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 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이혜민

인터뷰 전문

[잠시만요] 김수민 전 아나운서"실패란 사회에서 정한 것,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3-05-01 16:38  | 조회 : 904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3년 4월 30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김수민 전 아나운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김수민 전 아나운서"실패란 사회에서 정한 것,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십대엔 공부를 하고 이십대 중반은 직장을 구해 삼십대엔 결혼을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둔 속도에 맞춰 사회가 정한 공식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내 속도에 맞춰 도망쳐도, 실패해도 좋다는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의 저자, 김수민 전 아나운서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수민 아나운서님 반갑습니다.

◆ 김수민 전 아나운서(이하 김수민)> 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성규> 이제 작가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 김수민> 호칭은 편하신 대로. (웃음)

◇ 이성규> 먼저 다들 아시겠지만,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소개 한번 해 주시겠어요?

◆ 김수민> 네, 안녕하세요. 저는 18년도에 SBS에 아나운서로 입사해서 한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퇴사한 지 벌써 2년 차 됐습니다. 프리랜서라고 하기엔 그냥 ‘프리’입니다.

◇ 이성규> 라디오는 참 오랜만이신 것 같아요. 근데 이번에 내신 책에도 라디오에 대한 그리움이 좀 표현이 돼 있더라고요? 어떠세요, 요즘?

◆ 김수민> 네, 맞아요. 라디오가 정말 아나운서로 일할 때는 가장 많이 하는 매체였는데, 퇴사하고 나니까 영상 매체는 참 많은데 오디오 매체, 그러니까 라디오 출연은 참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오랜만에 이렇게 라디오 하게 돼서 너무 두근두근하고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 이성규> 퇴사하신 이후에는 뭘 하고 시간을 보냈어요?

◆ 김수민> 퇴사하자마자는 로스쿨 가려고 시험을 한번 봤고요. 시험 봤는데 떨어졌고.

◇ 이성규> 너무 센 데를 보셨나 보다.

◆ 김수민> 아닙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이제 결혼 준비하면서 또 1년이 가고, 출산한 지 지금 넉 달째.

◇ 이성규> 근데 육아도 그러면 힘드실 거고 바쁘실 거고 그런데, 책을 또 내셨어요. 책 소개 좀 해줘보세요.

◆ 김수민> 이 책은 사실은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운 좋게 쓰게 된 책이고요. 계약서를 쓴 지 꽤 됐었는데. 어떻게 쓰지,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그 와중에 제가 출산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덕분에 책이 더 깊고 다채로워진 것 같아요. 입사할 때 마음, 퇴사할 때 마음, 또 결혼, 출산. 이렇게 인간관계까지 좀 담겨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근데 언제부터 책을 기획을 하셨어요?

◆ 김수민> 제가 회사 다닐 때도 꾸준히 블로그에 일기를 썼었어요. 근데 그 블로그를 보시고 이제 연락이 오셔서. 

◇ 이성규> 그때 블로그의 어떤 면에 관심이 생겨서 연락을 했던 거예요, 출판사 관계자들은?

◆ 김수민> 워낙 글쓰기를 좋아해서 여러 번 쓰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제 또래 20대들의 고민들이 많이 담겨 있어서. 실제로도 나랑 똑같은 고민을 이 사람도 한다, 이런 것에서 많이들 공감과 위로 받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 이성규> MZ세대들이 많이 관심 있어 하고 책을 많이 살 거다라는 출판사의 확신이 있었나요?

◆ 김수민> 그랬나 봐요. 실제로도 저랑 같이 출판 준비해 주신 에디터 님도 동년배세요. 저랑 한 살 차이. 그래서 동년배끼리 되게 의기투합해서 마케터님도 저랑 동갑이고. 좀 20대 여성들이 같이 열심히 했습니다.

◇ 이성규> 20대 세 여성이 큰 사고를 치기 바랍니다.

◆ 김수민> 감사합니다.

