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4년 6월 7일 (금요일)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황근주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원화 변호사 (이하 이원화) : 1999년 11월 5일 제주시 어느 초등학교 인근에 세워져 있던 차량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운전석은 온통 피투성이였고 핏자국은 차량 밖으로까지 이어져 있었죠. 부검 결과 남성의 사망 원인은 심장 관통에 의한 과다 출혈. 그렇습니다. 그는 날카로운 흉기에 의해 처참히 치명상을 입은 채로 운전석에 앉아 숨졌던 것이죠.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이 남성을 살해했던 걸까요? 제보를 통해 본인이 해당 사건의 내막을 잘 알고 있다는 이 남성. 놀랍게도 이 남성은 제보 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경찰에 의해 체포됐습니다. 1999년에 발생한 이 사건의 피의자가 경찰에 의해 검거된 건 놀랍게도 사건이 발생한 지 20여 년도 더 지난 2021년의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황근주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 황근주 변호사 (이하 황근주) :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황근주 변호사입니다.
◆ 이원화 : 매주 금요일 미제 사건 돌아보고 있는데요. 사건 파일 바로 열어보겠습니다. 변호사님 오늘 저희가 다룰 이 사건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죠?
◇ 황근주 : 그렇습니다. 사건 발생 20여 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용의자도 없었던 사건이거든요. 그런데 정말 우연한 계기로 용의자가 잡히게 됐습니다.
◆ 이원화 :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오늘 미제 사건 다루는 날 아닙니까? 그래서 용의자가 20년 만에 특정이 됐는데 왜 여전히 미제로 남았을까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먼저 사건 개요부터 알아볼까요?
◇ 황근주 : 이 사건은 1999년 11월 5일 아침 7시경 제주시에 있는 우체국 물류센터 앞에 주차된 승용차 운전석에 피를 흘리며 사망해 있던 남성을 발견한 한 주민의 신고로 시작됐습니다. 당시 승용차 내부와 도로에는 꽤 많은 양의 혈흔이 남아 있었고 사망한 남성의 팔과 가슴에 예리한 흉기로 찔린 흔적이 있었습니다. 부검 결과 이 남성은 흉기가 가슴뼈를 관통해서 심장을 찔러 사망한 것으로 확인이 됐고요. 이 남성의 신원도 밝혀졌는데 제주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이승용 씨로 확인되었습니다.
◆ 이원화 : 이 사망한 피해자가 당시 제주도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변호사였다고 하던데요.
◇ 황근주 : 네 맞습니다. 이승용 변호사는 검사로 생활하다가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가서 변호사로 활동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승용 변호사에 대한 미담만 계속 나왔기 때문에요. 경찰도 범행 동기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승용 변호사가 1998년도에 실시된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후원하던 후보가 아닌 상대당의 후보 캠프에서 일하던 선거 관계인이 이승용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아마도 제주도 지역에서는 상당한 인망을 얻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이원화 : 강도 살인이라고 보기도 힘들었었던 게 지갑에 현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해요.
◇ 황근주 : 네 맞습니다. 경찰도 처음에는 도난당한 금품이 없었고 사건 현장이 워낙 참혹했기 때문에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라고 판단하고 수사를 펼쳤는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이승용 변호사의 주변에 미담만 있었기 때문에요. 원한 관계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 이원화 : 그렇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이 됐을 것 같거든요?
◇ 황근주 : 피해자인 이승용 변호사가 검사 출신 변호사였고, 일반 가정이라든가 식당에서 사용되는 칼로는 이승용 변호사의 몸에 남긴 것과 같은 흔적을 남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특수 제작된 흉기가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고요. 경찰도 사안의 특이성을 인식하고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지만 처음에는 수임 사건에 대한 불만이라든가 원한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무려 60명을 용의선상에 올려서 추적했지만 모두 혐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승용 변호사의 가족과 함께 일했던 직원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에 경찰은 1만 장의 전단지를 만들어서 배포하고요. 현상금도 1천만 원을 내걸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의 현상금을 건 것입니다. 하지만 수사에는 진척이 전혀 없었습니다.
◆ 이원화 : 가해자가 치밀하게 범행을 잘 숨겼던 건가요? 아니면 수사가 부족한 점이 있었던 건가요? 왜 대대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없었던 겁니까?
◇ 황근주 : 이 사건이 있었던 때만 하더라도 아직 CCTV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지는 않았고요.
