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시간 : [월~금] 10:30~11:30
  • 진행: 최형진 / PD: 이은지 / 작가: 구경숙

인터뷰 전문

세계 최초 발명, 측우기는 장영실이 만들지 않았다?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1-11-24 11:13  | 조회 : 242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11월 24일 (수요일)
□ 진행 : 이현웅 아나운서
□ 출연 : 박성우 특허청 심사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지난 주말 한 차례 비가 내리면서 벌써 강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올해는 평년보다 추운 겨울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겨울비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더 적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기 예보에서 비소식이 들리면 강수량에 관한 내용도 함께 등장하는데요, 그런데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 걸까요? 약 58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비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우량계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관련 내용 매주 우리의 지식재산권을 지켜주는 박성우 심사관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박성우 심사관(이하 박성우): 네, 안녕하세요. 

◇ 이현웅: 우리나라 최초의 우량계하면 ‘측우기’가 떠오르는데, 이 측우기가 세계 최초의 우량계였던 겁니까? 

◆ 박성우: 네, 세계 최초! 역사에도 나와 있는데요. 세종실록에 보면 1441년 세종 23년에 ‘세자가 구리로 만든 원통형 기구를 궁중에 설치하고 여기에 담긴 빗물의 양을 측정했다‘고 나옵니다. 이후 1639년에 두 번째 측우기 아이디어에 대한 기록이 등장했는데요. 이탈리아의 과학자 베네데토 카스텔리(Benedetto Castelli)가 1639년 갈릴레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실제로 측우기가 제작된 것은 아니고 그저 빗물을 재는 방법 아이디어를 글로 쓴 것이고요. 그 후에 영국의 천문학자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에 의해서 1662년 최초로 서양식 우량계가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보다 220년 늦습니다. 1911년, 네이처(Nature)지에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측우기로 보고된 것이 충청도 공주감영에 설치됐던 금영측우기입니다. 금영은 충청감영의 옛말입니다.

◇ 이현웅: 그런데, 세종실록 기록에 세자의 아이디어라고 나와 있는데, 측우기는 장영실 선생이 만든 게 아니었습니까? 

◆ 박성우: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측우기는 세종대왕 재임기간에 세자였던 문종이 발명을 했습니다. 훗날 조선의 5대왕이 되는 이분은 1414년 11월 15일(음력 10월 3일) 탄생하셨고요. 시기적으로 지금쯤 이지요. 그래서 오늘! 측우기에 대한 내용을 가져와 봤습니다. 

◇ 이현웅: 몰랐던 사실이네요, 그럼 문종이 사용했던 구리로 만든 원통형 기구가 측우기라는 거네요. 그전에 측우기가 없을 때는 강우량을 어떻게 측정했습니까?

◆ 박성우: 측우기가 없을 때는 비가 그친 후에 땅을 파서 빗물이 스며들어간 깊이를 쟀다고 합니다. 그런데 땅에 빗물이 스며들어간 깊이는 땅이 말랐을 때, 땅에 습기가 있을 때 상황에 따라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정확하지 못했겠지요. 문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측우기를 발명을 했던 겁니다. 

◇ 이현웅: 그릇에 담긴 빗물의 깊이를 자로 재면 되는 건데, 저는 왜 그게 대단한 발명인기 실감이 안 나는데요. 중요한 발명인 이유가 뭔가요?

◆ 박성우: 그렇습니다. 우선 보기에는 한글, 자격루, 앙부일구 같은 다른 발명품에 비하면 아주 단순해 보이지요. 그런데 당시에 우리 선조들은 농업을 주로 했기 때문에 가뭄이나 홍수를 굉장히 두려워했는데요, 특히 기상이변은 “재이”(災異)라고 하여 하늘이 노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왕이 민심을 거역하거나 정치를 잘못하면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믿었는데요. 하늘이 왕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생각했지요. 이런 비과학적 사고를 타파하게 된 계기가 측우기 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업생산의 관점에서 기상을 연구하는 농업기상학의 측면에선 아주 획기적인 발명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 이현웅: 그렇겠네요. 그런데 세종대왕 재임기간에도 큰 기상이변, 재이가 있었습니까?

◆ 박성우: 그렇습니다. 세종23년 1441년 4월 26일, 세종이 하늘에서 황우가 줄줄 내렸다는 보고서를 받습니다. 이걸 재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진상 조사를 했는데, 재이가 아니고 송화가루가 비바람에 섞여 생긴 자연현상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세종에게 보고합니다. 

