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시간 : [월~금] 10:15~11:30
  • 진행: 박귀빈 / PD: 이은지 / 작가: 김은진

인터뷰 전문

엘리자베스 여왕 직접 만난 대사 "알현실 문이 열리자, 한 가운데 작은 거인이..."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2-09-19 14:27  | 조회 : 1362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2년 9월 19일 (월요일)
□ 진행 : 이현웅 아나운서
□ 출연 : 박은하 전(前) 주 영국대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이어서 두 번째 <이슈 인터뷰> 준비했습니다. 70년 214일,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했습니다. 현재 영국 런던 현지 시간은 9월 19일 오전 3시를 지났는데요. 엘리자베스 여왕의 관은 버킹엄궁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3시간 반 후인 오전 6시 30분까지입니다. 일반 공개가 끝나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국장이 엄수될 예정입니다. 대영제국 70년, 20세기와 21세기 역사의 부침을 온몸으로 마주한 세기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해, 직접 여왕을 만났던 분이죠. 박은하 전 주 영국대사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대사님, 안녕하십니까? 

◆ 박은하 전 영국대사(이하 박은하): 안녕하십니까.

◇ 이현웅: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역대 최초의 여성 영국대사 임명된 여성대사이시라고요?

◆ 박은하: 그렇습니다. 저는 2018년에서 2021년까지 3년간 주 영국 한국대사로 재임을 했었고요. 대사로 부임했을 때 버킹엄 궁전에 가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께 신임장을 제출하였습니다.

◇ 이현웅: 그러셨군요. 직접 만나 뵀다고 하니까, 이번 서거 소식 듣고 심정이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 박은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께서는 사실 영국민의 정신적인 지주였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감과 용기를 불러 일으켜온 이 시대의 지도자였고 특히 영향력이 있는 여성이셨기 때문에 여왕님을 직접 만나 배웠고, 또 제가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대사로 지낸 영국의 국가 수장이셨기 때문에 제가 느끼는 상실감이라든지 믿기 어려운 심정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것 같았던 분이 떠나셨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요. 큰 별이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그 별은 여왕님을 존경했던 제 마음에 계속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 이현웅: 대사를 지내시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난 것이 처음에 임명장 받으실 때 한 번이었나요?

◆ 박은하: 신임장을 제정할 때 처음 뵀었고 그 이후에도 왕실 행사에서 여러 번 뵀었거든요. 그런데 여왕님을 처음 뵀을 때 인상이 굉장히 깊었습니다. 버킹엄 궁전에 갈 때는 황금 칠을 한 왕실 마차를 타고 들어가게 되는데요. 버킹엄궁은 다른 유럽의 여러 과거 제국들이 있잖아요. 그 제국들의 궁정과는 다르게 비교적 소박하고, 위압적이라기보다는 권위는 있지만 사람을 압도하지는 않는 궁전이에요. 저를 기다리고 계시던 여왕님의 모습이 바로 그런 버킹엄 궁전 같이 위엄은 있지만 과도하게 권위를 뽐내지는 않는 아주 따뜻한 모습이셨어요. 그래서 알현실의 문이 열리고 그 가운데 여왕님이 중앙에 서 계셨는데, 저보다 키가 조금 작으신 분이시거든요. 그런데 한가운데 서 계신 작은 거인의 느낌, 강한 내면을 지닌 부드러운 여왕님, 그래서 그 앞에 서는 사람은 누구든지 존경과 사랑을 갖게 하는 그런 힘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어요. 그래서 영국 최고의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외교관이시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이현웅: 과거 사진을 찾아보니까 한복을 입고 가셨던데요?

◆ 박은하: 그렇습니다. 한복도 굉장히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그러셨죠.

◇ 이현웅: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난 1999년에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실 텐데요. 대사님을 만났을 때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을 이야기하셨나요?

◆ 박은하: 그 기억을 굉장히 깊이 갖고 계셨어요. 보통 대사들이 신임장을 제정할 때 여왕께서 사전에 영국 외교부로부터 해당되는 나라의 사정과 또 양국 간의 관계에 대해서 브리핑을 받고 그 브리핑에 기초해서 얘기를 나누시는데. 그래서 저도 공식적인 한영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실 거라고 기대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20년 전에 한국 방문의 개인적인 추억을 굉장히 많이 하셔서 놀랐습니다. 여왕께서 말씀하시기를, 호텔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데 서울의 언덕 위에 위치한 한 호텔에 머무르셨고, 서울 야경이 아름다워서 본인이 사진기를 직접 꺼내서 야경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역사가 아주 오래된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을 방문했고 그 마을 사람들이 본인의 70회 생일잔치를 준비를 해 줬었다. 칠순 잔치를 안동에서 하신 거예요. 그래서 여왕께서 한국 방문에 깊은 인상을 갖고 계시구나, 2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당시 92세 여왕님이셨는데 저렇게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게 한국 대사로서 참 뿌듯했습니다.