더군다나 범인은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범인이 이런 쪽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 이원화 : 경찰 측에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유족 측에서도 얼마나 이 상황이 답답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은 드는데 정말 놀라운 건 이 부분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말을 실감한 게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서 이 사건의 실마리가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 황근주 : 네 맞습니다. 20년 만에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승용 변호사의 유가족이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2016년도 경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 이 사건에 대해 취재를 요청했는데요. 이후에 제작진도 본격적으로 취재를 위한 활동에 돌입을 했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해서 일단은 취재가 중단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도 11월 말경 제작진은 자신이 이승용 변호사의 사망과 관련이 있다는 김 모 씨라는 사람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 이원화 : 김 씨라는 사람이 어떤 내용을 제보한 건가요?
◇ 황근주 : 제보자 김 씨는 자신은 이승용 변호사를 혼내주기만 하라는 청탁을 받고 일을 진행했는데 이게 잘못되는 바람에 이승용 변호사가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이원화 : 그러면 본인이 범죄에 얽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요? 이 정도면 자백 아닙니까?
◇ 황근주 : 제보자 김 씨는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상태에서 방송사 인터뷰에 응했는데요.
자신이 제주도 조직폭력배의 일원인데 두목인 백 씨로부터 이승용 변호사를 위협하고 오라고 지시를 받았대요. 이후 제보자 김 씨는 갈매기라고 불리는 친구에게 백 씨의 지시를 전달했는데 갈매기가 이승용 변호사를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거의 자백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취재가 계속될수록 제보자 김 씨의 태도가 이상해졌습니다.
제보자 김 씨는 나중에는 자신이 한 이야기가 전부 거짓이고 소설이라고 주장하면서 방송에도 동의한 적 없는데 방송사에서 자신을 속인 것이다라고까지 말을 바꿨습니다.
◆ 이원화 : 제보자라는 김 씨의 경우 과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용의선상에는 오르지도 않았던 아예 새로운 인물이었다면서요?
◇ 황근주 : 그렇습니다. 과거 사건 발생 직후 수사 단계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제보자 김 씨가 방송사에 제보한 내용을 바탕으로 취재가 이루어져서요.
2020년 6월 7일 방송이 되자 경찰이 방송 내용을 토대로 재수사에 착수했습니다.
◆ 이원화 : 김 씨라는 사람이 체포됐나요?
◇ 황근주 : 네 맞습니다. 제보자 김 씨의 제보 내용을 종합하면 결국에는 자신이 갈매기라는 친구에게 이승용 변호사의 살인을 교사하였다는 것이어서 수사를 재개한 경찰은 2021년 4월경 제보자 김 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했고, 2021년 6월 23일 캄보디아에서 불법 체류 중이던 제보자 김 씨가 검거되어 2021년 8월 20일 국내로 강제 송환되었습니다.
◆ 이원화 : 그러면 공범이라고 해야 할까요? 피해자를 죽였다는 나머지 1명은 신원 파악이 됐습니까?
◇ 황근주 : 김 씨가 말한 갈매기라는 친구는 김 씨와 같은 조직폭력배 조직원인 손 모 씨로 확인이 됐는데요. 손 씨는 2014년도 경에 이미 사망했다고 합니다.
◆ 이원화 : 그런데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게 살인범죄의 공소시효가 15년이잖아요. 물론 지금은 태완이 법 덕분에 공소시효가 없어졌습니다만 지금 이 사건 같은 경우 1999년 11월에 일어난 사건이니까 공소시효가 만료가 2014년 11월, 그러니까 태완이 법이 시행되기 전이기 때문에 2021년이 되어서야 피의자를 잡았다고 한다면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공소시효는 끝난 거 아닙니까?
◇ 황근주 : 이 사건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태완이 법에 따라서 2000년 8월 1일 이후에 발생한 살인 사건은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지만 그 이전에 발생한 살인 사건에는 15년에 공소시효가 적용됐죠. 그래서 김 씨는 이 사건이 1999년에 발생했고 이미 발생한 지 15년 이상이 경과했기 때문에 당연히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자백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 씨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태완이법은 이해를 돕기 위해서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살인 사건에 적용된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적용 대상은 2015년 7월 31일에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살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김 씨는 2014년 3월경에 사기 혐의로 수배를 받던 중에 해외로 출국을 해서 약 13개월가량 체류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원래는 2014년 11월까지였던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2015년 12월까지로 연장이 되어버린 거예요. 김 씨가 단지 수배를 받던 사기 사건뿐만이 아니라 이 사건까지 겸해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해외로 도피했다고 인정이 돼버린 겁니다. 그래서 결국 이 사건은 태완이법의 적용을 받게 되어 공소시효와 관련된 김 씨의 계산이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 이원화 : 저희가 이 시간에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해외에 체류하는 경우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그래서 만약 범인을 잡았는데 해외에 있었던 경우는 예외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몇 번 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라는 의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이게 되는군요.
