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 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이혜민

인터뷰 전문

[잠시만요] "가수 현숙, 어려서 아버지 잃은 골프 유망주 후원하게 된 사연"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3-03-14 07:59  | 조회 : 763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3년 3월 12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현숙 가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가수 현숙, 어려서 아버지 잃은 골프 유망주 후원하게 된 사연"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효녀 가수’, ‘기부천사’ 이분을 대표하는 애칭입니다. 때로는 노래로, 또 때로는 기부로 행복을 전하는 분인데요. 오늘의 주인공 가수 현숙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죠. 현숙 선생님, 반갑습니다. 

◆ 현숙 가수(이하 현숙)> 안녕하세요. 쑥스럽네요. 앞에 있는데 칭찬을 해 주셔서.

◇ 이성규> 언제 오셨어요. 모두 다 아시겠지만 그래도 청취자분들을 위해서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현숙> 맞아요. 잘 계셨죠? 코로나 때문에 한 3년은 힘들었지만 이렇게 또 이렇게 봄이 오네요. 반갑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늘 건강하시고 이렇게 추운 겨울 있으면 따뜻한 봄이 있는데, 여러분 좋은 일만 많이 많이 있으시길 현숙이 응원하겠습니다.

◇ 이성규> 사실 저희가 밖에 있는 박준범 피디하고 언제 모시나, 모실 날만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 현숙> 저는 언제 초대해 주시나, 이 프로그램 나오고 싶어서 기다렸는데. 봄이 성큼 다가왔네요.

◇ 이성규>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동안?

◆ 현숙> 글쎄요. 저는 늘 항상 바쁘게 그리고 또 여러 가지 다 지나간 다음에 위해서 또 준비하고, 또 그날 그날 행복하고 이웃들하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 이성규> 또 신곡 준비라든가 이런 계획이 있으셨던가요?

◆ 현숙> 코로나19 때는 코로나를 다 극복하고 난 다음에 ‘여러분, 확실합니다’ 이렇게 응원하는 그런 노래를 준비해서 앨범이 미리 나왔었고요. 요즘에 또 좋은 앨범을 위해서 준비하니까, 뭐든지 준비할 때 행복하더라고요.

◇ 이성규> 그렇죠. 그 준비라는 게 시간이 또 꽤 걸리죠?

◆ 현숙> 그렇죠. 그냥 금방 뚝딱 하는 게 아니고, 고민하고 또 듣고 또 만들고 이렇게 수정하고 이런 과정이 참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 이성규> 예. 지난 연말에는 또 김제, 고향이시죠?

◆ 현숙> 그렇죠. 태어난 곳이요.

◇ 이성규> 김제에 고향사랑기부금을 기탁하셨더라고요?

◆ 현숙> 연말에 제가 또 이 어려움 속에서도 광고를 찍게 됐어요. 광고를 찍은 출연료가 있어서. 물론 고향도 하고 또 연말에 함께 나눌 곳이 있어서 두루두루 같이 나눠 쓰니까 너무 행복했어요.

◇ 이성규> 고향사랑기부금이 요즘 다시 생겼더라고요?

◆ 현숙> 그렇죠. 그래서 연말에는 제가 광고 찍어서 수익금으로 3천만 원 했는데. 또 최근에 엊그제 기부 전국에 다 요즘에 하게 돼서, 또 가는 길이 있어서 또 500만 원까지 하길래 또 같이 또 했지요.

◇ 이성규> 그리고 기부금도 기부금이지만 조각상 얘기는 뭐예요?

◆ 현숙> 김제 지평선아리랑문학관 앞에 가면 그 엄마, 아빠하고 저하고 현숙 효열비가 있어요. 근데 ‘아, 고향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되겠다’. 그런데 저희 엄마가 다산하셨잖아요. 열둘 낳으셔서 제가 열한 번째 막내딸이에요. 그래서 저희 엄마가 돼지띠에요. 그래서 돼지 하면 일단은 복을 상징하잖아요. 복을 상징하고 또 다산을 상징하고. 그래서 김대건 신부님의 조각상을 만드신 조각가 선생님을 찾아뵀어요. 그래서 엄마 돼지 세 마리, 딸 돼지 세 마리 해서 여섯 마리 하고 제가 엄마 등에 업고 있는 그 조각상을 또 효열비 옆에 많은 분들이 복을 좀 받고 가시라고 돼지를 안아주고 또 코를 좀 비벼주고 하면 복을 많이 주신다고 저희 엄마가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그 조형물을 또 김제 효열비 옆에 가면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돼지가 있습니다. 여섯 마리가.

