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 방송시간 : [일] 20:20~21:00
  • 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김민영

인터뷰 전문

[잠시만요] 안과전문의 임동권"봉사와 나눔은 받은 거 돌려주는 것"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21-10-25 15:51  | 조회 : 279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날짜 : 20211024(일요일)

진행 : 이성규 교수

대담 : 임동권 안과 전문의 원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안과전문의 임동권"봉사와 나눔은 받은 거 돌려주는 것"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짙은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는 빛처럼 삭막한 세상을 밝게 비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그 빛을 얼마나 많이 마주하셨나요? 오늘의 주인공 봉사 활동을 통해서 세상을 비추는 안과 전문의 임동권 원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반갑습니다.

 

임동권 안과 전문의 원장(이하 임동권)> 네 안녕하십니까.

 

이성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직접 자기 인사 그리고 자기소개 좀 해주실래요?

 

임동권> 저는 파주에서 안과를 개원하고 있습니다. 개원한 지는 한 16년 차 되는 안과 의사이고요. 지역에서 어르신들과 지역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소임을 다하면서 안과 진료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성규> 아 안과 전문의로 일하신 지가 20년이 돼 가신다면서요?

 

임동권> 안과 의사로서 수련 기간까지 합치면 한 20년 정도 되는 것 같고요. 이제 전문의를 따고 이제 일한 지는 한 17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이성규> 주로 그쪽 말씀하신 파주 쪽에서 계속 하셨나요?

 

임동권> 예 처음부터 계속 했습니다.

 

이성규> 앞서서 제가 봉사 활동을 통해서 세상을 비추는 안과 전문의라고 소개를 드렸는데 이 봉사 활동을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임동권> 안과 봉사와 관련해서는 안과 수련을 받으면서 이제 하게 되었고요. 안과 봉사 이전에는 학생 때는 야간학교 교사를 하면서 이제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게 시작이 돼서 이제 수련 과정 중에 안과뿐만 아니라 타과도 이렇게 함께 봉사하는 길을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성규> 수련이 하실 때부터 그 전에 또 학교 다니면서 야학도 하시고?

 

임동권> 아 예.

 

이성규> 아 참 뭔가 이렇게 뭐 dna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또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것도 어쩌면 이런 dna를 실현하기 위한 그런 마음이 크게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임동권> 제가 의사의 길과 봉사의 어떤 봉사를 하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됐던 것들이 제가 어떤 목표의식을 갖고 그쪽으로 가야 되겠다는 어떤 생각을 갖고 시작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주의에서 만나 뵙는 분들이나 혹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어머님이나 안 그러면 가족 중에 이제 나이 차이가 제가 좀 많이 납니다. 누님께서 제가 초등학교 때 이제 벌써 의과대학을 다니는 나이 터울이 있어가지고요. 누님이 공부하는 모습 또 어머님이 가족에 헌신하는 모습 이런 거를 봐가면서 성장하면서 의사가 되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또 의사가 돼서도 제 자의적인 어떤 봉사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만나 뵙는 분들이 너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뵙고, 그분들이 하는 일을 따라 따라하다 보니 이제 어떻게 보면 많은 부분이 제 삶에서 봉사가 저도 모르게 지나오고 나니까 많은 부분이 차지하고 있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성규> 1년 중에 두 달은 해외 봉사를 한다, 이렇게 알려져 있어요. 또 병원 문 닫고 봉사하는 의사다. 최근 근데 2년 동안은 이 코로나19 때문에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임동권> 뭐 하늘에 나는 비행기만 봐도 가슴이 쿵쾅쿵쾅 띕니다. 그전에는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해외에 나가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해외 봉사를 하고 왔었는데요. 작년 1월 달 방글라데시 봉사를 마지막으로 지금 해외 봉사는 이제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못 가는 것보다도 저희가 늘 가던 곳에서 이제 눈이 안 보여서 혹은 눈이 불편해서 저희를 필요로 했던 분들도 저희가 다가가지 못하면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요. 그나마 요즘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백신이라든지 여러 가지 좀 안정화되면서 자가격리나 이런 것들이 없는 나라들도 생기기 시작해서요.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자가격리가 없는 상태에서 봉사 계획을 또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성규> 네 이제 봉사 활동 얘기를 조금 더 해보겠는데요. 그 의료 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2005년경이다 그렇게 얘기하던데요?

