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음 프로젝트 이거야!원(ONE)
  • 방송시간 : [토] 09:20, 23:20
  • 진행: 김우성 / PD: 김우성 / 작가: 강정연 / 영상 AD : 박연수

인터뷰전문

[이거야!ONE] "북한이 조용필을 콕 집어 평양에 초대한 이유?"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3-10-08 01:57  | 조회 : 552 
[남북이음 프로젝트 이거야!원(ONE)]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09:20, 23:20)
■ 방송일 :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 진행 : 김우성 앵커
■ 대담 : 오기현 북한전문 PD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김우성 앵커(이하 김우성)> 연리지가 이 코너 이름인데요. 다른 땅에 뿌리내린 나무 가지가 이어져서 하나의 나무가 되는 걸 말합니다. 그간 남과 북에서 자신의 삶을 무수하게 뻗은 가지로 만들어서 남과 북을 하나의 나무로 꿈꿨던 분들 많은데요. 오늘 열리지 대막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마지막 코너 방송과 문화교류 얘기를 해볼 텐데요. 오늘 함께해 주실 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마 대한민국 방송 관계자 중에 이분만큼 북한을 많이 다녀온 분이 있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생방송 뉴스를 또 평양에서 최초의 조용필 단독 공연을 기획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북한 전문 PD입니다. 한국PD연합회장을 지낸 오기현 PD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 오기현 북한전문 PD(이하 오기현)> 안녕하십니까, 시사 교양 PD를 하다가 북한 문제를 주로 다뤘고요. 하다가 지금은 지방에 내려가서 문화단체에서 대표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우성> 어쨌든 뭐 문화 콘텐츠 분야로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시는데 제가 앞에 소개한 이게 사실 맞는 건지 팩트체크가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북한을 많이 다녀온 PD는 없다. 맞나요?

◆ 오기현> 근데 아마 많이 다녀온 축에 속할 겁니다. 제가 이제 북한을 1998년에 처음 갔거든요.

◇ 김우성> 거의 초창기 때네요.

◆ 오기현> 지금도 정확히 이유를 모르는데 방송 PD라고 하지 않고 신분을 감추고 갔습니다. 가보니까 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어쨌든 감추고 갔고 조경철 박사님이라고.

◇ 김우성> 실향민이시잖아요.

◆ 오기현> 조 박사님을 모시고 동생을 만나는 이산가족 상봉 인간 차원에서 최초로 한 거죠. 그 다큐멘터리를 제작을 했고요. 아까 말씀하신 2000도에 이제 김일성 광장에서 평양 뉴스 이천이라고 그걸 기획을 했었습니다. 제작에 참여를 했고 93년에서 2003년이죠, 3년에 정주영 유경체육관 개관 기념 공연 기획에 참여를 했고 또 2005년도 조용필 공연 기획 했었습니다.

◇ 김우성> 이 정도면 뭐 굳이 카운트 하지 않아도요. 가장 또 굵직하고 중요한 남북 간에 방송 관련된 일들을 해오셨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고 저도 그 조경철 박사님 다큐멘터리 봤었거든요. PD가 되기 전에 어릴 때였는데 보고 그분 막 우시잖아요. 고향 방문해서 그런 장면들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사실 시사 교양을 하셨고 많은 분들 아시겠지만 S 본부에서 PD를 계속하셨는데 북한 문제를 내가 좀 특별히 다뤄야겠다. 이렇게 방향을 잡은 계기가 있으신 건가요?

◆ 오기현> 70년대, 80년대 그때 구호가 자주 민주 통일 이런 구호들이 많았고 민족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하다 보니까 그게 체화된 거고요. 그 이후에도 방송을 해보니까 방송만큼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관계 개선하는 데 효율적인 매체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방송 PD들 또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민족 문제에 관심을 계속 가져야 된다. 뭐 이런 뜻으로 진행을 했죠. 조용필 공연을 하러 갔을 땐데 저희가 무대 관객들 반응이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사실은 뭐 북한에서는 남한의 공연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조차도 사전에 약속된 반응일 가능성이 크고 해서 저희가 카메라를 7대를 이제 관객들 쪽에 이렇게 설치했는데요. 그런데 맨 처음에는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어느 정도 이렇게 진행이 되다 보니까 발을 움직인다든지 장단을 맞춘다든지 노래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 김우성> 조용필 공연을 사실 성공한 게 굉장히 뭐랄까요 왜 조용필인가라는 의문도 있지만 책도 내셨잖아요. <그 해 여름 그들은 왜 조용필을 불렀나> 오규원 PD가 직접 만드신 책인데 지금 분위기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오기현> 6.15 선언이 있었고 그 전후로 방송사들이 이제 경쟁적으로 북한하고 접촉을 했습니다. 어떤 정해진 통로가 사실 없었죠. 그러니까 대개 이제 PD들이나 기자들의 발품으로 사실은 합법과 불법의 중간입니다. 애매한 규정이 애매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시도를 했습니다. 했고 북한에서 먼저 제안이 왔어요. 조용필 선생을 불러주시오.

