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2년 9월 2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최영갑 성균관유도회 총본부 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성균관 유도회"공자는 홍동백서·조율이시 말한 적 없어"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추석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좋으면서도. 종교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차례상 차릴 제수용품도 마련해야 하고, 상차림도 준비해야 해서 마음이 분주한데요. 어떻게 하면 즐겁고 반가운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을지. 또 우리나라 유교와 유림의 현재 모습은 어떤지. 성균관유도회 총본부의 최영갑 회장님과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영갑 회장님 반갑습니다.
◆ 최영갑 성균관유도회 총본부 회장(이하 최영갑)>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한번 자기소개 좀 간략하게 해주시겠어요?
◆ 최영갑> 저는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이 조직은 전국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고 봐도 좋겠습니다.
◇ 이성규> 성균관 유도회, 그러면 성균관대학교에 유도부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는데요. 청취자 여러분들은 이 기관이 무슨 기관인지 좀 설명을 듣고 싶어 하실 것 같습니다.
◆ 최영갑> 이제 ‘유도회’ 그러면 많은 분들이 운동을 하는 유도를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 제가 독도를 가기 위해서 울릉도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명찰을 앞에 떡 하니 ‘성균관 유도회’ 이렇게 이제 달고 갔더니 지나가는 어른들이 체격도 좋고 유도선수 같다.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설명을 드리느라고 아주 곤욕을 치른 경우가 있습니다. ‘유도’라고 하는 것은 ‘선비 유’자와 ‘길 도’자를 써요. 그러니까 ‘선비의 길’ ‘선비의 도리’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좋겠고요. 우리 조직은 사실 조선왕조가 유교 국가였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제 이렇게 자유민주국가가 되고 나서는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거쳤지 않습니까? 이 기간에 유교가 굉장히 많은 탄압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성균관과 지방 향교 이런 것들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서 심산 김창숙이라고 하는 독립운동가가 계세요. 이 독립운동가가 “유림을 규합하자”해서 이제 1945년 11월 30일에 명륜당이라고 하는 문묘 공간 안에서 유림대회를 개최를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성균관 재건, 그리고 당시에 국립대학이 없지 않습니까? 경성제국대학이 이제 서울대가 되어 버리니까. 성균관은 과거에 국립대학인데, 이 기능이 이제 사라지니까 성균관과 성균관 대학이 조직을 만듭니다. 우리 단체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조직입니다. 그런데 이제 현대에 와서는 교육과 관련해서는 완전히 성균관대학교에 넘겨줬고, 지금은 사회교화활동을 주로 하는 단체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교육 활동이라든가, 인성 예절 교육이나 이런 활동들을 주로 한 단체입니다.
◇ 이성규> 이제 유도보다는 익숙한 말이 ‘유림’ 이란 말일 텐데, 우리나라의 유림이라고 불리는 그런 분들은 몇 분이나 계세요?
◆ 최영갑> 글쎄요. 이 방송을 듣는 유림이 계시다면, 아마 1천만 유림이라고 답하기를 원하실 것 같아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분들은 거의 다 이제 유림으로 이제 분류를 하는데, 종교 인구를 조사할 때는 상당히 인구가 적게 나옵니다. 그래서 저희 이제 유림조차도 유교를 종교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만약에 유림이라고 하는 인구를 따진다면 적어도 한 100만 정도는 족히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 이성규> 그 100만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하나의 이유, 유교를 종교로 생각하는 약간 신실한 마음을 갖고 계신 분들을 상정하신 거죠?
◆ 최영갑> 그렇죠. 이게 ‘확실하게 종교다’라고는 이제 단정을 못 짓고, 내 생활 속에서 유교 이념이나 공자 사상을 그대로 실천하는 분들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 이성규> 지금 ‘유도회 총본부’ 이렇게 명함에 적혀 있는데, 현재 유도회는 전국적으로 규모가 어떻게 되죠.
◆ 최영갑> 저희는 중앙에 총본부가 있고요. 지방에는 17개 시·도마다 시·도의 본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본부 밑에 290개의 지부가 있고, 그 아래로 또 내려가면 지혜가 또 한 3천 개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방대한 조직이죠.
◇ 이성규> 3천 개, 그럼 1년 동안에 우리 총본부의 회장님께서는 지방을 한 바퀴 도시면 그냥 1년이 가시겠네요.
