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 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이혜민

인터뷰 전문

[잠시만요] 이주민센터 친구"사업주 동의 없이 직장 못 옮기는 법 바꿔야"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3-02-13 12:56  | 조회 : 890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2년 2월 12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윤영환 이주민센터 '친구'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이주민센터 친구"사업주 동의 없이 직장 못 옮기는 법 바꿔야"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이주민 이백만 시대,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요즘 대한민국 이주민의 삶은 어떨까요? 오늘의 주인공, ‘이주민센터 친구’ 윤영환 대표님과 함께 이주민과 또 진정한 친구가 되는 방법 이야기 나눠보죠. 윤영환 대표님 안녕하세요?

◆ 윤영환 이주민센터 친구 대표(이하 윤영환)> 예,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이성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자기소개를 한 번 해 주시죠.

◆ 윤영환> 저는 윤영환이라고 합니다. 이주민센터 '친구' 대표를 맡고 있고요. 법무법인 덕수라는 사무실에서 20년 동안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네, 근데 이주민 센터 이름을 ‘친구’라고 지으신 것 같아요. 이게 어떤 곳이죠?

◆ 윤영환> 저희 친구 이주민센터는 서울에서 외국인이 제일 많이 살고 있는 대림동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변호사들이 모여서 설립을 했고요. 또 현재 두 명의 상근 변호사와 두 명의 활동가가 상근을 하고 있고. 저희 기본 모토는 ‘평화의 씨앗, 이주민의 든든한 벗’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어려움에 처한 외국에서 온 이주민들을 돕고 친구가 돼서 우리 사회가 다 같이 잘 공존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보자라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대표님께서 아까 평화와 공존,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대략 관련된 얘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친구’를 설립을 하셨죠?

◆ 윤영환> 10여 년 전에 제가 단체를 만들자라고 제안하면서 가졌던 꿈은 조금 거창하지만 아시아 평화 인권 네트워크였습니다. 그래서 일하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또 배우기 위해서 한국에 온 그런 외국인들이 환대받고 도움을 받고 친구가 돼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또 한국에 계속 사는 사람들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하고 이렇게 오고 가고 교류를 하지 않습니까? 이런 과정에서 친구가 된 이런 사람들의 연결이 네트워크가 되고, 그 네트워크가 어쨌든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게 하는 평화의 씨앗이 되도록 징검다리가 되도록 해야겠다라고 생각을 했고. 또 소수자와 이주민이 차별받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받는 그런 사회가 또 건강한 사회고 그렇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 이성규> 그러니까 이주민인 소수자가 주된 멤버네요?

◆ 윤영환> 그렇죠. 소수자는 어쨌든 한국사에서 이주민이고 이주민은 어차피 소수자여서요. 그런 소수가 차별받은 사회는 나도 언젠가 차별받을 수 있고 건강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정당하게 대접받고 인정받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프렌드십, 우정, 환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 이성규> 아시아 평화 인권 네트워크.

◆ 윤영환> 를 지향했는데. 실제로 저희 지금 활동은 한국 안에서의 어떤 그런 인권 지원, 네트워크 활동, 어떤 문화 운동, 혐오나 이런 거 줄이는 그런 데 주력하고 있죠.

◇ 이성규> 그러니까 이렇게 이름을 붙이시면서 슬로건을 ‘아시아 평화 인권 네트워크를 꿈꾼다’라고 하셨는데 주로 이주민 중에서 아시아계 이주민들이 주로 많이 계시죠?

◆ 윤영환> 초기에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사실은 전 세계 이주민들이 아프리카부터 중동, 남미, 곳곳에서 이제 다 지금 오고 있고요. 그분들과 함께 이제 돕고 교류하고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이성규> 대한민국의 아까 소수자 말씀하셨는데 수많은 소수자, 약자 이런 그룹 중에 특별히 이주민에 마음을 갖게 된 그런 계기가 있으셨나요?