◇ 이성규> 그 옆에 현숙 선생님이 어머니를 업고 계세요, 어머니가 현숙 선생님을 업고 계세요?

◆ 현숙> 예쁜 딸을 업고 계시죠.

◇ 이성규> 어릴 때 모습 현숙 선생님 모습이에요, 아니면 요즘 모습을 업고 계세요?

◆ 현숙> 아기 때 모습. 아기 때 엄마가 당신 딸을 업고 안고 키우셨잖아요. 애지중지하고. 모든 분들 다 똑같아요. 저만 아니고 모든 딸들과 엄마를 담은.

◇ 이성규> 그런 것을 상징하는 그런 상을 세우셨군요. 김제 어느 쪽이라고 그랬죠?

◆ 현숙> 벽골제가 유적지잖아요. 거기 앞에 있습니다. 이런 거 있잖아요. 하버드에 가면 어느 부분을 만지면 공부를 잘한다, 제주도에 가면 하르방을 만지면 아기가 튼튼하다, 그런 유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전북 김제에 가면 그 돼지를 또 보고 만지고 사진도 찍고 또 여러 가지 등등 하면 복을 만지신다라는 그런 얘기로 전해드리고 싶어서.

◇ 이성규> 저도 영국에서 공부할 때 칼 포퍼 선생님 흉상이 있었는데 늘 코를 만지고 다니세요.

◆ 현숙> 그러니까요. 그런 유래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한테 돌려주고 싶어서.

◇ 이성규> 김제 가서 꼭 돼지도 돼지지만 등에 업힌 현숙 선생님 코 좀 한 번 만져야 되겠어요.

◆ 현숙> 네, 제가 복을 드릴게요.

◇ 이성규> 그리고 김제시에서 홍보대사도 하고 계시죠?

◆ 현숙> 제가 홍보대사를 행자부의 국민추천포상, 2015년도부터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 훈포장 주시는 그 홍보대사와 보건복지부의 치매 홍보대사를 맡고 있고요. 그런데 또 김제시를 널리 알리는 홍보대사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주 보람도 있고 뭔가를 위해서 활동을 한다는 게 사람이 굉장히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아요.

◇ 이성규> 고향이라 더 정이 갈 것 같아요, 어린 시절.

◆ 현숙> 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또 곡창지대잖아요. 하늘과 땅이 맞닿는 그런 지평선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더 좋은 것 같습니다.

◇ 이성규> 어린 시절을 거기서 보내셨나요?

◆ 현숙> 그렇죠. 어린 시절에, 지금이야 농촌에 가도 너무너무 시설이 없는 것 없이 다 잘 갖춰있고 도로도 잘 돼 있고 잘 살게 돼 있지만, 저 어렸을 때는 전깃불도 안 들어와서 공부하다가 이렇게 한 번 졸면 앞머리가 제가 그을린 적도 있고.

◇ 이성규> 등잔불이에요, 아니면 촛불이에요?

◆ 현숙> 등잔불이요. 그랬는데 지금은 다들 잘 사셔서 너무 기뻐요.

◇ 이성규> 그 당시 전기가 막 들어올 때쯤 뜨신 거 아니에요?

◆ 현숙> 그렇죠. 그때 공부했고, 그래서 엄마가 또 밭에서 논에서 일하시면 새참 머리에 이거 막걸리와 무조림, 갈치조림, 꽁치조림 그런 것들 이고. 또 맛있는 빵도 주시고 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거기 새참도 많이 나르셨군요?

◆ 현숙> 들녘에서 정말 맛있죠. 정말 맛있고, 그래서 아마 제가 지금까지 뛰면서 활동을 할 수 있게끔 건강을 주신 것 같아요.

◇ 이성규> 새참 많이 나르시고 이러면서 그 넓은 평야에.

◆ 현숙> 그러면 막 뛰어다니고 들녘에서 메뚜기도 잡고 막 그런 시절 좋았잖아요.

◇ 이성규> 맞아요. 그 경쾌한 리듬을 지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활력이 거기서 나왔군요?

◆ 현숙> 네, 네.