◆ 최영갑> 그렇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 이성규> 그런데 보통 유교 그러면 우리가 ‘남존여비’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러니까 유림들은 주로 남성분들인가요?
◆ 최영갑> 아니죠. 과거에는 이제 유교라고 하는 학문이 이제 양반들, 또 과거를 보는 사람들, 주로 이런 계층이었기 때문에 남성 중심의 사상이 돼버렸지만. 지금은 남녀 평등한 사회 아닙니까? 여기에는 남성만이 있는 게 아니라 여성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지금 전국적으로 여성도 한 80개 지부 정도가 구성돼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럼 여성 유도회가 80개 정도가 있으면, 그분들이 내세우는 ‘캐치 프레이즈’ 같은 건 어떤 건가요? 총본부랑 같은 건가요?
◆ 최영갑> 네, 저희 이제 유도회라고 하는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고. 그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로 주로 이제 교육이나 교화 활동을 담당을 하는데, 아무래도 여성이 남성보다는 좀 청소년이나 학생들 교육에 조금 더 적합하지 않나. 이런 판단이 들어서 저희가 교육을 할 때는 이 여성분들을 많이 이제 활용을 합니다. 다도라든가 예절이라든가 이런 교육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낫습니다.
◇ 이성규> 얼마 전에 이제 성균관 유도의 총본부 회장이 되셨는데, 우리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유도회와 인연을 맺게 되셨죠?
◆ 최영갑> 저는 사실 어려서 외조부와 만나고, 아주 어린 나이였으니까 기억도 잘 안 나는데.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우리 외조부께서 훈장을 하셨다는 걸 제가 이제 나중에 이제 알았어요. 훈장이면 지방의 교육자죠. 서당과 같은 곳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아마 조금 배우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까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로 들어오고. 거기서 석사, 박사 다 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마지막은 유교 활동 유림 활동까지 이어지게 된 겁니다.
◇ 이성규> 석사, 박사는 동양철학 쪽으로 하셨나요?
◆ 최영갑> 이제 학부와 석사는 유학과 그리고 박사 과정은 이제 동양철학과입니다.
◇ 이성규> 유학 박사 과정은 없는 거죠?
◆ 최영갑> 당시에는 없었어요. 지금은 유학과에 박사 과정이 있어요.
◇ 이성규> 그런데, 아까 일제 때 상당히 탄압을 받으셨다고 그랬는데 그 당시에는 많은 영역이 다 탄압을 받았지만 유림들도 상당히 탄압을 받았었죠. 왜 탄압을 받았죠?
◆ 최영갑> 이제 지방에 가면 ‘향교’가 이제 주로 교육을 담당했는데, 여기서는 이제 유교 경전이나 유교 역사 그리고 한국의 역사,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교육을 했던 곳이에요. 그런데 일제가 들어와서 일본어 교육, 일본 역사 교육을 실시하려다 보니까. 향교에 있는 노인들을 다 내쫓고자기가 거기를 이제 점유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선 총독부에서 향교, 전교라고 하죠. 지금은 이 대표들을 ‘직원’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전부 다 임명을 하고 총독부에서 관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양식 있는 지식인이나 유림들은 독립운동 쪽으로 많이 나가게 되죠.
◇ 이성규> 그랬군요. 근데 제가 흥미로운 것이, 오래된 사립학교들이 있는데 그 터가 향교 터들이 많더라고요?
◆ 최영갑> 네, 맞습니다. 일제시대 때부터 그랬어요. 신식, 현대식 학교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돈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향교가 당시에 돈을 갖고 있으니까. 향교에서 돈을 내고 향교 땅을 활용해서 현대식 학교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제 중고등학교도 물론이고, 국립대학교. 지금 지방에 가보면 영남대학교, 전남대학교, 전북대학교와 같은 유림이 시사에서 학교를 만든 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이제 역사에서는 거의 이제 반영이 안 된 거죠. 그런 것을 유도회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아카이브도 만드는 일을 제가 할 겁니다.
◇ 이성규> 그러시군요. 그리고 아까 20대 때부터 “이런저런 활동을 해오셨다” 그런 뉘앙스로 말씀을 하셨는데 유림 활동이라면 어떤 활동들이 있을까요?