◆ 윤영환> 저는 하여튼 20대부터 탈북민에 관심이 많았고요. 그리고 또 제가 20대, 30대 이 무렵에 이제 외국에서 온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심했어요. 그래서 그런 문제가 장기화되거나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이주민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이게 갈등 국면으로 가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오히려 그들이 조화롭게 같이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는 게 필요하다라고 생각을 해서 저는 특별히 좀 관심이 많이 가는 거죠. 외국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또 제가 그들에게 친구가 돼 주고. 아주 소박하게는 이렇게 서로 돕고 만나고 마음을 나눌 친구가 되면, 그들의 고향에 가면 그 집에 가고. 그러니까 일반 관광이나 이런 게 아니라 삶을 나누고 실제 살아가는 걸 이해하는 그런 어떤 관계들이 형성되는 게 저는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데 필요한데 법적인 이런 부분들은 가뜩이나 정보가 없고, 어려울 때 저희의 도움이 굉장히 크게 도움이 되거든요.

◇ 이성규> 그럼 역으로 이주민의 고향도 좀 가끔 방문도 해보시고 그러셨나요?

◆ 윤영환> 저희 센터 친구에서 했던 프로그램 중에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이거는 이제 몽골에 저희가 4년을 연속 여름에 9박 10일로 한 10여 명씩 저희하고 만났던 사람들의 마을, 집, 가족들을 가서 만나고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고. 몽골 초원의 게르에서 이제 있으면 동네 밤이 되면 막 동네 사람이 찾아옵니다. 같이 몽골 술도 먹고.

◇ 이성규> 이주민을 이제 그렇게 해서 마음에 가까이 두셨는데. 그런데 이제 아까 법률가들이 주축이 됐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센터 처음 세우실 때 초반에는 정말 다들 그 황무지에 뭘 만들려면 다 어려움이 있지 않습니까? 그 어려움도 많으셨겠어요?

◆ 윤영환> 우선은 이제 재정적인 어려움이 늘 이런 새로 시작하는 단체는 있고요. 그걸 또 떠나서 이제 이주민을 지원하자라고 했지만 또 막상 무엇을 할까, 이런 고민들도 좀 되더라고요. 그리고 또 대림동에 이주민이 많지만 또 저희가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찾아오는 사람들 숫자도 적고 그런 애로가 있었는데. 저희가 한 2년 차, 3년 차쯤 됐을 때 나파엘 클리닉이라는 의사들이 만든 진료기관이 있습니다. 대학로 쪽에. 거기에 저희가 이제 봉사활동을 하게 됐어요. 법률 상담을, 매주 명절에도, 한 번도 안 빠지고.

◇ 이성규> 나파엘 클리닉에?

◆ 윤영환> 그렇죠. 찾아가서 거기서 상담을 했는데 이제 거기에 로스쿨 학생들, 변호사들 또 노무사들, 이런 그 법률과 관련된 상담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자발적으로 참여를 해서 그때부터 저희 단체가 활기를 띠고 또 대림동에서도 조금씩 알려지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들을 하게 됐습니다.

◇ 이성규> 그런데 재정적 어려움을 풀기에는 이 부분이 충분치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 윤영환>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면 도와주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또 다행인 것은 많은 시민단체가 어려운데 저희는 그래도 이제 변호사들이 좀 있으니까 조금 더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그리고 어쨌든 또 저희가 지인들에게 정말 열심히 알려서 후원이 조금씩 늘어가지고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후원을 중심으로 저희는 운영을 하고 있거든요.

◇ 이성규> ‘친구’가 지금 사단법인인가요?

◆ 윤영환> 사단법인입니다. 원래는 비영리 민간단체로 하다가 2016년에 사단법인으로 전환을 했죠.

◇ 이성규> 아까 말씀 중에 거기에 상근 변호사가 두 분이 계시다고 했고. 지금 대표를 맡고 계시다고 했죠, 윤영환 대표님은. 그런데 대표님은 비상근인가요?

◆ 윤영환> 저는 비상근입니다. 이제 왔다 갔다 하면서 주요 의사 결정을 하고 일이 있을 때마다 같이 협의하고 이렇게 하고 있죠.

◇ 이성규> 예. 그런데 그 상근 변호사님 두 분은 그게 일이에요, 그분의 직업이에요?

◆ 윤영환> 그렇죠. 공익 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인 거죠.

◇ 이성규> 근데 그분들 임금은 대표가 주셔야 되죠?

◆ 윤영환> 아닙니다. 저도 도네이션을 하고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시고 이제 공공기관에서 그런 후원 받는 것도 조금씩 있고요. 

◇ 이성규> 공공기관에서 보조금?