◇ 이성규> 고향 얘기를 좀 더 들으면 재밌겠지만 고향 김제 관련된 선행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셨어요. 나눔 활동을. 또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의미 있는 활동을 또 하신 걸로 기록에 나오더라고요?

◆ 현숙> 그래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죠, 늘.

◇ 이성규> 보훈산타, 이게 무슨 얘기예요?

◆ 현숙> 국가의 영웅의 자제분들께서 얼마나 아빠가 그립겠어요.

◇ 이성규> 그러니까 전몰 순직?

◆ 현숙> 네. 천안함 유족이라든가 소방관, 나라를 위해서 일하신 분들의 자녀분들이 뭘 갖고 싶냐, 보훈처에서. 그러니까 ‘뭐가 갖고 싶다’ 그래서 산타복 입고 직접 집에 방문해서 전달해 주고 같이 짜장면도 같이 먹고 하루 같이 보내고, 산타복을 직접 입고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 이성규> 그 표정들이 지금 눈에 선하시겠네요?

◆ 현숙> 네. 13살, 아빠가 1월에 태어났는데 최의진 학생. 지금 골프 유망주인데요. 3월달에 아빠가 가셨대요. 그래서 같이 밥도 먹는데 그렇게 제가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빠 얼굴을 모르니. 간짜장도 먹고 또 운동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뒤에 후원도 하게 됐고. 그래서 지금도 전지훈련 가서 사진도 보내오기도 하고 가끔 식사도 하고 그럽니다. 이모가 돼가지고.

◇ 이성규> 이모가 되셨군요, 그 시간 이후에.

◆ 현숙> 네. 결국에는 우리 국민들이 정말 많이 보살펴야 되고. 그때도 우리나라를 위해서 순직하셨으니까 예쁜 딸 하늘에서 아빠가 보고 계시지만 잘 자랄 수 있도록 우리가 뒤에서 이렇게 서포트를 해줘야 되지 않을까. 예쁘더라고요. 13살이에요. 천안함이 벌써 13년 됐나 봐요. 이제 14살 됐겠다, 한 해 지났으니까.

◇ 이성규> 지난 13년도에는 또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이 되지 않으셨어요? 

◆ 현숙> 저는 정말 그게 부자라서가 아니고 제가 엄마가 주신 달란트, 건강하고 노래 부를 수 있는 달란트를 주셔서 2013년도에 제가 디너쇼를 처음으로 했어요. 부모님 계실 때 많이 편찮으셔서 제가 감히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가지고. 그래서 그때 수익금으로 그 아너 소사이티에 가입도 하게 되고. 연평도에 이동 목욕 차량을 한 대 지원할 수 있어서 연평도에 직접 다녀오기도 했고. 거기 연평도에 목욕탕이 없더라고요. 어르신들이 많고 그래서 다녀오기도 하고 참 보람된 한 해였어요. 근데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세월이 빠르네요.

◇ 이성규> 근데 지금 말씀을 들어보니까 여기저기 많이 돕는 게 꼭 DNA같이 된 것 같은데요. 그런 열정이나 그렇게 해오시는 동기, 이런 부분들이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 현숙>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참 아이도 많이 낳으시고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저희 아빠가 동네 이장을 하셨어요. 그런데 저희는 배고픈데 많이 그렇게 아빠가 (주변에 갖다주시는) 하시는 모습에 그 익숙해진 것 같아요. 저도 자라서 익숙해진 것 같고. 또 가수로서 히트곡 한 곡도 못 내고 활동하시던 분들 많잖아요. 그리고 너무너무 어렵잖아요. 근데 저는 너무 과한 사랑을 지금까지 받고 있잖아요. 그때부터 ‘정말로’, ‘포장마차’ ‘오빠는 잘 있단다’. ‘포장마차 포장마차 벽돌담 모퉁이 기대선 포장마차’. 그렇게 하고 ‘훌라 훌라 훌라 훌라 훌라 훌라’ 이런 것도 있고. ‘착한 여자 나쁜 여자 따로 있나’ 그래서 방송 대상도 받기도 하고, 2002년에는 방송에 비와 함께 프로듀서가 뽑은 최고 인기 가수상도 받게 되고. 지금까지 쭉 활동을 지금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도 지금도 많은 사랑을 주시니 얼마나 감사해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받기만 하면 안 되잖아요. 또 저도 되돌려 드려야죠. 근데 엄마 계실 때 목욕시켜드리는 일들이 많이 제가 힘에 벅찼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목욕차라든가 이런 거 하니까 되돌려 드리는 거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이것만도 감사한데. 그래서 하니까 또 기쁘기도 하고 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엄마가 또 뒤돌아보면 제가 노래 부를 수 있는 달란트도 주셨지만 또 건강한 정신도, 항상 늘 좋은 생각을 하게 되고 밝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런 달란트를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 이성규> 아까 연평도 목욕 차량 말씀도 하셨고 또 지금 프로 골퍼로 활동하시는 그 학생 자녀분 말씀도 하셨고. 근데 그 외에 또 의미 있게 생각나는, 내가 기부했을 때 보람이랄까, 이런 게 있으세요?