◇ 이현웅: 그래서 하회마을에도 서거를 추모하는 분향소도 마련이 됐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고 하는데요. 한국에 유달리 특별한 기억을 갖고 계신다, 라는 느낌을 받으신 적이 또 있다고요?

◆ 박은하: 그럼요. 한국 도자기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는데 ‘한국 도자기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자기로 알고 있다’, ‘한국 방문 때도 도자기 쇼룸에 가서 차 주전자를 하나 선물받았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지금도 차를 마실 때 쓰고 계신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나중에 보니까 달 항아리를 전 세계에 알리신 박영숙 작가님의 스튜디오를 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동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뿐만 아니라 한국 도자기,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아요.

◇ 이현웅: 그러면 전반적으로 한국에 대한 기억이나 이미지가 좋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까요?

◆ 박은하: 그럼요. 제가 영국에 있는 3년 동안 후기 1년 반은 코로나 때문에 영국이 봉쇄 조치를 취하고 여왕께서도 공식적인 대면 행사를 중단하셨기 때문에 아쉽게도 초기 1년 반 동안 여왕님을 직접 뵀었는데 그게 6번 정도 됩니다. 신임장 제정식, 그리고 버킹엄 가든 파티, 연말 파티, 경마대회, 생일 축하 행사 이런 데서 여섯 번 뵀었는데요. 여성 대사가 와서 반갑다는 말씀도 하시고 또 여왕님 눈에는 제가 어려 보이니 젊은 여성 대사라고 불러주시기도 하고요, 그리고 가든 파티 같은 경우에는 거의 200명에 달하는 각국 대사들이 다 모이는데 그 가운데서도 저를 불러서 “안동 사과가 대사관을 통해서 나한테 전달이 됐는데 안동 사과가 너무너무 맛있었다”, 이런 말씀을 하셔서 옆에 있는 대사들이 ‘도대체 무슨 사과를 갖다 드렸나’. 제가 듣기로는 안동에 오셨을 때 기념해서 사과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가 20년이 되어서 아주 실한 사과를 생산하니까 안동 마을에서 ‘여왕님의 사과’라는 이름을 붙여서 여왕님께 보내드린 거예요. 물론 대사관을 통해서 보냈지만. 그래서 이런 한국에 대한 기억, 특히 한국 사람들이 여왕에 대해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사과를 통해서 다시 느끼셨던 것 같아요.

◇ 이현웅: 그렇군요. 굉장히 인연이 깊은 사과 선물이었네요. 혹시 생일 파티 같은 곳에 가실 때 개인적인 선물도 드립니까?

◆ 박은하: 여왕께서 개인적으로 직접 선물을 받고 하시지는 않으세요. 그런데 생일 선물로 ‘안동에서 사과 여왕님께 사과가 왔다’ 이러면 의전실을 통해서 저희가 보내드리고 하죠.

◇ 이현웅: 이번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분들께서는 여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영국민들한테 어떤 의미인지 많이들 궁금해 하시거든요.

◆ 박은하: 영국민들에게 있어서 여왕이라는 존재는 정말 영국을 대표하고 영국의 중심을 잡아주는 ‘지주 같은 역할’이다, ‘버팀목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국 여왕께서 즉위하셨을 52년도에는 영국이 제국으로서 한 70여 개 이상의 식민지를 해외에 갖고 있었던 당시에 여왕으로서 오셨잖아요. 그리고 영국이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3차, 4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영국 자체가 변화할 때 영국이 이런 극적인 변화의 시기에서 흔들리지 않고 영국의 통합, 영국의 중심. 아주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배에 있어서의 평형수 같은 역할, 그리고 파도에 휩쓸려 나가지 않는 항해의 닻, 앵커(Anchor) 같은 역할을 여왕께서 해 주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이 듭니다. 여왕께서 즉위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옛날에는 군주가 전쟁터에 병사를 이끌고 나가서 나라를 지켰는데 나는 전쟁을 지휘할 수도 없고 법을 만들 수도 없고 집행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영국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것이 구조이기 때문에, 그 대신 나는 내 마음과 헌신을 영국에 바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기억하는 국민들이 굉장히 많아요. 마음과 헌신과 평생을 바친 여왕, 그래서 영국 국민들에게 있어서 여왕의 존재는 그런 분이 아니셨나 싶습니다.