◇ 이성규> 그리고 책 전반에 걸쳐서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세요. 근데 ‘실패’, 이게 뭐예요? 실패가?

◆ 김수민> 근데 아무래도 인생 선배시니까 저보다 훨씬 많이 잘 아실 것 같아요. 성공의 길만 걸으셔서 또 거리가 있으시려나. 사실은 이 글에서 쓴 실패는 사회가 정한 실패죠. 합격, 불합격 같은 것들. 흔히들 불합격은 실패가 되잖아요. 그런 것들을 좀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아나운서 시험도 그렇, 입사 시험, 채용, 취준. 모든 것들이 사실은 어떤 시험대에 오르는 과정을 20대 때 되게 많이 겪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이제 거절당하는 경험? 이런 것들이 다 실패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실패’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 이성규> 근데 그 실패 중에 이걸 내가 먼저 경험해서 참 다행스럽다, 그런 실패 경험담?

◆ 김수민> 사실은 퇴사를 이야기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일을 해보지 않았다면 저는 평생 직업이 모든 걸 설명한다고 믿으면서 살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제가 굉장히 오랫동안 꿈꾸던 직업을 했는데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걸 좀 깨닫고, 그 과정이 저는 내가 이 직업을 갖는 데 성공했을지언정 직업인으로 사는 데는 좀 실패했구나. 제 행복한 삶을 가꾸는 건 직업을 갖고, 못 갖고랑 또 별개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제가 가장 크게 겪은 교훈인 것 같아요.

◇ 이성규> 직업을 갖고 퇴사하면서 그걸 경험을 하셨다. 또 이런 경험은 안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것도 있을 것 같네요?

◆ 김수민> 제가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없어요. 모든 것이 다 결국엔 경험이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무엇이든 경험해 보자’주의입니다. 아직은.

◇ 이성규> 그러니까 이거는 안 했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게 없고, 그러니까 모든 것에서 뭔가 에너지를 찾아내시네요?

◆ 김수민>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게 좀 약간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운명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런 삶을 사는 거구나, 좀 받아들인다고 해야 되나요? 그런 생각도 많이 하고요.

◇ 이성규> 지금 말씀하는 게 통상적인 개념의 이런 경험, 도전, 실패하고 또 좀 다른 것 같긴 해요. 김수민 아나운서님이 생각하는 실패는. 그런데 ‘김수민의 20대’, 지금도 20대지만 어떻게 흘러왔어요?

◆ 김수민> 20대 초반에는 많이 불안했던 것 같아요. 불안정하고 제가 한예종이라는 예술대학을 다녔는데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다르고, 스스로는 되게 부적응했다고 느꼈어요. 나 예술을 평생 할 수 없나 봐, 그러면서 방황을 좀 했던 것 같고. 그런 와중에 아나운서라는 목표를 딱 세우고 1년 정도는 또 너무 치열하게 지냈던 것 같고. 입사해서는 또 되게 바쁜 거예요. 제가 회사랑 학교를 병행했거든요. 그래서 새벽에 5시에 일어나서 새벽 방송하고, 오후에 퇴근해서 학교 가고. 이걸 반복하고.

◇ 이성규> 어디선가 읽었는데, 회사와 학교를 병행했으면 몇 학년 때 붙은 거예요?

◆ 김수민> 3학년 때요. 대학교 3학년 때.

◇ 이성규> 근데 아나운서 역할과 학교 학생회의 역할이, 거기는 예술 대학이잖아요. 그런데 아나운서에 예술 프로만 있는 게 아니었고. 그게 잘 호환이 잘 됐어요?

◆ 김수민> 전혀 안 되죠. 그러니까 학교 가서도 제가 외계인 같고, 회사에서도 제가 계인 같은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제 책에는 제가 ‘서식지’라고 표현을 했거든요. 서식지가 바뀌니까 굉장히 당혹스럽더라고요. 서식지에 따라서 포식자도 다르고, 유리한 종도 다르고, 주로 사는 종도 다르고 그렇잖아요.