◆ 현숙> 글쎄요. 이제 목욕차를 하게 되면 어르신들이 처음에는 막 안 하시려고 떼를 쓰고 막 부끄러워하시는데. 제가 땀을 많이 많이 흘리고 스킨십을 하게 되잖아요. 그냥 차만 딱 드리고 오는 게 아니고 엄마, 아빠 목욕시켜드렸던 그 저만의 노하우가 있잖아요. 힘 좋다고 빡빡빡 해서 밀어드리면 어르신이 상처가 나요. 그런데 사랑으로, 애정으로 이렇게 얘기도 나눠드리고 부비부비해 드리면 너무 좋아하시고. 제가 나올 때는 ‘아이고, 또 언제 올 거야’ 그렇게 누워 계셨던 분이 일어나셔서 손을 흔들어주시면 너무 행복하지요.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가수 현숙 씨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현숙 선생님, 우리 이때쯤 노래를 하나 듣는데. 오늘은 현숙 선생님 노래를 들으려고요. 어떤 노래 추천하시겠습니까?

◆ 현숙> 우리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이성규 선생님이 너무 확실합니다. 이 방송이 확실합니다. 사람을 인정을 해주면 기분 좋잖아요. ‘현숙, 확실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확실합니다’.

◇ 이성규> 그럼 현숙 씨가 추천하신 노래 <확실합니다> 듣고 오겠습니다. 

현숙 / <확실합니다> Play

◇ 이성규>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기부와 노래로 희망을 전하는 가수 현숙 씨인데요. 직접 부르신 <확실합니다> 듣고 왔습니다. 근데 현숙 선생님, 저는 요즘은 시대가 왼손으로 하는 일, 오른손이 알게 하는 시대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야 자꾸 파장이 일어나요.

◆ 현숙> 그래서 쑥스러워요. 모르게 해야 되는데. 할 수 없어서, 몸이 불편해서, 어려워서, 노래를 부를 수 없어서 못 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게 훨씬 저한테 행복이잖아요. 근데 모르게 하는데도 SNS가 있고 요즘에는 그냥 막 이렇게 알려져서 오히려 너무 쑥스러워요.

◇ 이성규> 근데 알려져야 그게 일반화돼서 ‘누구나 해야 되나 보다’ 싶어갖고 그런 일들이 파장이 넓어지죠.

◆ 현숙> 근데 하면 행복해요. 내가 행복해요. 할 수 있어 감사하고요, 항상.

◇ 이성규> 그러니까 그게 원래 준비가 된 분이라는 증거입니다. 근데 자꾸 어머니 얘기 좀 더 듣고 싶어요, 효녀 가수라 그런지. 어머님의 영향이 뭔가가 큰 게 아닌가, 현숙 선생님의 가슴과 머리에. 그런 생각이 드네요?

◆ 현숙> 네, 저는 효녀 가수, ‘효녀’ 하면 저는 정말 죄스럽고 부끄럽고. 왜냐하면 저는 아쉬운 게 아직도 너무 많거든요.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빨리 가셨을까. 그리고 요즘 좋은 곳이 얼마나 많아요. 전국 지방 가보세요. 너무나 대한민국 잘 사는 거예요. 길도 제가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기 위해서 올라올 때는 완행열차에 12시간씩 걸렸거든요. 지금 1시간 반이면 김제 가요. 그리고 얼마나 정말 좋아요. 근데 그런 좋은 차도 못 태워드리고 또 좋은 곳도 못 모셔가고.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렵고 정말 가난했거든요. 가수 그냥 하기 위해서 정말 춥고 배고프고 영양실조도 걸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제 자가용도 타고 좋은 KTX 탈 수 있고 비행기도 탈 수 있는데. 그리고 또 얼마나 맛있는 게 많아요. 정말 맛있는 게 많아요. 각 지역 지역 가면 특산품도 많고 그럴 텐데, 그래서 저는 아쉽고 좀 더 제가 일찍 엄마 말 잘 듣고 그랬으면 엄마 속도 좀 덜 썩여드렸고. 한다고 했지만도 자식 이기는 부모 안 계시다고 어른들이 노래하겠다니까 그냥 농사 짓다가 그냥 바로 이듬해 올라오셔서 친구도 없으시고, 혼자 그냥 딸만 된장찌개 아랫목에 이불 덮어 밥 해놓고, 이제 오나 저제 오나 딸 기다리시고 그러셨었는데. 건강하실 때 잘 할 수 있었는데.