◆ 최영갑> 사실 유림 활동이라고 하면 거창한 건 아니고요. 물론 처음에는 이제 학부 때부터 유림들과 같이 생활을 했어요. 학회도 쫓아가고 모임도 가고 그러다가 이제 공부를 더 하면서 석사 박사를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이 활동을 해봐야 되겠다”라고 해서 제일 먼저 이제 출발하게 된 게 출판부, 책을 만드는 일. 그게 아무래도 제가 이제 전공과 가깝고 좀 편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제 출판부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조직 관리하는 책임자까지 쭉 거쳤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가장 많이 우리 유림들이 활동했던 게 인성 교육하고 예절 교육 그리고 충효교육이라고 하는 거예요. 교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있는 모든 교재를 거의 제가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일들을 했죠.
◇ 이성규> 혹시 최영갑 회장님 학교 다니실 때 한복 입고, 짚신 신고, 갓 쓰고 이러고 학교 안 다니셨어요?
◆ 최영갑> 그러지는 않고요 당시에 그런 학생들이 한두 명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한복이 아니라 우리가 개량 한복이라고 하는 거 있죠. 저는 그걸 입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 이성규> 그렇게 다니셨군요. 그렇게 근데 지금 유림 쪽은 아무래도 연세가 7-80대 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지금 최영갑 회장님은 50대 회장님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상당히 이례적일 것 같은데. 어때요? 역대 회장님들과 최 회장님과 지금 전체 유림의 분위기는?
◆ 최영갑> 제가 이번에 이제 가장 젊은 사람으로서 회장이 됐는데, 유림들이 이제 ‘우려 반 기대 반’인 것 같습니다. 우려는 ‘너무 젊은 회장이지 않냐’ 그러니까 유림이라고 하는 어떤 모임의 행사에 가면 제가 가장 어립니다. 어른들을 앞에 놓고 제가 이제 연설을 하고 강의를 하고 이런 입장이니까. 물론 교육은 계속해와서 잘 알죠. 그래도 회장이라고 하는 직책으로 만나는 것은 조금 달라요. 그래서 어른들이 우려 반 기대 반인데, 기대는 이제 최영갑 회장이 굉장히 저돌적이고 굉장히 개혁적인 인물이라는 걸 대부분 어른들이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추진하고 있는 몇 가지 일들이 있는데, 이 일들을 어른들이 불과 2개월 동안 경험하고 ‘우리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겠구나’ 이런 희망을 지금 굉장히 많이 갖는 것 같습니다.
◇ 이성규> 예, 그 일에 대한 얘기도 좀 이따 들어보고요. 유교는 중국에서 왔잖아요. 그런데 현재 “유교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우리나라다” 이런 말도 있고, 오히려 중국에서 배우러 온다는 말도 있던데 지금 어떤가요?
◆ 최영갑> 사실 유교가 중국에서 태동돼서 동아시아 문화의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쳤는데, 한때는 중국이 실제 우리나라로 와서 ‘석전’이라고 하는 큰 행사나 이런 것들은 사진도 찍어가고 배우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중국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유교를 전부 다 없애버리는 그런 정책을 썼어요. 우리가 ‘비림비공’이라고 하는 것 잘 알죠. 비림 린뱌오라고 하는 중국 정치가가 비공 공자 이 두 분을 비판하는 거죠. 이러면서 공자의 유교 문화를 완전히 전부 다, 소위 말하면 박살을 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남아 있는 게 없죠. 거기다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서 ‘봉건주의 타파’ 이걸 이제 내세우니까, 유교를 말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근래에 들어와서 이걸 재건을 하려고 하는데 자료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득이 우리나라에 와서 배워가고 사진도 찍어가고 이런 상황이 연출된 거죠.
◇ 이성규> 근데 공자 말씀하셨는데, 공자하고 맹자하고 또 다르지 않아요?
◆ 최영갑> 공자는 온건주의, 맹자는 굉장히 과격하죠. ‘역성혁명’이라고 하는 아주 큰 이론이 있죠.
◇ 이성규> 네, 근데 일본은 맹자사상이 좀 덜 들어갔다면서요?
◆ 최영갑> 맞습니다. 한중일 3국 중에서 사실 우리나라만큼은 유교적 국가가 없죠.
◇ 이성규> 골고루 들어왔고, 또 아직도 실천하고 있고.