◇ 황근주 : 네 물론입니다. 공소시효 제도는 국가가 일정 기간 형사소추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에 당사자의 법 지위의 안정성이라든가 효율적인 형사사법 시스템 운영을 위해서 그 형사소추권이 소멸한다는 데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가의 형사소추권이 미치지 않는 해외에 체류하게 되면 그 기간 동안은 공소시효가 정지됩니다.
◆ 이원화 : 그러면 재판에 넘겨졌습니까?
◇ 황근주 : 김 씨는 갈매기 손 모 씨와 공모해서 이승용 변호사를 살해한 살인 혐의와 제보한 방송국의 PD를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는데요. 1심 재판부는 놀랍게도 김 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김 씨 제보의 신빙성은 인정하면서도 김 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공동정범 성립에 필요한 기능적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이원화 : 청취자분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의아하실 것 같아요. 왜냐하면 김 씨라는 사람이 방송에서 본인이 사주받고 손 씨와 함께 범행을 했다 이런 취지로 얘기를 했다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증거가 될 수 없다 이해가 안 간다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거든요.
◇ 황근주 : 김 씨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손 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건의 구체적인 부분은 김 씨의 진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이 컸던 것 같고요. 김 씨가 재판 과정에서 사망한 손 씨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도 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김 씨도 사건이 커지자 진술을 이리저리 바꾸기도 했습니다.
◆ 이원화 : 당연히 검찰 측에서 불복하고 항소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됐습니까?
◇ 황근주 : 이 사건은 정말 놀라운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사건 같아요. 항소심은 1심의 판결을 뒤집고 김 씨에게 살인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2년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 사용된 특수 제작된 흉기가 변호사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김 씨가 알 수 있었다면서 김 씨에게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되어 살인죄의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 이원화 : 기능적 행위 지배라는 게 뭐죠?
◇ 황근주 : 기능적 행위 지배라는 것은요. 2명 이상이 함께 범죄를 실행할 때 그 범행 계획에 따라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서 범행을 수행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부분을 분업에 의해서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범죄를 혼자 저지를 수도 있겠지만 여러 명이 범죄를 모의해서 저지를 수도 있잖아요. 이때 범행의 완성에 필요한 여러 행위들을 분업을 통해서 나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이원화 : 이렇게 되면 사건이 발생한 지 20여 년도 더 지나서 심지어 용의선상에도 없던 인물이 본인의 인터뷰로 인해 사건이 해결되는 정말 전무후무한 케이스 아닌가 싶거든요.
◇ 황근주 :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데요. 항소심 재판 결과에 불복한 김 씨가 대법원에 상고를 했는데 대법원에서는 김 씨의 제보 진술 중 주요한 부분이 다수 객관적 진실과 배치되고 김 씨의 제보 진술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나 구체적인 정황도 확인되지 않아서 김 씨의 제보 진술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항소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환송했습니다. 파기 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의 판단 취지에 따라서 김 씨에게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 이원화 : 그러면 이 사건 결국 다시 미제로 남게 된 겁니까?
◇ 황근주 : 네 그렇습니다. 끝내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고, 제보자 김 씨가 진술했던 조직폭력배 두목이나 손 씨도 사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진범을 밝히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보자 김 씨가 항소심 판결 내용처럼 공범으로 인정될 만큼 사건에 관여를 했는지 아니면 그 주장처럼 전부 거짓된 제보를 한 것인지, 아니면 항소심 판결 내용보다 더 사건에 깊이 개입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제보자 김 씨는 방송국 제작진이나 언론을 향해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제보자 김 씨의 일련의 행동으로 인해서 두 번 상처를 입은 유가족분들에게 사죄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 이원화 :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X파일 미제 전담반. 오늘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미제 사건, 제주 변호사 살인 사건 짚어봤습니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