◇ 이현웅: 안평대군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 박성우: 안평대군이 황우이야기를 듣고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겠지요. 그래서 궁궐에 설치해 둔 빗물 받는 그릇에 담긴 물을 조사를 했고요, 그런데 이물이 누렇지 않고, 노란 가루가 섞여 있었다는 겁니다. 그 가루가 바로 송화가루라는 것을 밝혀낸 겁니다. 그런데 이 그릇이 당시에 세자였던 문종이 설치한 측우기의 초기 형태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이현웅: 그래서 안평대군의 주장은 어떻게 됐습니까?

◆ 박성우: 세종은 조사와 실험을 통해서 안평대군의 보고가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국정혼란을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1년 후인 1442년 호조(지금의 재정담당 관청)에서 세종에게 측우기를 경복궁 서운관(훗날 관상감) 뜰과 전국 8도 감영에 설치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세종이 제안내용대로 하자고 한 날이 5월 19일이고요, 이날을 기념해 발명의 날이 5월 19일이 된 것이고요.

◇ 이현웅: 이때부터 전국에 측우기가 설치돼 강수량을 알 수 있게 된 거네요!

◆ 박성우: 맞습니다. 측우기를 사용해 지역별 강수량을 관리했는데요, 가뭄, 홍수, 풍년, 흉년을 판단하는 자료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농업이 주력산업이었기 때문에 작물수확량이나 농업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오늘날로 치면 빅데이터로 활용이 됐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가뭄이나 홍수로 흉년이 들면 세금을 감면해 주는 데이터로 쓰였고요. 그래서 측우기는 가뭄과 홍수로 고통 받는 백성들을 보살피고자 한 애민정신이 담겨 있는 발명품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이현웅: 지금도 강수량은 작황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잖아요. 정말 세기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측우기가 국제 표준과 비슷하다고요? 

◆ 박성우: 당연합니다. 문종이 처음 만든 측우기는 너비가 16.8cm, 높이가 42cm 정도 됐습니다. 이 측우기의 미흡한 점을 개량을 하여 1년 후에 만든 측우기는 너비 15cm, 높이 32cm로 바뀝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기상기구(WMO)에서 표준으로 정한 우량계 입구의 너비가 13~20센티미터입니다. 연구에 의해서 가장 정확한 강우량 측정이 가능한 규격이 그렇다고 하는데요,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당시에 사용한 측우기 너비가 15센티미터니까 지금의 표준 규격에도 딱 맞는 거지요. 그리고 세종실록에는 강우량을 측정하는 방법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 이현웅: 어떻게 나와 있습니까?

◆ 박성우: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간, 비가 그친 시간, 비가 내린 양을 기록하도록 했는데요, 측우기에 담긴 물의 깊이를 “푼” 단위까지 측정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한 푼이라는 단위는 요즘으로 치면 2mm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확하게 강수량을 측정을 한 겁니다.

◇ 이현웅: 그랬군요. 그럼 1442년 측우기가 사용된 이후의 강수량 정보는 지금까지 다 보관이 되어있는 건가요?

◆ 박성우: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같은 외환을 겪으면서 측우제도가 중간에 끊기고 맙니다. 그러다가 1770년 영조 46년에 다시 측우제도가 부활됐고 중앙에서 수령이 파견된 전국 330여개 부-군-현에 측우기를 설치했습니다. 각도의 감사가 지방관아의 강수량을 취합해 중앙으로 보고해서 중앙에서는 전국의 강수량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그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강수량 관측기록이 현존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관측 기록이고요, 지금도 좋은 자료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 이현웅: 대단하네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영측우기는 어디에서 보관을 하고 있나요? 

◆ 박성우: 기상박물관에 가시면 1837년에 제작돼 공주감영에 설치됐던 금영측우기를 볼 수 있는데요. 금영측우기는 보물이었다가 작년에 국보로 승격을 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국보는 각 부문에서 유일한 것이고, 보물은 대표성을 띠는 것 중에서 지정한다고 합니다.

◇ 이현웅: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문종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세종의 애민정신에서 나온 발명품이 측우기였네요. 그리고 심사관님, 오늘도 청취자 여러분들에게 공지사항 알려드려야지요.

◆ 박성우: 네. 특허청이 주최하는 가장 큰 행사 중에 하나죠. 우수한 발명특허 제품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대한민국 지식재산대전」이 오는 12월 1일부터 4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됩니다. 애청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이현웅: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박성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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