그 달의 키워드를 세 가지를 이렇게 정해요.

 

이성규 : 예를 들면요.
 

서연주 : 예를 들어서 이번 달 같은 경우는 선택, 포기, 지속
 

이성규 : 선택 포기 그리고 지속. 포기하면 지속이 되나요? 뭔가 좀 이게 이게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 같은데 개념이?
 

서연주 : 네 저는 그래서 어떻게 생각했냐면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든 걸 다 지속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중에 반드시 뭔가는 포기하고 그리고 선택해야 된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꾸준히 유지를 해서 지속할 수 있는 삶을 만들자. 이게 저의 이번 달의 목표였습니다.
 

이성규 : 이번 달의 목표 7월의 목표 지친 의사 연약한 환자 장애인과 함께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고 싶다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뭔가 모르게 저한테는 이렇게 울림이 좀 있었는데 이 어떤 의미예요?
 

서연주 : 네 일단은 저는 이제 제가 사람 곁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직업을 갖고 싶어서 의사를 선택했는데 이게 정말 운명적인 일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제가 다치기 전에는 전혀 장애라는 거에 대해서 부끄럽게도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많이 경험하면서 진짜 이 사회에 정말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런 사회적인 약자 장애인이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그래서 그들과 좀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모로 상처도 입고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여러 경험과 깨우침을 바탕으로 진정한 치유자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그 워딩을 쓴 것 같습니다.
 

이성규 : 앞으로의 계획을 포함해서 또 청취자 여러분들께 마무리 말씀해 주시죠.
 

서연주 : 네 일단은 사실은 제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주시고 또 제 책에 적힌 저의 마음들을 들여다 주시는 것만 해도 저한테는 정말 큰 위로가 되거든요. 그래서 요새는 어떤 생각을 하냐면 내가 진짜 과분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제가 다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저의 곁을 지켜준 가족을 포함한 수많은 좋은 사람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남기고요. 그리고 인생에 반드시 시련은 닥치는 것 같아요. 어떤 종류든 사람마다 많이 다르겠지만 그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 의미와 그리고 또 주변 사람들과의 어떤 사랑을 많이 찾으시기를 바라면서 저는 인사를 남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성규 :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한쪽 눈을 실명한 환자로 다시 세상을 보기까지 윙크 의사 서연주 씨가 건네는 빛나는 위로와 응원의 얘기 함께 들어봤습니다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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