 

임동권> 그 전에는 사실 전공의 과정, 의사이기는 하지만 제가 이제 제 스스로 제 시간을 낼 수 있는 그런 위치가 아니어서 봉직을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요. 시간적으로 제약이 많았었는데요. 2005년도 이 인도네시아의 쓰나미가 오게 됩니다. 그 쓰나미 때 저희가 봉사단으로 또 저희가 꾸려졌던 봉사단이 1차부터 6차 정도까지 있었는데요. 그중에 젊은 의사들로 구성된 봉사단이 구성되면서 그 이후에 계속 같이 가셨던 분들과 또 뜻과 또 길을 같이 하면서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성규> 인도네시아 쓰나미가 어떤 본격적 계기를 부여했네요, 보니까. 근데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해외 봉사팀이 체계적으로 좀 구성이 안 돼 있었죠?

 

임동권> 지금은 상당히 체계적이고 많이 발전되었는데요.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무엇을 보내야 될지, 또 어떤 분들이 가야 될지 가서 무엇을 해야 될지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도착해서 물품 정리라든지 안 그러면 가서 저희가 단순하게 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구호팀 회의라든지 UN에서 주최하는 그런 것들을 다니면서 그때 열심히 활동했던 젊은 의사들이 지금은 각처에서 체계화하고 우리나라 해외 원조나 아니면 해외 의료봉사의 주역들이 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성규> 네 근데 그렇게 본격적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하면서 무슨 마음이 많이 들어요?

 

임동권> 처음에는 봉사를 다녀보면 저희가 마지막에 이제 총평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말씀하시는 것들이 대부분 비슷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게 비슷하듯이 몰랐던 부분에 대한 호기심과 또 그 호기심을 넘어서 남을 도우러 온 게 아니라 내가 오히려 치유가 되고 간다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사람이 나면서 기다가, 걷다가, 뛰는 것처럼 봉사에 대한 마인드도 처음부터 거창한 남을 돕는다든지 어떤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하다 보니 제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되고 그 역할이 저의 삶에 있어서 방향성을 설정해 주면서 그게 나아가서는 저희 작게는 가족 그리고 제가 속해 있는 안과 또 저와 알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저의 존재의 의미나 혹은 삶의 가치를 알게 되는 그런 어떻게 보면 삶의 한 과정이자 꼭 필요한 저에게 있어서는 그냥 삶의 일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성규> 삶의 일부분이다. 좀 오래된 얘기 같기는 한데 의료 봉사를 북한 땅에서도 하셨죠?

 

임동권> 네 한참 북한의 금강산 온정리에 저희 관광도 많이 가고 이렇게 남북 화해 분위기가 있었을 때 이제 저희 대한민국 의사로서 북한을 방문하는 의사는 있었어도 현지인을 진료했던 의사들은 정기적으로 없었는데요. 마침 그 금강산 온정리, 금강산 관광지구 바로 옆에 있는 온정리 마을에 그 병원에 북한 주민들을 직접 진료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허락이 돼서요. 저희 병원에 사용하는 안과 현미경 시스템도 기증을 하고 또 실제로 가서 2주에 한 번씩 진료를 갔던 것 같습니다. 7, 8 차례 갔던 거 같은데요 중간에는 한 50명 정도 수술 백내장 수술도 해 드렸었고요. 그 수술할 때 금강산 온정리 있는 분들만 오신 분들이 아니라. 네 함흥이라든지, 심지어는 평양에서도 왔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이성규> 그러니까 이제 주로 백내장 등등을 하셨나요?