◆ 윤영환> 그런 기간을 정해서 한 변호사들에게 급여성으로 후원해 주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있고, 그걸 이제 꾸준히 한 명씩 이제 받아오고 있고, 나머지는 저희가 이제 후원으로 충당을 하고. 저희 단체는 꼭 필요할 때는 또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다행히. 근근이 그래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런 분들이 주로 어느 영역에 계신 분들이에요?

◆ 윤영환> 여러 영역이 있는데요. 저희는 아무래도 법조 영역에서 많이 도와주시고, 일반 기업을 하시는 분들, 정말 개인적으로 이렇게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종교기관이나 사회기관 단체들에서도 도와주시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많은 사업들을 하시는 것 같은데. 프로젝트들도 많이 하셨더라고요, 기록을 보니까. 근데 어떤 것들이 주로 있었습니까? 한번 소개 좀 해주시죠?

◆ 윤영환> 저희가 단체 규모에 비해서는 상당히 다양한 활동들을 많이 해왔고 또 변호사가 중심이 돼 있지만, 사실 저희 센터를 대림동에 둔 것도 현장에서 이주민들을 만나면서 같이 호흡하면서 일을 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교류들이 있었고요. 주되게는 인권 법률 지원을 주되게 하고 입법 활동, 제도 개선 활동도 꽤 많이 하고 있고요. 또 구로, 영등포 지역에 있는 학교들의 저희가 가서 인권 교육하는 활동들, 그다음에 일반 시민 요청받으면 교육을 전국에 다 다니면서 관련된 인권 영화를 강의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인권 관련된 강의들도 하고요. 이주민들에게 이제 통번역 교육 이런 것도 시키기도 하고, 아까 말씀드린 여행, 저희가 예전에 카페도 운영을 했었습니다. 2014년부터 2018년 정도까지 한 5년 정도 카페를 운영을 했는데 카페는 이제 망했고요. 저희가 초기에 법률만 하다 보니까 재미가 없어서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에서 어떤 문화를 나누고 향유하는 그런 것들을 좀 했으면 좋겠다 해서 ‘평화 인권 카페 친구’라는 이름으로 한 5년 정도 카페를 운영해서 카페는 3층에 있었거든요. 망했습니다.

◇ 이성규> 거기서 커피도 팔고, 여러 가지 다과를?

◆ 윤영환> 커피도 팔았고요. 저희가 변호사들이 커피도 다 내려서 팔고, 그런데 이제 그게 일이 중복되니까 집중하자고 해서 2018년 무렵에는 법률 인권 분야에 집중을 하고 카페나 공간은 하더라도 별도로 하자라고 했는데 이제 코로나 지나면서 지금은 휴업 상태입니다.

◇ 이성규> 그런데 그 기록에 보니까 ‘투소푸카’라는 있는데 이게 뭐예요?

◆ 윤영환> 이주배경 청소년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부모를 따라서 이주해 온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중도입국 청소년이라고 하는데 이 친구들은 한국어가 잘 안 되고 한국 문화를 잘 모르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들에게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나 이런 걸 시키는 그런 저희가 청소년 센터가 있거든요. 그 센터 이름이 투소프카고 그 뜻은 이제 러시아 말로 ‘또래, 친구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친구하고 비슷한 뜻이죠. 거기에 그런 친구들이 한 4~50명 정도 이렇게 같이 동아리처럼 오고, 그 사업 지원도 좀 받는 게 있어요.

◇ 이성규> 그분들이 주로 러시아 쪽도 많이 있습니까?

◆ 윤영환> 아닙니다. 여기저기에서.

◇ 이성규> 중국 쪽이 많을 것 같은 느낌인데?

◆ 윤영환> 중국계가 많고요. 나라 숫자로는 한 10여 개 국가에서 온 청소년들이 있고, 보통은 한 10살부터 한 스물서너 살까지 같이 있습니다. 중도 입국 청소년, 조금 전문적으로는 이주 배경 청소년.

◇ 이성규> 그분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지는 않고 부모가 한국으로 이주를 할 때에 같이 들어온 그런 청소년들이죠?

◆ 윤영환> 그러니까 여러 가지로 취약합니다.

◇ 이성규> 이주 배경 청소년이라고도 하고 중도 입국 청소년. 그런 여러 가지 프로그램 중에 기억에 남고 ‘이거는 진짜 잘한 것 같다’ 그런 프로그램 하나 있으면 꼽아보시죠?