◇ 이성규> 노래하시는 거 반대는 안 하셨어요?

◆ 현숙> 처음엔 많이 반대해서 회초리도 아빠가 들고 했는데. 근데 그래도 막내딸이 하겠다니까 엄마가 그 이듬해에 올라오셨어요. 그러니까 아빠도 같이 올라오셔가지고, 그래서 좀 항상 죄스럽죠. 친구분들도 많이 같이 (시간을) 보내셨어야 됐는데.

◇ 이성규> 아까 연평도 목욕차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보니까 제가 찾아봤더니 열여덟 대를 모셨는데 그 열여덟 대 내가 전부 부모님 생각하면서 갖다 드린 것 같네요?

◆ 현숙> 그때 어머니 처음에 시작할 때 엄마는 몸져 누우셔서 이렇게 호스를 끼신 지가 14년, 물 한 모금 못 드시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엄마한테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기저귀밖에. 그런데 봉사활동 나섰더니 너무너무 편안하게 받으실 수 있고 해드릴 수 있는 차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2004년도부터 김제로 시작해서 울릉도부터 시작해서 각 지역마다 울릉도, 정선, 제주도 추자도 이렇게 오지부터 해드려서, 이제 이십 년째거든요, 내년이. 근데 두 대가 빠진 게 코로나 때문에 그때 못 해드렸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부자라서가 아니고 그 해에 광고를 찍는다든가 하면 두 대도 하고, 없을 때는 못 해드리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한 거죠. 그래서 벌써 어언 20년이 됐네요. 내년이 이제 2024년도니까.

◇ 이성규> 광고 한 4개 빨리 찍었으면 좋겠는데요?

◆ 현숙> 예, 너무 좋죠, 그러면. 제 꿈은, 제가 언제까지 노래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날까지 전국에 목욕 차량이 다니면서 어르신들 목욕 해 드리고 정말 행복해하는 모습. 우리가 2~3일만 목욕 안 해봐요. 얼마나 답답하잖아요. 

◇ 이성규> 역시 그러니까 효녀 가수라는 얘기가 그냥 허명으로 나온 건 아닌 것 같고요. 제 생각에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행동 때문에 나온 것 같은데.

◆ 현숙> 그게 좋은 건 아니고 굉장히 부담스러운 거 알죠.

◇ 이성규> 근데 그렇다 해서 팬들이 부르고 국민들이 그렇게 불러주는 거니까요. 그냥 즐기시면 될 것 같은데요?

◆ 현숙> 지금은 정말 해드리고 싶어도 안 계셔서 못 해드리니까 그게 더 속상한 거 알죠. 더 잘 할 수 있는데 안 계셔서 못 해드리는 거 알죠.

◇ 이성규> 근데 또 속상하신 것 중에 하나가, 아버님처럼 모셨던 송해 선생님 작고하신 것. 두 분이 유별하셨다고 소문났던데요?

◆ 현숙> 엊그제 제가 노래자랑 녹화하러 목포에 다녀왔는데요. 가면 ‘아이고, 우리 딸 왔냐’ 반겨주실 것 같아요. ‘현숙이 왔니’ 이러면서 반겨주실 것 같은데. 어디에 봐도 안 계시고 또 목소리도 듣고 싶은데 들을 수가 없고. 이렇게 제가 항상 노래자랑에 가면 버스에 타서 피곤해 하시면 제가 이렇게 등을 만져드리면 ‘아이고, 좋다’ 그러면 혈색이 금방 좋아지셔서, 그런 모습이 있는데 이제 버스를 안 가게 돼요. 이제 안 계시니까. 