 

임동권> 백내장과 안과 질환이 백내장과 망막 질환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백내장은 수술적인 치료나 단기적인 치료로 가능하고요. 이제 망막이나 이런 데 이상이 있어서 시력이 저하되는 경우에는 지속적인 경과 관찰 및 이제 설명이 필요하게 되는 거죠.

 

이성규> 뭐 몇 년 동안 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임동권> 2007년도부터 이제 북한과 해외 봉사를 하게 되었고요, 2007년도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이성규> 그러니까 2007년부터 한 지속을 한 3~4년 하셨나요?

 

임동권> 2년 정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성규> 근데 그중에서도 또 기억이 남는 일이 좀 있을 것 같습니다?

 

임동권> 북한 봉사에서요? 북한 봉사는 처음에는 좀 긴장도 되고 뭘 해야 될지도 막막하기도 했었는데요. 차츰 진행이 되다 보니까 그쪽에 현지 의사들과 학문적인 교류도 하게 되고 또 좀 낯설게 느껴졌던 북한 주민에 대한 그런 것들이 좀 많이 사라져서 상당히 분위기가 좋고 했었는데 저희 의지와 상관없이 관계가 조금 냉랭해지면서 그런 기회가 이제 조금 사라지게 됐습니다.

 

이성규> 가끔 탈북하신 분들 중에도 북한 의사들이 계신 것 같던데 그쪽 의료 수준은 어떻던가요?

 

임동권>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 상당히 평양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은 상당히 열악한 상태였었습니다. 저희가 안과 진료만 갔던 게 아니라 내과, 내시경도 보시고 산부인과 진료도 하고 그랬었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상당히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성규> 또 북한 그리고 외국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여러 가지 나눔 활동을 하고 계시다는데 또 어떤 분들하고 최근에는 인연을 맺고 계신가요?

 

임동권> 계속 국내에서는 국내 안과 봉사나 이런 것들이 약간 국내에서 봉사하는 거는 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해외 공사에 중점을 둬서 했고요. 국내에서는 이것도 이제 북한 봉사와 연관이 되기는 하는데요. 탈북민들, 이제 진료라든지 탈북민들 안경을 맞춰준다든지 정기적으로 진료를 하면서 그런 진료를 해외 봉사 이외에 중간에 짬짬이 이렇게 해오고 있었습니다.

 

이성규> 그리고 또 병원에 시각장애인도 모셔서 좀 직업을 갖도록 하신 적도 있고, 그렇다고 제가 어디서 읽었는데요.

 

임동권> 그것도 아까 모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어떤 그런 프로젝트를 갖고 계획했던 건 아니고 제 주위에 많은 영향을 주셨던 좋은 분들께서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는 더 많이 떨어져 있던 상태라 저희가 병원의 시각장애인을 고용해서 일을 하게 되면 과연 어떤 장점이 있겠냐, 라는 의구심부터 많이 가졌었습니다. 눈을 고치러 갔는데 눈이 안 보이시는 분이 있으면 기분이 좋겠냐, 라는 등 혹은 시각장애인들이 진료 이외의 영역에서 어떤 서비스를 하게 되면 의료법과 상치가 돼서 문제가 되지 않겠냐? 이런 여러 가지 검토 사항이 있었는데요. 그런 검토 사항을 검토한 후에 시각장애인을 고용해서 헬스키퍼 요즘은 아주 낯익은 단어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헬스키퍼라는 게 과연 무엇인가 그랬었는데요. 그분들이 수술 전에 환자들을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어깨라든지 발이라든지 마사지를 해 주시면 너무 편안해 하시고 수술을 들어가는데 안정감이 있었고요. 환자 분들에게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분들이 근무를 하면서 그전까지만 해도 그분들이 일하셨던 장소가 한정적이었었는데 병원으로 이렇게 일하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안과 전문의 임동권 원장과 함께 하고 있는데요. 이쯤에서 우리가 그 노래 하나를 추천을 받습니다. 임동권 원장님께서는 어떤 노래를 추천하시겠습니까?

 

임동권> 컨트리 가수입니다. 72년도에 아마 컨트리 차트 1위까지 했던 빌보드 음악인데요. 노래인데요.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라는 컨트리 가수가 부른 노래입니다. ‘why me’라는 노래입니다.