◆ 윤영환> 제가 지금 몇 가지 말씀드린 것 외에도 어쨌든 저희 친구 센터의 가장 중요한 것은, 상근 변호사가 이주민만을 대상으로 어떤 법률 인권 지원을 하는 단체가 거의 없습니다. 몇 개 있기는 한데. 그래도 또 현장에 있으면서 안정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는 단체는 저희가 거의 유일하고 그걸 저희가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하고 있고요. 또 하나는 저희가 아주 아이 때부터 아까 말씀드린 청소년 또 여성 노동, 이렇게 어떤 생애 주기를 아우르는 법률을 중심으로 한 지원들을 저희가 하고 있는데 이게 좀 더 특이한 부분이고. 또 저희 센터에서는 혐오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문화가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제 문화 운동 성격을 가진 출판을 한다든지 저희가 책도 하나 냈었거든요. <민들레 여성, 디아스포라 이야기하다> 이런 생애 구술사, 우리 중국 동포 여성들, 60대인 8명 정도가 그런 책도 내고 그런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고. 일반 변호사들은 안 해보는 시도들을 하는 것도 상당히 저는 보람이 있었고, 거기에 이제 주되게 저희의 임무인 인권 지원 활동들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죠.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이주민들의 친구가 되어 준 법률가, 이주민 센터 ‘친구’의 윤영환 대표님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윤 대표님, 이쯤에서 우리가 노래 한 곡을 듣는데 어떤 노래 하나 추천하시겠어요?

◆ 윤영환> 저는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노래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오늘 이 노래가 왜 추천돼야 됩니까?

◆ 윤영환>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비판적이고 진지한 그런 스토리를 가진, 가사를 가진 노래인데 노래를 굉장히 판타지하게 어떤 음색과 연주와 언어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애가 좋아하던 노래를 듣다가 저도 좋아하게 된 노래인데, 같이 한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성규> 그럼 윤영환 대표님이 추천하신 노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듣고 오겠습니다. 

이랑 / <늑대가 나타났다> Play

◇ 이성규>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주민들의 친구가 되어 준 법률가, 이주민 센터 ‘친구’의 윤영환 대표입니다. 근데 아까 이주민 수가 아주 많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대략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되죠?

◆ 윤영환> 지금 2023년 통계로 이주의 배경을 가진 인구가 233만 명 정도로 보고요. 전체 인구의 5% 정도 됩니다. 4%를 넘으면 다문화 사회로 규정하거든요. 이제 한국 사회가 명실상부하게 다문화, 다민족, 다인종 사회로 변화된 것이죠.

◇ 이성규> 결혼 이민이든 취업을 위한 이민이든 많은 부분들을 다 이렇게 아울러서 지금 233만. 장애인 인구가 250만 좀 넘는데 그 정도 되네요?

◆ 윤영환> 예. 그리고 지방선거 같은 데에 투표권도 가지고 있거든요. 영주권자들은 지방선거 투표도 할 수 있고. 이제 영향력도 좀 커지고 있고 그렇습니다.

◇ 이성규> 주로 법률 쪽을 지원을 해주시고 그쪽 영역을 담당을 하시니까 여쭙겠는데, 우리나라가 지금 이주민에 대해서 법적인 장치, 이런 부분들이 튼실하게 잘 돼 있나요. 어떤가요?

◆ 윤영환> 많이 나아졌고요. 정비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민청을 만들어서, 그만큼 인구도 많아지고 중요하니까 하겠다고 정부에서도 얘기를 하고 있고. 그렇지만 출입국 제도나 실무에서는 여전히 개선할 점들이 있고요. 그리고 또 근본적으로 저의 관점에서 얘기를 하자면, 어떤 삶에 대해서 초점이 맞춰지는 그런 정책이어야 되는데 노동 고용 중심으로 사고하는 게 주된 패러다임입니다. 이 부분이 조금 변화될 필요도 있고. 그래서 아동이나 여성 내지는 생계가 곤란한 그런 복지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체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좀 떠나서 아주 기초적인 지원들을 사회적으로 커버를 해 주는 게 좋다. 그리고 그게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도 굉장히 필요하거든요. 그런 부분들은 아직 국가 재정의 이런 요소들도 있고 사회적 인식도 그래서 좀 부족한 부분이 있긴 합니다. 또 하나 제가 방송 나온 김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가 고용허가제라고 해서 사업주가 채용을 하면 사업주 동의 없이 직장을 옮기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과정에서 이 사업주의 영향력이 크니까 노동 과정에서 인권 침해나 부당한 일들이 발생하고, 사실 국제인권규범에서는 ‘강제노동 금지’ 이런 게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 고용허가제의 틀에서 사실상의 강제노동이 되는 사례들이, 물론 대다수는 잘 되지만 또 안 좋은 그런 사례들이 있고, 이런 건 제도 개선이 좀 필요하다, 이런 얘기들을 저희가 좀 많이 하고 있죠.