◇ 이현웅: 그렇군요. 그렇기 때문에 최대 30시간까지 걸려서도 여왕의 관을 보기 위해서 조문 대기를 했고요. 데이비드 베컴, 축구 선수도 13시간 기다려서 조문을 했다고 들었어요. 

◆ 박은하: 맞습니다. 지금 영국 날씨가 조금 춥다고 그래요. 그런 추운 날씨에 유명 인사든 일반 시골에서 온 국민이든 14시간, 20시간씩 기다리면서 여왕님을 떠나보내는 인사를 한다는 것이 여왕님에 대해서 영국 국민들이 갖고 있는 애정을 표시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이현웅: 영국 국민들은 모두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존경하고 좋아했던 겁니까?

◆ 박은하: 물론 민주사회에서 다른 목소리도 당연히 있죠. ‘군주제가 이 시대에 필요하냐’, 이런 얘기도 나오고 또 군주제가 사실 위기에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영국의 대략적인 일반 민심은, 왕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 중 하나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왕실도 우리의 자산이지만 특히 70년, 여왕의 평생을 바친 군주에 대한 사랑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이현웅: 그렇군요. 대사님 임기는 작년에 마치신 건가요?

◆ 박은하: 그렇습니다. 작년 7월 말에 3년 임기를 마쳤습니다.

◇ 이현웅: 혹시 마치고 오실 때도 여왕께 인사를 드리고 옵니까?

◆ 박은하: 여왕께서 코로나 발생 이후에는 윈저성에 머무시기도 하셨지만 영국에는 부임하는 대사와 또 재임하는 기간 동안 대사와 만나시고 소통도 하시지만 대사가 떠날 때 별도의 인사를 나누는 것은 없습니다.

◇ 이현웅: 이제 영국의 국왕은 찰스 3세입니다. 74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 찰스 3세에 대한 영국민들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 박은하: 언론에 보면 ‘엘리자베스 여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진다’,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건 사실 당연한 얘기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왕께서는 7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는 여왕님으로서의 평가가 구축됐던 거고요. 누가 여왕님의 왕위를 입든 간에 상당 기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그 인기를 높이기는 쉽지 않지 않나, 어쩔 수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찰스 3세가 왕세자 신분으로서 수십 년 동안, 쉽지 않은 자리잖아요, 왕세자라는 자리가. 그 기간 동안 왕세자 재단을 설립하고 재단을 통해서 빈곤 퇴치, 문화 교육 분야, 각 분야의 자선 사업을 굉장히 활발하게 해 왔습니다. 그래서 왕세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하게 국민들을 위해서 해 왔기 때문에 또 새로운 방식으로 국민들의 신망을 받아 나가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 이현웅: 혹시 임기 때 당시 왕세자 찰스 3세도 만나본 적이 있으신가요?

◆ 박은하: 그럼요. 찰스 왕세자는 92년도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제가 외교 사무관이었는데 제가 수행해서 경주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찰스 왕세자는 그때 처음 뵙고 또 영국 대사로 간 후에는 찰스 왕세자 초청으로 스코틀랜드에서 하루를 묵고 왕세자 행사에 참여하고 온 경험도 있습니다.

◇ 이현웅: 찰스 3세를 만났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 박은하: 굉장히 섬세한 분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굉장히 섬세하고. 여왕이 계시기 때문에 왕세자로서의 본인의 권위를 표시하기는 힘드셨을 거예요. 그렇지만 섬세하고 하나하나 세심하게 보살피고 이런 느낌을 주셨거든요. 그런데 이제 왕세자에서 군주로 변했기 때문에 또 그 변화한 상황에 맞는 자신만의 통치 방식, 국민들과의 소통 방식을 만들어 가면서 또 새로운 영국. 영국이 지금 ‘글로벌 브리턴’, 세계적인 영국이라는 기치 하에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가고 있거든요. 거기에 맞춰서 또 영국의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해 나갈 것으로 저는 기대가 됩니다.

◇ 이현웅: 말씀하신 것처럼 찰스 왕세자가 우리의 가치는 계속 유지돼 왔고 변함없이 유지돼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요. 앞으로 영국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 박은하: 큰 변화는 없겠지만 영국이 구심점이 되어 있는 예전 식민지와의 ‘커먼웰스’라고 해서 영연방이 있지 않습니까? 여왕을 국가 원수로 모시는 나라도 있고 또 국가 원수로 하지는 않지만 영국과의 유대감을 공식화하고 있는 55개 국가들이 있는데 이런 국가들이 영국의 구심점, 중심이 되었던 여왕님이 안 계시니까 연방의 역할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재정립하려는 움직임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 이현웅: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박은하 전 주 영국대사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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