◆ 최영갑>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유교를 ‘봉건주의’ ‘고리타분하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실제 맹자를 읽어보면 생각이 바뀌어요. 맹자의 역성혁명은 진짜 엄청난 사상입니다. 왜냐하면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바꾸라는 주장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임금들이 겁나죠.
◇ 이성규> ‘이성규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우리나라 유림을 총괄하는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의 최영갑 회장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곧 추석이잖아요. 이제 차례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제사상 간소화’ 얘기도 많이 나오고. 옛날 같으면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를 외우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는데, 요즘은 어때요?
◆ 최영갑> 사실 차례나 재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가족 갈등도 있고, 고통도 받았다는 그런 언론 보도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차례는 사실 간소하게 지내도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차례와 제례를 구분을 잘 못해요. 제례를 지내는 방식을 차례에 옮겨온 것 같아요. 차례상은 당시 계절에 나는 제철 과일이나 음식을 간단하게 올리면 되는데, 제례는 기제사. 돌아가신 분의 기일날 지내는 제사잖아요. 돈 있는 사람 좀 풍성하게 하고, 없는 사람 좀 간소하게 하고. 이렇게 지내왔는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내 부모니까 좀 더 풍성하게 하자’ 이렇게 우리나라 제례 형태로 내려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차례까지 그게 이어진 겁니다. 그래서 이 차례 문화부터 개선을 하자. 그래서 작년에 저희가 성균관 의뢰 적립위원회라고 하는 것을 만들고 제가 지금 위원장 옆까지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9월 5일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할 생각입니다.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있는 홍동백서 조율이시 이런 것들은 다 없다. 그거는 누가 만들어낸 말이거든요. 실제 그래서 우리가 자료를 전부 다 찾아보고 했기 때문에, 이번 표준안이 ‘순서를 어떻게 놓느냐’ 이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가지 수가 대폭 줄었다’라고 하는 데 있습니다.
◇ 이성규> 좀 많이 마음들이 편안해지시겠네요.
◆ 최영갑> 네, 금년 추석은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명절을 지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성규> 그래도 유교에서 이렇게 ‘의례’를 중시하는 뜻이 있겠죠.
◆ 최영갑> 그렇죠. 그러니까 의례라고 하는 것들은 가장 중요한 게 사실 제 ‘마음’이지 않습니까?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 혼례를 치르면 혼인하는 부모나 자식의 마음.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인데 어느 날부터 우리는 형식을 중시하는 문화가 돼버렸어요. 저는 ‘이 문화가 옳은 유교가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례나 차례도 조상을 생각하는 후손들의 정성이 담긴 그 마음으로 준비하면 충분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 이성규> ‘마음이 중요하다’ 아까도 잠깐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요즘 세상에서는 유교를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고, 또 그래도 유도회의 총 본부장으로서는 ‘그래도 유교가 철학적으로 현대에도 필요할 것이다’라는 가치론에 대해서 말씀하실 게 있을 것 같아요.
◆ 최영갑> 논문부터 얘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제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공맹의 도덕철학’이에요. 그런데 그 결론이 뭐냐하면 ‘실천적 도덕철학이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유교, 우리가 어른들이 보통 말할 때 ‘유교의 덕목이 뭐냐’ 하면 ‘오륜’을 제일 먼저 말해요. 그런데 그 오륜은 사실 ‘부모와 자식’ ‘군주와 신하’ 이런 관계들을 쭉 나열을 한 거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관계의 나열이 인간의 관계를 설정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역할은 뭐다. 또 자식의 역할은 뭐다. 이렇게 해서 쌍방이 관계를 잘 맺어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잘못 전수 받아서 부모의 역할은 말을 안 하고 자식의 역할, 즉 효도만 강조해 왔던 거죠. 그래서 저는 ‘쌍방 간이 서로 지켜야 할 도리, 관계’ 여기에 이제 유교 철학의 핵심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이직을 많이 한다고 해요. 그런데 ‘그 이직의 요인이 뭐냐?’ 했더니, 대부분 ‘관계가 안 좋아서’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에.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지금 다루어져야 될 요소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도 이것만 잘해도 충분히 사회생활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 이성규> 관계의 재정립을 위한 실천 철학이네요. 말씀 잠깐 하셨지만, 공자님 말씀 많이 전하고 많은 책을 쓰셨더라고요. 그동안에 그러면 인간 최영갑의 인생 지침이 될 만한 글귀라든가 이런 것 좀 몇 개 소개시켜 주시겠습니까?