◇ 김우성> 왜 조용필일까요?

◆ 오기현> 왜 조용필일까 했는데 이제 그 정도 제안을 했다. 공식적으로 했다는 것은 최고지도자의 승인이나 요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조용필, 나훈아, 조수미, 심수봉, 김현자 이렇게 다섯 사람을 꼽았습니다. 이 사람들을 순서대로 불러주십시오. 대개 북한하고 일을 할 때는 속전속결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중간에 어떤 대외적인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해서 이제 조용필 씨를 찾아갔죠. 찾아갔는데 조용필 씨가 이런 제의 거절을 처음에 했습니다. 조용필 선생을 불러달라는 것은 북한에 팬이 있다는 거다. 팬이 있는데 가수는 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설득을 해서 하니까 한 일주일 정도 지나고 나서 좋습니다. 한번 가봅시다. 이렇게 됐습니다. 돼서 북한에게 통보를 했죠. 진행합시다. 어려울 때 가서 이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이 조용필 선생의 의무입니다. 개척하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니까 좋습니다. 갑시다. 지방 공연도 하겠습니다. 이렇게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여건이 되면 북한에서 반응이 없고 북한에서 적극적으로 할 때 우리 우리 쪽에 또 사정이 생기고 하려고 하는데 또 북한에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래서 7번 미뤄졌다가 여덟 번째 1년 1개월 뒤에 2005년 8월에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 김우성> 이 자체가 드라마 같습니다. 또 뉴스를 평양에서 진행한다는 것도 언뜻 보면 뭐랄까요 지금 오히려 더 좀 금기시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그 뉴스도 봤거든요.

◆ 오기현> 그게 지난 일이어서 이제 조금 조금 편하게 말씀을 드린다면 사실은 방송하는 사람들 우리 PD님도 마찬가지인데 일종의 방송하는 사람들의 로망, 꿈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나는 방송을 하면 반드시 이건 해봐야 되겠다고 했던 것 중에 저도 평양에서 생방송 뉴스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꿈을 가졌었습니다.

◇ 김우성> 클로징할 때마다 남북이 함께 들을 라디오 방송 한번 만들어보는 게 저도 꿈입니다. 

◆ 오기현> 또 예상 외로 일이 쉽게 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사결정권자가 주로 북한에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러다가 갑자기 해도 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급하게 저희가 무대 세트를 여기서 만들어서 이제 남녀 앵커가 같이 가기로 합의를 했었죠. 했었는데 김일성 광장에서 이제 내부에 또 반발도 있고 해서 이제 남녀 앵커가 가지 못하고 통일 전문 기자가 갔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생각하고 뒤에 북한 사람들이 평양 시민들이 다니고 차도 보이고 이런 걸 예상을 했는데 막상 가서 세트 딱 설치를 하니까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통행을 통제를 해버리니까 그 넓은 광장 한 2만 5000평 정도 되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평양이라는 어떤 이미지는 보여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뒤에 있는 인민대학 조명을 좀 이렇게 밝게 해달라 그래서 이제 앵커 어깨에 딱 보이게 해달라 했는데 그건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7시 반이 됐는데 불이 안 와요. 그래서 거기 있는 책임자한테 항의를 했습니다. 빨리 불 켜주십시오 하니까 이분이 자기 보좌관을 데리고 그 광장을 2만 5000평 되는 광장을 뛰어서 그 당시만 하더라도 20년 전이니까 이제 평양에는 핸드폰도 없었고 8시가 딱 됐는데 건물의 반만 불이 딱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와서 왜 반만 틀었냐고 하니까 관리자가 두 사람인데 한 사람 퇴근을 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을 데리러 보냈습니다. 그래서 뉴스 끝날 쯤에 이제 불이 왔었습니다.