◇ 이성규> 그러면서 또 1년 있다 퇴사를 하시네요?

◆ 김수민> 네, 그렇게 퇴사를 하고 전 졸업을 했어요. 한 학기가 남아서 다시 학교로 돌아갔죠.

◇ 이성규> 그런데 이 많은 일을 속전속결을 하신 것 같아요?

◆ 김수민> 그렇죠. 좀 결단을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인내심이 없는 거죠.

◇ 이성규> 결단을 할 때 기준이 뭐예요?

◆ 김수민> 최근에 생긴 기준이긴 한데. 당시에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생각해 보니까 제가 느끼기에 의미 없는 것들은 안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어떤 일을 굉장히 사랑하고 충만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상태에서 하고 싶은데, 어느 순간 이게 탁 불이 꺼지면서 굉장히 매너리즘에 빠지고. 심지어는 우울하고. 성취감을 느끼기보다는 휘발성을 많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방송에서. 그러니까 좀 마음이 많이 공허하고.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할까 하니까, 이게 나한테 의미가 없어졌구나, 이런 결단을 좀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런데 이제 아직도 사실은 나이 얘기할 때는 아닌 나이인데, 김수민 아나운서에게 '나이'는 뭐예요?

◆ 김수민> 20대 초반에는 단언컨대 집착했던 숫자인 것 같고. 그게 제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데 쓰였던 숫자인 것 같고. 근데 제가 출산을 하고 나서 보니까 왜 역사에 기념법이 있잖아요. 그 기준. 지금은 예수 탄생 이런 기준이 있는데, 아이가 딱 태어나니까 그 기준점이 달라지더라고요. 지난 인생은 이제 지난 거고. 얘가 태어난 시점, 지금부터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나이는 또 요즘은 애 나이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대략 왠지 저는 학부모가 되는 그 7년 후의 시간이 굉장히 좀 약간 제가 생각해야 되는 기준점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하기에는 아직 저한테 의미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의 저자, 김수민 전 아나운서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김수민 아나운서님, 우리가 책 얘기 조금 했는데. 노래 하나 듣죠. 어떤 노래 하나 추천하시겠어요?

◆ 김수민> 저는 다린의 <큰 새>라는 노래 가져왔습니다.

◇ 이성규> 사연이 있으십니까?

◆ 김수민> 이게 제가 퇴사하고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할 때 많이 들었던 노래인데요. 정말 신나고, 가사가 저 같은 퇴사하신 분들한테 좀 힘이 될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 이성규> 그럼 김수민 아나운서가 추천하신 다린의 <큰 새> 듣고 와서 다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다린 / <큰 새> Play

◇ 이성규>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의 저자, 김수민 전 아나운서입니다.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이 책 제목을 제가 처음 보고요, 퇴사를 의미하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좀 의외였던 게 퇴사하실 때 주변 분들하고 전혀 논의를 안 하셨다면서요?

◆ 김수민> 네. 거의 가족에게도 통보를 했던 것 같고. 회사에도 이제 이야기를 안 하고 그냥 결론만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때 회사에서는 뭐라 하시던가요?

◆ 김수민> 서운해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 놀라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상담을 안 했던 게 그만큼 너무 중요한 문제여서 얘기를 안 했던 것 같아요. 이걸 결정할 수 있는 게 저밖에 없고 또 저한테 너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저만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주변에 얘기를 많이 안 했죠. 

◇ 이성규> 부모님은요?

◆ 김수민> 부모님도 너무 놀라시고, ‘왜? 굳이?’, ‘요즘 정규직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데’ 뭐 이런 얘기도 많이 하시고, ‘아나운서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데 제가 얘기했죠, ‘그거는 엄마 아빠 20대 때 얘기다’ 이렇게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나요.

◇ 이성규> 근데 그 나름대로 그만큼 중요한 게 없다, 그래서 상담을 안 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니까 본인의 고민은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고민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싶어요.