 

이성규> ‘why me’ 크리스 크리스토퍼스의. 이 근데 이 노래를 왜 좋아하십니까?

 

임동권> 노래 가사가 좀 좋고요. 노래 가사보다 이런 타령 쪽에 그냥 그 잔잔한 음악이 오늘 같은 약간 가을 날씨에 깃을 참 바람이 스칠 때 들으면 뭔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음악인 것 같아서요. 가사 내용에 초입에 나오는 내용들이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어떤 행복을 즐길 만한 어떤 일을 제가 한 적이 있나, 라고 이렇게 절대자에게 묻는 그런 가사인데요. 주위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과 제가 봉사를 하고 도움을 드리고 있다고 하지만 저 자신도, 오늘날의 자신도.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 속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노래를 선곡 해고 왔습니다.

 

이성규> 예 임동권 원장께서 선곡해 주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why me’를 듣고 오겠습니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why me’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신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봉사활동을 통해서 세상을 비추는 안과 전문의 임동권 원장입니다. 원장님 이게 눈 얘기를 좀 해 봐야 되겠는데. 요즘 코로나19 언택트 시대에. 이 언텍트라는 게 사실은 미국 사람들은 잘 모른대요. 콩글리시라고 나왔던데. 안과 찾는 분이 더 늘어났어요, 줄었어요. 어때요?

 

임동권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과들이 환자분들이 많이 줄 것은 사실이고요. 안과도 좀 줄기는 했는데요. 비율에 비해서는 아주 많이 줄지는 않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언택트 시대에 마스크를 끼고 또 미디어를 보게 되면서 생기는 그런 현상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성규그러니까 증상 중에 가장 흔한 증상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요즘?

 

임동권안구 건조증이 제일 심합니다. 건조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있는데요. 연세가 드신 분은 연세가 드신 대로 이제 눈물 양이 줄어든다든지 여러 가지 기타 원인에 의해서 그렇고요. 또 젊은이들이나 혹은 학생들 같은 경우에 요즘 만약에 스마트폰이라든지 안 그러면 pc 디지털 그런 의존도가 높으면서 많이 불편해 하시고 마스크를 끼게 되면 호흡을 할 때 바람이나 약간의 미세한 것들이 눈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불편해서 안과를 많이 찾게 됩니다.

 

이성규아 이제 보통 이렇게 불편을 느끼면 찾아가는 건 당연한데. 그전에도 뭔가 정기적으로 검진도 받고 해야 될 필요는 있는 거죠, 안과도?

 

임동권안과 의사로서 정기 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다, 라고 얘기하면 좀 그러겠지만 사실은 눈은 대개 생존력이나 이런 부분에서 좋은 장기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봉사를 다닌 것도 이제 수술을 하고 나면 회복이 엄청 빠르고, 한 번 회복되면 큰 탈이 안 나기 때문에 그런데요. 그 일환으로 그래서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어떤 질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때그때 시기별로 눈이 나빠지는 거에 대한 어떤 체크가 돼줘야 학습하는 거라든지 안 그러면 다른 이상이 있는 거를 인지를 하게 되고요. 또 이제 요즘은 다들 건강하게 오래 사시지만 만성 질환 하나씩은 좀 갖고 있으셔서 당뇨라든지 또 노화에 의한 황반 변성 이런 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주기를 6개월 정도 주기를 두고 건강하시더라도 보시는 게 좋습니다.

 

이성규요즘 디지털 기기를 뭐 안 만질 수가 없잖아요. 요즘 이런 상황에서 눈 관리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가요?