◇ 이성규> 그러니까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생에서 그래도 좀 발전된 개념인데?

◆ 윤영환> 그러니까 우리나라 고용허가제가 일본보다는 낫다고 합니다. 그런데 독일이나 이런 데는 노동허가제라 그래가지고, 노동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춰서 사회적인 이주와 관련된, 고용과 관련된 시스템 설계를 하는데 이거를 고용, 그러니까 사용자 중심의 설계 내지는 국가 인력 수급 중심으로 하다 보면 뭔가 문제가 생기는 부분들이 있는 거죠. 저희처럼 인권에 중심을 두는 사람들은 그런 부분도 세밀하게 봐야 한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 이성규> 사회가 이제 바꿔야 될 것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시는 거군요?

◆ 윤영환> 그렇죠. 좀 개선돼야 된다.

◇ 이성규> 그게 이제 이주민 관련해서 뭔가 해결이 좀 더 깔끔하게 되어야 된다?

◆ 윤영환> 제도적으로 그렇습니다.

◇ 이성규> 근데 아까 약간 ‘혐오’라는 단어를 쓰셨어요. 이 혐오가 이제 이주민에 대해서도 조금 많이 그 적용되고 있나요, 우리나라가?

◆ 윤영환> 이게 인터넷 댓글, 그러니까 저희는 저희가 좋아서 일을 하지만 저희가 무슨 어떤 발언을 하면 바로 댓글이 쫙 달립니다. 악성 혐오 댓글들이 달리고 그러면 저희는 이제 유심히 보죠. 이런 게 왜 있을까. 그걸 다른 분들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고. 그렇지만 이제 사회가 좀 더 공존하고 하려면 혐오 댓글로 상처를 많이 받거든요. 힘들어하고. 실제로 댓글에도 있고 직장에서나 교육 현장에서나, 특히 청소년들 같은 경우에 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말 한마디 한 마디에서 받는 상처들이 크고. 그건 어떤 사회 문화고 중심 가치거든요. 그런 게 이제 바로잡히고 좀 더 좋아지는 데에는 세월이 많이 걸릴 거고요. 한국 사회가 이제 이주민 숫자가 많아지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저희가 보기에는 갈등 단계로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전에 숫자가 적고 사회적으로 무시해도 될 정도의 영향력이 없었는데 이제는 200만이 넘고 가끔 사건 사고도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런 갈등 단계 내지는 뭔가 하나의 사회적 주체로 나설 때, 그때 이제 이걸 조절하는 기능이나 이런 것도 필요하고. 그럴 때 사실 혐오들이 생기는 거죠. 이전에 안 했던 경험이니까. 그래서 이걸 어떻게 좀 더 연착륙하면서 서로 이렇게 이해하는 방식으로 갈 건지. 그래서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해가, 만나보고 이렇게 하면 똑같이 먹고 돈 벌고 가족을 위해서 일하고 이렇게 열심히 살고 이렇거든요. 만나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만나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뭔가 내 걸 뺏기는 것 같고 우리 사회적 자원이 한정적인데 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까지 지원하느냐라고 하지만,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삶의 동질성이라는 측면과 그리고 이주민들 없이 한국 사회는 안 굴러가거든요. 그분들이 하는 사회적 역할과 기여가 있거든요. 근데 그것을 정당하게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주고 어떤 사회적인, 같이 살아가는 이 시스템들 속으로 서로 양해하고 이해할 때 그때 좀 줄어들 텐데 그런 부분이 이제 우리 사회가 아직 훈련이 안 돼 있고 사회적으로 가치관으로도 적립이 덜 돼 있고. 여전히 단일 민족 이런 순혈주의가 있고요. 미국이나 전통적인 다문화 사회들은 수백 년을 서로 갈등하면서 만들어온 룰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건드리면 안 되는 영역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가 있지만, 저희는 이제 그런 걸 만들어가는 초입에 와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런데 결국은 이게 인식 개선이랄까, 전환이랄까 이런 부분하고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그럼 사단법인 이주민 센터 ‘친구’, 이 기구에서도 그런 기능의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나요?