◆ 김수민> 그렇죠. 맞아요. 사실은 입사하고 1년이 좀 안 됐을 시점부터 느껴지더라고요. 이걸 내가 정년까지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정년 퇴직에 대한 어떤 희망이, 스스로 희망사항이 없으니까 더 이상 어떤 직업에 대해서 언제까지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1년 차부터.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하다 보니 점점점점 제가 계획했던 그 기간이 짧아졌던 것 같아요. 늘어나기보다는. 처음에는 그래도 20년은 다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던 게 10년이 되고. 또 눈 떠보니 7년이 돼 있고. 눈 떠보니 모르겠다가 되어 있는 그런 과정이 있었어요.

◇ 이성규> 그리고 퇴사를 했다. '나 김수민, 정년까지 갈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고민하다가 퇴사를 했네요. 그러니까 어때요, 퇴사 딱 하니까 마음이?

◆ 김수민> 사실은 1년 정도는 적응이 안 됐어요. 제가 퇴사했다는 사실에. 적응이 안 되고, 인간관계 이런 것도 사실은 그대로인데. 계속 연락하는데 단지 제가 그 회사를 다니지 않을 뿐이고. 뭐 이런 것들이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방송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하기는 했죠. 그러니까 더 헷갈리는 거예요. 아예 딱 공백이 있었으면 ‘퇴사했구나’ 이게 됐을 텐데 1년 정도는 ‘퇴사를 했나?’ 이런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아요. 이제는 완전히 적응을 했고. 어떻게 해서 적응했다고 느끼냐면. 회사 안에 있었을 때만큼 지금 그 밖에서 많이 넓어졌어요, 시야가. 그래서 이제 내가 진짜 자유롭구나를 많이 느낍니다.

◇ 이성규> 책 중간에 굉장히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긍정과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긍정도 동일할 수 있다”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언젠가 행복해지겠지’를 기다리다가 무력해질 수 있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 이런 무력감에 빠져보신 적이 있어서 이렇게 쓰신 건가요?

◆ 김수민> 그렇죠. 퇴사하기 직전에 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갖고 있던 긍정이 다 써서 없고 파산했구나, 스스로가 파산했구나 이런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동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걸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나왔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의미 없어지는 순간들이 있는 거예요. 사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제 의지나 이런 것들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들이 되게 많잖아요. 그럴 때 좀 무력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 긍정이 파산했다, 그러면 긍정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 김수민> 딱 하나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책에서는 사실 <나는 순수한가>라는 박노의 시인의 시를 이야기하면서 열정도 좀 필요하고 분노도 깨끗한 분노도 필요하고, 이렇게 썼는데. 요즘 제 삶을 이렇게 들여다보면, 왜냐하면 벌써 책 쓴 지도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사랑인 것 같아요. 주변 사람과 가까운 사람과 사랑을 느끼고 또 나누고, 다르게 표현하면 여유이기도 한 것 같고요. 계속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불쾌한 일들을 잘 처리하려면 사랑이 충분히 있어야 하고 그만큼 여유도 있어야 된다, 이런 생각을 요즘 좀 해요. 
◇ 이성규> 그 책을 저도 읽어봤는데, 상당히 독립적이고 또 주체적인 분이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근데 또 거기에 은사님 얘기가 많이 나와요. ‘감사함’. 근데 그 은사님과는 어떤 인연이 그렇게 깊어지셨어요?

◆ 김수민> 제가 중학교 때 만났던 국어 선생님이신데요. 지금은 퇴직하셨고, 그때 제가 선생님께서 하시는 독서 동아리에 들어가서 3년 열심히 하고 또 고등학교도 열심히 독서 동아리를 계속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하고. 한 달에 한 번. 그래서 선생님이야말로 제 인생에 거의 가장 중요한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에게 책을 추천해 주시고, 책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 나눠주시고, 너무나 많은 걸 배웠기 때문에.