 

임동권뭐든지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면 별로 좋을 거는 없을 것 같은데요. 너무 이제 장시간 pc나 미디어를 본다든지 혹은 눈을 너무 혹사하는 환경에서 있는다든지 하게 되면 좀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피하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모든 많은 정보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그런 미디어를 통해서 얻어지기 때문에 조금 참고를 하자면 조금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든지 혹은 미디어를 볼 때, 혹은 스마트폰을 볼 때 바른 자세에서 보게 되면 훨씬 더 덜 피로하게 되고 또 스트레스가 더 적게 됩니다. 사람 몸이라는 게 눈이 사람의 몸의 일부이지만 어느 한 부분이 안 좋아지면 눈도 또 같이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성규그런 부분에서 생활습관이나 실내 환경도 중요한 거군요.

 

임동권네 그렇습니다. 요즘 코로나 이전에도 황사라든지 먼지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많이 생활을 하셨고 건조한 환경에서 많이 생활하기 때문에요. 이제 정기적인 환기라든지 실내를 건조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눈 관리의 원칙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성규요즘 건강과 음식을 많이 연결해서들 생각하잖아요. 이 눈에 좋은 음식 뭘 좀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임동권그 건강에 좋은 음식은 다 눈에 좋다, 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색소 생성을 도와주는 무슨 베리 종류들 있지 않습니까?

 

이성규아사이베리?

 

임동권이런 종류의 과일들이나 안 그러면 나이가 드시게 되면 몸에서 만들어 놓은 색소가 아무래도 좀 보충을 해주는 게 좋기 때문에 요즘은 아주 저렴하게 나오는 눈 영양제들 이렇게 같이 섭취해 주시면 도움이 되고요.

 

이성규루테인 이런 거요?

 

임동권루테인 맞습니다. 잘 아십니다. 그런 영양제나 혹은 건강에 좋은 음식들은 비타민이나 이런 건 다 눈에 좋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성규이제 앞으로의 바람을 좀 들어보고 싶은데. 임동권 원장님에 있어서 봉사라는 거, 아까 이제 삶의 가치를 다시 느끼고 그런다고 말씀하셨지만 어떤 의미가 더 있습니까?

 

임동권봉사라고 한다면 제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제가 받은 것을 받은 것을 돌려줘도 부족한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봉사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직업군이나, 돈이 많거나 혹은 할 수 있는 여유만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 스스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주위로부터 많은 도움으로 오늘날에 내가 있었듯이 나 또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이제 주위에 나누고, 돕는 것이 봉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 그렇게 되겠고요. 친척, 친지 같은 동료 조금 더 나아가서는 사회, 지역사회 저처럼 특별한 안과 기술이 있다, 라고 하면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해외에 있는 눈 수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한테 가게 되는데요. 이제 그런 부분들이 제가 수술할 수 있는 안과 환자는 한정돼 있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한강물에 머리카락 던지는 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저의 하나의 행동들이 제 주위에 또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영향이 되고 또 그런 영향을 받아서 제가 이렇게 됐듯이 봉사가 앞으로 그런 나눔과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시대정신이라면 너무 좀 거창할까요? 그런 의미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성규앞으로 의료인으로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목표가 있으면 어떤 게 또 남아 있습니까?

 

임동권의료인으로서 아무래도 저를 찾아오시는 환자분들께 제가 양질의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제가 이제 건강을 잘 유지를 해야 될 것 같고요. 그런 얘기를 가끔 듣습니다. 요즘 병원에 학생들 실습 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실습 오는 분들이 있는데, 그 학생들이 혹은 또 저한테 눈 수술을 받고 간 젊은이들이 진로를 저를 보고 임 원장님을 보고 의사를 하게 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의대를 가게 됐다, 라는 얘기를 들을 때. 그런 의료인으로서 또 남으면 만족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성규. 마지막으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꼭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죠.

 

임동권코로나 시대에 많이 어려운 분들도 많고 그렇습니다. 저희가 함께 하려고 해도 다가가려고 해도 다가가지 못하는 그런 조건이 있는 분들이 많은데요. 빨리 코로나가 진정이 되고 서로 마음을 나누고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리라고 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 힘내시고 코로나 잘 이기셔서 모두 모두 행복한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이상입니다.

 

이성규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안과 전문의 임동권 원장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임 원장님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임동권네 감사합니다.

 

이성규, <이런 사람도 없습니다>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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