◇ 이성규> 같이 움직이셨군요?

◆ 현숙> 아니요. 제가 따로 갔지만 아빠는 하루 전에 가시니까. 그냥 얼른 내리면 버스에 올라타서 이렇게 뵈면 반겨주시는 그런 게 없으니까. 참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시간이 흐르네요. 그래서 혼자 해요. 

◇ 이성규> 느낌이 그만큼 허전하세요?

◆ 현숙> 그렇죠. 계신 그 그늘이 그 마음에 차지하고 있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그런데. 

◇ 이성규>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그렇게 친해지셨어요?

◆ 현숙> 제가 어려서 가수 10대 때 올라왔잖아요, 노래할 때. 그때 처음 만나 뵌 어르신이 송해 선생님인데, 나중에 이제 우리 저희 아빠가 가실 때도 엄마 가실 때도 내가 당신 딸 잘 돌볼 테니까 편히 눈 감으세요. 항상 제가 무슨 일 있으면 항상 곁에 계셔요. 좋은 일, 어려운 일, 슬픈 일, 기쁜 일 항상 옆에 계셔요. 그리고 또 저뿐만 아니고 모든 가수나 코미디계나 영화계나 드라마계나 다 누구든지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나타나셔요. ‘어허’ 하늘 보시면서 이렇게.

◇ 이성규> 하여튼 원하는 이별도 아니고, 하늘이 주신 이별도 많이 힘드셨다는 기억이 이렇게 얼굴 표정에도 나타나네요. 근데 이제 활기찬 얘기 좀 한번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면 어머님 생각하고 송해 선생님 생각하고 이런 애틋하고 따뜻하고 애절하고 이런데도 노래는 되게 밝게 하신단 말이죠?

◆ 현숙> 저는 어려울 때 많았었잖아요. 무명 시절도 있었고 또 부모님 보내드리면서. 근데 저는 항상 늘 집에 가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또 엄마하고 대화를 해요. 혼자말로. 항상 감사하다고 하고 또 상처받지 않게 해달라고 엄마한테 항상. 그런데 제가 긍정적인 거는, 가수는 노래 따라 운명이 많이 좌우되는 걸 주위에서 많이 봤어요. 그래서 그런 게 두렵기도 하고. 가수로서 제가 성격도 열둘 중에 열한 번째 막내딸로서 늘 밝았었거든요. 그래서 많은 분들한테 보답해 드릴 게 없잖아요. 항상 늘 즐겁고 희망적인 가사, 밝은 음악. 그러면 그 3분 동안 듣는 동안이라도 여러분들이 어깨 으쓱으쓱, 박수 치고. 또 표정도 밝은 노래 부르는데 울고 부를 수는 없고 밝게 부르고. 듣는 분도 음악이 즐거운데 눈물을 흘리면서 들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밝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노래로 가능한 한 음악도. 시대에 맞게, 현실에 맞게.

◇ 이성규> 언젠가는 또 뉴욕에서 어르신 700여 분을 모시고 노래 봉사하신 적도 있고 그런데, 앞으로 또 계획은 어떠십니까?

◆ 현숙> 코로나 때도 많이 어려우셔서 바깥 외출을 못 하셨지만 가니까 뉴욕에 어르신들이 많더라고요. 굉장히 반겨주시고. 2시간 동안 안고 뽀뽀하고 사진 찍고 그렇게 공연하고 하루 만에 갔다 왔습니다. 가서 그날 리허설하고 그 다음 날 공연하고 밤 비행기 타고 왔으니까. 그렇게 했는데 앞으로도 또 요즘에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많은 밝은 노래를, 철학적인 가사의 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이 주어지면 또 많이 움직여서 많이 즐겁게 해드리고 또 많이 벌어서 또 많이 쓰게 되고, 이러니까 즐거워요. 뭐를 해야 즐겁습니다. 오늘  YTN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이 프로는 또 아무나 못 나오는 프로인데 초대해 주셔서 저한테는 과분하지만 오니까 또 우리 교수님하고 얘기도 나누고 덕담도 하니까 너무 기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노래와 기부로 행복을 주는 가수 현숙 씨와 함께 했습니다. 현숙 선생님,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 현숙>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radio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목록
  • 이시간 편성정보
  • 편성표보기
말벗서비스

YTN

앱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