◇ 이성규> 근데 중학교 때도 그런 독서 동아리 같은 활동을 계속 하셨어요, 선생님하고?

◆ 김수민> 제가 예술학교를 다녔거든요. 예중을 다녀서 문학, 이런 걸 많이 소개시켜주셨어요. 그래서 그런 책들 많이 읽었어요.

◇ 이성규> 원래 예술학교 그러면 통상 생각하기에 주로 악기를 하거나 아니면 미술을 열심히 그리거나 조각, 설치를 한다거나 이런 데 시간을 더 많이 보낼 것 같은데 선생님과 함께 많이 읽으셨군요?

◆ 김수민> 그렇죠. 근데 전 미술을 전공했는데, 예술학교였기 때문에 어떤 사교육 이런 것보다도 문학 이런 쪽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근데 그게 지금 에너지를 많이 갖게 하는 그런 원천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은 안 드셨어요?

◆ 김수민> 완전 그래요. 책이 없었으면 절대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 이성규> 그걸 이제 책에 녹여서 누군가에게 또 인생의 어떤 하나의 점을 찍어주든, 큰 물이 돼서 흐르게 하든, 그렇게 하겠네요.

◆ 김수민> 네. 책도 선생님도 저한테 엄청 큰 용기가 돼요.

◇ 이성규> 네, 이제 배우자분 얘기도 좀 해봐야 되겠는데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 김수민> 소개를 받았습니다. 제가 스물넷, 남편이 스물아홉이었습니다. 청춘들이 만났죠. 근데 영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처음에는.

◇ 이성규> 어떤 자리에서 소개받으신 거예요?

◆ 김수민> 그냥 소개팅이었어요 서로 그냥 대충 이름, 나이, 직업 정도만 알고 만나는. 저랑 친한 고등학교 선배 언니가 소개해 줘서 갔죠.

◇ 이성규> 처음엔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데 어떻게 진행이 됐어요?

◆ 김수민> 너무 마음에 안 드는 상태에서 시작하니까 이제 볼수록 장점이 보이더라고요. 근데 마음에 안 들었던 게 다른 게 마음에 안 든 게 아니라 외모가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너무 말랐어요. 저보다 종아리가 얇은 거예요. 근데 만나면 만날수록 ‘어? 괜찮네’, ‘괜찮네’, ‘괜찮네’ 이러면서 사귀지도 않고 여러 번 만났어요. 신랑이 성급하게 굴지 않고 인내하더라고요, 그 시간을. 그래서 아무 사이도 아닌 상태로 여러 번 만나다가 제가 다짐을 했죠. 사귀어야겠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책에 나옵니다.

◇ 이성규> 어떤 식으로 처음에 말씀을 하셨다고 그랬죠?

◆ 김수민> 제가 손을 내밀었죠. 손을 잡자는 뜻이었는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라고요. 뭐 달라는 줄 알고. 그래서 어, 이렇게 순수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지금도 그렇죠, 그 마음은?

◆ 김수민> 그렇죠. 저는 애 낳고 좀 더 깊어졌어요.

◇ 이성규> ‘최연소 아나운서’ 그리고 ‘작가’, ‘엄마’ 또 ‘남편의 아내’. 이름 앞에 수식어가 상당히 많이 있는데, 앞으로 불리고 싶은 수식어는 어떤 겁니까?

◆ 김수민> 그냥 아는 사람. 제가 이렇게 그래도 미디어에서 일을 하면서 절 아는 분들이 좀 많아졌잖아요. 근데 그게 의미하는 게 뭘까 이렇게 고민해 봤을 때, 나 아는 사람 중에 이러이러한 삶을 사는데 괜찮더라. 죽지 않고 잘 살더라. 이런 느낌? 아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위로와 용기가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서 그런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한겨레 출판사에서 출간한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라는 책을 내신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은 김수민 전 아나운서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 김수민> 오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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