◆ 윤영환> 저희가 그래서 카페를 한 것도 그런 기능이었고요. 그다음에 아까 책을 냈던 거, 그다음에 이제 저희도 유튜브 같은 걸 촬영을 해가지고 올립니다. ‘친구TV’를 하나 만들어서 이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서 올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이제 인식 개선되는 부분들이 저희의 또 주요 활동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이제 어떤 법률의 제정, 제도를 만들어서 뭔가 법이 먼저 바뀌면 사람들 인식이 확 바뀌거든요. 법이라는 게 사회의 어떤 합의점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법이 사회의 가치관을 많이 변화시키기도 하고. 사실 고용허가제가 그렇습니다. 일본은 이제 막 하는 것 같거든요. 근데 한국이 2000년대 초반에 이걸 도입을 하면서 이런 노동 이주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일본이나 이런 데보다 저희가 좀 더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그래서 정치권이나 법률의 제정 이런 것들을 통해서 또 뭔가 좀 풀어가야 되는 부분. 대표적으로 차별금지법, 여러 이슈가 있죠. 종교, 교육 여러 이슈가 있지만 그래서 이렇게 법이 하나. 차별하면 안 된다라는 것의 국가적 합의 그러니까 사회적 합의가 있는 그런 제도가 생기면 많은 개선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 이성규> 그러니까 이주민에 대한 아까 말씀하신 혐오 등등, 고용 현장에서의 차별, 수탈 이런 부분들이 엄격한 차별이다라고 보시는 거군요?

◆ 윤영환> 그렇죠. 그러니까 차별이 있죠. 모든 차별이 있는 건 아니고. 세미나를 들어보고 제도적으로 잘 정비를 하고.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라는 게 이제 차별금지법의 핵심이거든요. 그런데 그 자체를 이제 반대를 하는 분들도 좀 많이 있고 정치권조차도 나눠져서 잘 되지 않아서 인권 중심으로 어떤 삶이나 이런 걸 중심으로 잘 진행됐습니다.

◇ 이성규> 그동안 활동을 하시면서 결실을 맺은 것을 한번 꼽아보시면?

◆ 윤영환> 저희가 혐오 얘기를 하던 참이니까요. <청년경찰>이라고 700만 찍은 인기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가 이제 대림동 범죄의 소굴, 그리고 중국 동포들을 범죄자인 것처럼 묘사된 부분들이 여러 개 있어서 그때 당시에 이제 이런 중국 동포들도 시위도 하고 그래서 그 문제가 이제 언론에도 많이 회자되고 했었는데. 저희 단체에서 이제 그 <청년경찰> 제작사를 상대로 그런 정신적 피해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해서 고등법원에서 화해가 됐습니다. 법적으로는 쉽지 않은 부분이었는데 고등부에서 화해가 돼서 제작사에서 정식으로 사과를 하고 이런 혐오가 양산되는 그런 차별적인 콘텐츠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그런 취지로 해서 그게 이쪽 영역에서 어떤 선례처럼 됐고. 사실 표현의 자유는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표현의 자유가 인정될 수가 없어서, 중심을 잘 잡는 이런 게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시기가 돼 가고 있습니다.

◇ 이성규> 이주민에 대한 차별 또 부정적 인식 이런 부분들을 많이 해결하려고 노력을 하시는데, 시간이 벌써 10년이 흘렀네요. 사단법인 이주민 센터 ‘친구’가 작년에 10주년을 맞이했네요. 아련하시겠습니다, 

◆ 윤영환> 그렇죠.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고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할 때 또 많이 도와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이성규> 앞으로 이주민과 공존을 위해서 사단법인 ‘친구’가 해야 될 계획,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죠. 

◆ 윤영환> 두 가지 말씀드리면, 어쨌든 저희가 주력으로 하고 있는 법률 인권 분야 전문성을 깊이 하자. 그리고 시민운동 활동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요. 공적인 관심이 줄어들고 이래서 청년 그리고 이주민 당사자, 일할 수 있는 능력 있는 활동가들을 양성하자. 또 하나, 혐오를 줄이는 문화와 교육 활동들도 더 충실하게 이렇게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윤영환 대표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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