◆ 최영갑> 제일 첫 번째로 제가 이제 우리 집안의 가훈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예기>에 나오는 글귀가 있어요. ‘옥불탁불성기, 인불학부지도’ 옥이라고 하는 돌, 이제 보석이죠. 이거는 쪼지 않으면, 잘 만들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이게 저희 집 가훈입니다. 이것과 더불어 세상 살아가는 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글귀는 <논어>에 있는 공자의 ‘화이부동’이라고 하는 말이에요.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문구인데, 이 문구를 잘 따져보면 ‘조화를 추구하되 부동 같은 걸 추구하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도 다르고, 동물도 다르고, 모든 게 다른데. 서로 다른 사람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내 존재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조화를 이룬다면 전쟁이나 이런 갈등이 생겨날 리가 없죠. 그래서 저는 공자님의 사상 중에서 가장 좋은 글귀는 ‘화이부동’ 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성규> ‘조화롭되 동일하지 않다’ 그런데 아까 여성 조직 얘기도 나오고 그랬는데, 지금 그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이제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남자 청소년들은 오히려 “역전됐다” 이런 불만도 있을 정도인데, 유교에서도 여성에 대한 자세, 태도 그런 부분들을 조금 바꾸고 있나요?
◆ 최영갑> 근래 들어서 “남녀 차별이다” “남존여비다” 이런 말들이 많아서 유교가 굉장히 지탄을 많이 받은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 학자들하고 같이 연구를 쭉 해봤는데, 과연 우리 유교 안에 그런 요소들이 있는가 따져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발견을 못 했어요. 그러니까 이게 어느 시대부터 내려왔냐면, 중국은 한나라 때부터 내려옵니다. 이 한나라가 유교를 국교로 만들면서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과 여, 상하관계를 만들어 버려요. 그러니까 임금이 신하를 억누르고, 남편이 아내를 누르고, 어른이 젊은 사람을 억누르고. 이게 소위 말하는 이제 삼강이라는 거죠. 이런 문화 때문에 이제 유교가 악용되면서 하나의 습관이 되었고, 그리고 통치자 입장에서는 그게 굉장히 좋잖아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아마 많은 시간 동안 그렇게 내려오지 않았나. 그런데 실제로는 제가 찾아보니까 남녀 불평등한 요소는 조금은 있겠죠. 왜냐하면 그걸 받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을 해버리니까. 그런 요소가 일부 잘못된 양반이나 선비들이 행해왔기 때문에 여전히 그 욕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시대에는 그게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히 평등하고, 그리고 서로 상호 존중해야 될 상대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유림들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단호히 막아버립니다.
◇ 이성규> 유교, 또 유림. ‘옛 것을 계승한다’ 뭐 옛 것을 잘 계승하면 긍정적이겠죠. 그런데 또 ‘무조건 따른다’ 이건 또 고집스럽거나 우유부단할 수도 있고. 앞으로 여러 가지를 준비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앞으로 유도회 총본부의 회장님으로서 이 유도회와 유교, 유림의 전체적인 활성화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 최영갑> 사실 유림이 고집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고집이라고 하는 것은 저는 사람마다 다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선비나 유림들이 해야 될 고집은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런 것을 그르다고 하는 것’을 목에 칼이 들어와도 피하지 않는 정신. 저는 이게 ‘진정한 고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유교하면은 자꾸 옛 것을 추구하는 걸로 돼 있는데, 이게 공자님 말씀에 ‘온고지신’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포인트를 잘 못 잡고 있는 겁니다. ‘온고’가 바탕이 돼야 ‘지신’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옛 것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 가는 거죠.
◇ 이성규> ‘지신’을 위한 ‘온고’다.
◆ 최영갑> 그렇죠. 실제는 ‘지신’이 방점을 찍어야 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온고’만 해오다 보니까 이런 결론이 나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걸 빨리 이제 바꾸는 게 제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이 유교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의례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것들을 계속 개선해 나갈 생각입니다.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유림을 대표하는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의 최영갑 회장님과 새로운 시대의 유교와 유림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이렇게 나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이성규>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