◇ 김우성> 정말 이렇게 지금 들어보면 우와 이러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정말 입이 바짝바짝 말랐을까 싶습니다. 정말 앞서 가장 먼저 선구자처럼 이 길을 닦아놓으셨지만 아직도 정말 많은 것들을 해결해야 되고 넘어서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오기현> 북한의 경제 특히 가정 경제의 90%는 시장에 의존한다고 하거든요. 실제로 시장에서 수입을 획득을 하고 또 물품이나 생활필수품을 조달을 다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북한에서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사실은 국가의 계획경제 체제에서 생활 방식을 배운 것이 아니고 시장에서 배운 겁니다. 그래서 그걸 장마당 세대라고 하죠. 품을 팔아야 살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북한에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국가만 믿다가 있던 사람은 다 굶어 죽는다. 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 김우성> 돈주라고 합니다. 이 장마당에서 어떻게 보면 이제 영향력을 갖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에 대한 부각, 방금 말씀하신 장마당 세대에 대한 이해가 돼야 이제 방송이든 교류든 문화 스토리든 뭐든 북한과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이런 생각이 드네요. 맞습니다. PD님 최근에 그럼 북한에 언제 다녀오신 거죠?

◆ 오기현> 2018년이니까 벌써 한 5년 됐죠.

◇ 김우성> 최근입니다. 그래도.

◆ 오기현> 아까 이야기했듯이 장마당 세대는 좀 다를 거라고 봅니다. 어떤 이념이나 체제보다도 개인의 이익을 쫓는 세대가 한 30대, 40대 초반 정도까지 이제 인구가 확산이 됐기 때문에 그들의 눈높이 니즈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면 과거와 다르게 또 다른 반응이 나타날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기대를 합니다. 그리고 그건 북한뿐만 아니고 남한도 마찬가지죠. 이제 젊은 세대들한테 민족을 강조를 하고 무조건적 통일 우리는 통일이라고 했을 때 얼마나 호응을 할 거냐는 생각을 해보게 되거든요. 기성세대가 하고 다른 젊은 세대 남한이나 북한이나 그들의 어떤 그 최대 공략 수는 과거하고는 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김우성> 취재 경험 중에 살짝 뒷면을 그러니까 당국이 보여주지 않는 면을 보신 적이 있나요?

◆ 오기현> 있습니다. 평양에 가면요 평양 인구가 한 250만 내외 되는데 차를 타고 다녀보면 길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항상 왜 이렇게 사람이 없습니까? 하면 지금은 다 근무 시간이니까 직장에 가 있습니다, 그래요. 근데 한 번 제가 고려호텔에서 유경 정주 체육관에로 이제 공연을 하러 갔다가 방송 시간이 다 됐는데 자료를 놔두고 온 게 있습니다. 큰일 났다. 빨리 가져와야 됩니다. 하니까 차를 타십시오 하고 이제 북한의 안내원이 운전을 했습니다. 했는데 지름길로 갔습니다. 가보니까 소위 뒷길인데 거기에 사람들이 다 있었습니다.

◇ 김우성> 다 뒤로 숨겨놨네요.

◆ 오기현> 근데 서울에서 사람들이 많이 가니까 큰 길로 사람을 못 다니게 한 것 같아요.

◇ 김우성> 통제를 했네요. 막연한 민족 하나 역사 이런 얘기보다 정말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 이것 또한 한편으로는 정말 통일을 향한 중요한 걸음 같습니다.

◆ 오기현> 제가 북한을 가려고 하거나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면 늘 듣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런 어려운 시기에 일을 하려고 하느냐 왜 하필이면 그런 어려운 이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느냐라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남북 관계는 좋은 시절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결국 좋은 시기는 저는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고 봅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요. 요즘은 통일이라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죠. 그 이유는 저는 통일은 평화가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평화롭게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일은 올 것이다. 끊임없이 북한과 저는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접촉하고 교류하고 노력을 해야 된다 생각을 합니다.

◇ 김우성> 많은 분들이 같이 고개를 끄덕이실 것 같습니다. 통일이라는 어려운 목표가 아니라요 평화라는 중요한 목표를 향해서 기다리지 말고 먼저 나서서 만들어가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북한 전문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하신 분이죠 오기현 PD와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기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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